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RI CEO와 함께하는 창조경영
한 해에만 수십만 개의 신상품이 쏟아지는 일본 시장에서 작년 최고의 히트상품은 무엇일까? 그것은 첨단 전자제품이나 멋진 패션제품이 아니었다. 밥에 뿌려서 비벼 먹는 고추기름 '다베루 라유(食べる辣油)'였다. 식품업체 '모모야'가 내놓은 이 제품이 2010년 '닛케이 트렌디'가 선정한 히트상품 1위에 올랐다.조금 매운 정도의 소스에 마늘과 양파, 채소 같은 건더기를 추가한다. 쌀밥과 절묘하게 어우러지는 그 맛이 일본인들의 밥상을 뒤흔들었다. 일본인은 예전부터 밥에 뿌려 먹는 감미료인 후리카케(ふり-かけ)를 즐겨왔다. 모모야는 이 점에 착안했다. 조리할 때 양념으로만 사용되던 고추기름의 성분과 맛을 변형해 후리카케처럼 바꿨다. 경쟁업체까지 가세하면서 라유시장이 1년 새 130억엔에서 940억엔으로 7배 커졌다. 고추기름의 '파생상품'도 인기를 끌었다. 훼미리마트는 '라유 삼각김밥'을 내놓았는데, 작년 한 해 동안 500만개 이상 판매되는 돌풍을 일으켰다.
파나소닉이 내놓은 휴대용 전동 칫솔인 '포켓 돌츠(Pocket Doltz)'는 여성들에게 선풍적 인기를 끌었다. 소형 손가방(파우치)에 쏙 들어가는 돌츠는 전동칫솔은 집에서만 사용한다는 고정관념을 깨고 발매 6개월 만에 100만개가 팔렸다. 마스카라 케이스를 닮은 고급스러운 컬러와 콤팩트한 디자인이 여심(女心)을 사로잡았다. 또한 가전제품 코너뿐 아니라 약국과 화장품 코너, 계산대 옆 등에도 배치해 쉽게 손이 가도록 했다. 이 제품의 등장으로 가정용 전동칫솔의 시장 규모가 2배로 늘었다.
냄새와 연기 없이 간편하게 생선을 구울 수 있다면? 고바야시 제약이 출시한 '생선 굽는 팩'은 주부들의 이 같은 고민을 해결해 준 아이디어 상품이다. 팩에 생선을 싼 채 전자레인지에 넣고 3분만 돌리면 팩 내부의 특수 필름이 200도까지 올라가면서 바삭한 생선구이가 완성된다. 냄새와 연기가 나지 않고 사용 후엔 그냥 버리면 된다. 출시 1년 만에 450만개가 팔리는 기록을 세웠다. 1~2인 가구가 급증하면서 소량의 간편한 조리 음식을 선호하는 트렌드에 맞춘 게 적중한 것이다.
영국 가전제품 업체인 다이슨의 날개 없는 선풍기 '에어 멀티플라이어'와 소니의 디지털 카메라 'Nex'도 히트했다. '에어 멀티플라이어'는 일반 선풍기보다 5배나 높은 가격에도 불구하고 깔끔한 디자인과 편리함, 안전성에 힘입어 일반 선풍기만큼 팔렸다. Nex는 크기와 조작의 간편성은 일반 콤팩트 카메라와 비슷하면서 기능은 전문가용 디지털 카메라 수준으로 끌어올려 단숨에 디지털 카메라 부문 판매 2위에 올랐다.
이들 상품의 공통점은 획기적인 기술 혁신의 산물이라기보다는 고객의 니즈에 맞춘 아이디어 제품이라는 것이다. 소비자 니즈에 맞춰 기존 제품의 기능을 확대하거나 바꾸었다. 시장에서 승자가 되는 길은 거창한 기술 혁신에만 있는 게 아니라 시장의 니즈에 기민하게 대응하는 데에도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