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벌이' 란 말은 국어사전에 "불량배의 부림을 받는 어린이가 구걸이나 도둑질 따위로 돈을 버는 짓, 또는 행위"라고 일컫는다. 나는 근자의 한겨레신문을 두고서 벌어지는 많은 부분들이 이 말에서 교훈을 찾지 않으면 않된다고 본다.앵벌이에게 품위란 무엇인가.
그동안 언론자유의 미명하에 한겨레가 누려온 일정한 지위도 작금에 이르러 한겨레의 현주소를 보노라면, 이제 그 구성원인 기자의 수준을 고양하고, 나를 비롯한 많은 주주님들의 한겨레신문을 한겨레 답게 하는데서 그 해답을 찾아야 한다고 본다.
주위로 부터, 이 땅의 많은 뜻있는 이들로부터, 노사모의 신문, 나아가 노탈레반의 신문 아니 노무현정권의 전위대로 복무하는 어용신문이 한겨레신문이란 말에 많은 의욕의 시선을 보낸것도 사실이다. 그것은 주주로서 최소한의 신뢰이기도 했다..
언론이란 무엇인가. 정치권력과 대립각을 세워 견제하고 부단히 감시하는 것, 품위있고 탁월한 시각을 통해 독자로 하여금 사회로의 열린 창을 제공하는 것, 그래서 인간의 존엄과 자유민주주의像을 구현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근자에 한겨레의 제2창간모금에 노무현氏가 1000만원을 한겨레신문에 기부했다는 소식을 접했다. 많은 사람들의 우려의 목소리가 한겨레와 기부자 노氏를 질타하는 소리가 들린다. 그것은 창간주주로서 "한겨레국민주"를 갖고 있는 나와 3가족 역시 마찬가지다. 나는 한겨레신문에 묻고싶다. 누가 무엇이 한겨레신문을 이 지경까지 오게했는가.
현직 대통령인 노씨의 기부금을 받는 순간 이미 한겨레신문은 국민과 독자를 외면하고, 5만 한겨레의 창간주주를 배신하고 저버렸음을 통렬히 꾸짖지 아니 할수 없다. 노씨의 기부금 1000만원은 한겨레에 족쇄가 되어, 비판과 견제란 언론본연의 사명을 수행할수 없는 것이 자명하기 때문이다.
나와 그리고 많은 우리국민들은, 그래도 한겨레신문에 언론의 자긍심을 지킬것으로 기대했다. 노氏의 제안을 완곡하게 거절하는 한겨레의 한겨레다운 태도와 품격을 기대했다. 받고 싶다면 퇴임후에 받는 최소한의 기본과 상식이 한겨레 언론종사자에게 있으리라고 바랬다. 그런데 노氏의 기부금으로 한겨레신문의 도약이 마치 약속된것처럼 기고만장하는 것은 또 무었인가
한겨레21 김소희기자의 "X에게는 심히 미안하지만, 조선일보가 왜 X선일보로 불리는지 심히 공감한다…적어도 한겨레는 앵벌이 품위는 지킨다. 모금액이 별로 많지 않은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제발 너나 잘해.” 란 가자의 언행에 이르면 막가는 한겨레신문이라고 소리들어도 할말이 없지 않을까.
조선일보의 독자이며 한겨레신문의 주주인 나로서는 지난난 한겨레신문의 논설주간 정연주(현 KBS사장)의 '조선일보 사설'을 한겨레의 사설로 둔갑시켜 독자를 우롱했을때 필자가 가졌던 참담함과 혼란 이상이다. 왜 무엇 때문에 한겨레신문은 권력에 맛을 들이고 기생해야하는가. 이제 국민의 의욕의 시선은 발전기금을 통한 한겨레의 도약은 커녕 독자의 외면을 초래하리라고 보는 데 한겨레신문의 생각은 어떤지.
그래도 불특정 다수의 국민으로 부터 발전기금이란 명목으로 또다시 손을 벌리는 앵벌이 짓을 계속할 것인지 나는 이 두가지 질문을 아니할수 없다.마지막으로 김소희기자의 기자로서의 성찰과 자성이 있기를 바란다. 이것은 매일 조선일보를 접하는 독자로서의 준엄한 명령이자 요구이다.
첫댓글아침에 chosun.com을 읽다가 한겨레21의 김소희 기자에게 화가 났습니다. 조선일보 독자인 저로서는 참담한 부분이 있기에 급히 한토마의 "논객됐어요"와 '자유토론방'회원등록을 하고, 이 글을 올리고, 이곳에 가져왔습니다. 창너머에 대립각을 세움을 마다하지 않겠습니다. 나의 주군 승리의 그날까지
첫댓글 아침에 chosun.com을 읽다가 한겨레21의 김소희 기자에게 화가 났습니다. 조선일보 독자인 저로서는 참담한 부분이 있기에 급히 한토마의 "논객됐어요"와 '자유토론방'회원등록을 하고, 이 글을 올리고, 이곳에 가져왔습니다. 창너머에 대립각을 세움을 마다하지 않겠습니다. 나의 주군 승리의 그날까지
국민 모두가 공감할수 있는 기사를 쓰는 신문이어야 진정한 언론이지요..노무현 전위대 김대중 노무현신문이 맞는거 같습니다.좋은 지적 해주셨습니다.감사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