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의 가르침과 내가 깨달은 것들을 적어본다.
1. 벽에 부딪힘을 두려워하지 말라.
제자리에서 맴돌며 매너리즘에 빠지기 보다 계속 앞으로 나아가며 벽에 부딪혀라. 벽에 부딪힌다는 것은 내가 그만큼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것. 이 벽을 어떻게든 허물기 위해 이리저리 파고들면 언젠가는 벽을 지나갈 것이다. 고민은 좋은 것!
내가 못하는 것, 안되는 것, 어려운 것 때문에 고민하고 걱정하던 시간들이 나에게 꼭 필요하고 도움이 되는 순간들이었구나! 선생님의 철학에 다시 한번 전율이...!
2. 이완
졸음의 긍정적 효과 : 이완 훈련 중 졸음에 한두번씩 빠진다. 신체 부위들에 하나하나 집중하며 머릿속 가득했던 잡생각으로부터 벗어나며, 그 생각들이 유도했던 정신/신체적 긴장으로부터도 해방되기 때문일까? 쓸데없는 생각들이 유발하는 집착이 사라지며 편안한 상태가 되고 자연스럽게 졸음이 찾아온다.
하지만 졸음은 결국 집중을 해친다. 신체 부위들에 말을 거는 과정이 방해 받는다. 이 이완 훈련을 내가 좀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면 졸음이 오지 않을 것이다. 아직 이런 정적인 집중이 몸과 머리에 익숙지 않아서 스스로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것. 계속 반복하다보면 몸과 머리가 이 행위 자체를 중요하게 인식해서 무의식적으로 더 집중하려 할 것이다. 그럼 분명하게 깨어있는 상태에서도 잡생각으로부터 멀어지고 신체 부위들과 좀 더 진중한 대화가 가능할 것.
3. 정서 기억 훈련
1) 긍정적인 면
조용하고 어두운 공간 - 오감의 중립 상태에서 훈련이 진행되어 집중이 잘 되었다. 기억 속 상대에게 온전히 반응할 수 있었고, 자의식과 타인의 시선이 유발하는 억압으로부터 어느 정도 해방된 느낌.
이번 훈련을 통해, 평소 궁금했던 메소드 연기법의 '대체'에 대해서 나름대로 어느 정도 답을 찾은 것 같다. 메소드는 감각과 기억의 상상이 주된 재료. 그럼 그 상상의 대상을 어떻게 실전에서 실제 상대 배우에게 구현할 것인가? 아무리 상대에게 내 상상의 인물을 입힌다 해도(닮은 점이나 공통된 특징), 혼자 상상할 때보다 나의 반응이 줄어들지는 않을까? 상상이 깨어지거나 방해받지 않을까? 그럼 차라리 상대 배우 없이 그냥 혼자 상상하며 그 이미지에 반응하는 것이 연기적으로 더 효과적일까?
훈련 막바지, 정서적 대상에 상상으로 충분히 몰입되어 있을 때 선생님께서 다가와 "내가 그 상대이다."라고 말씀하셨다. 그러자 마치 삼투압 과정이 일어나는 것처럼 상상의 대상이 그대로 선생님께 전이됨을 느꼈다. 지금 떠올려 보면 선생님이 내 정서적 대상과 다른 성별이나 전혀 다른 나이대였어도 충분히 그 전이가 자연스럽게 일어났을 것 같다. 선생님의 눈빛과 간단한 끄덕임의 제스처가 상상을 현실로 만들었다.
인간의 상상하는 능력은 진화적으로 얻어진 위대한 것이지만 그 능력의 목적은 어디까지나 실제의 감각적 성취이다. 감각적으로 인지 가능한 실재하는 대상과 실제적으로 마주하지 않고 단지 상상만으로 그친다면 그 능력은 퇴화되었을 것이다. 상상으로 만났던 이미지의 실제 대상을(사물이든 사람이든) 어떻게든 그 상상대로 변화시키는 것이 이 능력의 목적이다. 사슴을 어떻게 사냥할지 상상하고 이성에게 어떻게 접근할지 상상한 후에는 반드시 그 실체를 마주해야 상상의 목적이 성취되는 것. 따라서 상상 자체보다 그 상상의 감각적 실체를 만났을 때 더 정서/감정적으로 충만해지며, 본능적으로 감각적 실체에 더 집중하게 된다. 상상만으로는 무언가 부족한 갈증을 해소하기 위해 어떤 것이든 실재하는 대상을 찾는 것이다.
정서 기억 훈련동안 충분한 시간을 들여 상상에 어느 정도 몰입된 상태에서는 본능적으로 감각적 실체를 갈구하게 된다. 이 때 어떤 것이든 감각적 실체를 만난다면 무의식적으로 그 실체가 상상의 대상이라고 믿고 싶어진다. 그리고 때마침 그 실체가 '내가 너의 상상의 대상이다.'라고 속삭이면 그 실체는 의식적으로도 내 상상과 더욱 동화된다. 감각적으로 실재하는 대상에 대한 본능적 추구에 상상의 대상이 눈 앞에 실재한다는 의식적 믿음이 덧입혀져, 그것이 사실이든 아니든 나에게는 진실로서 다가오는 것이다.
(이런 내용이 메소드 연기법의 '대체'와는 관련 없을지라도 결국 훈련의 목적은 나만의 메소드를 찾는 것이니까..;;)
실전(공연이나 촬영)에 앞서 장면의 상황에 맞는 정서적 기억의 대상을 감각적으로 충분히 상상한 후, 실제 상대 배우(감각적 실재)와 만나 자연스럽게 전이가 일어나면, 이제 남는 것은 충실한 반응 뿐...
2) 보완할 점
대상을구체적으로 감각화하는 것보다는 대상과의 관계, 이야기에 집중되었던 것 같다. 감각의 상상이 저절로 반응을 이끌었다기보다 이미 예상한 결과가 반응을 증폭시킨 느낌. 그리고 감정에 취해 대상에의 목적을 상실했고, 더 이상의 감각적 구체화 과정과 그에 따른 자연스러운 반응에 집중하지 못했다. 결과보다 과정이 중요하다!
4. 드라이 리딩
대본을 접하는 새로운 방법이다.(적어도 나에게는 새로운..) 감정 없이 말 그대로 드라이하게 천천히 나의 호흡을 찾으며 한 단어 한 단어 천천히 읽기. 대상과 상황, 의도와 목적을 생각하며 단어들을 온전히 나의 것으로 만들기. 반복과 집중. 연습할 때 항상 숨을 의식하며 읽기. 대본 속 말에 나의 숨을 찾아가는 과정. 암기에도 효과적이고 고착되지 않은, 자유롭고 무한한 가능성이 열린다.
5. 장면 속 9가지, 5가지 질문
장면 뿐 아니라 작품 전체를 두고 질문과 답을 작성해 보기(필수!)
특히 인물의 자서전은 충분한 시간을 들여 써 보라.
질문이 '어떻게'는 없다. 고정하지 말 것.
특히 인물의 목적 중요.
첫댓글 저 역시 벽 부딪힘에 많은 공감했는데 같은 공감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