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 목련(木蓮)이 필 때면 / 강미란
나무에 피는 연꽃이라고 하던가. 난초꽃과 비슷하여 목란(木蘭)이라고도 하였던가. 연꽃이든 목란이든 목련을 두고 말하기는 마찬가지니 나는 어찌 부르던 무슨 상관이 있겠나 싶다. 내 어머니가 좋아 하셨던 목련꽃이었으니 그리움의 향기일 뿐이다. 하얀 목련(木蓮)이 필 때면 어머니 그리움으로 가슴앓이를 한다. 꽃 봉우리가 심상에 뭉클 뭉클 피어오르면 가슴앓이를 하다 끝내 눈시울을 적시고 만다. 목련은 고매한 인품의 덕을 지닌 온유한 여인의 모습이다. 내 기억 속에 남겨진 어머니도 그런 여인의 모습으로 그려져 되새김 되고 있는 것 같다.
고요한 자태로 한 아름 뭉쳐진 경이로운 아름다움을 토해내며 한꺼번에 피었다가 한순간에 자취를 감추어 버리는 것이 목련의 일생이 아니던가. 어머니는 내가 대학 1학년 때 돌아가셨다. 찰나의 순간이었나. 잠시 내 곁에 머물다 떠나신 어머니의 그리움은 나이가 더해 갈수록 공허함을 더해 가기만 한다. 벌써 나도 어머니 돌아가실 적 나이로 다가서는데 갈수록 짙어지는 어머니의 모습, 어머니의 빈자리, 그 연유가 무엇인지 모르겠다. 하얀 목련이 필 때면 생명의 기운들이 넘쳐나고, 알록달록 아름다운 꽃들의 향연이 주는 설렘임을 더한다. 하얀 빛깔을 내밀기 위해 냉기를 머금고도 차디찬 겨울을 견디어낸 목련이기에 애증스럽고 더더욱 아리따운 것인가 보다. 목련은 겨울의 시련을 이겨내고 해마다 봄을 알리며 부활을 거듭하는데 내 어머니는 내 곁에 다시 돌아올 수 없어 안타까움에 서럽기까지 한다.
위암 수술을 받은 어머님은 이생에서의 삶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아셨던 것인지 병원에서 집으로 돌아가시길 원하셨다. 창문 넘어 어렴풋이 비치는 목련나무를 쳐다보며 안방에 누워계셨다. 목련은 봉오리마다 곧 벌어질 듯 입술을 오므리고 있다가 꽃잎 열리는 밤이면 흰 살결로 어머니의 병상을 환하게 촛불 켜 주었다. 홀로 어둠 속에 누워 창가에 비친 목련이 꽃망울을 터트리기를 기다리며 허허로움 달래고 긴 밤을 지새우셨을 어머니 옆을 지켜주고 있었다. 그러나 어머님의 고통은 육체적 고통만이 아니었을 것이다. 막내딸 시집가는 모습 눈에 담아 가지 못하는 한스러움으로 마음에 고통은 더하였을 것이다. 철없는 딸이 받을 충격을 염려하여 병세를 나에게 비밀로 하라 가족들에게 당부하셨다 한다. 그러니 회복 하실 것이라 믿고만 있었던 내가 어머니의 고통을 어찌 짐작이나 할 수 있었겠는가. 이제야 그 마음 헤아려지는데 어머니는 이미 이 세상에 계시지 않는다. 내가 유독 봄을 타는 것은 아마도 어머니에게 못 다한 도리를 갚을 길이 없어서일지도 모른다.
단아하게 빗어 올려 머리카락 하나 흐트러지지 않은 올림머리, 즐겨 입으셨던 한복의 고왔던 자태는 어디로 간 것인지, 하얀 목련이 하나씩 지던 날, 이승에서의 의식은 허물어지며 자식들을 한 명씩 불러 일일이 당부 말씀을 남기시며 인연의 끈을 하나씩 잘라내고 계셨다. 활짝 핀 목련 꽃봉오리들은 하나같이 북쪽으로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어느 날 어머니도 저승 가는 차비를 하시러 목련 꽃봉오리 따라 북쪽을 향해 누우셨다. 목련꽃의 죽음은 느리고도 무겁다. 죽음을 요구하는 모든 고통을 다 바치고 나서야 비로소 떨어지는 의연함을 보인다. 어머니도 그렇게 세상사 염려를 모두 내려 두시고 의연하게 봄바람에 실려 흙이 데리고 가셨다. 목련도 어머니도 소멸하는 시간의 모습으로 종적을 감추어 버렸다.
올케 언니는 나에게 친정 엄마 자리 이상의 역할을 지금까지도 하고 있다. 하지만 때때로 버릇없이 구는 나에게 나무라시던 어머니의 목소리 잠시라도 들어보고 싶어진다. 또박 또박 말대꾸하다 맞았던 어머니의 회초리 한 번이라도 다시 맞아보고 싶다. 나이가 더해지고 자식들이 커 갈수록 어머니의 빈자리가 더욱 커지기만 한다. 4월이 되면 친정집 정원에 어김없이 소담스럽게 피어오르던 하얀 목련이 생각난다. 얼마 전 결혼한 딸아이가 신혼여행에서 돌아왔다. 이바지 음식을 준비해서 보내며 딸 옆에서 친정 엄마 자리에 오래도록 남아주고 싶은 소망을 함께 담아 두었다. 친정 엄마란 옆에 있어 주는 것만으로도 삶의 버팀목이고 가슴 뭉클한 그 무엇이 아니겠는가. 누구나 부모의 빈자리가 그리움과 못 다한 후회로 남겨질 것이다. 친정어머니가 오래도록 옆에 있는 여느 사람들을 보면 모정의 애환은 더욱더 절실해지기만 한다.
목련은 기도하는 꽃이기도 하다. 지난 가을의 찬란한 소멸은 거룩한 봄을 맞으려는 간절한 기도였을 것이다. 나도 우리 딸아이에게 혹시나 내가 떠나면 생길 친정 어미의 빈자리가 크지 않기를 고개 숙여 기도 드려야겠다.
해마다 하얀 목련이 필 때면 어머니는 순백의 등불을 켜 들고 막내딸이 살아가는 세상에 혹여 어둠이라도 있는지 왔다 가시는 것일까. 어머니가 합장하여 기도하는 소리가 더욱 또렷이 들려오는 것 같다. 어머니는 소멸하는 것은 다시 부활하기 위함이라 하신다.
그러니 늘 네 곁에 어머니가 함께 있는 것이라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