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이 이것(동영상)을 본다면, 난 죽었을 것이다."
동영상 속 여인은 담담한 표정으로 말한다. 스위스의 조력 자살 클리닉으로 국내에도 제법 이름이 알려진 디그니타스(Dignitas)에서 삶을 마감한 말기암 환자가 마지막으로 만든 동영상이 잔잔한 파문을 낳고 있다고 영국 일간 텔레그래프가 21일(현지시간) 전했다.
'마지막 요청'이란 제목의 동영상 주인공은 파올라 마라. 유방암, 대장암과 싸우다 지난 13일 53세 삶을 접었다. 생전에 음악산업에서 일했으며, 자선단체 활동가로도 일했다. 유명 사진작가 랭킨(Rankin)과 협업해 조력 자살을 범죄로 규정한 영국의 "잔인한 법률"을 개정해야 한다고 마지막으로 호소했다.
이날 공개된 동영상을 통한 그의 발언에 귀를 기울여 보자. "말기암 환자란 사실에도 내 실존을 규정하지 못한다는 이유 때문에 나는 조력 자살 방안을 찾겠다고 선택할 수 밖에 없었다. 고통과 힘겨움은 견딜 수 없을 정도가 될 수 있다. 서서히 존엄성이 잠식된다. 독립성이 상실된다. 삶을 가치있게 만드는 모든 것들이 빼앗긴다. 조력 자살은 (삶을) 포기하는것이 아니다. 사실, 통제권을 되찾자는 것이다. 죽음에 대한 것이 아니라 존엄성에 대한 것이다. 공감과 존중을 통해 스스로 고통을 끝낼 권리를 사람들에게 주자는 것이다. 해서 여러분이 이 동영상을 시청한다면 난 죽었을 것이다. 하지만 여러분이 이것을 시청한다면 조력 자살을 둘러싼 법률을 바꾸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캐나다 출신으로 런던에서 30년 이상을 살아 온 마라는 여러 정당 지도자들에게 보내는 공개 서한을 함께 공개했다. 사랑받는 이들이 법률 때문에 "경찰에 심문 받거나 곤경에 처하길" 원치 않기 때문에 혼자 디그니타스로 여행을 떠날 수 밖에 없었다고 털어놓았다. 그녀의 편지에는 “난 선택권을 갖고 있지 않아 화가 났다. 불공정하며 잔인하다고 생각한다. 디그니타스로 여행을 떠나는 데 평균 1만 5000 유로(2175만원)를 낼 수 없는 이들이 많다. 이 잔인한 법률 때문에 그들은 고통스러운 죽음을 견디거나 그렇지 않으면 스스로 목숨을 끊도록 내몰릴 것이다.
랭킨이 처음 마라를 만난 것은 지난해 성탄절을 앞두고였다. "나는 정부가 도덕적 책임이 있다는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다. (하지만) 왜 여러분이 다른 나라로 가야만 하고 이런 돈을 낭비해야 하느냐? 난 자살하지 않는 누군가를 보여주고 싶다고 느꼈다. 그녀는 우울해 하지도 않았다. 불행해 하지도 않았다. 자신의 삶을 사랑하지 않는 누군가도 아니었다. 그녀는 진정 자신의 삶을 사랑했고 자신의 삶을 의미있는 무언가로 만들고 싶어했다. 이것이 동영상의 더 폭넓은 목적이다.”
영국의 조력 자살 입법은 어느 정도 진전됐을까? 이달 초 노동당 지도자 카이어 스타머는 노동당이 총선에서 승리한다는 것을 전제로 조력 자살을 합법화하는 투표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스타머가 이렇게 공언하는 데 계기로 작용한 것은 조력 자살 캠페인을 펼쳐온 방송인 에스더 랜첸이 암 4기라며 디그니타스에 가입했다는 사실을 고백한 것이었다.
그러나 그녀의 딸 레베카 윌콕스는 스타머의 공언은 "오늘 고통받는 수천명에게" 너무 뒤늦은 것이라며 리시 수낵 총리가 “당장 투표에 부칠 것"을 주장했다. 총리실은 앞서 조력 자살을 합법화하는 논쟁을 재개하는 일은 의회에 달려 있다고 밝혔다.
조력 자살은 현재 잉글랜드, 웨일스, 북아일랜드에서 금지돼 있으며, 최대 징역 14년형이 선고될 수 있다.
//http://www.youtube.com/watch?v=eRUervi9c-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