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요한 세례자 수난 기념 (마르 6,17-29)/ 반영억 라파엘 신부
복음
<당장 세례자 요한의 머리를 쟁반에 담아 저에게 주시기를 바랍니다.>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6,17-29
그때에 17 헤로데는 사람을 보내어
요한을 붙잡아 감옥에 묶어 둔 일이 있었다.
그의 동생 필리포스의 아내 헤로디아 때문이었는데,
헤로데가 이 여자와 혼인하였던 것이다.
18 그래서 요한은 헤로데에게,
“동생의 아내를 차지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하고 여러 차례 말하였다.
19 헤로디아는 요한에게 앙심을 품고 그를 죽이려고 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20 헤로데가 요한을 의롭고 거룩한 사람으로 알고
그를 두려워하며 보호해 주었을 뿐만 아니라,
그의 말을 들을 때에 몹시 당황해하면서도 기꺼이 듣곤 하였기 때문이다.
21 그런데 좋은 기회가 왔다. 헤로데가 자기 생일에
고관들과 무관들과 갈릴래아의 유지들을 청하여 잔치를 베풀었다.
22 그 자리에 헤로디아의 딸이 들어가 춤을 추어,
헤로데와 그의 손님들을 즐겁게 하였다.
그래서 임금은 그 소녀에게, “무엇이든 원하는 것을 나에게 청하여라.
너에게 주겠다.” 하고 말할 뿐만 아니라,
23 “네가 청하는 것은 무엇이든, 내 왕국의 절반이라도 너에게 주겠다.” 하고
굳게 맹세까지 하였다.
24 소녀가 나가서 자기 어머니에게 “무엇을 청할까요?” 하자,
그 여자는 “세례자 요한의 머리를 요구하여라.” 하고 일렀다.
25 소녀는 곧 서둘러 임금에게 가서,
“당장 세례자 요한의 머리를 쟁반에 담아 저에게 주시기를 바랍니다.”
하고 청하였다.
26 임금은 몹시 괴로웠지만, 맹세까지 하였고 또 손님들 앞이라
그의 청을 물리치고 싶지 않았다.
27 그래서 임금은 곧 경비병을 보내며, 요한의 머리를 가져오라고 명령하였다.
경비병이 물러가 감옥에서 요한의 목을 베어,
28 머리를 쟁반에 담아다가 소녀에게 주자,
소녀는 그것을 자기 어머니에게 주었다.
29 그 뒤에 요한의 제자들이 소문을 듣고 가서,
그의 주검을 거두어 무덤에 모셨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 의롭고 거룩한 삶을 살 수 있기를 청합니다 」
매일 정답만 얘기하지 마시고 다른 얘기할 수 없나요? 참 답답합니다. 정답은 저도 알고 있는데 실천하려고 하니까 왜 나만 손해를 보며 살아야 하나? 라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가 없습니다. 참을 만큼 참았고 기다릴 만큼 기다렸는데 아직도 저 모양이니 어쩌면 좋습니까?
정답을 알고 있는데 다른 것을 요구하면 어찌합니까? 물론 뒤집어서 생각해 볼 수도 있지만 결국은 그리로 가야 하지 않나요. 그래서 말이죠. 성경에서 답을 찾아야 합니다. 우리 사람의 생각은 흔들릴 수 있고 오류를 범할 수도 있지만 하느님의 말씀은 진리이고 힘이 있고, 살아있으니 그 말씀에서 해답을 얻어야 명확합니다. 그리고 해답을 얻었으면 그리 사는 것입니다. 손해를 보고, 가슴이 아프고, 고통스럽고 억울해도 인내하면서 하늘을 보는 것입니다. 천상에 보화를 쌓고 위로받아야 합니다. 우리가 가야 할 곳은 하늘나리이기 때문입니다.
헤로데는 그의 동생 필리포스의 아내 헤로디아와 혼인을 하였습니다. 그래서 요한은 헤로데에게 “동생의 아내를 차지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라고 여러 차례 말하였습니다. 그래서 헤로디아는 요한에게 앙심을 품게 되었고, 요한은 결국 목이 베어지는 죽임을 당하였습니다. 요한은 바른말을 하였습니다. 그래서 죽임을 당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죽음은 의로운 죽음으로 기억합니다. 그는 육으로는 죽었지만, 그의 의로움은 끊임없이 오늘도 살아 있습니다.
그러나 헤로데는 육적인 죽음과 영적인 죽음을 동시에 마주하게 됩니다. 막강한 권력을 가진 그였지만 몹시 괴로운 마음으로 요한의 목을 베어 오라고 명하였습니다. 생일 잔치에서 춤을 추는 헤로디아의 딸에게 ‘무엇이든지 청하는 것을 주겠다.’ 고 맹세까지 하였고 손님들이 보는 앞이어서 ‘요한의 머리를 갖다 달라’는 그의 청을 물리치지 못하였습니다. 생일 파티에서 한마디 약속한 것이 이런 결과를 가져오리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한 일입니다. 어떻게 보면 취중에 한마디 한 것으로 볼 수도 있는데… 정말 얼마나 말을 조심해서 해야 하는지를 볼 수 있습니다. 무모한 권력을 내세우지 않고 참된 권위를 회복해야 평화를 누릴 수 있습니다.
약속이 잘못되었으면 거두어들여야지, 위신 체면 때문에 덮어버리면 결국은 파멸을 만나게 됩니다. 의인의 삶은 영광스럽게 기억되고, 자기의 영달과 안전을 지키려 급급해하는 사람은 결국 패배한 사람으로 남게 됩니다. 오늘 우리 정치의 현실을 보면 걱정됩니다. 미래가 뻔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신앙인이기 때문에 힘들고 어려운 일을 대면하며 밑지고 손해를 보는, 불이익을 당할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인내하고 기다리며 주님의 뜻을 찾는 이를 하느님께서는 영원한 승리자로 인정하십니다. 우리는 이미 하늘나라의 시민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어떠한 일이 있어도 헛된 장담을 하거나 앙심을 품는 일은 없어야 합니다. 좋지 않은 결과를 가져오기 때문입니다. 마음 안에 좋지 못한 감정들을 몰아내고 나로 말미암아 상처받은 사람이 있다면 상처를 치유해 주시기를 기도했으면 좋겠습니다. 요한처럼 어떤 처지나 상황 안에서도 의롭고 거룩한 삶을 살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하느님, 제가 숨 쉬는 것만으로도 당신께는 더 좋은 기도가 되게 하소서. 입술보다는 발걸음이 더 좋은 기도가 되게 하소서”(토마스 머튼). 더 큰 사랑을 담아 사랑합니다.
◈ 출처: 신을 벗어라 원문보기▶ 글쓴이 : raphae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