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0자 수필 문득.1129 --- 소정방과 금강 속에 백마강
인류의 역사는 대부분 큰물인 강을 끼고 발달하였다. 수도권에 한강, 영남권에 낙동강, 호남권에 영산강이 있다면 충청권에는 금강이 있고, 이들이 우리나라 4대강이기도 하다. 백제도 한강 변 한성에서 도읍하고 금강 변인 웅진(공주)과 사비(부여)로 천도하여 678년을 유지하였다. 그로부터 1300여 년이 지난 후에 행정수도 세종시가 들어섰다. 금강은 복 받은 곳임에 틀림이 없어 보인다. 장수의 신무산 자락 뜬봉샘에서 발원한 물줄기는 397.8km를 돌고 돌아 장항 앞바다로 흘러들기까지 충청의 젖줄로 땅을 적시며 수많은 생명체의 생명수로 제 몫을 다하고 비로소 서해라는 이름으로 바뀌게 된다. 그 아름다운 비단결 같은 금강이 유독 부여지방을 지나면서 같은 강인데 이름을 잠시 접고 16㎞ 구간을 백마강이라고 한다. 물론 처음부터 그런 것은 아니다. 처음에는 사비수 혹은 사자수, 백강 등으로 불렀다. 당나라 장수 소정방의 군대가 강가에 다다르니 앞을 분간할 수 없는 안개가 자욱하여 강을 건널 수 없었다. 하루 이틀이 아니고 매일 그렇다 보니 소정방은 사비성 공격에 차질이 생겼다. 의자왕이 용으로 변해 조화를 부린다는 당나라 술사의 말을 들은 소정방이 부랴부랴 백마의 머리를 미끼로 용을 낚자 자욱하던 안개가 걷혀 강을 건너 백제를 함락하였고 그 후 백마강이라 불렸다 한다. 소정방이 앉아서 용을 낚았다는 바위가 조룡대다. 용이 끌려 올라오며 발버둥 치다 조룡대에 발톱 자국을 남겼다고 전해오고 있으며 낙화암보다 강 위쪽에 있다. 한편 이곳에서 금강은 오래전부터 백강으로 표기해 왔다. 역사적으로 말(馬)은 ‘크다’는 뜻이 담겨있는데 이 강이 사비성 인근의 ‘백제에서 가장 큰 강’이므로 백강에 ‘마’자를 덧붙여 백마강으로 불렀다고도 한다. 백마강에 관한 뚜렷한 정설은 없지만 그럴듯하게 전해오거나 유추할 뿐이라도 백제와 관련이 있음은 부인할 수 없다. 공주(웅진)는 64년 동안 수도였으나 성왕이 백제의 부흥을 꾀하며 부여(사비)로 옮겨 123년간 수도가 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