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내옹(乃翁)을 알고 지낸 것이 오래되었다. 내가 예전에 국시(國試)에 급제하고 나서 관례에 따라 외방으로 나가 사록 참군(司錄參軍)이 되었는데, 임기를 마치고 돌아왔을 적에도 내옹은 여전히 제생(諸生)의 신분으로 있었다. 제생 중에서는 내옹이 나이가 비교적 많았고 재능도 우수하였으므로 제생이 모두 내옹을 추대하며 심복(心腹)하였다. 내옹은 또 술을 좋아하는 성미라서 하루라도 술을 마시지 못하면 뭔가 잃어버린 것처럼 느꼈는데, 제생이 그런 까닭에 그를 따라 노닐기를 좋아하였다. 나도 때때로 그와 상종하며 어울리곤 하였는데, 그는 진솔한 사람으로서 다른 마음이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 뒤에 내가 향거(鄕擧)에 합격하고 나서 중국에서 벼슬하게 되었으므로 오래도록 서로 만나 볼 수가 없었다. 그러다가 정축년(1337)에 내가 정동성(征東省)의 막좌(幕佐)로 본국에 나오게 되었는데, 그때 내옹은 이미 중국의 과거에 급제하여 성가(聲價)가 갈수록 높아지고 있는 때였다. 그런데 그의 인품이 제생 시절과 조금도 다름이 없었으므로, 나는 그가 진솔한 사람임을 더욱 확인할 수가 있었다.
지금은 내가 또 연경(燕京)에 와 있는데, 본국에서 배신(陪臣)을 보내어 천수절(天壽節)을 축하할 즈음에, 내옹이 또 문한(文翰)에 선발되어 표문(表文)을 받들고서 대궐에 오게 되었다. 그런데 이때 마침 거가(車駕)가 순행하는 때라서 이미 관(關)을 넘어갔으므로 내옹이 사신 일행과 함께 험난한 길을 따라 고생을 하며 북상하여 장막을 친 행궁에서 황제를 알현하였다. 그리고는 마침내 난경(灤京)까지 따라가서 몇 개월 동안 머물렀으며, 연경에 돌아온 뒤에도 다시 몇 개월 동안 머물렀다. 그래서 내가 또 그와 함께 노닐게 되었는데, 내옹의 사람됨은 옛날과 전혀 다름이 없었다.
사신 일행이 모두 돌아간 뒤에도 내옹은 또 혼자 남아서 뭔가 할 일이 있는 사람처럼 몇 개월 동안이나 머물러 있었다. 그러다가 어제는 나를 찾아와서 말하기를 “지난밤에 꿈을 꾸니 어버이께서 문에 기대어 나를 기다리고 계셨다. 그런데 내가 떠나올 적에 오래 있다가 돌아올 것이라고 말씀을 드리지도 못했다. 따라서 내가 집에 돌아가면 이제는 어버이의 명령대로 따라야만 할 것이니, 여기에 다시 오게 될지도 알 수 없는 실정이다. 그러니 그대가 어찌 한마디 말을 해 주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리고 나의 생김새가 어깨가 구부정하고 키가 크다고 해서 사람들이 내옹(乃翁)이라고 불렀으므로 나도 그대로 내 호칭으로 삼게 되었다. ‘내(乃)’라는 글자는 어조사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잘 알지 못하고서 아무 의미도 없는 글자라고 생각하는데, 그대라면 이에 대해서 무슨 말인가 해 줄 수 있을 것이다.”라고 하였다. 나는 물론 오래 전부터 내옹을 알아 온 터라서 그 즉시로 승낙하며 다음과 같이 대답하였다.
무릇 호명(號名)은 남이 칭하기도 하고 자기가 칭하기도 한다. 남이 칭할 때에는 으레 좋은 글자를 붙여 주게 마련이지만, 자기가 칭할 때에는 겸손하게 짓게 마련인데, 겸양하는 뜻을 보이는 까닭에 어리석을 우(愚)가 아니면 노둔할 노(魯)를 붙이고 졸렬할 졸(拙)이 아니면 오활할 우(迂)를 붙이는 것이다. 그런데 이름이란 실제 내용을 바탕으로 해서 나오는 것이니, 만약 그 이름이 사실에 기초한 것이라면, 비록 악명이 덧붙여졌다고 하더라도 어떻게 피할 수가 있겠는가. 이것이 이른바 “나쁜 이름을 감추고 싶어 해도 더욱 드러나게 한다[欲盖而彰].”고 하는 것이다.
옛날 제(齊)나라의 부로(父老)가 소를 길렀는데 소가 송아지를 낳자 그 송아지를 팔아서 망아지를 사 왔다. 그러자 젊은 사람이 소는 망아지를 낳지 못한다면서 마침내 그 망아지를 데리고 갔으므로, 이웃 사람들이 그를 우공(愚公)이라고 불렀다는 고사가 있다. 이 부로가 스스로 해명하지 못할 것도 없을 텐데 우공이라는 이름을 그냥 받아들이고 피하지 않은 이면에는 뭔가 깊은 뜻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 처음에 글자는 어떤 방식으로 만들어졌을까. 혹자는 일(一)과 대(大)가 천(天)이 되고, 토(土)와 야(也)가 지(地)가 되고, 인(人)과 언(言)이 신(信)이 되고, 노(奴)와 심(心)이 노(怒)가 되니, 이런 식으로 유추할 수 있다고 말하지만, 맨 처음에 그런 글자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에 대해서는 정말 알 수 없는 점이 있다. 대개 글자가 물건에 따라서 만들어지는 것이지, 물건이 글자에 따라서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물건이 글자와 비슷하게 되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고 할 것이다. 그리고 어떤 물건이 뒤늦게 생겨난 경우에는 그런 글자 자체가 없을지도 모른다. 그러니 더군다나 인물의 형체를 글자의 점획(點畫)과 맞춰 보려고 한다면, 또한 어설픈 짓이 아니겠는가.
비록 그렇긴 하지만 강물의 형태가 파(巴)라는 글자와 비슷하다는 이유로 파강(巴江)이라고 부르는 것처럼, 사람의 생김새가 내(乃)라는 글자와 비슷하다는 이유로 내옹(乃翁)이라고 부른다고 해서 언짢게 여길 것이 뭐 있겠는가. 그리고 내라는 글자가 어조사이긴 하지만, 특별한 의미가 없다고 해서 또한 쓸모가 없는 것은 아니다. 대저 문장에 어조사를 넣지 않으면 글을 지을 수가 없으니, 이는 씨줄 없이 날줄만 가지고는 보불(黼黻)의 무늬를 만들어 낼 수 없는 것과 같다. 또 그 훈(訓)으로 볼 때 상대방에게 말하기 어려운 글자를 든다면 그것은 너라는 뜻의 이(爾)와 여(汝)라는 글자라고 할 것이니, 이런 글자는 말하기 곤란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함부로 꺼내어 말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사람들이 자기에 대해서 이여(爾汝)라고 하더라도 그것을 받아들일 수 있다면, 이 또한 스스로 낮추며 겸양하는 자의 일이라고 할 것이다. 그런데 가령 오(吳)나라와 촉(蜀)나라의 사신이 국명(國名)을 가지고 서로 흠을 잡은 일이나, 사씨(謝氏)와 석씨(石氏)의 집안에서 성씨를 가지고 서로 시비를 건 일과 같은 것은, 글자를 매개로 해서 익살을 부려 본 것인데, 내가 내옹에 대해서 감히 그런 식으로는 답하지 못하겠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