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의 철학자 앙리 르페브르는 ‘도시는 작품이고, 그 도시의 시민은 예술가’라는 말로 현대를 살아가는 시민들의 일상에서 이루어지는 문화와 예술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현대의 시민들은 도시의 주체가 되어 공동의 가치를 세우고 실현하는 것을 말하고 여기에서 가리키는 ‘도시의 주체’란 기존의 특정계층의 문화예술이 아닌 지역민의 문화예술을 중시하여 일컫는 말이다. 비영리 예술법인 부곡온천문화예술협회는 예술을 통해 파생되는 담론을 세상과 공유해 왔다. 국내 신진작가 육성을 목적으로 운영되는 작가거주 프로그램인 창녕호텔아트레지던시는 열정을 가진 젊은 미술가들의 창작활동을 돕고 국제교류를 통해 세계진출을 지원하기 위해 운영된다. 2017년 국내 최초로 호텔이라는 특수한 장소에서 시도된 이후로 입주작가 및 작업멘토, 미술비평, 기획자 등 총 50여명의 국내.외 시각예술 전문가들이 참여하였다. 6개월의 입주 기간에 작가가 직접 기획한 프로젝트를 실행시킬 수 있는 1인 1객실과 생활비, 재료비 등이 무료로 제공된다. 올해도 지난 봄에 입주하여 가을에 퇴실을 앞두고 있는 2019년도 입주작가들의 결과전을 개최하게 되었으며 지면으로나 강경석, 김성민, 양서준, 이수진, 이승연,정윤호 작가의 작업을 미리 소개해 본다.
강경석_새, 136x136cm, 캔버스에 아크릴, 2019
강경석 작가의 작업은 이 지역에서 직접 본 것들에 대한 작업이다. 경남 창녕군 부곡은 여러가지 자신만의 이야기를 가지고 있는 공간이다. 때로 그 이야기들은 사람보다 사물들이 가지고 있는 경우가 있다. 작가는 부곡에 머무르면서 여유롭고 차분하게 그것들을 바라 볼 수가 있었고 산책을 하면서 사진을 찍거나 드로잉으로 기록했다. 그러나 각각의 조각들을 전체로 맞추려 하지는 않았고, 자신이 보는 대상에 더 집중했다. 대상이 원래 가지고 있는 성질을 흩어버린 후 만들어진 이미지들이 서로 어떤식으로 조화하고 상호작용하는 지가 그의 주요한 관심사였다. 강경석 작가는 작업 공간의 전환으로 인해 작업의 전환을 끌어내거나 기존의 자신을 다른 관점에서 바라보게 하는 것에 영향을 받는다. 작가의 이번 레지던시 참여가 새로운 공간에 놓여짐으로써 일어나는 변화를 보기 위해 스스로를 실험해 보는 것이라고 했다. 실험이 성공적이든 아니든 새로운 관점과 낯선 환경이 많은 경험을 준다고 한다.
김성민作 이계식물을 위한 에스키스, 혼합 매체, 13 x 11 x 17 cm, 2019
김성민 작가의 사이버펑크는 SF에서 과학기술이 고도로 발달함에 따라 인공화 되어 가는 세상을 그린다. 사회의 발전을 거치며 변형된 인공물은 마치 이계에서 온 식물을 보는 듯하다. 김성민 작가는 이 작업을 통해 인위적으로 변형될 자연물의 변화를 실험함으로써 사이버펑크적 미래에 대한 이해를 넓힌다. 환경적 재앙과 디스토피아적 상상으로 가득 차 있는 풍경을 되새기며 식물을 만들었고 그 위에 수십 차례 실리콘을 부어 대상의 왜곡을 더했다. 이는 사람의 피부와 묘하게 닮아 느껴지는 실리콘의 이질감과 수많은 레이어로 이루어져 있는 사회를 은유하고 있다.
양서준, 사라지는 것들에 대하여, 92 x 31 cm, 목재에 혼합재료, 2019 - 디테일
양서준 작가의 작업은 타자와 마주하는 것을 통해 자신을 인식, 자각하는 것에 관한 것이다. 사람은 스스로를 제대로 돌아볼 수 없다. 이를테면 거울을 통해 자신의 앞면만을 볼 수 있는 것과 같이 일부만을 인식할 수 있는 것이다. 일차원적인 마주함 속의 시각적 정보가 이내 다양한 방향의 내적 정보로 변환되어 인지하지 못했던 자신을 인식, 자각하게 한다. 양서준 작가의 작업에서 주요재료는 목탄이다. 목탄의 묵빛은 심연과도 같은 색을 내며 이러한 색은 조용히 그 내부를 들여다보고 싶어지는 욕구를 일으킨다. 짙은 묵색을 수없이 중첩시키는 과정 속에서 작품은 어스름한 어둠으로 가득 차게 되지만 그 안에는 분명 자신을 응시하는 눈이 있다. 정적으로, 때로는 동적으로 물끄러미 눈을 마주쳐온다. 작가는 조용히, 깊게 들여다보지 않으면 보기 힘든 ‘마주치는 과정’을 통해 타자가 아닌 자신을 볼 수 있는 순간을 구현하고자 했다.
이수진 따오기 53x45.5cm oil on canvas 2019
이수진 작가의 ‘따오기’시리즈는 자연과 인간이 조화롭게 공존하는 삶을 살아간다는 따뜻하고 희망적인 메세지를 품고 있다. 작품 속의 따오기는 사실 약해서 보호받는 존재이나 한편으로는 자유롭고, 화려하고, 여유로움을 추구하는 상징적인 실체이다. 작가만의 시각으로 따오기를 새롭게 해석하고 상징적인 강렬한 색감을 시도했으며 창녕군 사람들의 염원속에 복원 된 따오기가 다양한 구도의 배경을 뚫고 나와 감상자와 마주하고자 했다. 붉고 열정적인 색상은 멸종위기를 겪은 따오기에게로 관심을 돌리자는 생태계보호의 상징이다. 곧 멸종동물과 인간의 소통, 자연과 인간의 공존을 동시에 풀어나갈 수 있는 매개체가 되기를 바란다는 뜻으로 읽을 수 있다.
이승연_크리스털 잔_3 (그림책), 이주연 글 이승연 그림
이승연 작가는 언니가 싸이월드에 남긴 인상적인 이야기를 10년이 지난 후에 그림책으로 엮는 작업을 한다. 분수에 맞지도 않는데 무리해서 크리스털 잔을 가지길 원하는 사람의 마음에 대한 내용으로 물건이 아니라면 사람이나 환경, 이루고 싶은 꿈과 같은 대상, 그렇게 애를 썼는데도 결국은 가지지 못했거나, 이루지 못했을 때를 바라보는 시각이 오래도록 마음에 남게 된다. 이런 경험은 누구나 있을 것이다. 이승연 작가의 이 작업도 그런 맥락에서 이루어 졌다.
정윤호_그것..그곳.. 117×91cm, mixed media on wood-panel, 2019
정윤호 작가는 사람, 현상 등에 관한 개념엔 늘 견해의 차이가 있기에 그로 인한 모순과 다양성, 양면성 혹은 이중성이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때로는 존재마저 불투명하여 의심이 드는 답을 찾기 위해 노력할 때가 있다. 가끔 답의 존재여부 조차 알 수 없는 문제들을 풀기 위해 비슷하면서도 다른 이런 개념과 관념 속에서 우린 늘 고민과 괴리에 빠진다. 본질은 잊은 채 우리는 살아가고 있고, 그 행위 또한 의심의 꼬리를 물고 우리의 가치관과 사상을 흔든다. 작가는 자신이나 혹은 주변에서 일어나는 현상들을 바라보는 시선을 조명에 빗대어 나타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