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벨룽겐의 반지』*
“Der Ring Des Nibelungen”
고은산
「라인의 강바닥이 드러나고 황금을 지키는 세 처녀가 그의 모습 때문에
도망친다. 황금을 획득한 난쟁이 알베리히, 망둥어 형상을 매만지며
처녀들을 속여 황금을 빼앗고 이 황금은 니벨룽겐 반지 전체를 비극의
바다로 요동치게 만든다」**
“라인의 황금”(Das Rheingold)
(전 1막 4장)
내 마음의 후각이 발레리나 몸짓으로 흐르지만, 미래의 촉각은
아카시아 꽃내음을 예견한다
주고 받는 남, 여 성악가들의 혓바닥은 천국의 미각을 두드린다
오케스트라의 물엿으로 흐르는 진행은 내 우심방 속으로 금맥의
냄새를 가득 담는다
여성 성악가의 갈대를 흔드는 보컬의 전율이 기나 긴 강물 위를
물앵두 걸음으로 걷고 있다
남성 성악가의 보컬은 키가 높은 성당의 꼭대기를 휘돌며 사방에
꾀꼬리 소리를 잔뜩 뿌린다
오케스트라와 보컬 간의 행진은 무적함대의 돛을 높이 흔들며,
잔잔한 파고의 시골 구석을 빨강 머플러로 따사롭게 휘감으며,
머리를 꽂꽂이 세우고 나아간다
큰금매화 형상의 여성 보컬이 아름답게 그을린 후라이팬 위에서
춤을 추고 기뻐한다
물푸레나무 이파리를 닮은 목소리의, 홍잭살 흔드는 소리는
오케스트라와 합체되어 단단한 성악의 방죽 축대를 예쁘게 쌓는다
쪽빛 음성의 톤이 천둥의 타격으로 흩어지며 피 냄새로 흐르는
인간 세상을 긴 빗자루로 모두 쓸어담는다
대서양의 한쪽에서 그물망으로 젖어드는 남성 보컬의 금붕어 비닐들,
나를 사로잡으며 라인 황금의 성대들은 넓은 바다 위를 자줏빛 걸음으로
자박자박 나아간다
“발퀴레”(Die Walkure)(전 3막 11장)
히말라야 등정의 초입에서 긴장된 산악인의 각오가 흐르고 풍파가 휘감기던
음악이 새하얀 바람 소리로 나의 주변을 쓰다듬는다
가만가만 내 마음의 문틈으로 입장한 오케스트라와 성악 사이, 곡예사를 닮은
잎사귀들이 은빛으로 나의 귀를 흔든다
얼마 후, 여성의 왼쪽 가슴으로 흘러내리는, 가시 돋친 전쟁 부상자의 통증이
스미는 음들이 나의 고막에 닿고 닿는다
빗속에서 지져귀는 흑꼬리도요를 칭송하는 오케스트라의, 현들의 보잉과 보잉 사이로
성악이 보슬비로 파묻히고, 곡의 전개가 환해지며 트럼펫의 떨림으로 더욱 장엄해진다 보컬들의 진행은 한라산을 타고 등정하며, 옆으로 펼쳐진 자연의 문장들을 아마존의 시각으로 읽으며, 마음의 정글 속 터널에서 경배를 든다
피라미드 음향의 목소리가 전체를 지배하지만 단조적 분위기가 햇빛 조각을 주우며
곡이 더 스펙터클해진다 다시 클라리넷과 오케스트라의 기막힌 조화는 큰 공원의
잔디같은 음의 머리카락을 순백으로 가다듬는다
발퀴레 Act 2에 접어들면서 이끼 낀 바다의 산호초 성대를 기다리는 남, 여 성악가의
보컬은 해변가 절벽 바위 틈 속, 소나무 하나의 솔잎들 사이로 푸른 맥박소리 가득해
진다
성악과 오케스트라의 울림들 사이로 조금씩 도요새 날개의 힘찬 전진을 이끄는 활력의 음, 몇 자락 스미고, 나의 마음, 하늘의 심장을 겨눈다
발퀴레의 발톱이 하늘로 치닫는 Act 3 시작은 먼 알프스 산의 중턱으로 꽂힌다
여성 보컬은 먼 대륙의 바위를 매만지며 암석의 톤으로 나의 전두엽에 박힌다
시간이 흐르며 나를 흔드는 목청 사이마다 빨간 핏줄이 파랗고 파랗게 춤춘다
유토피아를 동경하는 여성 보컬의 입천장이 잔잔한 산맥 하나의 등고선 따라
수선화 향으로 만발하고 나는 날숨의 향기 몇 다발 묵직하게 쥐어본다
황홀한 목소리여!
어찌 그리 아름다운가!
“지그프리드”(Siegfried)(전 3막 9장)
새벽 공기를 따라 흐르는 소리들, 나의 하얀 손가락 사이에서 흡족하게 들락인다
심상찮은 조짐이 나를 밧줄로 얽어매고 대뇌 속으로 강력한 파장의 에너지가
몸을 흔들고 있다
점점 강해지는 밧줄의 당김은 내 심장에 강력한 권총 하나 남긴다
그 권총으로 흐르는 음향은 방아쇠를 조금씩 당긴다
권총이 붉은 빛으로 당겨지자 품어나오는 팽팽한 미네랄의 음성들,
나의 심장이 오솔길을 벗어나 큰 강쪽으로 향해 가자, 사자의 포효를
기다리던 물결이 요동치고 요동친다
흩어지고 흩어지는, 바람에 휩쓸리는 말갈기 사이로 목젖의 떨림들
뻘겋게 흥건하다
갑자기, 황토로 된 토방으로 던져지는 파격의 소리들, 그것의 손바닥이
강건하다
끝으로 끝으로 살짝살짝 흔들리는 여성 보컬이 없어지는 노을의 저녁 어깨를
다독거린다
다시 알레그로로 높아지는 목소리들 속에서 섬백리향 꽃들의 향연, 성대하게
잔치를 베푼다
“신들의 황혼”(Gotterdammerung)
(전 3막 11장)
새벽 첫 햇빛이 유리알 형대로 비추고 꽃향유 꽃들의 꽃잎 사이로 가만히
드리우는 구수한 입맛들, 나를 천천히 이끈다
해변의 자갈 위로 드리워지는 오후의 음향 몇 점, 나의 귀를 맴돈다
먼 시베리아 쪽으로 흩어지는 위엄있는 성악의 물결들은 홍시 빛깔로
나에게 젖어들고 있다
전진의 축은 휘감겨진 금실 실패를 잘 풀어놓지만, 시간이 지나며 하늘에
던져진 삐걱이는 목청들이 합치고 합쳐 아래로 흘러 큰 강을 덮고 덮는다
나의 전신이 구름 위를 혼잡한 도시의 네온싸인으로 떠돌고, 시뻘건 불길에
휩싸인 발할라 궁성의 아우성이 여기저기 널려 있다
시간이 흘러 그 궁성의 목청 하나, 떨어질 때쯤, 대장정의 곡이 막을 내린다
*『니벨룽겐의 반지』: 독일의 대 작곡가 바그너의 오페라
지휘: Sir Georg Solti
Wiener Phillharmoniker
상연시간: 14시간36분
** 안동림의 이 한 장의 명반에서 참고
----애지 여름호에서
성명:고은산 필명:고은산
2010년 계간<리토피아>로 등단
시집으로 『말이 은도금되다』『버팀목의 칸탄도』
『실존의 정반합』이 있다.
『실존의 정반합』은 2017년 세종도서문학나눔도서
로 선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