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에서는 가난한 자에 대한 두 가지의 시선이 공존하다. 하나는 가난하다는 것은 하나님의 축복을 받지 못했다는 부정적인 시각이다. 그래서 가난하다면 장로의 자격이 주어지지 않는 교회도 있다. 하나님의 축복을 받지 못한 사람이 어떻게 교회의 지도자가 될 수 있냐고 하면서 말이다. 그러나 이는 탐욕스럽고 세속적인 잣대라는 것을 아는 사람들은 다 안다. 또 다른 시선은 가난에 대한 긍정적인 시각이다. 이는 지극히 성경적이다. 예수님께서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러 오셨다고 한데서, 그 근거를 두고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교회에 와서 세속적인 축복을 받고 싶어 한다. 이는 교회로 인도하는 사람들과 목회자들이 전도하면서 전도의 캐치프레이어로 들려주었기 때문이다. 물론 그러한 말씀이 성경에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세상에서 부유하고 성공하게 해주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 영원한 천국에서 같이 살고 싶어 하시는 것이 먼저이다. 어쨌든 예수를 영접하고 교회에 나온 교인들이 그들의 소망을 이루었는지 찬찬히 살펴보기 바란다. 사실 크리스천이라고 하나님을 모르는 세상 사람보다 더 부유하고 성공하였다고 볼 수 있는 명확한 증거가 있는가? 또한 크리스천들은 고질병이나 암에 걸리지도 않고, 걸리더라도 금방 낫는가? 하나님의 축복의 증거로서, 하는 일마다 순적하게 잘되는가? 솔직히 말해보자. 크리스천이라고 세상 사람보다 더 부유하고 성공한다는 근거는 없다. 그렇다면 교회에 나와야 세속적인 축복을 받는다는 말은 새빨간 거짓말일 것이다. 뭐, 하나님이 하는 일마다 잘 되게 해주실 수 있지만, 작금의 우리네 교인들에게 해당사항이 없다는 게 정확한 진단일 것이다.
신앙의 연륜이 오래 되었으며 새벽기도에도 빠지지 않는 등 희생적인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는 교인 중에서 극심한 가난에 시달리는 사람도 적지 않다. 말하자면 빈곤층이다. 솔직히 말하면 목회자중에서도 극빈층이 허다하다. 개척교회 목회자들이 바로 그들이다. 즉 목회자뿐 아니라 교인들 중에서 극빈자가 많이 존재하는 게, 우리가 마주하는 차가운 현실이다. 하나님이 시퍼렇게 살아계시는 데, 어떻게 이러한 당혹스러운 일이 발생하고 있는가?
가난에는 두 가지의 가난이 있다. 하나는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스스로 선택한 가난이다. 그래서 최소한의 생계비를 버는 일에 시간을 투자한다면 부유하게 살 수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자족과 절제의 성품을 지니고 살아간다면 가난하다고 불편해하지 않다. 말하자면 빛나는 가난이다. 많은 성경의 위인들이 빛나는 가난을 누리며 살다 이 땅을 떠나갔다. 그러나 생계비에도 부족한 가난이 바로 극빈이다. 극빈은 자신이 원하지 않은 가난이다. 이런 가난이 바로 악한 영이 쳐놓은 덫에 걸린 것이다. 그래서 악한 영이 어떻게 덫을 놓아 걸려들게 하는지 살펴보자.
부자는 가난한 자를 주관하고 빚진 자는 채주의 종이 되느니라(잠22:7)
가장 흔한 게 바로 악성부채에 빠지게 하는 것이다. 악성부채란 스스로 갚을 수 없는 빚더미에 앉은 것을 말한다. 아무리 열심히 벌어도 이자를 내기도 턱없이 부족하다. 그래서 빚이 눈덩이처럼 커지게 된다. 그러므로 악성부채에 빠진 사람은 극심한 가난에 시달릴 게 뻔하다. 부채를 지게 되는 원인이 사업이나 투자의 실패이든지, 빚보증이나 돈을 빌려주어 못 갚든지 간에, 빚을 얻는 것은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행위이다. 빚을 얻는 것은 탐욕과 조급함의 발로이다. 성경에는 탐욕과 조급함은 모두 죄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므로 맘몬의 영이 사람들의 마음에 탐욕과 조급함을 넣어주어, 빚을 지게 하여 불행의 수렁에 빠지게 하는 것이다.
두 번째 빈곤에 빠지는 이유는 노동력을 잃게 만든다. 질병에 걸리든지 아닌 사고를 당해 오랜 투병생활을 하는 과정에서 많은 병원비용을 내다보니 재산을 털어 넣게 되었고, 질병이 완치된 후에도 후유증과 장애로 인해 노동력을 상실했다면 수입을 벌어들일 수가 없어 극빈층에 빠지게 된다. 노동력을 잃게 되는 또 다른 이유는 알코올이나 게임, 도박, 주식, 쇼핑중독 등의 중독자가 되어, 정신과 육체를 황폐하게 하고 노동의욕을 잃게 만들어 극빈층에 빠지게 하기도 한다. 모든 중독에 빠지게 하는 것은 죄다 악한 영의 계략이다.
우리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도 너희에게 명하기를 누구든지 일하기 싫어하거든 먹지도 말게 하라 하였더니(살후3:10)
세 번째는 수입을 얻는 직장을 구하지 못하게 하거나, 해고를 당해 직업이 없는데도 직업을 구하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많은 젊은이들이 대학을 나와서도 직장을 구하지 못해 전전긍긍하고 있다. 오랫동안 공무원시험이나 교사 임용고시를 준비하다가 아예 고시폐인이 된 이들도 허다하다. 이들은 소위 3D직종은 몰론 보수나 대우가 떨어지는 중소기업은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물론 대기업이나 공사에 들어가거나 공무원이 된다면 좋겠지만, 그럴 실력이 아니라면 중소기업에 들어가면 될 것이다. 그러나 다른 친구들과의 비교의식이 있어서, 절대로 이런 직장은 거들떠보지 않아 부모에게 용돈을 받아가며 빌붙어 있는 캥거루족이 되는 것이다. 직장에서 해고를 당해 재취업을 희망하는 중년들도, 자신이 예전에 받았던 보수나 대우를 생각하면 자존심을 구겨가며 허드렛일을 할 생각이 없다. 그러다보니 점점 극빈층의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이다. 개척교회를 하는 많은 목회자들이 수입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일을 하여 수입을 벌 생각이 없다. 그래서 그들의 가족들이 극심한 빈곤에 허덕이고 있다. 이처럼 목회자라 할지라도 일하지 않는다면 혹독하 대가를 지불하게 되어 있다. 이유가 무엇이든, 일을 하지 않는 것은 게으름 때문이며 나태함은 악한 영이 주는 공격이다.
이처럼 극빈층의 나락에 떨어지는 원인은 다양하지만, 죄다 악한 영의 공격으로 인해 포로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극빈층에서 벗어나려면 하나님의 도우심을 얻어야 가능하다. 악한 영의 공격을 무력화시키고 그들의 손아귀에서 벗어나게 해주실 수 있는 분은 하나님만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지금부터라도 세상의 방법이나 당신의 능력을 의지하지 말고, 오직 성령이 당신 안에 오시기를 간절히 찾고 불러야 할 것이다. 성령이 들어오시면 기적과 이적을 통해 환경을 열어주시고 사람을 붙여주어 이 극빈의 수렁에서 건져주실 것이다. 하나님은 당신의 자녀가 고통에서 울부짖는 것을 절대 외면하시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극빈의 고단함 속에 빠져 손을 늘어뜨리고 신세한탄만 하지 말고, 하나님이 오실 때까지 간절하게 부르시기 바란다.
출처 : 다음카페 크리스천 영성학교, 글쓴이 쉰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