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엄니는 혹부리 by 정지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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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cebook에 지인으로 되어 있는 분이 어머니를 통해 본 자신의 상기한 삶이 올려저 있어 다시 여기 농연 앞에 옮겨 봤다.
그의 글에 필자는 하기의
"모든 사람에게 있어 살아온 삶은 하고싶은 것의 이룸이고 또 이루어 감이고 또 이루려다 만것 그리고 이루고 싶어 매를 쓰며 산 에피소드라 봅니다.
여기에 읽혀지게 한 삶의 얘기도 그 중의 하나로 보통 얘기고 거기에 교도소 출입 삽화?는 대단한 용기입니다.
매우 감동적입니다"란 답글을 달았다.
그의 글은 단순한 얘기형태로 서술하고 있지만 매우 큰 감동을 그리고 우리가 살아온 그리고 살아내는 삶이 어떠해야 하는가를 알려주고 있고 또 느끼게 하고 있다.
더욱이 1972년 미국 올 때
우리는 미국에 대하여 낫놓고 기억자도 모르는 "촌ㄴ들?이 아니었었던가?
그 촌놈들이
"막 보고, 막 알아가며 마구잡이로 살아온 그 미국생활"은 귀중한 天下素材가 아닐 수 없다.
그래서 잘만 쓰면 김동민의 대작 "백성"이나 박경리의 대작 "토지"를 능가하는 대작을 쓰고도 남는 것이라 사료 된다.
그래서 우리의 농연 모두에게 기회가 되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더욱이 이유찬의 삶이 클로즈업 되며서,
글이란 또는 얘기꾼이란 타고난 재주가 있어야 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얘깃거리 즉 소재가 빈약해선 상기한 대작들, 200자 원고지로 하여 삼만장이 넘는 글을 쓸 수는 없는 것이다.
하지만 여기 인용한 상기의 수필을 보면 때론 우리 한글에는 한문으로 표기해야 뜻을을 아는 경우가 있기도 하지만 그러한 난해한 어휘없이 그저 보통 사람들이 쓰는 아주 평범한 어휘를 사용하고 있어 소재가 좋으면 누구나 글을 쓸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 주고 있다.
여기 정 누구의 "혹부리 어머니"란 글의 소재는 가난하지만 정직하게 사는 어머니와 오남매 그리고 감방드나드는 탕자가 된 자신이고 그리고 그를 구원한 하나님이다.
그리고 글을 쓴다는 것은 그 소재들을 베틀의 날실에 씨실을 넣어 짜는 베와 같은 것이란 본다.
아울러 윗글의 작가는오남매라 했으니 출세한 가족들도 한 둘 있을성 싶다.
그래서 어떤 식구는 "오빠가 감옥 들락거리던 얘기를 꼭 넣어 우리 가족들을 쪽팔리게 하여 기죽이고 또 다시 회상하기도 싫은 그 지긋지긋했던 그 가난한 시절을 넣어야 글이 되냐"며 격한 반대도 있을 성 싶기도 했지만 그는 "그게 지어낸 얘기도 아니고 우리가 그렇게 살아온 것이 사실인데 숨겨서 뭘 하겠는가"하며 용기를 낸 것이다.
어쩌면 그 가난과 감옥을 들락거림을 빼고 돈벌어 세계를 구경 다니며 프랑스 빠리에서 먹은 캐비어(Caviar) 얘기나 하고 홍콩에서 먹은 상어지느러미 요리맛을 얘기한다면 그것은 돈벌어 광내는 지 자랑으로 읽는 사람에게 아무런 감동을 주지 않는다.
그것은 마치 촌ㄴ이 돈 좀 벌었다고 재벌들에게 자랑하는 꼴불견짓일 수도 있다.
그래서 농연의 누구처럼 "state와 state를 건너다니며 노숙도 하며 눈물 떨어진 빵을 먹기도 하며 살아온 얘기를 당신을 쪽팔리게 한다고 안해야 하고 또 못하고 죽어야 한다면 그것은 자기 삶이 아닌 남의 삶인 허구라 본다.
내 삶은 누군가가 돈대서 살아온 그를 위한 삶이 아니라 그들이 먹었다 하는 캐비어(Caviar) 대신 달걀을 삶어 주머니에 넣고 다니며 허기 떼우며 살아온 당신의 오직 한번인 소중한 삶인데 그가 쪽파릴까 두려워 망서리다 죽고마는 것이 아니라
" 왜 내가 못해야 해"의 용기있는 삶의 글이어야 하는 것이다.
왜?
내 삶이기에,
여기
위의 사진은 우리 연배로 현찰로 수백만불 가진 사람으로 소문이 난 사람이다. 하지만 똥오줌을 지 손으로 처리하지 못하는 신세가 됐다.
자식들이 있다고 하지만 같이 살 수 없기에 양노원에 처박어? 버린 것이나 다름이 없다.
우리가 오늘은 괜찮을지 모르나 어쩌면 우리에게 곧 닥치는 일이 아니겠는냐 말이다.
저 신세에 수백만불을 어디다 자랑하고 저 신세에 무슨 쪽팔림을 걱정을 하여 온 동네를 벌집쑤셔 놓은 것 같이 해야할 이유가 나변에 있더란 말인가?
우리가 하고 죽어야 하는 얘기 그리고 듣고 죽어야 하는 얘기란,
운좋아 RN 간호원 만나 돈 잘버는 각시 자랑이나 히고 부동산으로 떼돈 벌고 주식투자로 큰돈 벌어 세계에 뿌리고 다니며 하는 지 뽐내는 얘기하여 위화감만 깊게하는 얘기가 아니라 난생 처음 탔던 비행기 얘기 식당에서 뭘 또는 뭐라고 오더할지 몰라 손가락 영어를 했던 얘기, 미국 여자가 볼에다 하는 인사라는 것을 모르고 내가 좋아서 하는 것으로 착각 끼스를 하고 혀를 밀어 넣으려 했던 happening 같은 얘기와 그리고 하이웨이를 달리다 자동차 후드가 열려져 새끼줄로 동여 매고 워싱턴과 뉴욕으로 여행다니던 얘기 그리고 칭크가 죠센징인 줄 모르고 인종차별 받으며 개고생하던 그런 얘기들을 듣고 싶고 그런 얘기들을 지금 않고 죽기라도 하면,
"죽어 다시 만나서 얘기하자"고 할건가?
아닌 것이다.
이발사가 대숲에다 "임금 귀는 당나귀 여!" 해버리듯 지금해야 하고 지금 듣고 죽게해야 하는 하는 것이다.
우리 모두 그것을 깨닫고 다 쏟아놓고 가기로 하자. 그래서 우리가 죽을 때
" 아, 참 잘 살고 가네" 하게 ?
https://youtu.be/mLvZKcavhnY?si=5H1jviRj38Y53Dpk
to be cont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