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평연월(太平煙月) - 근심 걱정이 없고 안락한 시절
[클 태(大/1) 평평할 평(干/2) 연기 연(火/9) 달 월(月/0)]
의식주에 아무런 걱정이 없으면 그 이상 좋은 세상이 없다. 그 옛날 중국 堯(요)임금 때 한 노인이 음식을 머금고 배를 두드리며 含哺鼓腹(함포고복)의 擊壤歌(격양가)를 부른 때다. 天下太平(천하태평)의 이런 사람들이 많으면 나라도 안정돼 太平天下(태평천하)가 된다.
堯舜(요순) 시절이 다시 오지 않아서인지 바라는 욕심이 더 커져서인지 세상이 평화롭고 안락한 때를 나타내는 성어가 아주 많다. 그 중에서도 가장 익숙한 말을 고른다면 나라가 안정된 데다(太平) 연기에 어린 은은하고 평화로운 달빛(煙月)이란 성어가 바로 떠오른다. 합쳐져 사용된 전고는 불확실해도 우리나라에서 특히 많이 사용됐다.
먼저 고려 말 三隱(삼은)의 한 사람 冶隱(야은) 吉再(길재)의 ‘懷古歌(회고가)’가 손꼽힌다. ‘오백년 도읍지를 필마로 돌아드니/ 산천은 의구하되 인걸은 간 데 없네/ 어즈버 태평연월이 꿈이런가 하노라.’ 500년이나 흥성하던 고국이 멸망하니 태평한 시절이 꿈같다는 시조다. 조선조 문장가들도 이
말을 써서 멋진 표현을 남겼다.
우리 고전DB에서 몇 수만 부분 인용해 보자. ‘늙지 않는 세월은 만년을 기약하고(難老光陰期以萬/ 난로광음기이만), 태평 세상 연월은 천년을 넘어가리(太平煙月度於千/ 태평연월도어천)’[丁若鏞/ 정약용], ‘한해 동쪽까지 강역을 다 개척하니(拓盡提封瀚海東/ 척진제봉한해동), 태평한 세월이라
수루가 텅 비었네(太平煙月戍樓空/ 태평연월수루공).’[李睟光/ 이수광, 睟는 바로볼 수].
단어를 분해하여 보면 太平(태평)은 ‘莊子(장자)’에서 찾을 수 있다. 지혜와 능력 있는 자가 바르게 만물을 다스리고 도리로써 몸을 닦으면 ‘지모는 쓸데가 없어져 자연 상태로 돌아가게 되니(知謀不用 必歸其天/ 지모불용 필귀기천), 이를 태평이라 하고 정치의 최고 경지(此之謂太平 治之至也/ 차지위태평 치지지야)’라고 했다. 外篇(외편) 天道(천도)에 있다. 뜻이 좋아서인지 중국 왕조의 年號(연호)에 단골로 썼고 지역이름도 많다.
煙月(연월)은 唐(당)나라 張九齡(장구령)이 시 ‘贈王司馬(증왕사마)’에 여유 있고 태평함을 상징하는 말로 처음 썼다고 하는데 이 말도 조금 후세에 당에서 이름 떨쳤던 신라 崔致遠(최치원, 857~?)의 묘사가 더 좋다. ‘선가의 시와 술의 흥취에 흠뻑 젖어(占得仙家詩酒興/ 점득선가시주흥), 한가히 연월
읊으며 봉호를 생각하네(閒吟煙月憶蓬壺/ 한음연월억봉호).‘ 蓬壺(봉호)는 바다 속 신선이 산다는 蓬萊山(봉래산).
모두가 걱정 없이 만족하며 살게 되면 길에 떨어진 남의 물건도 줍지 않는 道不拾遺(도불습유)의 세상이 온다. 밤이 되어도 대문을 열어놓는 夜不閉戶(야불폐호)의 세상이 되고, 땅에 줄을 그은 옥이라도 죄수들이 달아나지 않는 劃地爲牢(획지위뢰)의 평화가 온다. 글자로만 보면 그리 어렵지 않을
듯하지만 서로의 욕심이 지나쳐 지지고 볶는다. 남을 인정하지 않으면 좋은 세상은 하세월이다.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