요한복음 13:6-11 예수께서는 가장 낮은 노예의 차림으로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다가 베드로의 차례가 되었을 때 베드로는 강력하게 거부했지만 예수께서는 예수님의 섬기심에 참여하지 않으면 예수님과 함께 영원한 나라를 공유할 지분이 없다며 제자들은 이미 목욕을 한 사람들이지만 다는 아니라고 하셨다.
이전 말씀에서 하나님의 모든 권한과 능력을 다 가지신 예수께서는 모든 것을 다 아시고 자신이 아버지께로 돌아갈 때가 된 것도 아시면서 마지막 만찬 자리에서 노예처럼 옷을 다 내려 놓으시고 수건을 두르신 뒤 자신을 배반할 제자들의 발을 씻기셨다. 이어지는 말씀은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며 그렇게 예수님의 섬기심에 참여하지 않는 사람은 예수님과 함께 영원한 나라를 공유할 수 없다고 하시는 내용이다.
6절은 원어에서 그러므로 라는 말로 5절과 연결이 된다. 예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기고 계셨으므로 라는 뜻이다. 개역은 “시몬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라고 되어있는데 마치 시몬 베드로에게 말했다는 뜻처럼 잘못 읽기 쉽다. 원어는 예수께서 시몬 베드로에게 오셨다는 뜻이다. 개역에서 이르다는 말은 말하다는 뜻이 아니라 도착했다는 뜻으로 쓴 것이다. 새번역은 그래서 “시몬 베드로의 차례가 되었다” 라고 의역을 했다.
그러자 베드로는 깜짝 놀라서 “주님, 당신께서 제 발을 씻기시렵니까?” 라고 물었다. 원어의 이 문장에서는 두 단어가 특별히 강조되어 있다. 그것은 “당신께서” 라는 없어도 되는 말을 맨 앞에 넣어 강조한 것이고 또 “나의” 이라는 말이 또한 강조 위치에 있다. 그렇다면 “당신께서 어떻게 나의 발을?” 이라고 특별히 강조한 것이다. 이는 베드로가 정말 깜짝 놀랐다는 뜻이다. 어떻게 주님 당신께서 베드로 자신의 신체 부분 중 가장 천하고 더럽게 여겨지는 발을 씻겨주시느냐는 놀라움이다.
이 질문에 대한 예수님의 대답이 7절에 나오는데 그 대답에 담긴 뜻이 참으로 놀랍다. 7절의 대답은 “내가 네게 행하는 일을 지금은 알지 못하지만 이 후에는 알게 될 것이다” 라는 것이다. 이 후에 라는 말은 발을 씻기신 후 12-15절에서 그 뜻을 설명해 주신 때일 수도 있다. 이후에 라는 말은 12절에서 설명되어 있다.
이 후에 라는 말의 일차적인 의미는 바로 이어지는 내용에서 예수님의 설명을 통해 부분적으로 깨달을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예수님의 행동의 적합성과 그 중요성은 죽으시고 영광을 받으신 이후에 완전히 이해하게 되는 것이다. 대부분은 이 후에 라는 말이 발을 씻기신 후가 아니라 예수께서 죽으시고 영광 받으시고 성령 강림하신 뒤 라는 뜻이라고 해석한다.
예수님은 유다 뿐 아니라 베드로도 나중에 자신을 배신할 것을 다 알고 계셨던 것이다. 그래서 지금은 알지 못한다 한 것입니다. 그러한 베드로의 배신까지도 다 아시면서 발을 씻기심으로 그 죄를 용서해 주신다는 것을 보여주신 것이다. 그러나 그 때 베드로는 완전히 이해하지는 못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뒤에 오순절에 성령을 받고 나서야 베드로는 자신의 발을 씻기신 예수님의 뜻을 완전히 깨닫게 되었을 것이다.
이렇게 그 뜻을 알지 못하기에 베드로는 8절에서 자신의 발을 절대로 씻기지 못한다고 완강히 거부했다. 절대로 씻기지 못한다는 말은 원어에서 영원히 씻기지 못한다는 뜻이다. 마리아가 향유로 예수님의 발을 씻김으로 그 죽으심을 준비했다. 그 때 유다는 완강히 반대를 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말을 씻기심으로 자신의 죽으심을 준비하셨다. 그 때 베드로도 영원히 씻기지 못한다며 완강히 반대를 한 것이다. 베드로는 잘 알지 못했기 때문에 반대한 것이다.
예수께서 잡히셨을 때 베드로는 두려움 때문에 예수님을 배반했다. 그러다가 깨달았을 때 회개했다. 하지만 유다는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해서 어둠을 선택하고 회개하기 보다는 수치심을 이기지 못해 자살한 것이다. 유다나 다른 제자들이나 다 똑같이 예수님을 모르고 배반했다. 다른 제자들이 유다와 다른 것은 자살하지 않고 회개한 것 뿐이다.
이렇게 알지 못하면서 거부하는 베드로에게 예수님은 “내가 너를 씻기지 아니하면 너는 나와 상관이 없다” 라고 대답하셨다. 상관이 없다 라는 말은 함께 가질 부분이 없다는 뜻이다. 본문의 문맥에서 표면적인 뜻은 식사 자리에 함께 참여할 수 없다는 뜻이다. 유대인들의 역사에 비추어 본다면 약속의 땅을 함께 나눌 수 없다는 뜻이다. 그러나 예수께서 말씀하신 의미는 영원한 하나님 나라의 잔치에 참여할 몫이 없다는 뜻이다.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를 상속받게 되면 예수님과 함께 하나님 나라의 잔치에 참여하게 되는데 그 때 참여할 자격이 없다는 뜻이다.
이 말의 문자적인 의미는 예수님과 함께 소유할 부분이 없다는 말이고 그 의미는 예수님과 함께 교제할 수 없다는 의미이지만 예수께서 베드로에게 말씀하시려 하는 것은 베드로가 예수께서 십자가 상에서 베드로를 위해 하려는 것을 받아들이도록 준비하지 않는다면 예수님과 베드로는 관계가 없다는 의미이다. 예수께서 종의 모습으로 제자들의 발을 씻기신 것은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죽기까지 자신을 낮추고 섬기심의 모델을 보여주신 것이다. 예수님으로부터 섬김을 받은 사람들은 그렇게 자기를 낮추어 종의 모습으로 다른 사람을 섬겨야 하는 것이다.
이 말을 듣고 놀란 베드로는 9절에서 발 뿐 아니라 손과 머리까지 다 씻겨 달라고 한다. 이에 대해 10절에서 예수님은 “이미 목욕한 사람은 온 몸이 깨끗하니 발 밖에는 더 씻을 필요가 없다” 라고 말씀하셨다. 당시 식사자리에 초대를 받은 사람은 목욕을 하고 가는 법이다. 그러나 목욕을 하고도 초대 받은 집까지 걸어가는 동안 발이 더러워지기에 그 집에 도착하면 다시 발만 씻기는 것이다. 물론 이는 위생적인 의미에서 씻는 것이 아니라 정결법을 따라 씻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미 목욕을 했기에 발만 씻으면 된다고 하신 것이다.
그러시면서 “너희는 깨끗하다 그러나 다 그런 것은 아니다” 라고 하셨다. 그 설명은 11절에 나온다. 11절에는 “예수께서는 자기를 팔아 넘길 사람을 알고 계셨다. 그러므로 예수께서는 유다가 배신하고 예수님을 팔 것을 알고 계셨기에 ‘너희가 다 깨끗한 것은 아니다’ 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라고 하신 것이다.
목욕을 했다는 말은 예수님의 제자들이 회심하여 예수님을 믿고 제자가 된 것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말이다. 그러나 예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기신 것에 대해서는 초기 교부들부터 시작해서 현대의 학자들까지 이를 서로 다르게 해석해왔다. 어떤 이들은 침례식과 같은 의미의 성례전으로 보기도 하고 어떤 이들은 십자가의 죽음을 상징한다고 해석하기도 한다. 이는 깊은 상징적 의미를 찾아 내려 하다가 과도한 의미부여을 했다고 본인은 생각한다. 이어지는 내용을 보면 회심한 이후에 지은 죄를 서로 용서하라는 것을 가르치기 위해 보여주신 것이라 할 수 있다.
예수께서 옷을 내려놓으시고 노예가 일하는 복장인 천으로 허리만 가린 것은 모든 옷을 내려놓고 십자가에 달리신 모습을 상징하는 것일 수 있다. 제자들의 발을 씻기신 것도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종의 모습으로 자신에게 맡겨주신 사람들을 사랑하신 것을 모형으로 보여주신 것이다. 이어지는 내용을 보면 그 제자들도 역시 예수님처럼 그렇게 다른 사람을 섬기되 죽기까지 자기를 낮추며 섬겨야 한다는 것이다. 교회가 존재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먼저 예수님의 말씀을 깨닫고 섬기는 종이 된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을 섬기는 곳이 교회이다. 그 섬김의 대상은 자신을 높이고 섬기는 종이 된 사람들을 무시하고 밟는 사람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