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봄 정월에 당 고종이 흠순의 귀국을 허락하고, 양도는 억류하여 가두었다. 그는 결국 원옥에서 죽었다. 이는 왕이 마음대로 백제의 토지와 유민들을 차지하였다는 이유로 황제가 노하였고, 이에 따라 사신을 억류하여 일어난 사건이었다.
3월, 사찬 설 오유가 고구려의 태대형 고 연무와 함께 각각 정병 1만을 거느리고 압록강을 건너 옥골에 이르렀다. (원문 3자 결자) 말갈 군사가 먼저 개돈양에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여름 4월 4일, 말갈 군사와 싸워 우리 군사가 크게 승리하였다. 이 전투에서 참획한 것이 이루 셀 수 없었다. 당 나라 군사가 계속하여 도착하자 우리 군사는 물러나 백성을 지켰다.
6월, 고구려 수림성 사람 대형 모잠이 고구려의 유민을 모았다. 그는 궁모성으로부터 패강 남쪽에 도착하여 당 나라 관리와 중 법안 등을 죽였다. 그들은 신라로 오는 도중 서해의 사야도에 이르러 고구려 대신 연 정토의 아들 안승을 만났다. 그들은 안승을 한성으로 맞아 들여 임금으로 삼았다. 그리고 소형 다식 등을 우리에게 보내 애소하기르 "망한 나라를 일으키고, 끊어진 왕대를 잇는 것은 천하의 공의이니, 오직 대국이 이를 허락해주기를 바랄 뿐입니다. 우리 나라 선왕이 도를 잃어 멸망하였으나, 이제 저희들이 고구려의 귀족 안승을 찾아 임금으로 모시고, 신라의 속국이 되어 영원히 충성을 다할 것입니다."라고 애소하였다. 왕은 그들을 서쪽 지방 금마저에 살게 하였다. ·
말에 모면 연정토의 아들로 나옵니다 저는 보장왕의 서자라고 생각하는데 어느 것이 진실일까요?
고씨일까요 연씨일까요 저는 그가 보덕국왕에 신라에 의해 추대된 점은 고구려의 왕자가 아니고서는 불가능하다고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