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장에 도착해 아고라로 가니 명규씨께서 발렌타인데이라며 초콜릿을 주셨다. 발렌타인데이인 것도 몰랐는데 참 세련된 구석이 있으시구나 하는 생각을 하며 초콜릿을 맛있게 먹고 극장으로 들어갔다.
선배님께서 이야기를 시작하셨다. 최민식 배우와 했었던 대화를 알려주셨는데 영화표의 값이 그 당시 8천원, 지금은 1만 4천원 내외인데 그게 적은 돈이 아니라며 배우의 책무에 대해 이야기 하셨었다. 내가 아닌 다른 인물이 되는 작업을 카메라가 돌기 전까지 끊임없이 고민하고 고민한 것이 잘 보여지기를 바라는 수 밖에 없다고 하셨다. 다른 인물 뿐만 아니라 나조차 나를 모르는 법이라며 요가, 명상 같은 수양을 하는 모양이라고도 하셨다.
대본을 받으면 다섯번은 보라는 말씀도 하셨다. 그 과정 속에서 상상력을 발휘하며 가져올 수 있는 만큼 가져와야 한다고 하셨다. 그 후 여러 서적들을 말씀해주셨는데 일전에 읽었던 산연기와 배우수업을 필두로 여러 서적들이 나왔다. 스타니슬랍스키와 마이즈너 등..
로미오와 줄리엣을 예로 들며 각 개개인마다의 로미오, 줄리엣은 다 다를 수밖에 없다며 틀에 박히는 것을 경계하셨다. 이 말을 들으며 극장에 오며 봤던 지하철 광고가 생각났다. 같은 곡이더라도 지휘자에 따라 곡의 분위기가 변한다는 광고였다. 아마 코스챠를 선택한 동료분들이 많을 거라는 생각에 다들 어떻게 지휘할까 하는 궁금증이 생겼다.
아카데미를 수상한 한 여배우 이야기도 하셨다. 당시의 속옷은 상당히 불편했다며 그 속옷을 제작해 평상시에도 입고 다니며 그로 인해 벌어지는 몸과 마음의 변화 등의 감각을 익혀 연기에 녹여냈다는 말씀이셨다. 로버트 드 니로는 인물을 구축한다는 것에 대해 한 아프리카 원주민 마을에 가서 그 원주민들의 언어를 습득하는 과정이라고 말했다는 말씀도 덧붙이셨다.
그리고 가장 내 마음의 경종을 울렸던 말씀도 있다. 나쁜 에너지가 있는 곳에는 발도 들이지 말라는 것. 아웃사이더가 되라는 것. 내 주변에 얼마나 나쁜 에너지들이 많은가에 대해 고민해보게 됐고 작년에 덜어낸다고 덜어냈지만 다 덜어내지는 못해 조금 더 과감해져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몇가지 루틴을 2년동안 꾸준히 해보라는 말씀도 하셨다. 그러면 지금보다 엄청 성장한 사람이 되어있을 거라고, 딱 봐도, 티를 내지 않아도 배우 티가 나는 사람이 되어있을 거라고 하셨다. 나는 한 지 세 달 된 헬스가 떠올랐다. 새벽 5시부터 오후 3시까지 일을 하고 나면 지체없이 헬스장에 가서 운동을 해왔는데 이게 유지가 잘 되기를 바라는 동시에 또 어떤 것들을 목표로 세울 수 있을까 싶었다. 매일 연습실에 가서 한시간에서 두시간 동안 이완발성발음화술 훈련을 하던 재작년이 생각났지만 일을 하는 날에는 늦어도 저녁 9시에 잠을 자야 하는 터라 도저히 두시간을 확보하기 어렵다는 생각에 쉬는 날에는 두시간씩 가있기로 했다. 한 달에 한 권 읽고 있는 책도 이 것에 포함해야겠다는 생각도 들고 또 어떤 것을 찾을 수 있을지 궁금하기도 하다.
고등 사기꾼이 되어야 한다는 말씀도 하셨다. 달을 보라는 연기의 두 가지 버전을 시연해주셨는데 어떤 느낌인 지 조금은 알 것 같았다. 결국 나 자신마저 속여버려야 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해야 할 연기와 같지는 않지만 과거 경험에 의한 정서 기억을 되살려 접목하는 법도 이야기 해주셨다. 그러다 일호씨께서 그런 경험이 없는 사람은 어떡하냐고 물으셨는데 스텔라 애들러 이야기를 하시며 그 사람은 결국 상상력이라고, 일호씨께서 말씀하신 대로 얼마나 많은 경험을 했길래 다 경험에서 찾냐고 상상력이 중요하다고 말씀하신 분이라고 하셨다. 상상력에 대해 말씀하시며 미술관, 전시회에 가서 그림을 좀 많이 보라는 말도 들었다고 하셨다.
이야기들을 들으면서 깜짝 놀랐던 것이 "대체"에 대한 수업이 예정되어 있었는데 좋은 말씀들을 많이 해주시네 싶다가 이 모두가 "대체"와 확실한 연관이 있는 말씀들이라는 것이었다. 정말 이야기 설계를 어쩜 이렇게 잘 하셨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잠깐의 쉬는 시간을 가지고 각자 선택한 독백을 하는 시간이 되었다. 나는 로빠힌으로 일주일을 고민하다가 전날에 뜨레쁠레프로 바꾸고 그 대사를 가져갔다. 전 날 수업을 듣지 못했으니 오늘은 다른 동료분들이 하는 것만 볼까 싶다가 일전에 한 친구가 "완벽한 준비가 되는 때는 절대 없어. 일단 해." 라고 한 말이 생각나 두번째 순서로 바로 들어갔다. 대사를 지하철에서 다 외웠는데 대사를 읽으며 내 머릿 속으로 어떤 계산들이 다 되었는지 힘이 계속 실려 선배님께서 이 힘을 빼주시는 것을 도와주셨다. 한 번 내려진 판단과 계산을 고치는 것은 참 어려운 작업이라는 것을 깨닫고 앞으로는 대사 뿐만 아니라 모든 것을 신중에 신중을 더 해 행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첫댓글 고등사기꾼! 저도 많이 공걈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