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산훈련소에서 훈련을 끝내고 '66년 1월1일 아침에 부산역에 도착하고는 노란마후라를 목에 두루고 단감동 통신기지창에서 관물을 풀고는 점심을 3그릇, 저녁에도 3그릇, 2일 아침에도 3그릇을 먹었더니 그냥 배탈이 나고 말았는데 어디 졸병이라 감히 의무대는 갈수 없었고 오로지 활명수나 사먹어야 겠다고 참다 참다 4일에는 PX문을 열고 가서는 대형사고를 치고 말았어요.....
휴게실 문을 열고 뛰어 들어 가다가 이등병 계급장을 단지 5일만에 그만 Px관리장교님이신 대위님을 들어 받았지 뭐에요..
다음 날 호출 명령을 받고 PX 사무실에 갔더니 벌은 고사하고 PX 판매부 요원으로 명 받았지 뭐에요....
졸병때는 하루에 막걸리 7말씩 한 달에 200말씩 퍼 담아 팔았으니 온 몸과 옷에는 술냄새가 진동하니 안주만 있으면 된다는 고참들로 부터 농담도 듣기도 하였고... 그러다가 8개월 후에 사수가 되어서야 크라운과 OB맥주의 맛도 구별할 수 있었지요;
PX 를 찾는 병사들은 거의가 자기 집엔 금송아지가 매어 있다고 하므로
나도 일찍 마이가리를 알았고, 나는 직책상 이등병 계급장을 보름만에 일등병을 건너 뛰고 상병 계급장으로 마이가리로 달았으니 ... 문산 촌놈 군에 가서 돈도 끝발도 맛을 보았다고 자랑을 해 봅니다.. ㅎ ㅎ ㅎ
장사를 하다보니 휴가는 꿈도 못 꾸고 집에 한번 오려면 구포에서 뻐스를 타서는 앉아 보지도 못하고 3시간 정도를 서서 고향 왔고,
하룻 밤을 자고는 또 문산 사거리에서 3시간을 서서 구포에 도착하다 보니 똥배가 나올 틈이 없었던 같았어요 ㅋ ㅋ ㅋ
1968년도 당시 병장의 월급은 600원,
막걸리 1되(2리터)는 30원, 빵은 1봉지 (120그람)10원, 과자 1봉지(100그람)는 10원, 껌 1통(5입)은 8원, 질보다 양은 꼭 지켜야 했음.
위 사진은 고향 후배(문산초교 33회)께서 여군소대에 근무했던 나보다 고참이셨던 강 영순병장이에요.
지금은 어디에서 행복하게 잘 살고 있는지요.
위 사진은 일반성면 시장통에 살고 있는 김효일(이 친구 집에 살면서 셋째를 보았음),
가운데 분은 제주 모슬포 실버스타호텔 주인인 이성택씨 인데 혹시 제주가면 내 안부 좀 전해 주세요...
진주에서는 TV 한 대도 없고, 부산 시내에서도 TV 안테나 200대도 설치가 안 되었을 때에
제가 근무하던 PX에는 24인치 TV가 있어지요(시청 시간은 일과 후 6시부터 밤11시 까지), 부산의 군부대에서는 처음이래요
위 사진은 부산 3부두에서의 파월 장병 환송식 장면인데
파월 친우가 있으면 박가스통에 삼학소주1병과 소세지 1통 그리고 과자 몇봉지를 담아서 노끈을 돌로 매달아 배선상에 던저주고 환송한 것이 세번이나 되지용..
위 사진은 67년 8월 15일에 다대포 해수욕장에서 찍은 것인데.
태어 나서 처음으로 바닷물에 몸을 담그어 본 날인데 바다의 들물 날물도 모르고 들어 갔다가 나오면서 제주출신의 전우(성택)
아니 었으면 어떻게 되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귀대하니 할아버지께서 돌아가셨다는 관보가 와 있었기에 잊어지지가 안아요!
위사진은 동래 금정산에서 .... 산성탁주 맛이 일품이었지요
난생 처음으로 당구대도 잡아 보고...
위 사진은 단감동 계곡에서 처음 만났던 사람인데 이젠 옛 추억이라고 생각하면서 올려봅니다.
군인 얼굴치고는 흰색인데
이유인즉 100평 건물에서 둘만이 먹고 자며 생활하니 햇볕 볼 틈이 없어서(까부는 소릴)
첫댓글 추억어린 빛바랜 귀한 사진이시겠네요..
와 ~~~
저 귀한 사진들 .... ^^
정말 멋진 추억들입니더
빛바랜 추억의 사진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