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에다 쇼크"는 역대 2위의 대폭락…에서는 "역대 1위"의 초대폭락시, 시장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 8/4(일) / 데일리신초오
순간 자신의 눈을 의심한 사람도 있을 것이다. 8월 2일 닛케이평균은 전날보다 -2216엔의 대폭락. 하지만 이는 역대 두 번째 하락 폭이다. 그럼 "역대 1위 하락" 때, 일본 시장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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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87년 10월 20일을 돌아본다
올해는 새로운 NISA가 시작된 해로, 증권 계좌를 열고, 새롭게 시장에 "참전"한 초보 투자자도 많다고 하지만, 그러한 사람들에게는, 너무 어려운 데뷔의 해가 되었다.
「투자 따위는 손을 대는 것이 아니었다」라고 한탄하는 사람.
"모테기, 고노, 그리고 우에다. 평생 용서하지 않을 거야" 라고 원망의 말을 내뱉는 사람.
「여기서 가만히 견디면, 언젠가는 반드시 올라갈 것이다」라고 기도하는 사람.
그런 '한숨'에 휩싸인 일본 열도이지만, 이번 대폭락을 능가하는 「-3836엔」의 초대폭락을 기록한 1987년의 10월 20일, 시장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었던 것인가.
◇ '스탈린 쇼크' 때에도 이런 일은 없었다
37년 전 대폭락도 이번과 마찬가지로 진원지는 미국이었다. 우선 10월 19일 월요일 뉴욕증시에서는 다우존스30 산업평균지수가 508달러로 22.6%의 대폭락을 기록했다. 미국 정부의 재정 적자와 무역 적자에의 경계감이 단번에 분출해, 컴퓨터에 의한 프로그램 매매의 보급도 맞물려, 그야말로 「매도가 매도를 부른」 전개로. 알고 있다, 전세계의 주식시장을 길동무로 한 역사적인 대폭락, 「블랙 먼데이」이다.
다음 20일의 도쿄 시장은 그 흐름을 받아 하락폭 약 4000엔이라고 하는 패닉 매도를 일으켰다. 금액으로 해서 약 60조엔. 일본의 국가예산과 맞먹는 시가총액이 하루 만에 날아간 셈이다.
이번 폭락은 일본은행의 금리 인상에 따른 엔화 강세 요인도 있지만 8월 1일 미국 경제의 장래 불안에 따른 나스닥과 다우존스산업평균지수의 동반 약세 영향을 받고 있다는 점에서 상황이 비슷하다.
당일 도쿄 증권거래소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당시, 사진 주간지 「FOCUS」1987년 10월 30일호의 취재에 응한 도쿄증권 관계자에 의하면,
「주식 표시 보드가▼표시뿐이라니, 도쿄증권 시작한 이래의 일입니다. ▼표시는 전날보다 가격이 내린 주식으로, ▲표시가 오른 주식입니다만, 1953년의 "스탈린 쇼크" 때도, 전부 ▼표시 따위는 없었습니다」
덧붙여서 「스탈린 쇼크」는 1953년 3월 5일에 소비에트 연방의 최고 지도자·스탈린의 사망을 계기로 일어난 주가 폭락을 말한다. 그 「-10%」가 오랫동안 닛케이 평균 하락의 워스트 기록이었다.
◇ 당시 경제 평론가가 말했던 "이상 사태"
마찬가지로, 당시 「주간 신초」1987년 11월 5일호의 취재에 대답한 경제 평론가는 시장에서 일어나고 있던 "이상 사태"에 대해, 이렇게 해설하고 있다.
"사실 이번 폭락으로 큰 손해를 본 사람은 아직 없다. 20일 대폭락에서 크게 움직인 것은 주가뿐이기 때문입니다. 매도가 나와도 매수 주문이 없기 때문에 장사가 성립되지 않아 이날의 매출량은 평소의 30% 정도에 불과했습니다. 판 것은, 대부분이 미국의 투자은행이나 투자신탁이라고 하는 기관투자가로, 일본의 주주의 주문은 거의 성립하지 않는다. 즉, 현시점에서는 아직 "손절"은 발생하지 않았습니다"
또 경제부 기자는 이상하면 최근 주식시장 자체가 비정상이었다고 회고했다.
"초저금리 시대라 돈은 시장에 넘쳐나 5년 전 6천엔이던 닛케이평균은 2년 전 1만 3천엔대로. 그리고 올해 설에는 1만 8천엔대로 순식간에 2만 6천엔대로 올라섰습니다"
마치 올해 닛케이 평균과 같지 않은가.
◇ 고카라스(Kokkarassu/경주마 데이터)?
허겁지겁해진 마당에, 마지막은 당시의 폭락 중, 그래도 주식을 계속 판매한 증권맨의 '매도 문구'로 마감하고 싶다.
(모두 당시의 『주간신초』1987년 11월 5일호에서)
"폭락이라고 떠들어대지만 20일이 바닥이어서 속락은 없을 것 같습니다"
"오히려 이런 하락장이야말로 투자자들에겐 기회다"
"구매 단가를 낮춰 놓으면 반년 정도면 폭락 전 시세 수준으로 돌아옵니다."
"주주 구성이 젊어지면서 오히려 다시 고점을 노리는 토양이 갖춰졌습니다"
과연 주초의 닛케이 평균의 행방은 ――.
데일리 신초 편집부 / 신초샤
https://news.yahoo.co.jp/articles/e06a0f99af5c792be41057426f893c5438a4b6b3?page=1
“植田ショック”は歴代2位の大暴落…では“歴代1位”の超大暴落時、市場はどんな様子だったか
8/4(日) 11:10配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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デイリー新潮
8月2日の日経平均は前日比でマイナス2216円。歴史的な大暴落となった
一瞬、自分の目を疑った人もいるだろう。8月2日の日経平均は、前日比-2216円の大暴落。とはいえ、これは歴代2番目の下落幅。では“歴代1位の下落”のとき、日本市場はどんな様子だったのだろうか――。
【写真を見る】37年前、パニックに陥った東京証券取引所の様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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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年の10月20日を振り返る
今年は新NISAが始まった年とあって、証券口座を開き、新たに市場に“参戦”した初心者投資家も多いと言うが、そうした人たちにとっては、あまりに厳しいデビュー年となった。
「投資なんて手を出すんじゃなかった」と嘆く人。
「茂木、河野、そして植田。一生許さねぇ」と恨み節を吐く人。
「ここでじっと耐えれば、いつかはきっと上向くはず」と祈る人。
そんな“ため息”に包まれる日本列島だが、今回の大暴落をも凌ぐ「-3836円」の超大暴落を記録した1987年の10月20日、市場では何が起きていたのか。
“スターリン・ショック”の時だってこんなことはなかった
37年前の大暴落も今回と同じく、震源地はアメリカだった。まず10月19日の月曜日、ニューヨーク株式市場ではダウ平均株価が508ドル、率にして22.6%の大暴落を記録した。米国政府の財政赤字と貿易赤字への警戒感が一気に噴出し、コンピュータによるプログラム売買の普及も相まって、まさに「売りが売りを呼ぶ」展開に。ご存じ、全世界の株式市場を道連れにした歴史的な大暴落、「ブラックマンデー」である。
翌20日の東京市場はその流れを受け、下落幅約4000円というパニック売りを引き起こした。額にして約60兆円。日本の国家予算に匹敵する時価総額が1日で失われたことになる。
今回の暴落は、日銀の利上げによる円高という要因もあるが、8月1日に起きたアメリカ経済の先行きの不安によるナスダックとダウ平均の同時安の影響を受けているという点で状況が似ている。
当日の東京証券取引所はどんな様子だったのだろうか。当時、写真週刊誌『FOCUS』1987年10月30日号の取材に応じた東証関係者によると、
「株式表示ボードが▼印ばっかりなんて、東証始まって以来のことです。▼印は前日より値下がりした株で、▲印が値上がり株なんですが、昭和28年の“スターリン・ショック”の時だって、全部▼印なんてことはありませんでした」
ちなみに「スターリン・ショック」は1953年3月5日にソビエト連邦の最高指導者・スターリンの死去をきっかけに起こった株価暴落のこと。その「-10%」が長らく日経平均下落のワースト記録だった。
当時の経済評論家が語っていた“異常事態”
同じく、当時『週刊新潮』1987年11月5日号の取材に答えた経済評論家は市場で起きていた“異常事態”について、こう解説している。
「実は今回の暴落で大損した人はまだいない。20日の大暴落で、大きく動いたのは株価だけだからです。売りが出ても買いの注文がないので商いが成立せず、この日の商い量は普段の3割ほどに過ぎませんでした。売ったのは、ほとんどがアメリカの投資銀行や投資信託といった機関投資家で、日本の株主の注文はほとんど成立していない。つまり、現時点ではまだ“損切り”は発生していないのです」
また、経済部の記者は「異常と言えば最近の株式市場そのものが異常だった」と振り返っていた。
「超低金利時代とあって、カネは市場に溢れるように流れ込み、5年前は6千円だった日経平均は2年前には1万3千円台に。そして今年の正月は1万8千円台になって、あっという間に2万6千円台まで駆け上がりました」
まるで、今年の日経平均と同じではないか。
コッカラッス?
空恐ろしくなってきたところで、最後は当時の暴落の最中、それでも株をセールスし続けた証券マンの「売り文句」で締めたいと思う。
(いずれも当時の『週刊新潮』1987年11月5日号より)
「暴落だと騒がれていますが、20日が大底で続落はないと思います」
「むしろ、こういう下落時こそ投資家にとってはチャンス」
「買い増して取得単価を下げておけば、半年ほどで暴落前の相場水準に戻りますよ」
「株主の構成が若返ったことで、むしろ再度高値を狙う土壌が整いました」
果たして週明けの日経平均の行方は――。
デイリー新潮編集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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