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삼성반도체 백혈병 피해자 故 황민웅의 아내 정애정이다.
또한 삼성일반노조 상근 활동가이기도 하다.
2005년에 남편을 백혈병으로 떠나보내고, 삼성과 싸우기로 마음을 먹으면서 ‘1인 시위라도 해야겠다!’ 는 것으로 시작해 삼성본관 앞에서 합법적인 삼성규탄집회를 하기까지 6년이라는 세월이 지났다.
매주 수요일 삼성일반노조원들은 삼성 부당해고자들과 함께 삼성본관 앞 삼성규탄 1인 시위를 진행 했었고, 삼성반도체 직업병 피해가족들은 수시로 삼성본관 앞에서 ‘삼성 반도체에서 일하다 걸린 백혈병을 비롯해 각종 희귀암들을 직업병으로 인정하라’고 1인 시위를 해 왔었다.
그때마다 삼성경비는 삼성일반노조원들과 피해가족들에게 욕과 비아냥거림, 폭행으로 모멸감을 주었고, 서초관할 경찰들은 불법집회를 거론하며 벌금과 연행을 일삼으면서 삼성일반노조원들과 피해가족들을 너무도 지치고 힘들게 했었다.
그런데 고액의 일당을 주고 용역을 동원해 허위집회신고를 내는 통해 쉽지 않은 삼성전자 본관 정문 앞을, 건설노조 경기남부 타워크레인지부 조합원들에 의해서 집회 신고를 낼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러나 이런 흥분도 잠시 여러 사정상 삼성일반노조가 단독으로 삼성규탄집회를 주최하게 되면서 조직 동원과 재정 문제로 많은 걱정을 하게 되었다.
경기 남부 타워크레인지부에게서 삼성일반노조로 집회를 위임받고 9월2일까지 2주의 시간이 있었다.
집회에 동원 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해야 삼성일반노조 상근·비상근 활동가 4명, 삼성반도체 직업병 피해가족 최대 7명, 해고자 2명, 삼성노동조합원 4명 등 20여명이 되지 않았다.
내 욕심이었을지는 모르지만 이 인원만으로 삼성규탄집회를 할 수 없었다.
피해자 몇 명이 말하는 것이 아니라 더 많은 사람들이 와서 삼성의 만행을 비판해야 했다. 삼성의 반노동적인 작태를 많은 사람들이 지켜보고 있다는 것을 그들에게 알려주고 싶었고, 또한 한자리에 모인 사람들이 한 목소리로 삼성을 규탄하는 모습을 그들에게 똑똑히 보여 주고 싶었다.
집회를 주최해보지 않았던 삼성일반노조 김성환 위원장님을 비롯한 상근활동가들은 조금은 허둥대는 듯했으나 바로 각자 할 일을 나누어 맡고 발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삼성규탄 집회 연대 제안서를 작성하고 각 언론사와 여러 시민·사회·학생·운동 단체에게 보냈다. 거듭 강조하기 위해 확인 전화를 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노조 게시판에도 삼성규탄 개최소식을 알리고 현장노동자들이 소식을 접하게 했다.
투쟁사업장에는 직접 찾아가서 인사하고 삼성규탄집회에 대해서 알리면서 ‘각자의 위치에서 잘 싸워 승리하자’라는 다짐의 인사말도 주고받았다.
또한 민주화 운동에 앞장선 열사들의 정신을 기리는 민가협과 유가협 어르신들께도 인사드리고 소식을 전했다.
어머님들이 내 손을 꼭 잡으며 안쓰러운 표정으로 위로해주시고 그렇지만 열심히 싸우라고 당부해 주셨던 모습도 가장 인상적으로 남는다.
집회의 꽃 문예 활동하시는 분들에게 공연요청 부탁을 마지막으로 연대요청을 마무리 했다.
그 후 남는 시간을 이용해 집회기획을 짜고 필요한 비품, 식사, 홍보물 제작, 이건희를 향한 규탄 퍼포먼스 준비를 했다.
해당 처에 전화해서 가격을 흥정하고 주문을 하고 문구점에 직접 가서 상징의식에 필요한 문구용품을 사고 직접 만들면서 그렇게 하루하루가 지나갔다.
창살에 갖힌 이건희 얼굴에 물풍선을 던져 터트리는 상징의식을 준비하면서 이건희의 얼굴 중앙에 창살을 표하는 검은 테이프를 붙여 놓고는 이건희의 모습이 너무 웃겨 한참을 웃는 것으로 집회준비에 지쳐있던 피로를 풀었던 기억도 있다.
이렇게 집회준비는 별 문제 없이 마무리 되어갔다. 그렇지만 새로운 걱정과 떨림이 있었다.
이번 집회에 사회를 맡게 된 나는 누구보다 이번 집회를 잘 치루고 싶은 사람 중에 하나였다. 내가 집회를 망치면 안 되는데 하는 부담이 크게 다가왔다.
우선 삼성본관 앞에만 가면 많이 흥분하는 내 감정을 조절하여야 했다.
그 다음은 집회를 매끄럽게 잘 진행해야 하는 것이 제일 우선일 것이다.
그러기 위해선 구호 외치는 연습도 해야 했고, 오신 단체 분들을 소개할 때 실수나 무례를 범하지 않기 위해 단체들을 잘 이해하고 있어야 했다.
아직은 몸에 익숙치 않은 집회를 혼자서 이끌어 가야 한다는 것이 큰 걱정이었다.
2주 동안의 피로는 집회 전날의 나를 쉽게 잠재우지 못했다.
집회 기획 순서를 보면서 처음부터 읽어가며 소개하는 것을 연습하고, 멘트를 연습하는 모습이 꼭 시험을 앞둔 수험생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여러 번 반복하고 나서야 잠을 잔 것 같다.
드디어 9월 2일! 삼성전자 본관 앞에서 집회 하는 날이 밝았다.
집회 시작은 11시부터지만 10시부터 삼성반도체 직업병 피해가족들이 1인 시위를 하기로 되어 있었고, 집회 주최 일원인 나는 집회 준비 때문에 일찍이 삼성본관 앞으로 향했다.
역시 삼성본관 앞은 난리였다.
삼성경비들은 강남역 지하철 출입구부터 동태를 살피기 위해서 곳곳이 배치되어 있었고, 집회를 방해하기 위해 하지도 않을 공사를 한다고 크레인과 함께 공사 안전막을 쳐놓아서 허가 받은 집회장소를 상당부분 차지하는 것으로 집회를 방해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나는 분노보다는 삼성이 이렇게 긴장하고 있는 모습이 그리 싫지만은 않았다.
그들이 두려워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하니 어깨가 쫙 펴지는 나를 느낄 수 있었다.
3시간 예상했던 삼성규탄 집회는 5시간이 지나서야 끝났다.
긴 집회 시간동안 따가운 햇빛과 딱딱한 아스팔트 위여서 엉덩이가 많이 아팠을 텐데도 집회에 참가한 200여명을 훌쩍 넘은 많은 사람들이 크게 흐트러짐 없이 끝까지 함께 해주었던 것과 그들의 얼굴에 활짝 핀 웃음이 나에게 많은 힘을 주었다.
집회가 끝나서야 경직되어 있던 몸에 힘이 풀린다.
많은 분들이 사회 잘 봤다! 오랜만에 재미있는 집회를 했다! 집회가 너무 길어 조금 힘들었다.. 앞으로는 짧고 자주 하자! 는 말로 왜? 집회가 길수밖에 없었는지 충분히 이해해 주는 마음과 함께 격려와 응원을 아끼지 않았다.
삼성반도체 직업병 피해자 가족들은 창살에 갖힌 이건희 얼굴에 물풍선을 던지는 것이 모자라 발로 짓밟으며 분노를 표출하기도 하였고, 마지막으로 희망을 알리는 색색 풍선에 각자의 희망을 담아 어떤이는 웃음으로... 어떤이는 눈물로... 하늘로 더 높이... 더 멀리... 날려 보낸다.
집회를 허가 받은 자정 12시까지의 이 귀한시간을 삼성일반노조원들과 삼성 부당해고자 및 피해가족들은 그냥 흘려보낼 수 없었다.
잠시 식사와 휴식을 취한 후에 뉴스에는 나오지 않는 삼성의 부당한 작태를 마이크로 계속 알려 나갔다.
하지만 이것 또한 쉽지만은 않았다.
강남주민들이 나와서 욕과 함께 항의를 하기에 나섰다.
-집에 노모가 계신데 시끄럽다!
-내가 뇌경색인데 머리가 아파 죽겠다! 며 우렁차게 소리를 질러댄다.
-얘가 시험인데 시끄러워 공부를 못한다! ( 추석을 앞두고...?!!!)
-가만있으면 동정이라도 받는데 이렇게 해서 동정도 못 받는다!
-시끄러 이 xx야! xxx야! xxxx야!... 말이 처음부터 끝이 욕이다!
그러나 집회의 취지를 묻고는 이해한다고 말하면서 12시까지 참겠다는 남자주민도 있었다.
주민들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삼성측의 신고로 쪼로록 달려온 서초관할 경찰들의 하는 꼴이 더 가관이었다.
-(지나가는 시민을 보면서) 주민들이 나서서 못하게 해야지.... 주민들이 왜 가만히 보고만 있습니까?
집회허가 시간이 있으니 입에 붙어있던 ‘불법 집회입니다!’ 라는 말은 못하고, 삼성 눈치 보기에 급급해 지나가는 시민들을 붙잡고 경찰이 시민들에게 도와달라고 말하는 꼴이 우습기만 하다.
이렇게 삼성규탄 집회는 끝나갔지만 지금까지도 나는 집회의 여운이 깊이 남아있다.
이 기회를 삼아 많은 분들을 찾아뵙고 만나면서 격려를 받았던 것들이 큰 감사로 남는다.
나 혼자 싸우는 것이 아니구나! 나도 또 다른 싸움의 현장에 있는 사람들에게 힘이 될 수 있겠구나! 이기적이지 않고! 내 안에서만 하지 않고! 지치지 않고! 함께 싸워 나가야겠다! 는 마음을 새길 수 있는 귀한 시간들이었다.
삼성 규탄 집회를 마치면서... 귀한 마음을 되새기면서... 다시한번 삼성 규탄집회를 잘 마칠 수 있도록 물신양면으로 도와주시고, 함께 해주신 많은 분들에게 머리 숙여 마음 깊은 감사 인사를 드린다.
첫댓글 힘내세요`` 진실이 승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