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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약회 대구광역시지회
 
 
 
카페 게시글
박약회 대구광역시지회 스크랩 선조와 이순신{권재현}
이장희 추천 0 조회 56 16.02.08 23:24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임금은 ‘덕령은 삼군에서 가장 용감한 장수다. 누가 능히 이자를 묶을 수 있겠는가?’ 라면서 발을 굴렀다고 한다. 김덕령은 용맹했기 때문에 죽었다. 임금은 장수의 용맹이 필요했고 장수의 용맹이 두려웠다. 사직의 제단은 날마다 피에 젖었다.

-김훈의 소설 <칼의 노래>중



김훈의 소설 <칼의 노래>는 충무공 이순신의 내면세계를 심층적으로 들여다본 수작입니다. 김훈은 겨례의 성웅으로 묘사되온 이순신을 매우 현실적 고뇌에 휩싸인 인간적 인물로 재형상화했습니다. 그는 이를 위해 정유재란이 발발한 뒤 오늘날 해군참모총장(삼도수군통제사)에서 계급장을 다 뜯긴 육군쫄병(백의종군)으로 몰락했다가 명량해전으로 재기, 노량해전에서 목숨을 잃을 때까지 1년의 세월에 초점을 맞췄습니다.

소설 속의 이순신은 앞으론 왜군의 총탄과 맞서 싸우면서 동시에 뒤에선 끊임없이 그의 모반을 의심하는 조정의 칼날 사이에서 생존, 아니 명예로운 죽음을 위해 몸부림친 인물입니다. 그 중층적 갈등의 배경 속에서 짙은 안개처럼 이순신의 의식 세계를 뒤덮은 인물이 등장합니다. 바로 선조입니다.

우리가 역사에서 배운 선조는 임진왜란을 초래한 우유부단한 인물, 또는 퇴계 이황과 남명 조식 등 사림의 지식인들을 우대한 호학적 인물입니다. 하지만 선조는 임란의 와중에서도 임란당시 5대 의병장중 하나였던 김덕령을 모진 고문 끝에 죽였고, ‘홍의장군’ 곽재우마저도 고문끝에 유배를 보내 결국 세상과 절연하게 만든 비정한 인물입니다. '문제적 인간, 연산'이 국립극단의 무대에 다시 오른다는데 선조도 연산군 못지않게 문제적 인간이었습니다.

선조는 조선왕실에서 태조 이성계로부터 이어진 적통을 깬 첫 서자출신 임금입니다. SBS의 인기 사극‘여인천하’를 기억하십니까. 선조는 바로 그 '여인천하'에서 여걸로 왜곡 묘사된 문정왕후의 패악이 낳은 임금이었습니다. '여인천하'의 귀염둥이 원자(후의 인종)는 조선왕조에서 가장 어진 임금이자 동시에 재위기간이 가장 짧은 임금이 됩니다. 엄청난 효자였지만 새엄마(문정왕후)의 등쌀에 시달리다 재위 8개월만에 비명회사했기 때문입니다. 결국 야욕에 가득 찬 문정왕후의 친아들 명종이 즉위하지만 그 역시 어머니의 등쌀에 시달리다 역시 후손도 못남기고 죽음으로써 조선 왕조의 적통이 끊깁니다. 그래서 결국 정비가 아니라 후궁인 창빈의 손자인 선조가 임금의 자리에 오릅니다.

선조는 재능은 뛰어난 임금이었는지 모르지만 이런 정통성 콤플렉스로 인해 자신도 모르는 사이 괴물로 변해갑니다. 그는 겉으로는 퇴계와 같은 도학자를 숭상하는 척 하면서 속으론 왕위를 뺏길까봐 전국적 슈퍼스타의 도래를 경계한 시기와 질투의 화신이 됩니다. 더욱 비극적인 것은 조선조 최대의 위기인 임진왜란기였던 그의 재임기는 동시에 조선조를 대표할만한 수많은 재사와 영웅들이 분출한 시기였단 점입니다. 이 때문에 이순신 김덕령 곽재우 등 전쟁영웅이나 정여립처럼 일신의 재능을 감추지 못한 인물들은 역신으로 몰려 죽거나 모진 고문 끝에 귀양을 가야했습니다.

그런 선조 재임기 권력가중 대표적 인물이 ‘사미인곡’의 저자 송강 정철이란 점도 시사하는 바가 많습니다. 그는 선조를 향해선 동성애로 의심받을 만큼 낯간지러운 연서도 마다않았지만 현실정치에선 그런 사랑을 확인받기위해 몸부림치는 선조를 위한답시고 ‘농부가 농사를 짓듯 근면히' 살육을 자행한 인물이었습니다.

이런 선조의 편집증적 성향 때문에 퇴계 이황이나 남명 조식 같은 인물들이 사림에 묻어 살았던 것은 아닐까요. 선조가 이런 인물들을 등용하겠다며 러브콜을 보낸 것은 혹시 딴 맘을 품을까 확인차원에서 일종의 견제구를 끊임없이 던진 것이었고, 이황과 조식 등은 속으론 치를 떨면서 겉으론 겸양의 미덕을 발휘하는 척하는 일종의 합의된 연기를 펼쳐야했던 것은 아닐까 하는 것이 저의 발칙한 상상입니다.

그런 선조가 조선조에선 영조(역시 서자출신) 다음으로 긴 재위기간(31년)의 보유자였으니 얼마나 많은 영웅준재들의 씨가 말랐겠습니까. 이순신은 이황이나 조식과 달리 그런 최악의 보스를 모시면서 나라를 구했고 이름을 청사에 남겼습니다. 도대체 어떻게? 오늘도 직장에서 어떻게 살아남을까, 아니 어떻게 자신의 능력을 십분 발휘하면서 명예도 버리지 않을까 고민하는 분들께선 ‘칼의 노래’를 다시 읽어보기를 권합니다. 물론 궁극적으론 명예로운 죽음을 통해서였지만 그 역시 이 때문에 치열히 고민했고 이를 위해 작은 타협도 마다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작은 위안으로 다가올 것입니다.


P.S. 노무현 대통령이 '칼의 노래'를 청소년 권장도서로 추천했다고 합니다. 노대통령이 주목한 것은 어쩌면 충무공의 애국충절의 치열한 내면세계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반대로 소설 속 '문제적 인간, 선조'까지도 반면교사로 삼을 수 있는 지혜를 기대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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