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일 청광(청계산~광교산) 종주를 다녀오는 길에 서울 서초구 양재동 하나로마트에 들렀다. 전날 윤석열 대통령이 이곳 매장을 찾아 "그래도 (대파 한 단 값이) 875원이면 합리적 가격이라고 생각이 든다"고 말한 것이 장안의 화제가 됐다.
실제로 이날도 대파 한 단은 875원에 팔리고 있었다. 나 역시 믿기지 않았는데 정말 이 가격에 판매되고 있었다. 시중에 비하면 엄청 저렴한 가격이다. 이 정도 가격이면 금세 바닥이 나야 할텐데 하루 일인당 다섯 단까지, 1000단만 판매하는데도 오후 1시쯤에도 상당한 물량이 남아 있었다.
한정 판매이긴 한데 어떻게 이런 가격이 가능할까? 약 3주 전만 해도 이 매장에서는 현재 가격의 3배가량에 판매하고 있었다. 지난 11~13일 농식품부 지원을 통해 20% 할인했다며 2760원에 팔았다. 그 뒤 대통령 방문 전에 1000원으로 내렸고, 방문 당일 875원으로 내린 것이었다.
최대한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면 대통령이 물가 점검에 나선 상황에 정부 지원을 통해 이렇게까지 가격을 낮출 수 있다는 본보기를 보인 격이다. 짖궂게 생각하면 보여주기 행사에 불과한 것이다.
중앙일보 보도에 따르면 유통업계가 판단하는 대파 한 단의 도매 시세는 3300원, 대형 마트 권장 판매가는 4250원이다. 그런데 여기에 정부의 산지 납품단가 지원금 2000원에 농협 자체 할인 1000원, 정부 할인 쿠폰 375원을 더 얹어 875원이란 가격이 책정된 것이다. '합리적인 가격'을 만들기 위해 상당히 합리적이지 않은 방법들이 여러 갈래로 취해진 결과였다.
불과 몇 m 떨어지지 않은 매대에서는 19일 친환경 대파 한 단을 4980원에 판매하고 있었다. 살림 경력 30년이 넘는 아내는 전남 진도산인 '875원 대파'는 워낙 농약 잔류량이 많아 거진 절반은 버리고 조리해야 안심하고 식구에게 먹일 수 있다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다른 곳은 어떨까? 같은 날 서울 성동구 성수 1가 2동의 한 마트에서는 대파 한 단에 2990원을 받고 있었다. 원래 가격은 4970원인데 카드 할인 행사를 통해 이 가격에 판매하고 있었다. 같은 동의 다른 마트에서는 깐대파 한 단을 3500원에 팔고 있었다. 아내는 두 마트의 대파 한 단 가격이 서민들이 납득할 수 있는 '합리적인 가격'에 가깝다고 말했다. 나아가 주부가 일상적으로 체감하며 가족들에게 먹일 수 있는 대파 가격은 3300원 수준일 수 밖에 없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