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스장과 호박만두
김순진
집 근처의 헬스장에 다닌 지 10년이 되어간다. 새벽마다 만나는 사람들은 정말 반갑다. 같이 땀 흘리면서 이런 이야기 저런 이야기 하노라니 금세 이웃사촌이 된다. 어느 날 아주머니 한 분이 큰 수박 한 덩이를 사오셨다. 우리들은 수박을 쪼개서 빙 둘러서서 나누어 먹는 동안 서로가 더 정다워지고 친해졌다. 며칠 후 이에 자극을 받은 한 아주머니가 호박만두를 해왔다. 고향이 경기도 포천인 나는 어머니가 살아서 돌아오신 것만큼 반가웠다. 만두를 빚으려면 손이 많이 가서 힘들 텐데 헬스장 식구들이 배불리 먹을 만큼 많이 쪄온 정성은 정말 우리들을 감동시키기에 충분했다.
경기도 북부 지방에서는 겨울이나 여름이나 만두를 해서 나누어 먹는 풍습이 있었다. 겨울이면 김장김치를 쫑쫑 썰고 두부를 으깨어 만든 김치만두를 빚어서 싸리나무 광주리에 담아 그늘에 얼려놓고 집집마다 어른들을 모셔다가 만둣국을 끓여내던 풍습은 지금은 거의 사라져가지만 정말 좋은 풍습이었다. 여름이면 끼니꺼리가 부족해서도 호박만두를 해먹었지만, 별미로도 해먹었다. 애호박을 채쳐서 살짝 프라이팬에 볶아 양념을 해 아무것도 없이 맨 호박만 넣고 빚었는데도 호박만두는 정말 우리들을 행복하게 만드는 음식이었다. 새댁이 만들어온 만두는 호박에 부추, 고기 다진 것, 두부 등을 골고루 넣은 만든 음식이었으니 한참 운동을 하고 난 혈기 왕성한 사람들에게 얼마나 맛있는 음식이었는지 지금 생각해도 군침이 돈다. 그 새댁에게 지면을 빌어 감사의 말을 전한다.
결혼하고 나서 우리 부부는 거의 다투는 일이 없었지만, 만두 때문에 여러 번 말싸움을 했었다. 경기도 북부지방에서 자라나서 평소에 만두를 즐겨먹던 나는 전라도에서 태어나 생전 만두를 해먹은 적이 없다던 아내에게 만두를 안 해준다고 타박을 했었다. 그 타박은 얼마 가지 못하고 결국 스스로 빚어서 아내에게 주기에 이르렀다가 이젠 서로 직장생활을 하는 탓에 직접 손으로 빚은 만두를 꿈꾼다는 것은 우리에겐 너무나 큰 사치가 되었다. 그러던 차에 헬스장에서 새댁이 만두를 해왔으니 얼마나 반가웠겠는가?
우리 포천 지방에서 만두는 손님맞이의 큰 수단이 되었다. 지금도 큰어머니는 설 전후가 되면 만두를 시시때때로 빚어놓고 손님이 올 때마다 만둣국을 끓여먹고 가라고 말씀하신다. 혼례가 있고 나서 사위가 오면 동네 청년들이 발을 매달아 장모님께 청하던 음식도 만두였으며, 사위의 만둣국 그릇에 들어가는 것은 의례 고춧가루가 듬뿍 든 고춧가루만두였고, 사람들은 일부러 사위에게 고춧가루 만두를 살짝 밀어 넣고 웃음을 참느라 킥킥거렸던 생각이 난다. 여름이면 어머니가 마루에 걸터앉아서 만두피를 빚고 양은솥이 걸린 마당가 화덕에 물을 끓여 만둣국을 끓여내시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그렇게 만두를 좋아하다가 만두를 못해먹은 지 20여년이 흐를 즈음에 나에게 다시 만두 복이 터졌다. 농촌에 사는 동생이 오랫동안 장가를 들지 못하다가 조선족 처녀와 결혼을 하게 되었는데, 제수씨는 중국 연변에서 우리 민족들은 평소에 만두를 즐겨먹는다며 틈틈이 만두를 빚어서 우리의 입맛을 즐겁게 해주는 것이었다. 제수씨가 해주는 부추만두는 특별히 더 맛이 있었다. 중국식 만두 딤섬과 비슷하게 한 입에 쏙 들어가게 빚은 만두는 야식꺼리나 새참꺼리, 술안주로는 너무나 좋은 음식이었고 나는 가끔 제수씨의 수고로움을 잊고 만두를 신청하기도 하니 이젠 오랜 가뭄 끝에 해갈한 모양으로 만두 타령은 그만해도 좋을 것 같다.
헬스장에서 새댁이 만두를 빚어오자, 한 아주머니는 부추전을 부쳐오고, 한 아주머니는 부추잡채를 해오고, 요즘은 날마다 헬스장에 가면 먹느라고 다이어트를 미뤄야 할 지경이다. 서로 사랑을 나누어 먹는다면 배가 좀 나와도 좋겠다. 나누어 먹는다는 것, 그것은 나누는 사람이나 얻어먹는 사람이나 모두를 행복하게 만든다. 언제부터인지 아파트 문화가 우리 삶에 깊이 침투하고부터 우리 고유의 전총문화인 나눔 문화가 사라져간다. 새로 이사 온 옆집 아이가 떡을 들고 옆집 아파트 초인종을 누르니까 “우리 떡 안 먹어” 하고 매정하게 문을 닫던 공익광고가 생각난다. 나는 시골에 갔다 오면 호박 한 개라도 감자 몇 알, 상추 몇 장이라도 이웃집과 나누며 살아왔다. 음식 끝에 정이 간다는 말도 있다. 나누며 살자. 이제라도 부침개 몇 장 부쳐서 이웃을 부르면 이웃과의 정이 얼마나 돈독해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