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상처를 간직하고 있다. 상처가 도드라지게 나타는 경우도 있지만 오랜 세월동안 숨어 있는 상태로 존재한다. 내면 깊숙한 곳에 자리잡은 상태로 한 사람의 일생 가운데 지배적 위치에 서 있기도 하다. 상처가 없는 사람은 세상 어디에도 없을 것이다. 다만 상처를 극복하고 일상의 삶을 살아갈 수 있느냐의 여부는 개인의 선택 또는 그 개인을 둘러싼 환경에 달려 있다고 본다.
『미확인 홀』에 등장하는 여러 인물들도 상처 가득한 일생을 살아가고 있는 인물들이다. 한적한 시골 마을인 은수리에 주민들이라고 해 봤자 얼마되지 않은 마을에 상처를 간직하고 평생을 살아가는 인물들의 면면을 보면 바로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속된 말로 바람 피운 아빠와 엄마를 직접 목격한 자녀들의 삶은 참 비참하다. 책 제목처럼 미확인 홀이라고 하는 폭포 언저리에 뚤려진 홀로 사라져 버렸다고 확신되는 필희의 삶이 대표적이다. 필희의 잘못이라고는 전혀 없다. 단지 엄마의 순간적인 판단으로 인해 필희의 가정은 깨어진 가정이 되고 둘도 없이 친하게 지냈던 친구와의 관계도 어색한 관계로 변하고 만다.
저자는 책 끝부분에서도 여전히 미확인 홀의 정체를 확실하게 설명해 주고 있지 않다. 필희가 과연 정말 미확인 홀로 사라져버렸는지 아니면 또 다른 곳에서 생활하고 있는지 명확하게 얘기해 주고 있지 않다. 다만 미확인 홀을 통해 상처가 치유되고 상처로 얼룩진 개인의 일생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사람의 삶은 아름다움으로 끝맺음 될 것임을 이야기하고 있다.
미확인 홀로 사라졌다고 생각되는 필희 말고 소설 속 이야기의 두 번째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는 희영이의 삶은 독자들도 한 번쯤은 특이한 캐릭터가 아닐까 생각해 봄직 할 것 같다. 희영이는 누구나 부러워할 만한 배경을 가지고 있다. 의사 부인인데다가 똑똑한 자녀 둘을 키우고 있는 부유한 사모님으로 통하는 인물이다. 그런데 희영이는 일명 정신병을 앓고 있다. 밤마다 아파트 베란다에서 망원경으로 다른 사람의 삶을 훔쳐 보는 병을 가지고 있다. 눈에 초점이 없고 뭔가 홀린 듯한 삶을 살아간다. 급기야 자녀들의 귀가 시간까지 집요하게 챙기는 신경질적인 삶을 살아간다. 지켜보는 가족들도 한계에 다다른다. 겉으로는 행복해 보이는 가정도 가족 구성원 중에 한 명이 말못할 정신적 상처를 가지고 있으면 살아갈 희망도 꿈도 잃게 된다.
희영이의 고쳐지지 않을 것 같은 정신적 질병도 그녀가 태어나 자라났던 은수리에 오면서 극적으로 해결의 실마리를 찾게 된다. 그녀가 지닌 질병의 단초도 은수리에서 목격했던 미확인 홀 사건이었다. 해결은 상처를 주었던 그 사건에 직면했을 때 일어나는 것 같다. 피할 것이 아니라 정면으로 부딪쳐야 해결 할 수 있는 것 같다. 희영이의 치료를 알리는 서막이 열리자 책을 읽는 나 조차도 마음의 부담이 덜어지는 느낌이다.
정신적인 고통을 당하는 이들이 주변에 많다. 고통을 안겨준 직접적인 원인을 회피할 것이 아니라 마주할 용기를 가질 수 있도록 안내해 주어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