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재천의 서재는 모두의 숲이다
생물학자 최재천의 서재
최재천 ㅣ 생물학자
학력 : 하버드 대학 생물학 박사
소속 : 이화여자대학교 자연과학대학
저서 : <생명이 있는 것은 다 아름답다>, <개미제국의 발견>, <최재천의 인간과 동물> 등
다양한 책과 사람이 모여드는 공간
둘러보면 알겠지만, 이게 생물학자의 서재일까 싶을 정도로 제 서재에는 별의별 책이 다 있습니다. 문학, 철학, 역사 서적에서부터 최근에 많이 읽게 된 경영계통까지……, 그 종류가 가지가지입니다. 왜냐하면 저는 서로 다른 사람들이 결혼을 하여 예상치 못한 자식이 태어나는 것과 같이, 다르다고 여겨졌던 학문이나 지식, 이론이 서로를 알아가는 과정에서 새로운 학문이 만들어질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의 서재에는 온갖 종류의 책들이 꽂혀있고, 여러 분야의 사람들이 이곳을 드나들며 책을 찾고 가끔은 둘러 앉아 토론도 합니다. 간혹 책들이 발이 달린것처럼 사라지기도 하는 이곳은 제 서재라기보다는, 많은 사람들의 서재이지요.
흐름이 있는 서재
너무 많은 책이 있어서, 그냥 두면 찾을 수가 없어요. 그렇다고 이름을 딱 붙일 만한 분류체계를 만들기는 굉장히 힘들어요. 그래서 저는 제 마음속에 있는 흐름에 따라 책을 배치해두었습니다. 가장 안쪽에는 제 학문의 뿌리인 진화에 대한 책을 모아놓고. 그 옆에는 이에 대한 이해를 도와주는 생물학, 또 그 옆에는 이와 관련된 자연과학, 인문학 서적을 순서대로 꽂아두었습니다. 이렇게 가다 보면 예술과 경영분야는 서재의 끝 쪽을 차지하지요. 이런 식으로 관련이 있는 책들끼리 전략적으로 가까이에 포진시켜 놓았어요. 분류체계가 있다기보다는 분류의 흐름이 있다고 해야 할 것입니다.
어린시절 전집
제가 어렸던 때에는 지금처럼 책이 많지 않으니 같은 책을 반복해서 읽곤 했어요. 저는 어머니께서 월부로 사오신, 당시 유행이던 전집을 읽고 또 읽었던 기억이 나네요.
초등학교 때는 세계 동화 전집, 중학교 때는 한국 단편 문학전집, 그리고 고등학교 때에는 노벨 문학 전집을 읽었습니다. 세계 동화 전집 1권이었던 '집 없는 천사들', 2권 '사랑의 학교'는 아직도 기억하고 좋아하는 책입니다. 얼마 전에 서평을 쓸 기회가 있어서 '사랑의 학교'를 다시 읽게 되었는데, 제가 지금까지 어렴풋이 기억하면서 인용한 이야기들이 '사랑의 학교'에서 나오는 내용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나의 손을 잡고 이끌어 준 작가
여러 전집, 그중에서도 노벨 문학 전집은 제가 우겨서 구매를 하였습니다. 매년 상 받은 작가의 작품이 번역되어 나오면, 그때마다 사서 전집에 첨부했던 기억이 납니다.
제가 제일 마지막으로 샀던 작품이 솔제니친의 책이었어요. 그걸 단숨에 다 읽었죠. 그런데 특이하게도, 그 책에 덤으로 번역되어 있던 수필 중 하나에 제가 요새 말로 '꽂힌' 거예요. '모닥불과 개미'라는 제목의 한 페이지짜리 수필이었어요.
불 속에 갇힌 동료를 구하러 가는 개미들의 행동에 대해 '왜 저런 이타적인 행동을 할까?'라는 의문을 던지는 수필이었어요. 이상하게 그 글이 저에겐 잊혀지지 않더라고요. 그러다 제가 지금 전공하는 사회 생물학을 알게 되었는데, 사회 생물학의 가장 큰 질문 중 하나가 개미들이 보여준 것과 같은 행동에 대한 질문이더라고요.'어? 솔제니친도 그런 이야기를 했었는데…….' 사실 저는 제가 이과대학을 가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했어요. 이 과정에는 우연한 사건도 몇 가지 있는데, 솔제니친을 접하게 된 것도 그 중 하나예요. 문학 작품에 대한 호기심이 있던 저를 이렇게 과학 분야로 손잡아 끌어주신 분이 솔제니친이에요.
책은 사람의 삶을 절묘하게 만들어줍니다
대학 들어가자마자 독서 동아리를 제일 먼저 했어요. 누군가가 재미있는 책을 추천하면 다 같이 읽고 토론하였죠. 그런데 평소 제안을 잘 안 하는 친구가 로마클럽보고서의 '성장의 한계'를 읽자고 하더라고요. 실은 독서동아리에서 읽을 만한 책은 아니어서 읽어온 사람도 거의 없었지만, 저한테는 그 책이 엄청난 충격을 줬어요. 그 당시 제가 택한 생물학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보게 해주었고, 오늘날 제가 기후변화센터, 생태학회, 환경운동연합과 관련된 일을 하게 된 것도 돌이켜보면 이 책에서부터 출발한 거예요. 우연하게 어떤 책을 읽느냐가 훗날 절묘하게 그 사람의 삶을 결정해준다는 생각이 들어요.
내 인생의 책
우리는 죽지 않을테니/ 알렉산드르 솔제니친 저
한 장짜리 정말 짧은 수필이에요. 개미들이 자기 동료를 구하러 불길로 뛰어드는 것을 보고 작가 솔제니친은 무엇이 그들로 하여금 저 불길로 뛰어들게 하는가, 라고 생각해요. 이상하게도 저에게는 잊히지 않던 글이었습니다.
The Limits to Growth:
Meadows, Donella H.,Randers, Jorgen,Meadows, Dennis 저
대학교 진학 후 제일 먼저 독서 동아리 활동을 했는데, 그 때 읽은 책입니다. 저한테는 이 책이 엄청난 충격을 줬어요. 생물학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해주는 한편, 훗날 생물학자가 되는 과정에서도 이 책은 끊임없는 바탕이 되었습니다. 오늘날 기후변화, 환경 운동 등 여러 가지 활동을 하고 있는 것도 돌아보면 이 책에서부터 출발한 거죠.
사회생물학 / 에드워드 윌슨 저. *행동 수준에서 이타적
유학간 첫 해 이 책을 교과서로 사용하였습니다. 아직 영어가 서툴던 시절이었는데도 이 두꺼운 책을 밤을 새며 읽었어요. 이 책의 중심 키워드는 이타주의예요. 우리를 포함한 동물은 왜 이타적인 행동을 할까요? 어린 시절부터 제가 가지고 있던 삶에 대한 질문들이 이 책을 읽으면서 하나씩 정리되었습니다
이기적 유전자 / 리처드 도킨스 저. *유전자 수준에서 이기적
내 삶은 DNA라는 화학 물질이 이어가는 진화의 역사 속 한 부분이라는 내용 때문에 많은 사람이 이 책을 읽고 회의주의에 빠져요. 하지만 조금 더 읽어보면 내가 내 삶의 주인이라는 엄청난 집착에서부터 과학적으로 벗어날 수 있습니다. 실제로 제 세계관을 바꿔준 책이고, 제 학문의 가장 중심에 있는 책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지요.
통섭 / 에드워드 윌슨 저
최근 학계에서나 기업에서나 화두로 삼고 있는 '통섭'에 대한 책입니다. 통섭은 서로 다른 지식의 경계를 무조건 무너뜨리고 섞고 융합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하지 않습니다. 다른 것들이 서로를 알아가는 과정을 통해 새로운 것을 만들어가자는 이야기입니다. 저에게 이 책은 온갖 분야의 사람들과 같이 이야기할 수 있는, 그런 흥분되는 길을 열어주었고, 이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통섭원'이 곧 제 서재입니다.
https://naver.me/GOCmQLrQ
'생태학적 삶은 무엇인가' 박경리-최재천 대담
강원 원주의 ‘토지문화관’에서 생태학적 삶을 몸소 실천하며 살고 있는 박경리 토지문화재단 이사장(소설가·76)와 자연도 아는 만큼 사랑할 수 있다며 ‘생태학 전도사’로 나선 서울대 최재천 교수(생태학·48). 두 사람이 한국생태학회 주최로 8월 11∼18일 서울에서 열리는 제8회 세계생태학대회(INTECOL·주제 ‘21세기를 사는 새로운 철학으로서 생태학’) 준비를 위해 최근 토지문화관에서 만났다. 박 이사장은 이 대회의 기조발제자로 초정됐고 최 교수는 이 대회의 준비위원회 학술담당공동위원장이다. 두 사람은 전세계의 생태학 관련 전문가 2000∼3000명이 참가할 예정인 이 대회를 계기로 생태학에 대한 일반인들의 관심이 높아지기를 기대하며 생태학적 삶의 의미, 의식의 전환 등에 관해 이야기를 나눴다.
▽최재천〓돌담이 지난번에 왔을 때보다 또 길어졌네요. 연세도 있으신데 쉬엄쉬엄 하시지요.
▽박경리〓젊었을 때는 ‘나이 들면 주름살도 지고 얼마나 추할까’하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얼마 전 생각해보니 나이가 들어서 더 편해진 것 같아요. 주름도 더 이상 생각하지 않게 되고, 생활도 간소해졌어요. 일종의 ‘해방’이지요. 일이라는 것도 해방의 수단이에요. 일을 하다보면 생각에서 놓여나지요.
일 자체는 ‘이득’에서도 ‘도덕’에서도 독립된 것이에요. 일을 하며 누리는 공간과 시간이 내게 자유를 줘요. 해가 뜨기 시작하면 자꾸 바깥을 봐요. 얼른 일하러 나가고 싶어서. 밤은 싫어요. 일을 할 수 없으니까요.
젊을 때는 개인에 대해 늘 분노가 치밀었고 모든 것이 내게 상처로 왔지만, 이제는 이 늙은이에게야 뭐라고 하든 어떻게 하든 아무러면 어떻겠냐는 생각이 들어요. 대신에 이제는 세상이 바로 돌아가지 않는 것을 보면 화가 치밀어요.
▽최〓선생님께서는 이전에 환경의식을 가지고 살아야 한다는 것을 ‘환경이자론’으로 설명하신 적이 있습니다. 원금 까먹지 말고 살라는 것이었지요. 그런 관점에서 본다면 요즘 사람들은 자손의 것을 카드로 대출해 사용하고 있는 셈일 겁니다. 그런데 이런 분위기에서 ‘이자’만 갖고 살라는 것을 설득할 수 있겠습니까?
▽박〓요즘 사람들은 겉으로만 부자고 속은 거지예요. 명예, 벼슬 같은 겉치장이 없어도 ‘따신 내(따뜻한 느낌)’가 나는 집이 있어야 해요. 자랑하기 위해서도 아니고 생활의 범위 내에서 최선을 다해 사는 것이지요. 그런데 요즘 시장에 가보면 ‘의식주’와 관계없는 것이 더 많아요. 사람이 윤리 의식이 있다고 하지만 그게 하나도 자랑이 아니에요. 동물은 생존할 만큼만 먹지만 사람은 과하게 축적을 해요. 어떤 면에서는 윤리의식이 없는 동물이 훨씬 낫지요.
▽최〓사람들은 동물과 인간을 비교하면서 ‘동물도 생각할 줄 아는가’, ‘IQ는 얼마나 되는가’라는 질문을 합니다. 그런데 인간의 잣대를 동물에 대는 것은 올바른 비교가 못 되지요. 밤에 산꼭대기에 인간과 동물을 함께 풀어놓고 ‘집을 찾아 오라’고 한다면 그건 두말할 것 없이 인간이 지는 게임입니다. 우리는 자연에서 배운 것을 지식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자연계의 그 엄청난 ‘지식’ 중의 극히 일부만을 우리가 문자로 옮겨 놓은 것에 불과한데, 우리는 언제부터인가 우리의 학문체계에 맞도록 정리해 놓은 것만을 지식이라 부르는 오만을 저지르고 있어요. 바로 이 오만이 생명 경시 풍조를 가져온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박〓사람들은 ‘새가 노래한다’ ‘새가 운다’ ‘나비가 춤을 춘다’고 말해요. 그런데 나비가 날아가는 것은 꿀을 찾는 노동이에요. 새가 노래한다는 것도 슬픔의 표현이거나 무언가의 발견 등을 전하는 하나의 언어예요. 진실과 먼 인간의 잣대를 대단한 듯이 ‘표현’이라고 쓰지요. 문학 역시 ‘나비가 춤을 춘다’는 의식으로 해서는 안 돼요. 문단에서도 내가 극복하려고 한 것이 바로 유미주의였어요. 생존하는데 아름다움이 어느 정도로 중요하겠어요? 아름다움이란 ‘진실에서 우러나는 치열성’이에요.
▽최〓동물의 입장에서 생명을 넓게 바라보는 관점이 필요합니다. 어느 모임에서 철학자와 논쟁을 벌인 적이 있었어요. 그 철학자는 “내가 공격을 받을 줄 안다. 그러나 인간이 중심에 서 있지 않고서는 어떤 논리도 정립되지 않는다”고 말했지요. 그래서 저는 “이렇게 살아가다가 어느 날 우리보다 더 막강한 종이 나왔다고 상상해 보라”고 응수했어요. 그 막강한 종에 마구잡이로 유린당하며 뒤늦게 모든 생명의 권리를 부르짖는 인간의 모습을 상상해 보라는 것이지요.
박 선생님께서 좀 전에 ‘유미주의’에 대해 말씀하셨는데, ‘아름답다’는 말은 ‘안다’는 말에서 나왔다고 해요. ‘앎’에서 ‘아름다움’이 나온 것이지요. 탐미가 아니라 진실을 추구해야 한다는 뜻이 ‘아름답다’는 말에 포함되어 있어요. 제가 저의 책 제목을 ‘생명이 있는 것은 다 아름답다’라고 지었을 때에도 그런 뜻이 담겨 있었어요. 모르기 때문에 미워하고 모르기 때문에 해치는 것이지요.
▽박〓그러나 오늘날은 그런 의미가 사라졌어요. 환경운동이 사람을 살리기 위해, 동물을 보호하고 종을 늘리고, 유전자 연구를 한다면 실패하고 말아요. 철저하게 새로운 이데올로기가 필요하다는 거예요. 동물이 사는 방식을 존중해야 해요.
생명은 생명을 먹어야 살 수 있다는 점에서 우리에겐 ‘원죄’가 있어요. 하지만 나는 ‘무한경쟁’이라는 말이 싫어요. 종국에는 하나만 남긴다는 것이 아니에요? 새로운 이데올로기는 ‘환경’을 중심에 둬야 해요.
▽최〓‘환경’보다는 ‘생태’라고 하는 것이 더 적절한 것 같습니다. 생태학이라는 학문은 서양에서 시작된 자연과학의 한 분야이지만 사상적으로 다분히 동양적 성격을 띠고 있어요. 오랫동안 서양에서는 경쟁이 가장 중요한 요소였어요. 1970년대 후반∼1980년대 초, 미국의 한 여류 생태학자가 생태학 분야에서 남성 생태학자와 여성 생태학자가 연구하는 주제를 조사한 적이 있어요. 그 결과를 보면 남성 생태학자의 대부분이 ‘경쟁’을 연구하고, 여성 생태학자들은 ‘협동’을 연구했어요. 그 때는 자연에서의 ‘경쟁’이 연구의 주류였지만, 한 20여 년 전부터는 ‘협동’이 중요하다는 것을 새롭게 인식하기 시작했어요.
사람들은 흔히 지구의 지배자가 동물이라고 생각하지만, 무게로 치면 지구상에서 식물이 제일 막강한 존재고 숫자로 따지면 곤충이 가장 성공한 생물이에요. 이들이 자연계에서 성공한 이유는 ‘공생’했기 때문이지요. 식물과 곤충이 서로 협력했기 때문이라는 거예요. 우리는 싸워서 이겨야 하는 줄 알지만 큰 성공은 ‘손잡은 친구들’이 했어요. 이를 깨달으면서 이제 ‘생태학’은 새로운 길을 걷고 있어요.
▽박〓중요한 것은 ‘생명의 평등’이라는 이데올로기예요. 아주 옛날, 샤머니즘의 시대는 공간이 우주적이었어요. 그러다가 불교가 우세하면서 공간이 좁아지더니 유교의 시대가 오면서 인간주의가 전면에 드러났지요. 현재 득세하는 자본주의는 물질이 중심이지만, 지금 발 딛는 자리에서 우주의 질서를 통해 생태를 봐야 해요.
▽최〓요즘 두 대선 후보를 보면 어째서 환경문제를 언급조차 하지 않는지 의아할 정도입니다. 우리나라는 국립자연사박물관, 국립생태연구소 하나 없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이예요. 선진국에서는 환경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하지 않은 후보가 국가의 수반이 되는 예는 없어요.
▽박〓한국의 환경운동도 문제가 많아요. 선전하고 떠들고 플래카드 드는 것만이 운동이라 생각하고 있어요. 실제 사정에 너무 눈이 어두워요. 전략과 전술이 반드시 필요하지만 전략과 전술이 앞서가서는 안 돼요. 전략과 전술은 필요할 때 갖다 쓰는 것인데 전략과 전술이 앞서면 사람들이 안 믿어요. 문화운동, 시민운동, 생태운동은 끝없이 투자하고 희생하는 것이에요.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그것은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결과를 가져오지요.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풀 하나 뽑고 종 하나 살리고, 새가 지나가다 먹을 수 있는 열매나무 심는 일이에요.
▽최〓8월 행사에 오는 이들이 대개 생태학자들인데, 이들은 역시 과학자이기 때문에 재고 분석하는 것에만 익숙해져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오전에는 전문 생태학자들을 위한 강의들이 열리고 저녁시간에는 생태학자는 물론, 철학자, 경제학자, 교육학자, 그리고 문학가들이 한데 모여 인간과 지구 생태의 문제를 보다 학제적으로 분석할 계획이에요. 우리나라를 대표하여 박경리 선생님을 모시고 문학에서 본 생태 감수성에 대해서도 말씀을 들을 예정입니다. 생태학이 이 모든 학문분야들을 아울러 종합학문으로 거듭나야 우리 인류를 이 엄청난 환경위기로부터 구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지요.
▽박〓요즘은 종교나 철학도 모두 빈사상태예요. 더 이상 우리에게 감동을 주지 못하지요. 현재까지의 철학, 과학 등 모든 것이 다 머문 것을 대상으로 삼지만 생명은 머물지 않아요. 학문은 합리화를 무기로 해서 적당한 데서 자르고 틀을 짓지만 총체성의 입장에서 본다면 그것은 아예 초입에서 잘라서 그 뒤의 무궁한 것을 놓치는 것이에요. 사람들도 의식이 조금씩 변하고 있으니 희망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에요.
▽최〓사람들의 생각은 분명히 변하고 있지만 그 변화가 너무 느려서 미처 기다리지 못하고 자연이 다 사라질까 걱정입니다. 1980년대 초반에 미국의 저명한 생태학자가 “더 이상 논문을 쓰지 않겠다. 먼저 숲을 살려야겠다”고 선언한 적이 있어요. 그가 코스타리카에서 연구를 하는 동안 주변의 숲이 계속 사라지는 것을 보면서 가만히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한 것이지요. 그의 용기는 엄청난 힘을 발휘했어요. 이전에는 대부분의 생태학자들은 깨끗하게 정돈된 생태계만을 연구했었지만, 그의 선언 뒤 많은 생태학자가 그의 길을 따랐어요.
저는 종종 환경운동을 하는 사람들에게 생태학에 대하여 공부를 하고 나서 운동을 해야한다고 이야기하곤 합니다. 자연에 대해 점점 더 알게 되면 저절로 자연을 사랑하게 되고 자연과 함께 살게 될 것이라고 믿는 것이지요. 지금 젊은 친구들을 20년 정도만 열심히 가르치면 그들이 우리 사회의 주인이 되었을 때 환경은 저절로 보호될 겁니다. 지나치게 이상적인 생각이라고 탓할 지 모르지만 사실 가장 빠르고 현실적인 방법이지요.
▽박〓알면 멀리 내다보게 돼요. 멀리 보면 멀리 가지요. 인간들이 아등바등하며 소비하는 것들은 거의 다 낭비예요. 그게 다 인생과 관계가 없는데 그것을 위해 살고 있으니 다 인생의 낭비지요. 토지문화관 뒤에 ‘오봉’이 있는데 한 가족 같아요. 아버지와 인자한 엄마, ‘새처운(귀엽고 새침한)’ 딸도 있구요. 그래서 매일 산에게 “참 다복하십니다”하고 인사하며 지내지요.
https://naver.me/G5JHBaKr
다윈이 중요한 이유?…“누구보다 간단하게 세상을 설명하기 때문”
다윈의 사도들/최재천
세계적인 다윈의 사도 12명 인터뷰
팬들과 편지 주고받으며 이론 전파
다윈, 가족 조력으로 연구 ‘가족기업’
최재천 “다윈 진화론 지금도 진화 중”
찰스 다윈(1809~1882)은 위대한 발견자 과학자 사상가다. 이런 말도 모자란다고 한다. 다윈 철학자인 대니얼 데닛은 “다윈의 자연 선택 이론은 이제껏 사람이 생각해 낸 모든 아이디어 중 최고”라고 말한다. DNA 이중 나선 구조를 발견한 제임스 왓슨도 “다윈은 지구상에 살았던 사람 중 가장 중요한 인물”이라며 “그는 이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본 첫 번째 사람”이라고 찬사를 아끼지 않는다. 왓슨은 우회해서 “뉴턴이 더 뛰어나다고 말할 사람도 있겠지만, 저는 사과보다 사람이 더 중요하다고 말하련다”고 표현한다. 왜 다윈이 그렇게 중요한가, 라는 질문에 그는 “누구보다 간단하게 세상을 설명하기 때문”이라 답한다.
<다윈의 사도들>은 진화 생물학의 전도사인 최재천이 세계적인 다윈의 사도 12명을 인터뷰한 내용의 책이다. 2009년 다윈 탄생 200돌에 기획한 것인데 14년 동안 그 내용을 다듬고 보탠 거라고 한다. 저자의 감탄도 마찬가지다. 다윈 자연 선택 이론은 허무할 만치 단순한데 그 단순한 이론이 엄청난 생물 다양성의 탄생을 그토록 가지런히 설명하다니 그저 놀라울 따름이라고 한다. 단순함, 응용성, 직관적 아름다움의 이론이 다윈 진화론이다.
다윈의 개인적 면모도 흥미롭다. 오늘날 BTS(방탄소년단)처럼 아미, 팬들이 있었는데 그들이 다윈 콘텐츠를 재생하고 전파했다. 다윈은 쇼셜미디어를 관리하듯 평생 2000명과 편지를 주고받았는데 총 1만 4500통의 편지, 그러니까 하루 1통 이상씩 쓴 네트워크의 귀재였다고 한다. 다윈은 거의 ‘가족 기업’을 운영한 수준이라 한다. 부인은 다윈이 평생 집에서 연구 집필에 몰두할 수 있도록 한 최고 조력자였다. 7명의 자식 중 셋째 딸은 평생 결혼도 하지 않고 아버지 책 편집을 도왔고, 넷째는 학업에 지장 받을 정도로 시시콜콜한 계산 문제를 집중적으로 풀어줬고, 여섯째는 의사직을 포기하고 아버지 실험 조교 겸 비서로 일했다.
과학사학자이자 철학자인 헬레나 크로닌은 “뉴턴도, 아인슈타인도 어떤 지점에서는 이론을 수정해야 하지만 다윈은 근본 이론을 정초했다”고 말한다. 이 말은 상당한 의미가 있다. 만유인력 법칙은 우주 공간에서 수정될 수 있지만 다윈의 진화론은 범우주적인 이론이라는 것이다. 크로닌은 “물리학은 수정될 것이지만 생물학은 영원히 다윈주의적일 것”이라고 말한다. 다윈 이론은 우주에서 가장 복잡한 존재인 생명을 가장 단순하게 설명했는데 그 단순함은 분자생물학 심리학 뇌과학 등 그 어떤 이론까지도 풍부하게 수용할 수 있는 심원한 거라고 한다.
진화 심리학자 스티븐 핑거는 “다윈 이론은 설계와 목적이 설계자도 목적도 없는 과정으로부터 발생했다는 것을 설명한다”며 “그에 의해 무생물의 세계와 생물의 세계가 하나로 연결됐다”고 말한다.
<이기적 유전자>의 저자 리처드 도킨슨은 “다윈은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우리가 왜 존재하는가, 에 답을 제공한 사람”이라고 말한다. 저서 <만들어진 신>에서 주장했듯이 그는 종교 대신 과학을 말한다. 삶의 궁극적 의미는 뭘까, 왜 우리는 이곳에 존재하는가, 우주는 어떻게 시작됐을까, 라는 질문에 과학이 더 나은 답을 줄 수 있다는 거다. 아니 다윈이 이미 거기에 대한 답을 제공했다고 한다. 다윈의 사도로서 그는 역설을 말한다. “우주에는 아무 목적이 없고, 삶도 궁극적으로 아무 의미가 없을지 모른다. 하지만 나는 여기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 삶의 무상함을 깨닫는다 하더라도 삶은 여전히 살 만하다.”(174쪽)
대니얼 데닛은 인문학적 문제를 다윈주의를 바탕으로 재구축하는 생물철학자다. <다윈의 위험한 생각>의 저자인 그는 “<종의 기원> 출간 이후 150년 동안 다윈주의에 대한 찬반 충돌이 있었다”며 “그것은 150년이 지났는데도 다윈주의의 함의를 세상이 알아채지 못했음을 증명하는 것”이라고 한다. 다윈주의자들 중에서도 종교에 대한 입장이 조금씩 다르다. 리처드 도킨슨은 종교에 대해 센 입장이고, ‘통섭론’의 에드워드 윌슨은 세상을 구하기 위해 종교계 사람들을 끌어들이려 하고, 데닛은 인간의 마음이 왜 종교에 영향을 받는 것인지 그 매혹적인 현상을 연구하려고 한다고 한다. 데닛은 “다윈은 물리학, 화학을 마음, 목적, 생명, 시 윤리학과 합쳐준다”며 “인간의 모든 문화, 인간의 모든 예술, 인간의 모든 소망, 생명의 나무에 있는 모든 열매를 아우른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다윈은 탄소 원자와 포도당 분자가 어떻게 시가 될 수 있는지를 보여준 사람”이라고 갈파한다.
최재천은 “다윈의 진화론은 지금도 진화 중이다”라고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