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보게, 모든 이론은 회색이고, 영원한 것은 저 푸른 생명의 나무뿐이라네.” ―괴테, ‘파우스트’》
의미)모든 신념, 이론은 회색이다. 회색은 헤겔의 말대로 아무리 덧칠해봤자 초록으로 되살아날 수 없는 반(反)생명이며, 황금의 보배로움과 소중함을 지닌 것은 오직 살아 있는 초록의 생명이다.
조금은 얄궂게도 주인공 파우스트가 아니라 악마 메피스토펠레스의 입을 빌려 나온 이 말은, 한 시대 젊은 영혼들에게 영향을 미쳤던 헤겔과 레닌에게 복창되어 내 기억에 새겨졌다. 작가인 동시에 자연과학자로서 색상환을 만들어내기도 했던 괴테의 색채에 대한 특별한 관심을 상기하면, ‘이론은 모조리 회색이고, 생명의 황금나무는 초록색’이라는 번역이 한층 선명할 수 있겠다. 회색과 초록과 황금빛의 감성이 내포한 상징은 명료하다. 회색은 헤겔의 말대로 아무리 덧칠해봤자 초록으로 되살아날 수 없는 반(反)생명이며, 황금의 보배로움과 소중함을 지닌 것은 오직 살아 있는 초록의 생명일지라.
기억 저편에 묻혀 있던 말이 시시때때로, 요즘 들어 더욱 빈번히 떠오른다. ‘별이 빛나는 창공’을 바라보며 길을 찾던 시대는 지나갔다. 필요하기는 하거니와 불필요하게도 밀려드는 정보의 홍수 속에서 악머구리 끓는 목소리에 홀려 길을 잃지 않기 위해서는 자기만의 지도를 만들어야 한다. 함부로 함께 가자고 손을 내밀 수 없다. 누구도 쉽게 따라갈 수 없다. 회색의 것들에 대한 의심과 더불어 니체의 말대로 ‘신념은 감옥’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아는 것이 병이 되고 모르는 것조차 약이 되지 않아, ‘온몸으로 온몸을’ 밀어 가는 일이 그다지도 외로움을 걸음걸음마다 느낀다.
번쩍이는 황금의 울울창창한 초록은 어떠한가. 사춘기에 들어선 아이와 함께 마흔의 고비에서 종주한 백두대간에서 만났던 생명 혹은 생령들을 떠올린다. 2년 꼬박 2주에 한 번씩 떠난 길이었음에도 새벽녘 검은 산 앞에 설 때마다 설렘과 두려움이 반반이었다. 치밀한 예측에도 예외는 발생했다. 땡볕이거나 비바람이거나 눈보라가 어김없이 길을 막았다. 숨 가쁜 오르막의 끝에는 매양 새로운 풍경이 펼쳐지고 가파른 내리막이 이어졌다. 그토록 선명한 영원은 냉엄한 채로 다사롭고, 무질서한 채로 질서정연했다. 살아 있기에 변화무쌍했다. 죽지 않았기에 고이거나 머무르지 않았다. 다만 그 길을 따라가는 작은 인간인 내가 무릎과 발목을 바쳐 깨달은 것은 오로지 ‘알 수 없다’는 사실뿐이었다. 모르기에 순연히 복종하며 닥치는 대로 겪을 뿐이다. 누구도 대신 오르내릴 수 없는 산이요 삶이기에 그곳의 나무도 낙엽송이든 침엽수이든 제각각 푸르다.
바야흐로 세상은 시쳇말마따나 ‘혼돈의 카오스’다. 멀리의 적을 향하던 전선(戰線)은 일상으로 바투 내려왔고 진실의 각개전투가 곳곳에서 벌어진다. 우우우 너울처럼 몰려갔다가 된통 기습당해 퇴각하길 반복한다. 무엇을 무기로 삼아 나를 지키고 고지를 탈환할 것인가? 피아 식별조차 어려워진 혼돈의 시대에 나는 아무것도 믿지 않기로 한다. 독실한 불신자로서 홀로 걷고자 한다. 뚜벅뚜벅 걷는 길 위에서 펄펄 살아 있는 현실과 현실을 사는 사람과 삶 그 자체를 만나, 그 앞에 더 낮고 가만해질지어다.
독일 문호 요한 볼프강 폰 괴테(1749~1832)가 희곡 《파우스트》에서 악마 메피스토펠레스의 입을 빌려 이렇게 말했다.
메피스토펠레스는 이 말로 파우스트 박사를 유혹해 그가 영혼을 건 계약을 하게 한다. 이 말에 넘어가기 전 파우스트 박사는 다음과 같이 탄식하고 있었다.
“나는 철학과 법학, 의학, 신학까지 연구했다. 무엇이 가장 깊은 곳에서 세상을 움직이는지 인식하고 그 근원을 관조하고 싶었다. 하지만 아무것도 알 수 없다는 것만 깨닫게 되었구나.”
메피스토텔레스의 유혹은 영어로는 다음과 같이 옮겨졌다.
“All theory is gray, my friend. But forever green is the tree of life.”
‘가장 깊은 곳에서 세상을 움직이는 무언가’를 명확히 설명하기란 불가능한 일이다. 그래서 이 말은 여러 상황에서 인용되고 변주됐다. 한 정치인은 출마의 변에 활용했다. 시인 이성복은 아포리즘을 모은 책의 제목을 ‘네 고통은 나뭇잎 하나 푸르게 하지 못한다’고 지었다. 해석은 수용자의 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