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먹고 나무 이름표를 잘못 단 인근 중학교에 다녀왔다.
식물에 관심이 많아 나무 한 그루 풀 한 포기 예사로 보아 넘기지 못하는 나로서는 잘못된 이름표가 엄청난 일로 느껴져 마음이 편치 않았다.
많은 학생들과 주민이 다니는 보행로에 접한 곳이라 더 마음이 쓰였다.
오전 10시, 등교가 끝나고 한창 수업시간이라 교문은 굳게 닫쳐있었다.
후문에 들어서자 경비실이 있었다.
말쑥한 정장 차림의 경비하시는 분이 어떻게 오셨냐고 물었다.
이러저러해서 교장선생님을 잠시 뵈러 왔노라고 했더니, 그분의 대답이 이랬다.
"그건 행정실 소관입니다."
행정실이란 낯선 용어에 어리둥절했다.
50년 전 내가 근무할 때는 이런 용어 자체가 없었다고 하자, 행정실은 옛날 서무실 정도로 이해하시면 된다고 했다.
반세기 전, 서무실엔 연세 드신 서무과장님과 남녀 직원이 한 명씩 있어 주로 학생들 공납급 수납과 교사들 월급 지급 업무와 학교에 들어오고 나가는 물품관리를 주관하고 있었다.
서무실도 좁은 공간에 책상 세 개와 캐비닛이 전부였다.
경비실은 물론 경비인도 없었고 '소사'라는 용어가 '용인'으로 바뀌어 학교의 허드렛을 맡아하는 사람이 있었을 뿐이었다.
50년이면 긴 세월이다.
급변하는 시대에 학교라고 바뀌지 않았겠는가.
경비인이 행정실 문을 열어주며 저분이 실장님이라고 했다.
넉넉한 인상의 중년 여인이 일어서며 소파에 앉으라고 권했다.
행정실은 옛날 교장실만큼 넓고 응접세트까지 갖추고 있었다.
옛날 생각을 하느라 여기 온 목적을 잊을뻔했다.
메모장과 필기구를 든 실장님이 마주 앉았다.
요 옆 6단지에 사는 주민이라고 내 소개를 했다.
"학교에 하실 말씀이 무엇입니까?"
정중하고 예의 바른 태도에 우선 안심이 되었다.
나무 이름표를 제대로 달아주길 바란다고 하자, '모감주나무가 어떤 것이죠?'라고 되물었다.
모감주나무에 대해 간략하게 설명하자, '아, 운동장에 두 그루가 있습니다.'라고 했다.
메모지에 꼼꼼하게 메모를 하면서 곧바로 시정하겠다고 시원하게 말하고는 이어서 앞으로도 이런 사항이 있으면 언제든지 알려주시면 고맙겠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오기 전에 괜히 주눅이 들어 망설이기도 했는데 일을 마치고 나오는데 기분이 좋았다.
경비실 앞에서 경비인이 공손하게 일 다 마치셨냐 하면서 어느 학교에 근무하셨냐고 무슨 과목을 가르치셨냐고 관심을 나타냈다.
정중한 인사를 받으며 교문을 나오는 발걸음이 한결 가벼웠다.
집에 와서 남편에게 이런 과정을 자랑삼아 얘기했더니 막 웃으며 하는 말이
"그 사람들이 별 이상한 주민도 다 있네라고 했겠다."라고 초를 쳤다.
첫댓글 언니처럼 이런 정확한 지적을 해주는 분이 계셔야 사회가 발전이 되어 나가겠지요 ^^
청단풍나무에 '모감주나무'라는 엉뚱한 이름표를 달아놓았더군요.
분명 생물교사도 계셨을텐데 모두 무관심으로 일관하는 것 같았죠.
확실히 나이든 노인네가 되어 간섭을 하고싶어졌나 봐요. ㅎㅎ
@36회 김옥덕 간섭은 분명 아니십니다. 우리 모두를 일깨워 주셔서 넘넘 감사합니다.
@50회 배송자 댓글 고마워요.
재경홈은 댓글에 인색한 편이라 글 올리기에 신명이 안 납니다.
멋찐 우리 언니!! ~~화이팅입니다^^*
아우님이 인터넷동호회 희망입니다.
댓글 고마워요.
역시 옥덕님 다운 행보였네요.
이런 훌륭한 시민이 우리사회를 발전하게 합니다.박수 보냅니다.^^
아이구!
언니 과찬이십니다.
나이가 많아지니 이렇게 되네요. ㅎㅎ
나이 탓이 아니지. 아우님의 용기 가상해요
식물도감이라 할만큼 
넘길 수 없었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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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식하니
나이드니 없던 용기가 생기네요.
늙은이의 간섭이라고 흉을 봤을지도 모르지요.
이런 정신은 모두가 본 받아야하며 아는 것은 실천을 해야하는데 이런 면이
짝 짝짝 
너무 고맙네요
공감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언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