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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인과 만리장성
오종락
중국인들은 일생의 소원이 만리장성에 오르는 일이라고 한다. 그 연유는 아마 그들의 선조들 중 누군가가 그곳에 묻혀 있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그러고 보면 만리장성은 옛날 중국 민초들의 공동묘지이며 중국인들에겐 조상 묘소와 같은 특별한 성벽인 셈이다.
난 지난달 만리장성에 올라 성벽 아래 묻힌 영혼들을 위로하며 양국이 이제는 호혜의 바탕 위에서 선린과 협력 관계로 발전하기를 기원했다. 중국은 한동안 내가 여행을 기피하는 국가의 하나였다. 내 마음이 선뜻 내키지 않아 그곳으로의 여행을 자꾸 미루어 왔다. 그러면서도 마음 한구석엔 우리나라와 이웃하고 있고 우리에게 영향을 가장 많이 끼치는 중국 권력의 심장부 북경(베이징)은 한번 둘러보고 싶었다. 지난달 비로소 마음이 동하여 북경 땅에 발을 딛게 되었다. 대체 중국의 북경은 어떤 곳이며 특히 시진핑 주석의 집무실은 어디쯤에 위치하고 있는지가 무척 궁금했다.
예부터 용의 모양을 닮았다는 북경은 용의 머리에 해당하는 황제가 하늘에 제사를 지내던 천단, 몸통에 해당하는 자금성, 날개와 허리에 해당하는 만리장성, 꼬리에 해당하는 이화원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한다. 나는 이번 기회에 용의 머리부터 꼬리까지 쭈욱 한번 밟아보며 그 기운을 느껴 보려고 마음먹었다. 또 스모그로 유명한 북경의 공기는 물론 사람들과 음식들도 빠짐없이 말이다.
북경 텐진공항에 도착하여 버스에 몸을 싣고 시내로 접어들자 난 북경의 공기부터 자연스레 맛볼 수 있었다. 뭔가 약간 탁하고 미세먼지가 혼합되어 있는 공기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런데도 마스크를 착용한 사람들은 거의 찾아보기가 힘들었다. 무척 신기하기만 느껴졌다. 이곳 사람들은 미세먼지와 스모그에 용감한 전사들 같았다. 이런 환경이 일상화되고 보니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모양인지. 일행들이 공기가 좀 탁하다고 하자, 가이드는 운 좋게도 손님들은 공기질이 가장 좋은 때에 여행을 오셨다며 평소에는 오늘보다 훨씬 심하다고 한다. 회색 먼지가 쌓인 도로를 보니 가뭄이 심하고 물이 귀한 도시임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런 탓에 시내 곳곳에는 수로가 잘 발달되어 있었다. 공기와 물은 내가 살고 있는 도시 대구와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여행 첫날 나는 가이드에게 시진핑 주석을 만나볼 수 없느냐고 질문을 던졌다. 우리말도 서툰 젊은 조선족 가이드는 눈이 휘둥그레지면서 놀란 표정으로 선생님! "시진핑은 만날 수가 없습니다. " 그러면 집무실이 있는 곳 가까이라도 관람해 보자고 하니까 그곳은 공안의 통제 때문에 부근으로 버스가 들어갈 수 없다고 했다. 시진핑이 있는 곳은 중국에서 가장 비밀스러운 장소인 인공호수로 둘러싸인 중남해(中南海)에 있다. 집무실 이름도 우리나라 경복궁 근정전과 이름이 같은 근정전(勤政殿)에 있다고 한다. 가이드는 나의 첫날 질문에 부담을 느낀 탓인지, 여행 중 버스가 중남해 방향을 지날 때면 이 도로로 곧장 가면 중남해가 나온다고 일러주곤 했다.
이윽고 회색빛 도시에 저녁노을은 더욱 강렬하게 이글거리더니 일몰이 찾아들었다. 일행들은 식당에 들어갔다. 시장했던 탓인지, 향이 약간 풍기는 북경식 샤브 요리는 그런대로 먹을만했다. 석식 후 여행 첫 일정으로 북경의 대표 공연인 ‘금면왕조’ 관람을 끝으로 잠자리에 들었다.
익일은 이른바 "세계에서 가장 긴 무덤"이라고 불리는 만리장성에 올랐다. 곤돌라에서 내려 성벽을 오르자 살랑살랑 불어오는 봄바람이 예사롭지가 않았다. 그 옛날 남편을 잃은 맹강녀의 울부짖음처럼 귓전을 울린다. “내 남편 살려내, 내 남편 살려줘”라고. 우뚝 솟은 봉화대에서 궁궐을 내려다보며 외치는 듯했다. 그녀와 결혼 후 며칠 만에 잡혀간 남편도 장성을 쌓다가 병들어 성벽 아래 묻혔다고 전한다. 그 거대한 만리장성을 쌓기 위해 고된 노역에 시달리다 죽으면 그 자리에 묻혔다고 한다. 1m마다 한 사람씩 묻혔다고 하니 수천 Km나 되는 성벽에 그 희생자 숫자는 이루 말할 수 없으리라. 나는 군주의 잔인함과 동시에 탐욕의 극치를 맛보는 듯했다.
그동안 TV를 통하여 보았던 그 웅장하고 거대하게 느껴졌던 만리장성! 북팔루는 휴일이라 그런지, 중국인과 외국인 관광객들로 오일장날을 방불케 하며 입추 여지가 없었다. 효심 강한 중국인들 중엔 노모를 등에 업고 성벽을 오른 이도 눈에 띄었다. 노모의 평생소원을 풀어 주려고 하는 것 같았다. 중국인들의 평생소원이 만리장성을 오르는 일이라고 하는 의미는 아마 옛 조상들을 기리고 후손들의 의무와 도리를 다하려는 마음 자세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정상에 오르는 길목에는 국경에 비단 팔러 온 왕서방들의 목소리인양 시끌벅적했다. 투박한 목소리는 능선을 타고 이리저리 울려 퍼졌다.
상념에 잠긴 채 인파 사이를 헤치며 한 발작 한 발작 오르다 보니 어느덧 만리장성 북쪽 최정상 팔달령 북팔루 표석이 눈에 들어온다. 잠시 숨을 가다듬고 고개를 돌려 보았다. 산맥을 따라 구불구불 뻗어간 장성을 멀리서 바라보니 끝없이 기세를 부리는 한 마리의 거룡을 보는 듯했다. 지금의 중국과 중국인처럼 몸부림을 치고 있는 것 같았다. 북팔루 성벽에 손을 대고 잠시 눈을 감고 참배 시간을 가졌다. 이웃나라 국립묘지에 와 서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지하에 묻힌 시신들은 지하에 유골로 성벽처럼 이렇게 이어져 있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중국 역대 왕조들이 만리장성에 들인 노력과 비용에 비해서 방어벽으로서 역할은 그리 크지 않았다는 평가도 적지 않다. 하지만 그 실효성에 관계없이 오늘날 만리장성은 중국을 대표하는 명물이 되었다. 오늘도 방문객 인파들 중에는 70%의 중국인과 외국 관광객 30%의 비율로 만리장성 성벽을 오르며 인간 띠를 이어 서있다. 그들은 과연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무척 궁금해진다.
우리는 중국인들과 지리적으로 공동운명체이다. 지금 인구 13억의 중국은 만리장성 산맥처럼 온 세계에 손을 뻗어 식량과 에너지 및 온갖 자원을 흡수하는 블랙홀 역할을 하고 있다. 어디 거기에 그치지 않는다. 자원을 소비하며 나오는 나쁜 물질을 방출하여 우리나라에 피해를 주고 있는 실정이다. 이런 판국에 양국이 서로 사이마저 멀어진다면 해결책을 찾기는 더욱 힘들 것이다.
만리장성의 구불구불한 성벽만큼이나 중국은 우리나라와는 굴곡의 역사를 지니고 있다. 중국의 시진핑 주석은 집무실 벽에다 만리장성 그림을 항상 걸어 두고 있다. 그는 새로운 각오를 다지며 21C 견고한 만리장성을 새롭게 구축해 나가고 있다. “하루 밤을 자고 만리장성 쌓는다.”는 옛이야기가 전해온다. 어떤 여자의 남편이 만리장성 부역장에 징용되어 갔다. 그 사이에 한 남자가 찾아와 여자와 하루 밤을 보낸 뒤 탐욕에 사로잡힌 나머지 여자의 솔깃한 꾐에 빠져 그녀의 남편 대신 한 평생 만리장성 노역장에서 일하게 되었다는 애달픈 이야기다. 인간의 탐욕이 이런 우를 범하게 되니 이를 경계하라는 뜻일 것이다. 신뢰도 부족한 상태에서 하룻밤에 쌓아 올린 장성은 쉽게 무너지는 법이다.
중국인들을 대할 때는 이들의 속성과 만리장성이 전해 주는 역사적 교훈도 한번 되새겨 보면 어떨까 한다. (2018.4.29.)
첫댓글 만리장성을 두차례나 방문했던 나는그 거대함에 압도되어 아무런생각도 없었는데 글을 읽으니 관찰력이 대단하다는 것을 느낍니다. 만리장성이 중 국인들에게는 큰 자랑이면서 아픔인가 봅니다. 거대한 무덤을 관광명소로 활용하는 중국인들의 속내를 다시 한 번 되돌아봐야 되겟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만리장성 뿐만아니라 중국에 가면 화부터 납니다. 그 넓은 영토, 13억의 인구, 기암절벽과 수려한 산, 도도한 강, 너른 평야, 이 세상의 모든 좋은 것을 다 가진 나라, 역사상 우리에게 가장 많은 영향을 미친나라....... 나는 그곳에 갈 때마다 화부터 났습니다. 우리가 단단히 마음먹고 대처하지 않는다면..... 걱정하며 읽었습니다.
좋은 곳을 다녀 오시고 보고 느낀바를 기록 하신 글 잘 읽었습니다. 사실 저도 말로만 듣던 만리장성에 처음 오를때는 과연 인간들의 힘으로 이 불가사이한 구조물이 완성됐다는 사실에 놀랐습니다.성곽이 아니라 거대한 공동묘지라는 오 선생님의 견해에 공감하면서 좋은 내용 감사드립니다.
만리장성은 한번도 가본적이 없지만 그 성을 만들 때 사람들의 희생이 많았으리라 짐작했는데 선배님의 이야기를 듣고 과연 그렇구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중국은 하루빨리 녹화를 서둘러 옆 나라에 피해를 입히지 말았으면 좋겠습니다. 찰 읽었습니다.
유럽의 유적지나 중국의 유적지를 탐방해보면 그시대는 귀족을 위한시대로 신분이 낮은 사람에게는 너무나 잔인한 시대임을 느낍니다. 시민혁명이 일어날수밖에 없었음을 깨달았습니다. 글의 내용에 공감하며 유익한 글 잘읽었습니다
저는 어디 갔다와도 그냥 좋았다. 어떻더라로 끝나는데 관찰력과 묘사력에 감탄합니다. 만리장성이 눈앞에 펼쳐지는듯 합니다. 잘 읽었습니다.
그 많은 인구와 넓은 땅과 자원을 무기삼아 세계를 향해 안하무인한 중국의 지도자, 시진핑을 만날 수 없느냐는 질문을 하셨다는 말씀에 조금 황당하면서도 재미있고 통쾌했습니다. 시진핑과 오선생님께서 동격이 되는 순간 같았습니다. 저도 미초선생님 말씀처럼 중국,,,만 생각하면 공연히 불쾌하고 화가 났었거든요. 약소국의 설움이 떠올라서 인가 봅니다. 이번 남북정상회담이 강소국으로 가는 첫 단추가 되었으면 하는 간절한 바램도 같이 합니다. 잘 읽었습니다.
만리장성 탐방기를 자세하게 잘 써 주셔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최상순드림
만리장성은 아픈상처가 흉터되어 남아있지만 지구상 가장큰 시설물이고 오늘의 중국을 잘 살게하는 보고가 되고있어 북방오랑케들을 막는 국경선과는 상관없이 다른 용도로 이용되고 있습니다. 공감하며 잘 앍었습니다.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생명은 소중하거늘 수많은 목숨을 앗아가며 이룩한 만리장성이 군사적 효용가치가 얼마나 있었을지 의문이 갑니다. 오늘날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 되어 후손들의 관광자원으로 활용됨을 보고 성벽 아래 묻힌 영혼들의 명복을 빌어봅니다. 아울러 중국인들의 속성과 만리장성이 주는 교훈을 되새겨 본다는 의견을 존중하며 조상의 묘터와 같다는 특별한 성이란 말에도 공감하며 잘 읽었습니다.
중국 북경을 여행하시고 좋은 글을 남겨주셨군요 중국은 가보지 않아서 만리장성이 민초들의 공동묘지라는 표현이 특히 마음에 와 닿습니다. 날카롭고 세밀한 필치로 그려내신 중국기행문 잘 읽었습니다.
만리장성을 비롯해 세계의 역사속의 관광지를 가보면 지금 후손들은 관광수입으로 혜택을 보겠지만 그 시대 사람들이 참 힘들어겠다는 생각이 절로 나더랍니다. 세계에서 가장 긴 무덤이 만리장성이라고 한다니 1m마다 한사람씩 묻힌 무덤 어디 그기 뿐이겠습니까? 왕조 정치하에서 백성들의 피눈물이 오늘의 관광지인가 봅니다. 역사의 현장을 생생하게 써 주셔서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