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불을 꼭 꺼야만 할까 밝은 상태로는 왜 안 될까 잠을 잘 때도 나는 밝은 게 좋다 사실 밝은 게 좋다기보다는 작은 불이라도 켜야 나는 깊은 잠을 잘 수가 있다 열서너 살 소년 시절이다 깊은 산중에 얽은 귀틀집에서 창호지 한 장으로 추위를 견디며 혹독한 겨울을 나곤 했다
아마 이맘때였을 것이다 겨울이면 눈이 제법 쌓이는 산골 비록 같은 강원도라 하더라도 영서 지방은 그냥 그런대로 겨울 눈이 지겹지 않을 정도다 겨울 어느 날 밤이었다 누렁이 개가 느닷없이 울었다 짖는 게 아니라 울었다 울음소리로 보아 평소와 달랐다 누가 꼭 먼저랄 것도 없이 아버지와 나는 화들짝 일어났다
나는 겁에 질려 한쪽 구석에 쪼그리고 앉아 있는데 아버지가 긴 팔로 문을 여셨다 아버지는 키가 크신 편이다 동네 어른들과 함께 계시면 모르긴 해도 15cm는 커 보였다 문을 열자마자 한달음에 뛰어 들어온 개는 방안에 똥오줌을 지리며 온 방안을 헤집고 다녔다 그러다가 방을 뛰쳐나가더니 사랑채 부뚜막에서 숨을 거두었다
지금도 나는 그 개가 바들거리며 죽던 모습을 잊을 수가 없다 이른 새벽에 보니 눈이 하얗게 쌓였고 눈 위로 커다란 발자국이 있었다 아버지는 내게 속삭이셨다 "눈 큰 짐승에게 당한 게 맞구나 고이 잘 묻어 주어야겠다" 아버지와 나는 집 가까이에 장작불을 지펴 언 땅을 녹인 뒤에 죽은 개를 잘 묻어 주었다
그로부터 나는 밤이 두려웠다 달 없는 그믐초승은 심한 편이었다 나는 위험한 줄 알면서도 등잔불을 켜 놓고 잠을 잤으며 절에 들어온지 47년째 접어들었으나 아직도 깜깜한 어둠이 약간은 싫다 하여 작은 전등이라도 켜 두면 잠을 제대로 잘 수가 있다 나는 구병시식을 봉행할 때도 이처럼 불을 끈 대략 5분 정도를 땀으로 범벅이 된 채 집전하곤 한다
전깃불과 가로등 불빛을 비롯하여 촛불과 호롱불과 등잔불 등을 다 끄라는 뜻을 알 것 같다 책주귀신은 어둠을 즐긴다 인간은 어둠에 약한 편이지만 책주귀신은 명암明暗과는 상관없다 어두우면 어두운 대로 활동하고 밝으면 밝은 대로 움직인다 사람이 보통 두려워하는 어둠을 책주귀신은 도리어 즐기는 편이다
소전 진언燒錢眞言은 글자 그대로 명부冥府의 종이돈을 사르면서 외우는 진언을 가리킨다 어두울 명冥 마을 부府 명부는 글자 그대로 어둠 천지다 저승이라고도 하는데 종이돈 대신 영가 위패나 책주귀신의 위패를 사르며 외는 여법如法한 진언을 가리킨다 왜 이승에서의 돈이 아니고 저승의 돈이냐며 반문한다 이는 생각보다 소중한 질문이다 이에 대한 답은 의외로 간단하다
아무리 잘생긴 외모라 하더라도 저승에서는 상관이 없듯이 인간 세상의 아주 귀한 돈일지라도 저승에서는 통용되지 않는다 기축통화基軸通貨가 아니더라도 다른 나라에 가면 환전이 필요하다 이처럼 저승에 가면 저승돈이 필요하다 여기 우리 인간 세상에서 쓰던 원화, 엔화, 유로, 달러 등이 있으나 저승에서 쓰는 저승돈으로 환전한다
소전 진언 다음에 봉송 진언이다 저승돈을 마련하여 살랐다면 저승 티켓을 받은 것이다 그러므로 소전 진언에 이어 외는 진언이 곧 봉송 진언이다 봉송 진언은 받들어奉 보냄送이다 갈 때가 되었고 죽은 뒤라 해서 아무렇게나 보내서는 안 된다 마중에 못잖은 것이 곧 배웅이다 공손하게 맞이했듯 공손하게 보낸다
공손히 보내면서 잊지 말아야 할 게 있다 저승세계 로드맵을 선물하는 것이다 극락세계는 구품으로 되어 있는데 구품 중에서도 가장 좋은 곳이 이른바 상품상上品上이다 그 아래로 상품중과 상품하가 있는데 나중에 상품상으로 이주할 수 있다 우리 사바세계와 마찬가지로 가장 귀한 곳이 상품상이고 버금으로 귀한 곳이 상품중이며 극락이지만 덜 귀한 곳이 상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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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연이 있어 극락세계 상품상에 오르려 싶더라도 그 후부터가 문제다 다겁생래에 지은 업장 때문이다 화려하고 완벽한 도시국가에 여행이나 또는 이민을 갔더라도 만약 언어가 통하지 않거나 문화가 다르다면 문제가 크다 가령 언어와 문화가 다르면 삶의 세계가 다른 까닭에 아무리 좋은 곳에 산다 하더라도 극락의 외톨이가 되어 있을 테니까
그와 마찬가지로 장애물이 있다면 장애물을 잘 풀고 잘 녹이는 진언이나 다라니가 필요한데 곧 해백생원가解百生冤家 다라니다 짧은 한생이 아니고 백 생이다 백 생에 걸친 원망이 쌓였다면 그에 따른 방해 공작도 적지 않다 해백생원가 다라니는 짧은 진언이다 다라니 108번을 염송하더라도 걸리는 시간은 3분 이내다 이때 붉은 팥을 뿌리며 염송하고 108번 이상을 외운 뒤 곧 불을 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