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소개
“이 책은 도저히 번역하지 않을 수 없었다.”
_ 무라카미 하루키
이 책은 제프 다이어의 대표작 중 하나로 재즈 음악인에 대한 상상적 비평집이다. 텔로니어스 멍크, 버드 파월, 찰스 밍거스, 쳇 베이커, 듀크 엘링턴 등 1940~1950년대를 대표했던 재즈 음악인들의 삶이 실제와 허구를 넘나들며 새롭게 펼쳐진다. 이 이야기들은 때로는 전기처럼, 때로는 에세이나 소설처럼 읽히기도 한다. “제프 다이어가 곧 장르다”라는 세간의 평처럼, 다이어는 글로 지어낸 음악이라는 그만의 장르를 창조했다. 독자는 작가의 글을 통해 굴곡진 인생의 한 순간을 건너는 재즈 음악인의 삶 속으로 깊숙이 침투한다. 그리고 그곳에서는 익숙한 듯 낯선 재즈의 선율이 들려오기 시작한다. 영국을 대표하는 문학상인 ‘서머싯 몸상’을 수상한 이 작품을 황덕호 재즈 평론가가 우리말로 충실히 옮겼다.
🏫 저자 소개
제프 다이어
GEOFF DYER
‘제프 다이어가 곧 장르다’라는 말이 어울리는 영국의 대표 작가. 사진, 재즈, 여행 등 한 작가가 다뤘다고 보기 어려운 다양한 소재를 소설, 에세이, 르포르타주 등 여러 장르에 담아내며 독창적인 글쓰기를 선보인다. 전 세계 독자들은 물론 무라카미 하루키, 알랭 드 보통 등 동시대 작가들에게도 사랑받는 작가다. 옥스퍼드대학교에서 영문학을 전공했고 20여 권의 저서를 출간했다. 1992년 『그러나 아름다운』으로 서머싯 몸상, 2004년 『꼼짝도 하기 싫은 사람들을 위한 요가』로 W. H. 스미스 최우수여행도서상, 2006년 『지속의 순간들』로 국제사진센터 인피니티상, 2011년 『달리 말하면 인간의 조건Otherwise Known as the Human Condition』으로 전미도서비평가협회상 등 다수의 상을 수상했고 2009년에는 『지큐GQ』에서 선정한 올해의 작가로 뽑혔다.
첫 저서로 존 버거의 작품을 다룬 책(『말하는 방법Ways of Telling』)을 발표하고 존 버거의 사진 에세이(『사진의 이해』)를 엮을 만큼 이 작가에 대한 애정이 각별하다. 존 버거를 향한 헌사로 시작되는 재즈에 관한 책 『그러나 아름다운』에서는 악기를 다루지 않는 것이 오히려 글을 쓸 수 있는 조건이라는 아이러니한 말로, 전문가들 사이에서 비전문가가 어떻게 아름다운 문장을 수놓을 수 있는지 보여 준다.
📜 목차
서문
사진에 관하여
그러나 아름다운
후기: 전통, 영향 그리고 혁신
감사의 말
주
참고 자료
추천 음반
📖 책 속으로
자넬 포위한 경찰들이 자네의 연약한 머리를 박살 낼 핑계거리만 찾고 있을 때 자네는 그냥 취해 있었던 것뿐이라는 게 사실이냔 말이지. 자넨 동시에 비명을 지르고 애원했고 눈물이 콧구멍을 타고 거꾸로 넘어가는데도 이 상황은 누구도 통제할 수 없는 상황으로 빠져들고 있다는 사실을 느꼈겠지. 걷다가 보면, 성큼성큼 내딛다가 보면 어떤 손이 쑥 다가와 팔을 잡고 늘 벌어지고 있는 일 한가운데로 우리를 밀어 넣어. 인생에서 어떤 사건들은 그래. 우연히 우리가 오길 기다리며 있었던 거야. 갑자기 맞는 비처럼 참을성 있게 기다리고 있었던 거지. -108쪽
기차가 덜그럭거리는 소리와 기적 소리는 그의 음악 속으로 계속해서 들어왔다. 특히 루이지애나에서 기차의 기적 소리를 배경으로 소방관들이 부르던 블루스는 한 여인이 밤에 부르는 노랫소리처럼 끈적하게 홀리는 것이었다. 철로는 미국 흑인의 역사를 관통한 것처럼 그의 작품을 꿰뚫었다. 흑인은 철로를 만들었고 철로 위에서 일했으며, 철로를 통해 여행하고, 결국에는 듀크가 그러했듯 철로 위에서 작곡했다. 그것은 그가 상속받은 전통이었다. -132쪽
음악에 기여하겠다는 생각, 그것에 무엇인가를 바쳐야겠다는 생각은 나팔이든, 피아노든, 무엇이든 간에 자신만의 소리를 발견하도록 만들었다. 그 이후에 등장한 친구들은 음악의 미래에 대해 자신들이 책임을 져야 한다고 느꼈다. 그들은 향후 10년 동안에 벌어질 변화와 관련된 무엇을 해야 한다고 느꼈다. 6개월 뒤에 누군가가 나타나서 그 모든 것을 또다시 바꿔 놓을 때까지. 그들이 연주하는 모든 음은 고통을 담고 있었고, 나팔로 무엇을 하든 그것은 귀에 거슬리는 비명을 지르지 않으면 목이 졸릴 것 같은 새로운 소리를 추구했다. 음악은 너무 복잡해졌고 무엇을 연주하길 바라기 전에 3, 4년의 학교를 다녀야 했다. 하지만 벤에게 재즈는 그렇게 어려운 것이 아니었다. 재즈는 씨름해야 하는 것이 아니었고 자신의 이미지 속에서 재구성하는 것이었다. 재즈란 그저 자신의 색소폰을 연주하는 것이었다. -155쪽
그런데 순간적으로 그는 비틀거린다. 무엇을 연주하고 있는지 잊은 채, 카운트의 여덟, 아홉 번째 난간을 붙잡는다. 그러더니 모든 것을 불러 모아 가장 높은 음을 향해 오른다. 결국 그 음에, 아주 정확하게, 도달한다. 깨끗하게 날아오른다. 도약의 가장 높은 곳에서, 중력이 다시 작동하기 전에, 완벽한 무중력의 순간, 찬란하고 명징하고 고요한 순간이 온 것이다. 그러고는 다시 떨어진다. 아름다운 곡선을 그리면서. 블루스의 깊은 탄식 속으로 잦아들면서. 수감자들은 지금까지의 연주가 내내 무엇이었는지를 깨닫는다. 추락하는 꿈. -259쪽
술, 약물, 차별, 피곤한 여정, 허비되는 시간 속에서 사는 사람들이 인생에서 바라는 기대치는 좀 더 평온한 삶의 방식으로 인생을 사는 사람들이 기대하는 것보다 다소 적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여전히 재즈 음악인들에게 가해진 손상이 이러하다면, 만약 재즈를 창조한 사람들로부터 끔찍한 통행료를 징수하지 않았다면 그들의 삶은 어땠을지 우리는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289쪽
🖋 출판사 서평
영국을 대표하는 문학상 ‘서머싯 몸상’ 수상작
실제와 허구의 결합 속에 새롭게 탄생하는 재즈 음악인의 삶
호텔 방에서 서서히 죽어 가는 레스터 영, 자동차 운전대를 붙든 채 경찰에게 손등을 얻어맞고 있는 텔로니어스 멍크, 찌그러진 자전거를 타고 뉴욕의 길거리에서 분노를 쏟아 내는 찰스 밍거스……. 제프 다이어는 여러 일화를 통해 자신이 음악을 들었던 방식으로 역경에 처한 재즈 음악인의 삶을 재구성한다. 레스터 영, 텔로니어스 멍크, 버드 파월, 찰스 밍거스, 벤 웹스터, 쳇 베이커, 아트 페퍼, 듀크 엘링턴 등 1940~1950년대 재즈를 이끌었던 대표적인 음악인들이 그 주인공이다. 술과 약물, 차별, 고된 여정 속에서 드러나는 자기 파괴, 슬픔과 외로움, 불안과 허무, 추락의 순간을 포착한다. 그 순간, 재즈가 태어난다.
이 책에 등장하는 일화들은 실제로 있었던 일이자 작가가 지어낸 허구다. 제프 다이어는 논픽션과 픽션이 결합된 자신의 글쓰기를 ‘상상적 비평imaginative criticism’이라 표현했다. 책 속 장면들은 잘 알려졌거나 혹은 전설이 된 이야기를 근원으로 한다. 쳇 베이커의 이가 몽땅 부러져 나갔던 이야기가 대표적인 예다. 이처럼 잘 알려진 레퍼토리는 재즈에서 이야기하는 ‘스탠더드standards’인 셈인데, 작가는 확인된 사실을 간단히 언급한 다음 그들을 둘러싼 주변을 즉흥적으로 만들어 내, 경우에 따라 사실을 완전히 떠난 자기 버전을 창조한다. 즉흥적이라는 형식적 특권을 유지하는 장면들은 완전히 새롭게 창작되는 ‘오리지널 작곡original composition’처럼 보인다.
독자를 재즈의 세계로 초대하는 제프 다이어만의 독특한 방식
작가는 재즈를 말하기 위해 이 음악의 역사를 연대기적으로 나열하거나 감상법 따위를 제시하지 않는다. 대신 사실에 기반해 재즈 음악인들이 어떤 삶을 살았고 어떤 스타일의 음악을 만들고 연주했는지를 상상을 곁들여 묘사하며 독자를 재즈의 세계로 초대한다. 제프 다이어는 현실에서 누군가가 실제로 한 말을 이 책에 실었을 때 그 부분을 정확히 밝히지 않았다. 재즈 연주자들은 솔로에서 다른 연주자의 것을 인용한다. 인용 여부를 알아차리거나 못 알아차리는 것은 듣는 이의 음악 지식에 달려 있다. 마찬가지로 『그러나 아름다운』에 등장하는 사건은 창작하거나 인용하는 이상으로 바뀐 것들로, 음악인의 실제 모습이 아니라 작가가 본 모습을 펼쳐 보인다. 예를 들면 작품만을 통해 뮤지션을 묘사하기보다는 작가 자신이 그 음악을 처음 들었던 순간에 그들을 투사하는 방식으로 재즈 음악인들의 삶을 그려 나가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책이 선사하는 재즈의 ‘분위기’를 감지하는 것은 순전히 독자의 몫이다. 여기엔 따로 정답도, 정해진 답도 없다. 마치 재즈라는 음악 그 자체처럼.
약물 중독으로 신경쇠약에 걸렸던 버드 파월의 이야기는 꿈처럼 의식을 따라 몽롱하게 흘러가고, 육중한 몸으로 분노를 표출하는 찰스 밍거스의 이야기는 리드미컬하게 장면이 전환된다. 투어를 다니며 수많은 시간을 길 위에서 보낸 듀크 엘링턴의 이야기는 유랑을 시작하듯 자유롭고 낭만적이다. 마약을 갈망하고 정신병원과 감옥에 갇혀 지내면서도 결국 음악 외의 다른 삶은 생각할 수조차 없는, 슬프고도 기이한 순간은 다이어의 글로써 마침내 생명을 얻고, 모두가 멈추어 있는 사진 속에서 재즈가 들려오기 시작한다.
비전문가가 수놓는 아름다운 문장,
글로 들려주는 음악
존 버거를 향한 헌사로 시작되는 이 책 『그러나 아름다운』에서 작가는 악기를 다루지 않는 것이 오히려 글을 쓸 수 있는 조건이라는 아이러니한 말로, 전문가들 사이에서 비전문가가 어떻게 아름다운 문장을 수놓을 수 있는지 보여 준다. 존 버거가 『글로 쓴 사진』에서 사진보다 더 세밀하게 글로 장면을 서술해 내듯, 제프 다이어는 이번 책에서 글로 음악을 들려준다. 이로써 그는 다시 한 번 “제프 다이어가 곧 장르다”라는 말을 증명해 냈다. 이 작품으로 그는 영국을 대표하는 문학상인 ‘서머싯 몸상’을 수상하며 세계적인 작가의 반열에 올랐고 무라카미 하루키, 알랭 드 보통 등 작가들이 사랑하는 작가로 지금도 굳건한 명성을 떨치고 있다. 본 도서는 2013년 국내에 처음 소개되었지만 번역에 대한 아쉬움이 그림자처럼 따라다녔다. 제프 다이어의 사진 비평집 『지속의 순간들』과 국내에 처음 소개되는 작가의 신작 『인간과 사진Sea/Saw』과 함께 을유문화사에서 제프 다이어 선집 중 하나로 선보이는 『그러나 아름다운』은 재즈 평론가 황덕호가 번역을 맡아 더욱 완성도를 높였다.
“최고의 재즈 사진은 사진 속 주인공이 내는 소리로 가득 차 있다”고 다이어는 말한다. 이를테면 버드랜드 무대에 선 쳇 베이커를 찍은 캐럴 리프의 사진에서 우리는 작은 무대의 프레임 안에 담긴 연주자의 소리만을 듣는 것이 아니라, 나이트클럽에 깔리는 잡담 소리, 유리잔을 부딪는 소리까지 듣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아름다운』 역시 글 속 주인공이 내는 소리로 가득 차 있다. 듀크 엘링턴, 레스터 영, 아트 페퍼 등 각 뮤지션의 일화에서 독자는 그들의 삶을 관망하기보다 작가에 의해 그들 삶 속으로 깊숙이 침투하게 된다. 그곳에서는 우리 주변에 있을 법한 익숙한 삶의 소란이 들려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