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페라 가수마냥 화려한 제스처를 하는 여성, 팔과 손을 보면 연륜이 느껴진다. 올해 89세 영국 할머니 조이 폭스다. 스무 살이던 1956년 1월에 약혼을 했는데 파혼하고 말았다. 울적한 마음에 약혼 반지를 팔아 이탈리아 리비에라로 여행을 떠난 뒤 매력에 푹 빠져 평생을 세상 돌아다니는 데 바쳤다.
조이 할머니의 고향은 잉글랜드의 작은 강변 마을 위븐호(Wivenhoe)이다. 어린 시절 2차 세계대전을 겪어 늘 그늘이 드리워져 있었고, 여행이라곤 해본 적이 없었다. 아버지는 스코틀랜드 출신으로 이집트와 중국, 인도에서 군인 생활을 했다. 백파이프를 불 줄 알았다. 어머니는 이들 나라 얘기를 딸에게 들려주곤 했다. 오빠 앨런 역시 베네치아란 아름다운 도시를 여행했던 얘기를 들려주며 달떠하곤 했다.
조이는 약혼 반지를 팔아 마을 밖으로 나가겠다는 평생의 열정을 불태웠다. 하지만 고향 마을을 벗어나 도버 해협을 어떻게 건너야 할지, 심지어 페리 여객선을 어떻게 탑승해야 하는지도 몰랐다. 곡절 끝에 열차를 타고 프랑스로 건너가 스위스와 이탈리아를 돌아봤다. 처음으로 자유를 만끽했다.
그 뒤 69년이 흘렀지만 여전히 조이는 속도를 늦추지 않고 있다. 스무 살 때 느꼈던 열정과 위안을 여전히 만끽한다고 했다. 최근에는 나이 50을 넘긴 여성의 솔로 여행을 고무하기 위해 만들어진 저니우먼이란 단체가 만든 에벌린 해논 상을 수상했다. "나도 이 나이까지 여행하고 있을줄 몰랐다. 건강을 타고나 여전히 세상의 더 많은 곳을 돌아보고 있다."
이탈리아로의 생애 첫 여행은 2주 동안이었다. 도중에 이탈리아 남성 루이기를 만나 함께 포르토피노, 라팔로, 밀라노 등등을 돌아다녔다. 루이기는 모든 교회를 보여주고 싶어했지만 조이의 복장이 적절하지 않아 모두 응할 수 없었다. "하지만 이제는 좀 더 똑똑해져 늘 여행 중에도 스카프를 가지고 다녀요."
2주의 여행을 마치자 마음이 추스러졌다. 자신감은 물론 자존감이 채워졌다. 루이기는 함께 찍은 사진들을 보내줬다.
몇 년 뒤 폭스 가족은 캐나다 밴쿠버로 이주했다. 조이는 맞선을 본 남성이 마음에 들어 6주 동안 사귄 끝에 결혼했다. 아이들을 키우느라 여행은 가족과 보트를 타거나 캠핑하는 것이 될 수 밖에 없었다. "남편이 캠핑을 좋아했다. 자연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줬다. 그는 모든 폭포와 강을 보길 원했다."
세 자녀로 늘었고, 밴쿠버 집을 떠나 미국 서부 곳곳을 탐험했다. 남편 직장 때문에 온타리오주로 옮기며 캐나다을 횡단했고 미국 동쪽 연안을 따라 여행했다. 자녀들이 성장하고 남편의 출장이 잦아지자 조이는 다시 홀로 세계여행에 나설 수 있게 됐다. 2015년 남편이 세상을 먼저 떠났다. 남편은 눈을 감으며 "가서 (여행)하라"고 말했다.
유럽과 미국, 캐나다를 다시 여행했고 모나코, 오스트레일리아, 뉴질랜드, 쿡 아일랜드를 돌아다녔다. 65세 생일 때는 태어나 세 살 때 떠나온 스코틀랜드를 3주 동안 돌아봤다. 물론 아주 각별한 여정이었다. 84세 생일에는 노르웨이를 찾았다. 오로라를 구경하며 잊지 못할 추억을 남겼다. 오스트레일리아 대환초를 탐사했다. 차량을 렌트해 대륙 곳곳을 돌아다녔다. 물을 무서워해 수영을 못하는 그녀이지만 모터보트 뒤편에 매달려 발장구를 추면, 야생 돌고래가 그녀 주위를 맴도는 감격도 누렸다.
여행을 꿈꾸는 이들에게 어떤 조언을 할까? 자신이 어디를 여행하고 싶어 하는지 내면의 소리에 귀기울이라고 했다. 느긋하게 먼저 국내 여행을 혼자 해보라고, 그렇게 해서 편안함을 느끼는지 점검해보라고 당부했다. "스스로를 친구로 편안하게 여기는지 점검해보라. 혼자라 행복하다는 느낌, 그런 느낌에 적응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물론 그녀도 여행사 도움을 받곤 한다. 이따금 패키지 여행을 하며, 도중에 혼자 떨어져 나와 여행한다. 목적지를 고를 때 안전을 최우선으로 여긴다. 해서 여성 전용 숙소를 예약하곤 한다. 여행자 티를 안 내려 애쓰는 편이다.
지금까지 다녀온 나라 수를 헤아리는 성격은 아니다. 지도에 다녀온 나라 핀을 꽂는 성격도 아니다. 추억으로 충분하다고 했다. 여행을 끝낸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다만 이제 커다란 백팩을 메고 세상을 주유할 나이는 지났다. 2018년 척추 수술을 받아 몸도 예전같지 않다.
하지만 그녀는 상당히 긴 여행 계획을 갖고 있다. 올해 65주년 결혼 기념일에 몰타를 다녀오고 그 뒤 평소 함께 노래 부르는 성가대원들과 함께 이탈리아를 방문하려 생각 중이다. 다가오는 90세 생일을 자축하는 특별한 여행을 희망하는데 후보로 포르투갈령 아조레스 제도, 카나리아 제도, 어쩌면 이탈리아를 다시 찾아 코모 호수를 꼽고 있다.
아울러 경험 많은 트래커들이나 가능한 카미노 데 산티아고 순례길 825km를 걸을까 늘 염두에 두고 있다. "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에 해보고 싶다. 누가 알겠는가? 어쩌면 할 수 있고, 어쩌면 할 수 없을 것이다."
또 하나, 마음 속에 둔 여행지가 있다. 스무 살 풋풋한 때 다녀온 이탈리아 리비에라를 다시 찾는 것이다. "이탈리아가 너무 좋았던 강렬한 첫 기억이 있다. 할 수 있다면 그 지역을 한 번 더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