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쓴이 지만원 등록일 2002-01-30 [10:24] 조회수 378 1. 김동신 장관이 직접 고소한 대상은 2001.9.6일자에 올려진 "군 수뇌부에도 간첩 있다"는 제 하의 글입니다. 내용을 다시 이기합니다. 군 수뇌부에도 간첩 있다
한국 내의 좌익세력은 대단합니다. 저는 군부 핵심에 좌익세력이 깔려 있다고 봅니다. 6.25 전사를 다시 읽는 분들은 이구동성으로 말합니다. "빨갱이들이 한국군의 작전계획을 짜고 작전을 지휘했다는 의혹을 떨칠 수 없다". 1996년 9월 18일. 강릉에 북한 해군 정규 잠수함이 넘어왔습니다. 매일 7만 명의 군이 산 속을 뒤졌습니다.
현지 작전 지휘관들이 도망가는 적을 잡을 수 있는 작전계획을 세우면 이상하게 합참에서 엉뚱한 작전계획을 내려보냈답니다. 잡지는 못하고 피해만 나자 현지 지휘관이 합참의 지시를 무시했더니 기무사에서 급히 내려와 의미 있는 작전계획을 무의미하게 수정하도록 강요했다 합니다.
당시의 현지 지휘관들은 이상하다 생각은 하면서도 군 지휘부에 간첩이 있으리라고는 상상조차 못했답니다. 하지만 요사이는 다릅니다. 땅굴 은닉 세력이 의외로 막강하다는 사실을 알고부터, 그리고 대통령과 집권당의 이상한 대북 행보, 합법을 가장한 친북세력 및 홍위병들의 준동 사태를 지켜보면서 당시의 현지 지휘관들은 이제서야 집히는 데가 있다고 말합니다.
전시 작전권 만큼은 미군이 가지고 있으니 망정이지 정말 우리 사회에, 간첩은 물론 좌익세력이 심각한 지경에 이르고 있습니다.
정권이 바뀌어도 좌익세력은 바뀌지 않습니다. 사상에 의심할 여지가 없는 대통령이 나와도 좌익세력에 의해 조종당할 것입니다. 좌익세력을 청소할 수 있는 대통령이 나오고 보수세력이 합세하여 홍역을 치러야 좌익세력들의 국가파괴 및 국가전복 공작을 저지시킬 수 있다고 봅니다. 매우 심각합니다. ------------------------------------------------------------
고소장에 나타난 국방장관의 고소 요지
1. 김동신 장관은 "군수뇌부에는 간첩이 없다"고 단언합니다. 그 이유를 그는 다음과 같이 달고 있습니다. 첫째, "군부대에 간첩이 존재한다는 혐의를 갖고 있다는 보고가 없었다" 둘째, "국정원이나 검찰에서도 간첩 존재에 대한 혐의를 제기한 바 없었다". "따라서 군내에는 간첩이 없다". 잡지 못했기 때문에 간첩이 없다는 것입니다.
국가정보원 홈페이지입니다.
"북한은 최근들어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통일관련 논문을 통해 상층 통일전선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 97년 8월 4일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의 조국통일 유훈을 철저히 관철하자」는 논문을 통해 '남조선의 자본가이건 군장성이건 집권상층에 있건 관계치 않고 손잡고 나갈 것'이라고 하였으며"
"- 또한 98년 4월 18일에도 「민족대단결 5대 방침」을 제시하면서 '남조선의 집권상층이나 與野 인사들, 大자본가, 군장성들과도 민족대단결 기치밑에 단합할 것' 이라고 선언하였습니다".
대한민국의 핵심 정보기관인 국정원에서 북한이 군장성, 집권상층 등을 통일전선 형성의 대상으로 삼고 공작을 하고 있다는 분석을 했습니다. 국군기무사령부의 간첩검거실적입니다.
1) 군 주요 보직자 포섭, 지하당 구축 및 군사기밀 탐지 간첩('74.9.검거) 2) 군인가족을 통해 군 장성 포섭을 기도한 간첩('77.4.검거) 3) 고교생이 사관학교 장교로 침투한 간첩('86.8.검거) 4) 해군간부인 형을 통한 군사기밀 탐지 간첩사건('84.7.검거)
전 외무부 장관 최덕신, 해군 참모차장 이용운이 간첩이었습니다. 최덕신은 정전위 한국측 대표였으며 육사교장이었습니다.
기무사는 지난 3월 "좌익 세력 대군투쟁 실상"이란 책자를 전 군에 배포했습니다. 동 책자에는 군내에 침투한 적성 세력이 1,000 명이 넘고 청와대와 권력 핵심부에까지 김정일 추종세력이 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런데 김동신 장관은 동 책자를 만든 책임자인 방첩처장 염완표 준장을 해외출장 중에 갑자기 해임, 전역시켰습니다. 기무사는 일부 간첩단 조직을 파악해 놓고도 의법조치를 엄두도 못내는 실정입니다.
2. 김동신 장관은 6.25때에도 군내에 간첩이 없다고 단언합니다. 김동신 장관은 "6.25 전사를 다시 읽는 분들이 '빨갱이들이 한국군의 작전계획을 짜고 작전을 지휘했다는 의혹을 떨칠 수 없다'고 이구동성으로 말합니다"라는 말을 두 번째로 문제삼았습니다. 그는 "누가 생각해 봐도 이치에 맞지 않는 허위주장이며 수많은 호국영령의 숭고한 넋을 모독했다"며 지만원을 처벌하라 검찰에 간청합니다.
남침 정보가 수없이 쇄도했는데도 불구하고 6.24일 밤 육본 장교들을 곤드레 만드레 취하도록 술파티를 벌이고, 병사들을 휴가보낸 당시 채병덕 참모총장을 많은 이들이 간첩으로 의심합니다. 갑자기 한강교를 폭파하여 국군의 퇴로를 차단하고 서울 애국지사들의 피난길을 막은 처사는 아직도 누구 짓인지 미스테리입니다.
여수 순천 반란사건 4.3사건은 무엇입니까? 채명신 장군이 제주도에서 중대장을 할 때 빨갱이들이 부대에 반 이상 들어 있어서 여러번 생명을 잃을 뻔했다고 증언합니다. 이런 증언은 채명신 장군 뿐이 아닙니다.
그런데 김동신 장관은 "군내에는 예전에도 간첩없고 지금도 간첩이 없다"며 지만원을 처벌해 달라고 검찰에 호소합니다.
3. 김동신 장관은 강릉 간첩 포위작전을 매우 성공적인 작전이라고 주장합니다. 25명 중 25명 모두를 사살 및 생포했다고 거짓말을 합니다.
작전은 1996.9.18-11.07 까지 51일만에 종결되었습니다. 무장간첩은 26명이었고 사살/생포는 25명, 1명을 놓쳤습니다. 13명 사살, 11명 자살, 1명 생포, 1명이 도주했습니다. 반면 우리측 피해도 많았습니다, 대령 및 대위 2명. 하사관 1명, 사병 4명이 사망했고, 17명이 부상했습니다. 민간인 사망자도 여러명 있었습니다.
군 작전에 대한 비판은 다음과 같습니다.
1) 10월 초 군은 돌연 포위망을 풀고 수색병력을 훨씬 북쪽으로 재배치했습니다. 그래서 강릉 일원의 포위망이 풀렸습니다. 그러나 10월9일 민간인 3명이 강릉 일원에서 사살되었습니다. 3명의 간첩이 들어 있었던 포위망을 풀어준 것입니다.
2) 가장 중요한 북한의 안내조장 유림은 생포할 수 있었는데도 구태어 사살했습니다. 그는 한국군 포대장과 불과 2m 거리에서 5분간이나 대화를 했지만 사살됐습니다. 이에 대해 여야 의원들이 의혹을 제기하며 따졌습니다.
마치 22일개월 후에 속초 앞 바다 꽁치어망에 걸린 잠수정을 끌고 다니다가 수장시켜버린 것도 이러한 맥락의 의혹을 낳았습니다. 저들이 생포되면 이쪽 의 높은 사람들이 곤란해지거나 아니면 군 수뇌에 간첩이 있어서 북한의 정보누출을 차단시키려 한 것이 아니냐 하는 의혹입니다.
3) 표종욱 일병이 간첩에게 사살됐는데도 군은 수색하지 않았습니다. 이에 대한 여야 의원들이 질타가 있었습니다.
4) 김동신은 당시 합참작전본부장으로 처음부터 작전을 언론에 그대로 공개했습니다. 이는 간첩들에게 알아서 튀라는 메세지로 받아들여졌을 것입니다. 우리의 작전상황을 그대로 중계 방송하는 예는 세계에서도 유례가 없습니다. 매우 수상한 행동이었습니다.
4. 김동신 장관은 "군 핵심부에 좌익세력이 깔려 있다고 봅니다"와 "땅굴 은닉세력이 의외로 막강하다"는 구절도 문제삼았습니다. 허위라는 것입니다. 기무사가 만든 책자에 "군에 좌익세력이 1,000이상 있다"고 한 보고서 내용을 뒤집고 있습니다. "생각합니다", "봅니다"라는 주관적 생각도 처벌해 달라고 하는 것은 그야말로 공산주의식 발상이 아닐 수 없습니다.
5. 마지막으로 김동신 장관은 "육사를 나왔고 총장을 지냈고, 현직 장관인 사람의 명예에 손상을 끼쳤다"고 주장합니다. 직급이 높으면 의심하지 말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적을 의심해야 할 위치에 있는 국방장관이 적을 의심하기는커녕 적을 의심하는 국민을 탄압하고 있습니다. 국방장관 직속으로 간첩 잡는 기무사가 있습니다. 직속 상관이 간첩이 없다고 단정하는데 그 누가 간첩을 잡겠습니까? 대통령이 검찰 수사를 예단하여 수사를 방해했고, 제5땅굴을 인공땅굴이 아니라고 예단해서 규명을 차단했듯이 김동신 장관은 지금 "군에는 옛날에도 지금도 간첩이 없다"고 예단하여 군 수사기관들의 간첩잡기를 방해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가 저지른 수상한 행적을 다음에 다시 이기합니다.
(김동신 국방장관에게 붙은 14개의 적색 꼬리표)
1. "최근 김남국 예비역 대령이 96년 4월 총선을 앞두고 '북풍사건'을 조작하는 데 김동신 전 총장이 관여됐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김동신 전총장은 '전혀 사실무근'이라고 강력히 부인했다"(조선일보 2000.6. 16).
1996년 4월 당시 김동신 중장은 비정규전과 평시작전을 총괄하는 합참작전 본부장이었다. 김남국 대령의 주장은 실로 엄청난 명예훼손이다. 세인의 조소를 받아가면서까지 내게는 소송을 하면서, 왜 김남국 대령에겐 소송을 하지 않고 앉아서 당했을까!
2. "1996 강릉잠수함 사건 때, 김동신 장관은 합참 작전본부장이었다. 잠수함 사건이 터졌을 때, 김동신 중장은 사무실에서 한 달간 숙식하며 작전을 지휘했다"(월간조선 001.5월 특별부록).
월남전에서 3년반 동안 작전을 해온 나는 강릉 작전을 코미디 작전이라고 평론했다. 핵심자료를 가지고 있을 공작요원들이 무사히 북으로 빠져 나갔다. 기밀이 유지돼야 할 작전상황이 언론에 여과없이 공개됐다. 북한 공작조들은 그 방송을 들으면서 유유히 빠져나갔다. 간 크게 싸리나무를 베던 추일병을 죽이고, 기무사 대령을 조준사격하여 사살하는 여유까지 보였다. 이 작전을 현지 지역 사령관에게 맡겼다면 충분히 잡고도 남을 일이었다.
나는 순진하게 생각했다. 합참의장이 바보같이 현지 사정도 모르면서 현지에서 더 잘 할 수 있는 작전지휘 권한을 가로챈 월권행위로만 생각했다. 충분히 잡을 수 잆는 5-6명의 공작조를 무사히 북으로 보내 준 데 대해 의혹을 갖는 사람은 나 뿐이 아니었다. 나는 그 작전을 김동신 중장이 주도했다는 사실을 어제서야 확인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그 열등하게 진행됐던 강릉 작전은 순수하게만 치부할 일이 아닌 것 같다.
사실상 그 작전을 가장 잘 수행할 수 있는 사람은 8군단장이었다. 8군단장은 경기고 출신의 머리좋고 합리적이고 대쪽처럼 강직한 장군이었다. 월남전에서도 연대작전을 수행한 작전보좌관이었다. 강릉작전과 월남 정글 작전은 유사했다. 누가 봐도 현지작전은 서울에 앉아있는 육사 21기 육군중장보다는 현지사정에 밝고 머리좋은 육사 22기 육군중장이 주도했어야 했다.
10여명의 민간 땅굴 탐사자들이 한 방에서 들었던 말을 좀 더 구체적인 말로 요약하면 이렇다.
(1) 현지 작전 지휘관이 도주하는 북괴 공작조를 가두기 위해 병력을 배치했다. 현지작전 지휘부는 공작조가 그들이 처놓은 포위권 속에 확실히 들어 있을 것으로 믿었다.
(2) 포위망을 좁혀가고 있을 때, 합참에서 느닷없이 작전배치를 변경하라는 명령이 내려왔다.
(3) 현지 지휘관은 이 명령을 듣지 않았다 한다. 합참의 명령대로 한다면 다 잡은 토끼를 놓아주는 것이었기 때문이란다.
(4) 명령에 저항하자 기무사 간부가 내려왔단다. 공작조와 북한과의 통신감청을 했는데 공작조는 엉뚱하게도 다른 지점에 가 있으니 그리로 병력을 옮기라 했단다. 상식적으로는 도저히 믿을 수 없었지만 기무사의 말대로 포위했던 병력을 풀었다 한다.
그 후의 작전은 그야말로 불필요한 작전이었다. 병사들만 생 고생하고, 오인 사격 등으로 피해자만 냈다. 공작조가 침투했던 강릉지역에는 8개의 주요 핵심 군사시설들이 직경 20km안에 밀집돼 있다. 군사시설이 한국에서 가장 밀집돼 있는 곳이다. 공작조는 중요한 간첩자료를 가지고 무사히 넘어갔다.
3. "2000.8.22일 김동신 장관이 63명의 비전향 장기수들이 북으로 갈 때에 임진각에까지 가서 꽃다발을 건넸다"(민원 회신에서 본인 인정)
4. "국방일보가 2001.3.22일자 9면에 북한의 피바다를 크고 대대적으로 선전했다. 북한의 피바다를 극찬한 국방일보에 대해 기무사가 조사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하고 기초자료 조사에 착수하다가 군수뇌 분위기에 눌려 수사를 그만 두었다"(주간조선 2001. 4.25). 김동신 장관의 분위기에 눌려 간첩잡는 일이 중단된 것이다.
여론이 빗발치자 국방홍보원장이 교체됐다. 김동신 장관은 국방위에서 "문제의 기사는 예술작품을 통해 김일성부자의 우상화에 치중하고 있는 북한의 실상을 알리자는 취지에서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주간조선 2001. 4.25)
5. "기무사가 1년 여에 걸처 '좌익세력의 대군침투 실상'이라는 자료를 작성했다. 군내 좌익 세력이 1,000명이 넘고, 청와대와 권력 핵심부에까지 김정일 추종세력이 있다는 등의 내용이 포함돼 있다(강창성 의원 국정감사). 조성태 장관은 이 보고서를 전군 지휘관들에게 배포하라고 지시했다. 하지만 김동신 장관은 그 자료를 작성한 기무사 대공처장을 해외출장 중(지난 6.30일)에 갑자기 전역시켰다"(월간조선 8월호 심층취재 특종). 일용직도 아닌 장군, 더구나 간첩잡는 일에 열심이었던 장군을 비상시기도 아닌데 해외출장중에 갑자기 전역시킨 일은 결코 예사로운 일이 아니다.
6. "2년전 북이 NLL을 침범했을 때 조성태 장관은 서해해전을 승리로 이끌어냈지만, 김동신 장관은 제발 영해 밖으로 나가달라고 (27시간동안)애원하고 구걸했다(월간조선 8월호 심층취재 특종). 여기에 그치지 않고 김동신이 지휘하는 "군수뇌"는 줄줄이 골프를 쳤고, 기다렸다는 듯이 NLL의 일부를 북한에 내주겠다는 검토까지 했다. 그런 군 수뇌부에 간첩이 없을까?
7. "국방부는 북방한계선(NLL)이 서해 42.5마일, 동해 218마일이나 돼서 NLL사수가 어렵기 때문에 NLL 수역을 '절대사수구역', '경비구역', '공해권'으로 3분하여 공해권 해역에 들어오는 상선에 대해서는 '침범'이 아닌 '통과'로 인정하겠다고 하니 참으로 한심하다"(조선일보 사설 2001.6.17).
8."2001.6.2일 11:43분에 14,000톤급의 초 맘모스급 청진2호가 울산 앞 바다에서 발견됐는데 김동신 장관은 4시30분부터 골프를 쳤다"(중앙일보 5면 2001.6.23)
9. "김동신 국방장관은 지난 8월 11일 국방부 국.실장 회의를 주재하면서, 앞으로 군에서 북한 김정일 노동당 총비서를 호칭하거나 표기할 경우 반드시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으로 통일하도록 지시했다. 바로 김동신 장관이 '북괴'라는 용어를 군으로부터 완전히 폐기처분한 주역인 것이다"(한겨레 2001.8.13).
군의 그 누가 감히 '북괴'라는 말을 사용할 수 있을까! 군의 총수가 김정일을 대통령 이상의 극진한 존칭으로 부르라고 명령하는데 그 어느 군인이 김정일을 함부로 대할까.
10. "여순반란 사건에서 좌익 반란군을 정당화 및 미화시킨 영화 "애기섬" 제작에 군이 트럭, 헬기, 소총, 군복 등을 지원했다, 김동신 장관 책임지고 물러나라"(2조선일보 001.9.18)
11. "한총련이 긴급수배전단 일제히 살포했다. 수배자 명단은 김영삼, 이회창, 조성태, 김용갑이었다. 조성태는 '주적개념 유지하는 주한미군 졸병'으로 표현됐다"(월간조선 2001. 2.21). 주적개념이 확실한 조성태 장관이 뚜렷한 이유 없이 갈렸다. 조상태 장관은 김종필 총리의 지명이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12. "주적개념을 확실히 밝힌 조성태 장관은 재임기간 내내 북으로부터 반통일 세력이라는 흑색선전을 당했지만, 김동신 장관에 대해서는 흑색선전이 별로 없다"(월간조선 8월호 심층취재 특종)
13. 지난 6월1일 철원에서 새로운 땅굴의 가능성을 제보했지만 군은 조사해보지도 않고 땅굴이 아니라고 일축했다(강원일보/강원도민일보. 2001. 6. 1)
14. 북한이 국방백서에 들어 있는 주적 개념을 물고 늘어지자 북한의 비위를 고려한 나머지 매년 발간해오던 국방백서 발간 rule을 갑자기 변경시켜 격년제로 하기로 했다(2001.11.23 조선일보 유용원 기자).
한 두 개의 사건은 많은 것을 전달하지 못합니다. 많이 모여야 통계학적 추세(trend)라는 게 형성됩니다. 이상의 사실들을 좌표에 찍어보면 분명히 그는 좌측으로 기울어 있습니다.
저는 조성태 장관을 매우 혹독하게 비난했습니다. "왜 지뢰를 제거해주느냐". "지뢰는 절대로 제거할 수 없습니다 하고 장관직에서 물러나면 얼마나 보기 좋겠느냐", "한국군은 주한인민군이냐"등 북한과 민주당에 대해 의연하지 못 했던 장관의 자세를 맹 비난했습니다. 그런데 그는 그 비난을 민주당 의원들과 맞서기 위한 하나의 구실로 사용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제게 고마워 한 것입니다.
하지만 좌측으로 기울어져 있는 듯해 보이는 김동신 장관은 "군수뇌부에 간첩이 없다"고 합니다. 이번 저에 대한 고발행위는 "누구도 군수뇌부에 간첩이 있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모든 국민과 장병들에게 선포한 것으로 봐야 합니다.
법원이 그의 손을 들어주면 모든 국민, 모든 장병들은 월남패망 전야에 그랬던 것처럼 입조심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이 나라가 내통-적화될 때까지 말입니다.
저는 안보에 대해 "조기경보" 역할을 해왔다고 자부합니다. 그 조기경보인을 없애려는 사람이 김동신 국방장관입니다. 간첩을 잡자는 보안처장을 갑자기 해임하고, 피바다를 극찬한 군간부들을 간첩혐의로 조사하지 못하도록 분위기를 잡은 그가 이제는 조기경보인까지 없애려 합니다.
그가 보여준 위의 13가지 의혹스런 행동과 조기경보인을 없애려는 지금의 행동을 종합해보면 의혹이 너무나 짙습니다.
우리는 논리사회에서 살아갑니다. 논리는 과학의 핵입니다. 과학은 예측학문입니다. 공직자의 미래행위를 예측할 수 있는 가장 과학적인 방법은 과거의 행적입니다. 행적이 수상하면 그 사람도 수상한 것입니다. 김동신 한 사람이 국방장관 자리에 앉아 있자고, 수많은 국민이 조마조마하게 애를 태울 수는 없는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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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수없이 많은 허가 취소사유를 발생시킨 MBC에 대하여 법적 절차를 밟아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