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 미술이 있고 클래식 음악이 있는, 게다가 둘 사이를 연계해주는 해설이 있는 콘서트를 발견했다. 이름하여 아르츠 콘서트, 본격 공연에 앞선 쇼케이스였지만 그 강렬한 신선함과 재미에 매료됐더랬다. 하품 나는 클래식 음악에 봐도 모르겠는 고전 미술이 뭐가 그렇게 흥미롭냐고? 지루함을 쏠쏠한 재미로 이끄는 해설가가 있기 때문이다. 지난 3년간 공연 기획 단계에서부터 쇼케이스 실연까지, 아르츠 콘서트는 윤운중이 있었기에 가능한 프로젝트였다. 1시간 반가량 이어진 공연을 통해 윤운중은 19세기 낭만파 시대의 음악과 미술, 돈과 사랑이 어떻게 영향을 주고받으며 한 시대를 엮어갔는지를 각종 예술 장르들을 넘나들며 흥미진진하게 설명했다. 툭툭 던지는 듯한 말투인데 웬만한 인문학 강의보다 깊이 있고 박진감마저 넘친다. 그건 그의 설명이 딱딱한 이론적 해설이 아닌,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하나의 작품을 설명해도 작품에 얽힌 비하인드 스토리와 시대적 정황까지 덧붙이는 그만의 특별한 해설이 있기에 가능한 것. 그런데 흥미로운 지점은 서양 문화 전반을 아우르는 방대한 지식의 소유자인 윤운중에겐 대학 졸업장이 없다는 사실이다. 미술사 전공은커녕 기계전자고등학교를 졸업한 것이 학력의 전부다. 윤운중은 유럽에서 가이드로 일하기 위해 서양고전미술을 홀로 독학한 이다. 지난 8년간 유럽 곳곳의 미술관과 박물관을 발품 팔아 돌아다니며 그 방대한 지식을 다양한 책과 현지 체험으로 확인한 것이 전부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와 미켈란젤로조차 구분하지 못했던 미술 문외한에서 유럽에서 알아주는 도슨트가 되기까지. 윤운중의 그림 해설만큼이나 스펙터클한 그의 인생 이야기에 귀 기울여봤다. 에디터 김수연 포토그래퍼 김범기 |
현장감 넘치는 해설이 나만의 강점이다
아르츠 콘서트는 지금까지 없었던 새로운 개념이다. 콘서트 진행을 총괄하는 해설자로 첫 공연을 진행해 본 소감은. 스무 명 정도 앞에서 그림을 설명하는 데 익숙한데, 더 많은 관객들을 대상으로 무대 위에서 마이크 들고 설명하려니 긴장됐다. 그래서일까. 내가 원래 손님들에게 해설하는 퍼포먼스의 70% 정도밖에 역량 발휘를 못한 것 같다(웃음). 나중에 공연 마치고 반응이 좋았다는 이야기를 듣고 나서 다행이다 싶었지.
아르츠 콘서트에는 어떤 계기로 참여하게 됐나. 이 공연을 기획한 스톰프 뮤직의 김정현 사장이 파리에 여행 와서 내가 가이드하는 현장에 들르게 됐다. 내 설명을 듣다가 그 분이 처음으로 미술이 주는 감동을 느끼게 됐다고 하더라. 미술도 이렇게 쉽고 재미있을 수 있다는 것에 충격을 받았다고. 그 감동의 여운 때문인지, 한국에 오게 되면 꼭 좀 만나자는 글을 내가 운영하는 회사 게시판에 남겨뒀더라. 투어가 알차고 고맙다는 이야기를 후기로 정성스럽게 남겨줘서 고마운 마음에 한국에서 따로 그 분을 만났다. 만났더니 대뜸 ‘아르츠 콘서트’에 대한 이야기를 하더라.
아르츠 콘서트의 기획 제안을 받아들인 이유는. 김 사장 때문에 하게 된 거다. 젊은 친구지만 진지한 태도도 마음에 들었고, 무엇보다 공연을 무대에 올리겠다는 확신을 주었다. 동기도 순수했다. 이 공연을 기획해서 엄청나게 돈을 벌겠다는 것보다 고전 미술도 음악처럼 사람들에게 쉽고 재미있다는 걸 알려주자는 취지도 좋았다.
얼마 동안 준비한 건가. 한 3년 정도 준비했다. 음악 공부는 김 사장한테 말 나오자마자 바로 시작했으니까. 클래식 음악과 관계된 곳이라면 파리 곳곳을 샅샅이 뒤져 내 눈으로 직접 확인했다. 전공자도 아니면서 텍스트만 읽고 떠드는 건 의미가 없지 않나. 현장에서 많이 듣고 보고 확인하면서 그렇게 음악을 공부했다. 현장감 있는 해설이 전문가와는 다른 나만의 유일한 강점이니 그걸 잘 활용하는 수밖에.
각종 강의 전시회 해설, 단행본 출판에 이르기까지 무척 바쁜 일정이던데. 각종 강의와 전시회 해설은 내가 한국에 올 때마다 갖는 일정들이니 새삼스러울 것 없다. 돈을 떠나서 내가 좋아서 하는 일들이다. 책은 본래 올 6월에 출간될 예정이었는데 아르츠 콘서트 시연 준비 때문에 발간일을 올해 하반기로 넘기게 됐다. <유럽 미술관 기행>이라는 책인데, 그동안 내가 공부한 모든 것의 총체가 될 만한 작업이다. 거의 집필 마무리 단계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호기심으로 공부했다
도슨트라는 직업은 국내에서는 아직 낯선 직업이다. ‘도슨트’라는 단어의 어원은 라틴어로 ‘가르치다’는 뜻이다. 말 그대로 미술 작품을 이해하기 쉽게 관객들에게 가르쳐주는 사람이다.
본래 전공은 뭔가. 학창시절부터 남다르게 미술에 관심이 많았던 건가. 전자기계고등학교를 나왔으니 전공은 공학이라고 해야 하나. 사실 학창시절엔 축구선수로 생활했다. 김병지 선수가 축구생활 후배다(웃음). 그렇게 선수로 생활하다가 고등학교 3학년 때 삼성전자 그룹 공채 시험을 봐서 바로 취직했다. 삼성전자에서 연구원으로 무선 RF 통신 분야에 몸담았었다. 재직 당시 무선 자동 청소기, 유럽식 드럼 세탁기 같은 것들을 연구하고 계발했다.
남들이 부러워하는 대기업 생활을 갑자기 접었다. 회사생활을 그 누구보다 열심히 했다. 그런데 딱 12년 정도 하고 나니까 회사생활이 시시해지더라. 회사일도 생각하는 대로 척척 진행이 됐고 승진도 마음먹은 대로 다 됐다. 그런 감정이 드니까 대기업 생활이 내게 맞는 것인지, 이 생활 말고 다른 생활이 내 인생에 있는 건 아닌지 궁금해졌다. 당시 스스로 해볼 수 있는 일을 해보자는 마음이 생겨 회사를 바로 그만뒀다. 그리고 나서 시작한 일이 조그마한 무역업이었다.
연구원에서 무역업으로의 전환이라니. 캐나다와 뉴욕 쪽을 기반으로 한 의류 무역업이었다. 한 5년 정도 했는데 아주 잘된 건 아니고 그럭저럭 운영해 나갈만한 수준이었다. 그런데 친한 친구 녀석이 내게 투어 가이드 일을 해보는 게 어떠냐는 제안을 했다. 투어 가이드에 대한 편견이 있어서 여러 번 거절했는데 매번 한국에 찾아와서 함께해 보자고 설득했다. 친한 친구와 하는 일이니 한번 시작이나 해보자는 마음으로 무작정 로마로 떠났다.
떠나고 보니 어땠나. 가서 깜짝 놀랐지. 난 그때만 해도 레오나르도 다 빈치와 미켈란젤로를 구분하지 못할 정도로 미술에 문외한이었으니까. 그런데 현지 투어 가이드로 도슨트 역할까지 하려면 로마의 유적지와 미술품에 대해 쭉 꿰고 있을 정도로 박식해야 하지 않나. 눈앞이 깜깜했다.
그 많은 것들을 어떻게 공부하기 시작한 건가. 바티칸 박물관 입구에 미켈란젤로의 <피에타> 모조품이 있다. 친구가 그 작품에 대해 설명하는 걸 들을 기회가 있었는데 레오나르도 다 빈치랑 미켈란젤로가 헷갈리는 거다. 그래서 제일 먼저 레오나르도 다 빈치 전집을 사서 읽었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와 미켈란젤로를 구분하는 것에서부터 내 미술 공부는 시작된 셈이다. 새로운 세상이 열리는 기분이었다. 바티칸 박물관을 출근하듯 다녔고, 동시에 관련 서적들을 무서운 속도로 읽어나갔다. 책 속에 모르거나 흥미로운 사항들이 나오면 그와 관련된 또 다른 서적들을 읽는 식으로 공부를 진행해 갔다. 이를테면 미켈란젤로 책을 읽다가 메디치 가문에 흥미가 생겨 그와 관련한 단행본들을 모조리 찾아 읽는 식이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호기심으로 하나 하나씩 공부해 나갔다.
정식 가이드로 미술관과 박물관 투어를 시작하기까지 어느 정도 시간이 걸린 건가. 부끄럽지만 속성으로 두 달 정도 걸렸다. 로마는 그나마 그게 가능한 것이 미술사적인 지식이 없어도 됐기 때문이다. 르네상스와 중세 회화, 로마사 정도만 섭렵하면 설명이 가능하다. 그 모든 백그라운드의 소스로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를 달달 외우듯이 읽고 공부했던 기억이 난다. 그렇게 1년 정도 로마에서 가이드와 도슨트 생활을 하고 나니 로마가 지겨워지더라. 로마는 전부 유적지 밖에 없질 않나. 마치 내 삶이 민속촌의 삶처럼 느껴졌다. 당시 돈도 정말 잘 벌 때였는데 돈이고 뭐고 다 필요 없이 그곳을 떠나고 싶었다.
얼마나 벌었길래. 그새 입소문이 나서 당시 아침에 출근하면 나한테 해설 듣겠다고 줄 선 여행객들만 100여 명이었다. 그 사람들 중 50명만 딱 끊어서 하루 해설하면 지금 돈으로 하루 200만원 버는 건 일도 아니었다. 당시 내겐 돈보다 새로운 자극이 더 필요했다. 그래서 파리로 근거지를 옮겼지.
그럼 공부도 새로 시작했겠다. 물론이다. 파리에서 고흐, 고갱 이런 화가들을 처음 접했으니까. 렘브란트가 누구인지도 모를 정도였는데 뭘. 다시 공부를 시작하려고 루브르박물관과 오르세미술관에 가니 로마와는 전혀 다른 새로운 세상이 또다시 열리더라. 로마에서는 고대 미술과 르네상스와 바로크 미술까지 공부했다면 파리에 와서는 로코코, 인상주의, 모더니즘, 현대미술 전체를 아우르는 공부를 하게 됐다. 모든 것이 새로운 자극이었다. 그때부터 파리를 기점으로 전 유럽을 돌아다니며 미술 공부를 하게 됐다. 어쩌다 서울에 오게 되면 대형 서점에서 미술과 관련된 서적들을 파리로 사다 나르는 것이 일이었지. 그때만 해도 버는 족족 반찬은 안 사먹어도 책은 사서 볼 정도였다.
가이드로 번 돈을 서유럽 전역의 박물관과 미술관을 찾아보는 데 썼다던데. 돈 좀 썼다. 돈만 벌 거였으면 필요 없는 투자지. 그런데 나한텐 돈보다 공부가 더 중요했다. 그래서 아낌없이 썼다. 책에서 뭔가 새로운 것을 발견하게 되면 그거 확인하러 같던 곳을 여러 번 가기도 했다(웃음).
성공이란 말은 내겐 낯선 단어다
직장인들이 서양고전미술을 이해하는 것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나도 12년간 기계, 전자와 관련한 직장생활을 했지만 직장생활에서 체득한 전문 지식이 살아가는 데 하나도 도움이 되지 않았다. 그러나 뒤늦게 배운 고흐와 고갱은 내 인생에서 여전히 중요하다. 왜냐하면 교양은 사람과 사람 사이를 이어주는 연결 고리기 때문이다.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과 사귀고 어울리는 데 예술만큼 좋은 매개체가 또 있을까. 그리고 예술은 내가 먹고사는 일을 조금 더 느긋하게 바라보고 살 수 있게 만든다. 삶의 자양분이 되는 요소다.
직장인들에게 권하고 싶은 고전 미술과 친해지는 방법이 있다면. 다카시나 슈지의 <만화 서양미술사>를 권하고 싶다. 6권짜리 책인데 재미도 재미지만 어지간한 미술사 책보다 정확해서 추천할 만하다. 그렇게 입문서를 마치고 나면 조금 어려운 책을 읽어도 그 책이 재밌어진다. 그러다가 미술관이나 박물관에 가서 실제 작품을 보게 되면 완전히 그 매력에 빠질 것이다.
1년에 대략 어느 정도의 시간을 해외에서 보내나. 파리를 거점으로 8~9개월 정도는 유럽에, 나머지 2~3개월 정도는 서울에 있다.
그럼 당신 가족들은 어디에서 사나. 아직 미혼이다. 결혼했으면 이렇게 마음대로 못살지(웃음). 지금의 삶이 너무 만족스럽다.
그럼 여자 친구는 있나. 그럼. 결혼은 안했어도 연애는 한다(웃음).
유럽 전문 여행사 ‘헬로우 유럽’의 대표기도 하다. 월급쟁이였을 때와 한 사업체의 대표가 되고 나서의 삶. 어떻게 다른가. 지금 생활에 훨씬 만족한다. 왜냐고? 이유는 단순하다. 자유로우니까. 그것만으로도 훨씬 더 행복하다. 내게 있어 삶의 행복은 내가 있고 싶은 자리에 있고 싶을 때 있는 것이다. 돈 버는 건 훨씬 나중의 일이지. 돈은 굶지 않고 밥을 먹고사는 정도만 있으면 된다. 돈 많아도 밥 하루 세 끼 먹는 건 똑같지 않나.
남들이 보기엔 성공한 인생인데 본인도 인정하나. 스스로의 삶에 만족하느냐 마느냐가 중요한 것이지. 남들이 평가하는 성공의 잣대가 뭐 그렇게 중요한가. 남들의 시선 따윈 중요하지 않다. 다만 내 스스로의 인생에 대해 이야기하자면 이만하면 꽤 괜찮은 삶이 아닌가 싶긴 하다. 일반 사람들이 생각하는 성공 기준으로 따진다면 난 성공의 조건에 부합하지 않는 인물이다. 공부로 재투자하느라 돈 많이 벌었어도 많이 모으진 못했으니까. 그러니 서울에 집 한 채도 없지. 거기에 덧붙여 자유롭게 살다보니 결혼도 안 했다(웃음). 성공과 반대되는 조건들을 두루 갖추지 않았나. 하하하.
그렇다면 성공은 당신에게 아무런 의미가 없나. 없다. 성공에 대한 평가는 결과 위주 아닌가. 난 어떤 일에 있어 결과만큼 그 과정 역시 중요하다고 본다. 3년을 기획하고 준비한 아르츠 콘서트가 불발이 되어도, 그 공연을 준비하는 과정 그 자체만으로도 내겐 큰 의미가 있다. 그 3년의 시간 역시 내 인생을 이뤄가는 삶의 소중한 시간들이니까. 내가 이런 사람이다. 그러니 성공이란 말은 내겐 매우 낯선 단어지.
노후에 대한 계획은. 글쎄 잘 모르겠다. 늘 주어진 일에 몰입해서 열심히 사는 타입이라. 나도 내가 앞으로 뭘 하고 살지 궁금하다(웃음).
헬로우 유럽 여행사 대표, 도슨트 윤운중
1967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부산 알로이시오전자기계고등학교 졸업 후 삼성전자 공채로 입사했다. 삼성전자에서 12년간 제어알고리즘 연구원으로 무선 자동 청소기, 드럼 세탁기 등을 연구, 계발했다. 어느 날 문득, 대기업의 직장생활에 염증을 느껴 하루아침에 사표를 던졌다. 이후 북미권을 중심으로 하는 의류 무역사업을 5년간 운영했다. 그러다 유럽에서 투어 가이드로서 새로운 인생을 살아보는 것이 어떠냐는 친구의 권유에 생활의 근거지를 로마로 옮겼다. 2003년 봄, 새로운 생계를 위해 미술 공부를 시작했다. 두 달 속성 과정으로 엄청난 양의 미술 서적과 역사 서적을 읽고 투어 가이드, 도슨트로서의 생활을 시작했다. 1년 후, 근거지를 로마에서 파리로 옮겼다. 공부하면 할수록 매력을 느끼는 서양고전미술의 세계에 푹 빠져 다양한 책들을 섭렵하고 현지 학습을 부지런히 한 결과, 실력 있고 입담 좋은 도슨트로 이름을 떨쳤다. 3년 전, 스톰프 뮤직의 김정현 사장을 만나, 새로운 형태의 공연을 함께 기획하자는 제안을 받았다. 올 연말, 고전 미술 작품과 음악을 접목한 특별한 공연인 ‘아르트 콘서트’의 콘서트 마스터로 활동할 계획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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