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을 벗삼아 은애하던 님이여, 저 하늘높이 훨훨 날아가소서"
"어머니~~"
절벽 위에서 꽃잎을 뿌리며 눈물을 흩날리던 여인은 자신을 부르는 아들의 목소리에 고개를 돌린다.
"어머니 여기 계셨어요?"
"그래... 네 아버님이 돌아가신지 1년이 넘는 날이구나. 길고도 짧은 세월동안 많은 일이 있었는데 말이다..."
"아버님 이야기를 해주세요. 어머님께 듣는 아버님 이야기는 들어도 들어도 싫증나지 않습니다"
아들의 말에 여인은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10여년전의 회상으로 접어들었다.
저잣거리, 궁안 할것없이 모두들 하얀 상복을 입은채 조용하고 싸늘한 분위기마저 감돌았다.
혜종 17년. 30세의 젊은 혜종이 짧은 생을 마감한 것이었다.
하얀 상복을 입은 이들 가운에 눈에 띄는 이가 있었으니, 즉위식을 해야 할 10세의 어린 왕과 12세의 어린 왕비만이 대례복을 차려입고 있었다.
나이에 걸맞지 않게 어린 왕과 왕비가 될 이들은 근엄하고도 숙엄한 분위기로 대례복을 차려 입었다.
조선의 가장 큰 경축일임과 동시에 축복을 받고 왕위에 올라야 할 이들은 싸늘하고 눈물섞인 축복 속에서 왕좌에 올랐다.
10세와 12세의 어린 나이에 왕좌에 오른 왕과 왕비는 바로 조선의 19대왕인 진종 이휘와 의안왕후 윤채선이었다.
"감축드리옵니다 주상전하. 감축드리옵니다 중전마마. 만년세세 만복을 누리소서"
영의정의 선창에 모든 대소신료들이 자리에 엎드려 이제 막 왕과 왕비가 된 이들에게 하례인사를 올렸다.
아직 어린티도 못벗었기에, 왕실의 웃어른인 대왕대비와 대비는 마냥 근심어린 표정으로 바라볼 뿐이었다.
"마마 영의정대감 들었습니다"
"들이거라"
즉위식이 끝난 후, 대왕대비전에서 아무말 없이 조용히 침묵을 지키던 대왕대비 오씨와 대비 김씨는 영의정대감이 들었다는 말이 들린 후에서야 입을 떼었다.
예를 차리고 자리에 앉는 영의정을 보면서도 왕실의 웃어른인 두분은 한숨만을 내쉴 뿐이었다.
"손이 귀한 왕가라 어린 세자를 왕위에 앉혔으나, 이 늙은이들은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어찌 신이 두분 마마의 근심을 모르겠사옵니까"
"어찌하면 좋겠소? 이제 주상의 보령 10이오. 그렇다고 다른 종친이 있어 왕좌를 넘길 이가 있는 것도 아니고... 수렴청정뿐인데..."
"마땅히 왕실의 웃어른께서 수렴청정을 하셔야 옳습니다. 주상전하께오서 성인이 되실때까지 옥새는 대왕대비마마께오서 보존하셔야 할 것입니다"
"우리 같은 뒷방 늙은이들이 무엇을 알겠소? 살아생전 정치라고는 무지하게도 아무것도 몰라온 늙은이라오. 영의정께서 많이 도와주시오"
"여부가 있겠사옵니까?"
영의정은 자신의 손녀를 중전의 자리에 올리면서, 어린 왕을 손에 쥐고 권력을 탐할 욕심이었다.
왕실의 웃어른인 대비와 대왕대비에게도 권한을 넘겨받은 영의정은 이제 권력만 탐하면 되는 일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생각을 뒤엎는 일이 있었으니...
다음날 아침, 첫날밤을 맞이한 채선과 휘는 대왕대비전으로 아침문후를 들었다.
"어서오시오 주상... 중전... 그래 첫날밤은 평안하셨소?"
"예, 덕분에 평안하였사옵니다"
"다행이구려. 주상... 중전이 궁안에 적응하기 위해서라도 주상이 많이 도와주셔야 합니다"
"예 할마마마"
어린 나이임에도 의젓한 채선과 휘를 보며 대왕대비와 대비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에도 어린 나이에 헤쳐가야 할 산이 많은 자리에 앉히게 된 것이 못내 마음에 걸리기도 하였다.
"주상. 주상이 성인이 될때까지 이 할미들이 주상을 지켜드릴 것입니다"
"할마마마... 소손... 친정을 펼치고 싶사옵니다. 부왕께오서 승하하시기 전날, 친정을 펼치라 하셨사옵니다. 힘들고 어렵더라도 소손이 한번 해보이겠나이다"
"허나... 어찌..."
"소손을 믿고 지켜봐 주시옵소서. 만약 소손의 힘으로 되지 않는다면 그때에게는 친정의 뜻을 접겠사옵니다"
친정을 펼쳐보겠다는 10세의 어린 휘를 보며, 알 수 없는 믿음감에 대비와 대왕대비는 친정을 허락하는 수밖에 없었다.
친정을 펼치게 되었다는 소식을 뒤늦게 들은 영의정은 자신의 방에서 땅을 치며 통곡을 하였다는 말이 전해지기도 할 정도로 휘는 어린 나이에도 문무를 겸비한 영민한 이였던 것이었다.
또한 태어날때 삼성의 기운까지 받고 태어났기에, 그 어느 누구보다도 습득하는 것이 빠른 그였다.
그렇게 친정을 펼친지 10년!
10년동안 휘는 대왕대비와 대비가 하루하루를 편안하게 풍류를 즐기며 지냈다는 풍설이 나돌 정도로 훌륭한 친정을 펼쳤다.
부왕이 해내지 못했던 당파간의 싸움마저도 정리해버린 휘는 만백성들이 칭송하는 어린 어버이로 불리었다.
그러나, 이 세상에 100% 완벽한 인간은 없듯이, 휘에게도 2%의 부족함이 있었다.
그것이 채선이 소생을 낳지 못함에 비롯되어 나타난 부족함이었으니, 하늘의 뜻이었으리라.
"어마마마..."
"내 중전의 마음 이해합니다. 10여년이 넘는 세월동안 그 어느 누가 중전에게 부덕하다 하겠습니까? 소생을 낳지 못하게 만든 하늘의 뜻을 제외하고는, 중전은 누가 뭐라 하여도 천하의 국모감입니다"
"송구하옵니다..."
"대대로 손이 귀한 왕가입니다. 어린 주상께서도 이제 성인식을 치른 어엿한 성인이 되셨습니다. 그럼에도 소생이 없다는 것이 못내 불안합니다. 정정하셨던 부왕께서도 갑작스레 자리보존하신 것이었으니 더 그러합니다. 이 늙은이들의 뜻을 헤아려주세요"
"........ 뜻에... 따르겠사옵니다"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중전... 중전의 손으로 간택하세요. 거기까지 이 늙은이들이 간섭하지는 않겠습니다"
"예..."
대비가 대왕대비의 뜻까지 들고 와 전한 이야기는 채선에게는 가히 충격받을 만한 이야기였다.
10여년이 넘도록 소생을 낳지 못한데다가, 휘가 성인이 되자 소생이 없음이 더욱 불안해졌던 대비와 대왕대비는 휘에게 후궁을 보도록 권하였다.
허나 휘가 채선 외에는 아무도 싫다 거절하자 결국에는 채선에게 찾아와 도움을 요청하기까지 하였다.
소생을 낳지 못하는 것이 죄라고 채선은 싫다 거절하고 싶었으나, 감히 그럴 수가 없었다.
후궁들 자신의 손으로 들이겠노라고 약조한 채선은 자리에 주저 앉아 짧은 한숨을 내쉬었다.
"어찌 한단 말이냐. 절대 후궁 이야기는 꺼내지 말라 당부했던 전하의 말씀을 이렇게 거절해야 하다니... 소생을 낳지 못한 나의 죄로다. 나의 업보로다"
첫댓글 재밌네요오 ^ ^~!
1편밖에 안나왔는데 재밌다고 해주시니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