몬테네그로 검찰 “권도형 구금 최장 30일 연장”… 권측 “항소할 것”… 국내송환 상당시일 걸릴듯
[‘테라’ 권도형 체포]
법원 “도주 우려 있고 신원 불명확”
“韓 통역 없다”며 낸 기피신청은 기각
美로 인도 가능성에 대응책 검토중
몬테네그로 법정에 출석하는 권도형 권도형 테라폼랩스 대표가 24일(현지 시간) 몬테네그로 수도 포드고리차에서 경찰에 이끌려 법정에 출석하고 있다. 전날 몬테네그로 경찰에 체포된 권 대표는 한국과 미국 검찰로부터 각각 8개 안팎 혐의를 받고 있다. 포드고리차=AP 뉴시스
몬테네그로 검찰이 권도형 테라폼랩스 대표를 공문서 위조 혐의로 기소하고 구금 기간 또한 최장 30일로 연장하겠다고 24일(현지 시간) 밝혔다. 몬테네그로 현지에서 사법 절차가 끝난 뒤에야 다른 나라로 인도가 가능한 데다 미국 인도 가능성도 있어 한국에 송환되기까진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26일 법무부 등에 따르면 피의자 구금을 최대 72시간까지 허용하는 몬테네그로는 현지 검찰 측 요청으로 피의자 신문을 거쳐 권 대표의 구금 기간을 최장 30일로 연장했다. 법원은 “권 대표가 싱가포르에 주거지를 둔 외국인으로 도주 우려가 있다. 신원 또한 명확하게 입증되지 않았다”며 구금 기간 연장 이유를 밝혔다. 권 대표는 23일 몬테네그로 수도 포드고리차 공항에서 코스타리카 위조 여권을 사용해 아랍에미리트(UAE) 두바이로 출국하려다 체포됐다. 권 대표의 짐에선 한국 여권과 위조된 벨기에 여권이 발견됐다.
권 대표 측 변호인 브란코 안젤리치 씨는 25일 현지 언론에 “법원의 구금 기간 연장 결정에 항소할 것”이라고 밝혔다. 또 첫 피의자 신문에서 한국어 통역이 제공되지 않았다며 재판부 기피를 신청했다. 하지만 법원은 권 대표가 영어를 잘 이해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며 기피 신청을 기각했다. 영어가 유창한 권 대표는 지난해 6월 자신의 트위터 계정에 “테라폼랩스 공식 미디어 채널에 영어로만 문의해 달라”고 했으며 미국 매체와도 여러 차례 인터뷰했다.
앞서 법무부는 몬테네그로 당국에 권 대표에 대한 범죄인 인도 청구를 했다. 한국과 몬테네그로는 ‘범죄인 인도에 관한 유럽협약’ 가입국으로 상호 간 범죄인 인도를 청구할 수 있다. 다만 몬테네그로 당국이 반드시 응해야 하는 건 아니어서 권 대표 신병이 조기에 국내에 인도되기는 쉽지 않은 상황이다.
몬테네그로가 미국 등 권 대표에 대한 수사를 진행하는 다른 국가에 신병을 인도할 가능성도 있다. 현재 국제법은 피의자를 체포한 나라가 송환국을 정하게 돼 있다. 법무부는 몬테네그로가 권 대표를 한국이 아닌 미국으로 인도할 가능성도 있다고 보고 내부적으로 대응책을 검토 중이다. 법무부 관계자 및 서울남부지검 수사팀을 현지에 파견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라고 한다.
검찰 관계자는 “몬테네그로에서 여권 위조 등 관련 재판이 진행되고 형이 선고되는 상황에 따라 송환 국가와 시점 등이 결정될 것”이라며 “외교 채널 등 여러 경로를 통해 미국 사법당국의 방침도 파악 중”이라고 했다.
장은지 기자, 카이로=강성휘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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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의 손정우’ 꼴 나는 일 없어야
‘테라-루나’ 폭락 사태의 핵심 인물인 권도형 테라폼랩스 대표가 지난주 몬테네그로에서 체포됐다. 그는 작년 9월 인터폴 적색수배가 떨어진 이후에도 트위터를 통해 “죄도 없고 도망가는 것도 아니다”라고 주장해왔다. 그러나 위조여권까지 갖고 있었던 걸 보면, 영락없는 ‘도주 범죄자’의 행색이다. 그는 한국 검찰뿐 아니라 미국과 싱가포르 사법당국에도 쫓기는 신세다.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와 검찰은 이미 그를 기소까지 한 상태다.
그가 설계한 ‘테라’는 일명 ‘스테이블 코인’이다. ‘스테이블(안정적이라는 뜻)’은 코인 1개의 가치가 항상 1달러가 유지되도록 한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스테이블 코인이 이름값을 하려면 통상 발행된 코인의 총액만큼 달러화를 담보로 예치해 둬야 한다. 하지만 테라는 이런 담보가 없어도 ‘루나’라는 자매 코인과의 ‘알고리즘’을 통해 ‘1테라=1달러’를 유지한다고 주장했다. 권도형은 이런 허황된 이야기만으로는 투자자를 모으기가 어렵다고 봤는지, 연 20%짜리 코인 예금상품까지 내걸었다. 현란한 전문용어로 포장된 디지털 눈속임과 폰지 사기에서 흔히 보이는 고수익 미끼가 ‘테라-루나 생태계’를 떠받치고 있었던 셈이다.
테라-루나는 한때 성공 가도를 걷는 것처럼 보였다. 코인의 가치가 100배 넘게 올랐고, 시가총액은 50조 원 이상으로 부풀었다. 그러나 모래 위에 쌓아올린 성이 오래 버틸 리 없었다. 작년 5월 테라-루나의 안정성에 대한 회의론이 확산되자, 불과 일주일 만에 가격이 1만분의 1로 폭락했다. 시가총액 50조 원이 한순간에 증발했고, 국내에서만 20여만 명의 피해자가 발생했다.
미국 SEC는 테라-루나 사태를 권도형이 주장하는 “실패”가 아니라 ‘증권 사기’라고 단언한다. SEC가 공개한 소장(訴狀)에 따르면 권도형은 2021년 5월 ‘1테라=1달러’가 무너지자 제3자에게 테라를 대량으로 매집하게 해서 가격을 끌어올렸다. 그러고선 마치 테라-루나의 알고리즘이 ‘자기회복력’을 발휘한 것처럼 선전했다. 폭락 사태로 “전 재산을 잃었다”는 그의 말 또한 거짓이었다. 지난해 6월 이후 스위스 은행을 통해 1억 달러 이상의 비트코인을 법정화폐로 인출한 사실이 SEC에 꼬리를 밟혔다.
그가 검거된 현시점에서 최대 관심사는 어느 나라에서 재판을 받게 되느냐는 것이다. 법률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그가 한국으로의 송환을 희망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한국에서라면 훨씬 가벼운 처벌을 받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미국 법원이 금융·증권 범죄를 얼마나 중한 범죄로 여기는지는, 2009년 70조 원대 다단계 금융사기로 기소됐던 버나드 메이도프가 징역 150년을 선고받은 데서 여실히 드러난다. 여기에 비하면 금융·증권 범죄에 대한 한국의 단죄와 처벌은 한마디로 ‘솜방망이’ 수준이다. 대법원 통계에 따르면 2020년 한 해 동안 주가조작 등 증권 불공정 거래 범죄로 유죄 판결을 받은 64명 중 40%에 해당하는 26명이 집행유예를 받았다. 사회적으로 크게 이목이 집중됐던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만 하더라도, 1심 법원은 권오수 전 도이치모터스 회장의 유죄를 인정하면서도 “실패한 시세조종”이라는 이유를 들어 집행유예를 선고했다. 검찰은 검찰대로 김건희 여사 관련 부분에 대해 수사 의지 자체를 의심받고 있다. 라임·옵티머스·디스커버리 등 이른바 ‘문재인 정권의 3대 펀드 사건’에 대해서도 부실수사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권도형의 국적은 한국이다. 인터폴을 통해 먼저 적색수배를 건 것도 한국이다. 실낱같지만 피해 구제를 위해서도 권도형은 한국으로 데려올 필요가 있다. 그런데도 권도형 체포 뉴스를 접한 많은 사람들이 “차라리 그를 미국으로 보내버리는 게 나은 것 아닌가”라는 의문을 제기한다. ‘솜방망이’ 처벌에 대한 우려 때문이다.
2020년 미국 사법당국이 한국에 세계 최대 아동 성 착취물 사이트 운영자인 손정우에 대해 범죄인 인도를 요청한 적이 있다. 미국에서라면 징역 50년 이상의 중형이 예상되는 상황이었지만, 손정우는 결국 한국에서 재판을 받았고 징역 2년(일부 혐의에 대해서는 1년 6개월 형을 선고받고 복역을 마쳤던 상황)의 가벼운 처벌을 받는 데 그쳤다. 권도형에 대해서도 이런 일이 재연되어서는 결코 안 될 것이다.
그러자면 철저한 수사를 통해 빈틈없는 증거와 법리를 갖춰야겠지만, 법원의 양형이나 금융·증권 범죄에 대한 우리 사회의 인식도 획기적으로 달라져야 한다.
천광암 논설주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