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샘통문 Ⅲ-48]내 친구는 “시적 다큐 사진작가”
# 최근에 알게 돼 제법 이무러진 사진작가가 있다. 58년생 자치동갑, 평생(30여년)을 외국에서 봉사활동을 하며 살았다한다. 딱 봐도 얼굴에 ‘착하다’고 쓰여 있다. 전라도 말로 ‘고진’이다. <아름다운 사람>이라는 제목으로 쓴 졸문을 읽어보시라. 서너 달 전, 아버지 1백세기념 감사앨범을 만드는데 적잖은 신세를 졌다. 오산에서 고향과 전주를 두 번 왕래했으니, 출사료(出寫料)가 문제인데, 이 친구는 수줍어(너무 샤이shy하다) ‘그것’은 잘 하지 못하면서도 사진 하나만큼은 기똥차게 잘 찍는다. 솔직히 얼마를 줘야 서운하지 않겠냐고 여러 번 ‘다그쳐’ 겨우 손이 부끄럽지만(프로들을 어떻게 대접할지 몰라) 대충 해결했다.
전라고6회 동창회 | [찬샘통문 Ⅱ-41]아름다운 사람(61)-거리의 사진작가 - Daum 카페
어제 4번째 우리집을 찾는 이유는, 얼마 전 남원 서예가 친구가 인사동에서 고희기념 서예전을 처음 개최했는데, 그 친구에게 사진을 의뢰했기 때문이다. 영국에서 날아온 아들내외와 솔녀들, 사돈을 포함한 가족사진을 찍었는데, 50여장을 ‘두 벌’ 현상해 가져온 것이다. 그냥 메일로 보내 줄 수도 있건만, 진심을 담아 찍은 사진이기에 ‘양심상’ 그럴 수는 없고, 현상한 사진을 당사자들에게 직접 보여줘야 한다는 ‘깊은 배려’가 몸에 배어 달려온 것이다. 내가 다 고마웠다. 친구가족들이 흑백과 칼러사진을 번갈아 보며 "너무 좋다"며 탄성을 질렀으니, 섭외한 나도 덩달아 기분이 좋았다. 본인도 '그 맛'에 사는 것같았다.
아무튼, 30여분간 운전하며 그 친구의 ‘사진철학’을 들었다. 본인을 ‘시적 다큐 사진작가’라 불러달라는데, 솔직히 국내에 몇 명 없다는 ‘잘난 체 아닌 잘난 체’도 은근히 했다. 또는 거리의 사진사를 뜻하는 ‘거사’로, 이름조차도 여태껏 '다른 밥'을 먹고 살았으니 '이반'(異飯)으로 불러달라고 한다. 어느 공모전에 이름을 크게 알린 것도 아니고(알리고 싶지도 않단다), 스스로 사진이 좋아 두 아들이 태어날 때부터 독학자습으로 사진을 배웠다고 한다. 나는 '독학자습'으로 일가를 이룬 분들을 여럿을 친히 알고 있다(소리꾼, 전각 돌쟁이, 엿장시, 한문학자, 바위에 앉아 이나 잡는 산신령 등). 그러면서 하는 말이 “예쁜 사진은 가라. 사진은 스토리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아항, 예쁜 사진은 포샵을 허벌나게 하는 것을 말하는 듯하다. 그리고는 '사진에 스토리를 담아야 한다'는 자신의 철학을 불러넣는 것같다.
가수 김성환 형님의 박사학위 수여식 사진을 찍어달라니까, 먼저 사진을 찍기 전날까지 유튜브 등에서 그 형님의 인터뷰 자료를 다 섭렵했다고 한다. 먼저 사진을 찍는 주인공의 ‘내력’을 알아야 제대로 된 사진을 찍을 수 있다는데, 나같은 문외한이 무슨 말을 할 수 있겠는가. '거시기형님'도 그 사진을 보더니 "여느 작가와 다르다"며 당신의 이사장 책상에 턱허니 세워놓았다. 어떻게 쌓은 내공인지는 모르나, 그 친구가 찍은 ‘기품있는’ 흑백사진 몇 장만 봐도 금세 ‘표’가 난다. 하얀 장갑을 끼고 한 장 한 장 사진을 보여주는데, 사진예술의 장인(匠人) 폼새가 난다. 본인이 좋아서 하는 일을 누가 말기겠냐만, 어떤 재산도 없어 보이기에 친구의 대책없는 ‘먹고 사는 일’이 걱정되기도 했다.
어느 한 분야에 수십 년간 천착하다보면 그런 철학이 생기는 것같다. 그런 사람은 그 분야만큼은 전문가인지라 툭툭 내뱉는 말들이 모두 한 편의 ‘어록’(語錄)에 다름 아니다. 국립중앙박물관장 유홍준(그는 오래 전에 ‘문화권력’이 됐다) 님의 “우리나라는 전국토가 박물관”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면 보이나니, 그때 보이는 것은 전과(모를 때와) 천지차이” 등이 그것이다. 또 한 분은 장성-고창의 정상에서 귀틀집(‘축령산 휴림’으로 검색해 보시라)을 짓고 30여년째 산신령처럼 사는 ‘변신령’ 님도 그런 류(類)의 인간. “우천, 인문학을 한마디로 하면 머시오?” “글씨요” “아, 인문학은 ‘짜-안헌 것’이란 말이요”라고 일갈하기에 놀랐다. 인문학의 정곡을 찌른 그만의 어록을 판판이 내뱉는데 만날 때마다 기가 죽는다. 하하.
좌우지간, 이 겸손한 친구를 알고, 친하게 된 것은 행운이다. 어떻게든 앞으로 나의 ‘인생사진’ 한 장은 만들어주겠다는데, 미안하고 또 고마운 일이다. 인생사진은 정말 기록 중의 기록이 될 것같다. 이미 한두 장만 해도 충분한 터인데, 본인의 성(마음, 눈)에는 차지 않는 듯하다. 나의 <임실·오수 이야기 연구소> 개소식때 불러달라며(출사료는 사양한다는데 그럴 수가 있나?) 책을 한 권 선물하는데, 이어령 박사의 『지성에서 영성으로』라는 책이다. 나도 죽음과 당당히 맞짱을 뜬 그분처럼 말년에 기독교로 ‘귀의’(歸依)해질까? 모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