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1위 스마트폰 운영체제 안드로이드(Android)의 개발자 앤디 루빈이 작년 창업한 벤처투자사는 '전 세계 놀이터'라는 뜻의 '플레이그라운드.글로벌(Play Ground.Global)이다.
"모바일 혁명을 뛰어넘는 새로운 컴퓨팅 플랫폼 혁명이 일어날 겁니다.
언제 어떤 플랫폼이 나올지는 모르지만, 모바일 혁명보다 더 큰 파동을 일으킬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루빈 CEO는 2004년 직원 6명과 함께 '안드로이드'를 만들었다.
스마트폰도, 태블릿PC도 없던 때다.
당시 그는 한국 삼성전자를 찾아와 안드로이드를 기반으로 새로운 디바이스(기기)를 만들어 보자고 설득했다가 퇴짜를 맞았다.
같은 해 안드로이드는 구글에 인수됐다. 이후 안드로이드는 아이폰 운영체제(iOS)와 함께 스마트폰 혁명을 주도하며, 모바일 운영체제(OS) 시장에서 1위 자리에 올랐다.
이제 전 세계 스마트폰 10대 중 8대에 안드로이드가 깔려 있다.
시장조사 기관 IDC에 따르면 2015년 스마트폰 운영체제 시장에서 안드로이드 점유율은 82%, iOS는 12%이다.
⊙ 모바일 뛰어넘는 AI 디바이스 시대로
루빈 CEO는 iOS나 안드로이드와 같은 모바일 운영체제를 뛰어넘을 차세대 컴퓨팅 플랫폼이 나올 것으로 보고 다양한 플랫폼 개발을 계획하고 있다.
그는 "10~15년마다 컴퓨팅 플랫폼의 전환기가 찾아온다.
모바일 시대 다음엔 AI(인공지능)가 들어간 디바이스 시대가 올 것"이라고 말했다.
안드로이드가 처음 개발된 것은 2004년이다.
그의 셈법에 따르면 앞으로 2~3년 안에 모바일 대혁명을 뛰어넘는 '플랫폼 혁명'이 닥치는 것이다.
컴퓨팅 플랫폼은 10~15년 주기로 교체된다. MS DOS, 윈도와 맥, 인터넷, 그리고 모바일까지 10~15년씩 전성기를 누렸다.
차기 플랫폼이 무엇이 될지를 두고 기술 업체들이 경쟁하고 있다.
안드로이드 운영체제가 주요 모바일 플랫폼으로 자리 잡을 수 있던 이유는 '표준화'다.
표준화는 두 가지 방법으로 일어나는데, 첫째가 인터넷처럼 어떤 위원회가 특정 기술을 표준화하자고 시도하는 때가 있다.
수많은 기술 업체가 동의해야 하기 때문에 의견 일치를 보기가 어렵다.
둘째는 안드로이드처럼 특정 기술이 실제로 가장 많이 쓰이기 시작하면서 '사실상의 표준' '시장에서의 표준'이 되는 일이 있다.
구글은 안드로이드를 모두에게 개방해서 누구든지 충돌 없이 도입할 수 있게 했다. 덕분에 수많은 제조사가 손쉽게 스마트폰을 만들 수 있게 됐다.
정확히 언제, 어떤 식의 플랫폼이 등장할지 예측할 수 없지만 지금까지 MS DOS, 윈도, 인터넷, 모바일 순서대로 매번 일어난 혁신이 그 전 혁신보다 더 규모가 컸다는 것이다.
우리가 앞으로 목격할 플랫폼 혁명 은 지금까지 우리가 겪었던 그 어떤 것보다 더 클 것이다.
모바일 시대 다음에는 매우 성숙한 딥러닝 능력을 갖춘 AI에 디바이스가 연결돼 우리 삶에 들어올 것이다.
오늘날의 AI는 '수조(水槽)에 들어있는 뇌'에 불과하다. 이 뇌에는 손과 발이 없고, 눈도 없고, 귀도 없다. 그냥 수조 안을 둥둥 떠다니면서 인터넷이 주는 정보를 받아들이고 다시 인터넷에 정보를 돌려보내는 일을 하는 데 그친다.
AI가 진정으로 구현되려면 인터넷 세상에만 갇혀있는 게 아니라 오프라인 세상의 정보를 스스로 감지하고 그 정보를 기반으로 결정을 내리고 행동할 줄 알아야 한다.
오프라인 세상에서 일어나는 것을 정보로 읽어들이는 단계인 '감지(sense)', 이 정보를 계산해서 다음 행위를 구상하는 '계획(plan)', 그리고 행위를 실제로 수행하는 '행동(act)'까지 이어지는 것이 미래의 디바이스가 될 것이다.
이 중에 '계획' 부분이 AI가 하는 역할이고, 페이스북·구글·아마존 같은 기업들이 집중하고 있는 분야이기도 하다.
이와 달리 플레이그라운드는 오프라인 세상의 정보를 감지하고 행동하는 분야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수조에 들어있는 뇌에 손과 발을 달아주고, 눈과 귀를 달아주는 역할을 하겠다는 것이다.
차세대 컴퓨팅 플랫폼이 어떤 모습일지는 아무도 모른다. 다만 클라우드(기기 대신 인터넷에 데이터를 두고 필요할 때 접속해서 쓰는 서비스) 기반 AI가 앞으로 우리가 쓰는 기기들의 두뇌 역할을 할 것이고, 이 두뇌를 물리적 세상과 연결하는 접점에서 혁신이 나올 것으로 기대한다.
미국 IT 전문 잡지 와이어드는 루빈 CEO를 ‘내일을 볼 줄 아는 사람’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항상 혁신의 최전선에 있었다. 1992년 애플에서 일할 때 ‘손으로 들고 다니는 통신기기’에 들어가는 운영체제 개발을 맡았다.
1999년 창업한 데인저(Danger)에서 ‘사이드킥(Sidekick)’이란 휴대전화를 출시했다. 인터넷 브라우저, 이메일, 메신저 기능, 애플리케이션 장터 기능이 더해진 ‘초기 스마트폰’이었다.
당시엔 꽤 획기적인 제품이었다.
사이드킥은 출시 후 얼마 안 돼 마이크로소프트(MS)에 인수됐다.
그는 “미래의 기기는 물리적 세상의 정보를 스스로 정확하게 읽어들이고 또 AI가 시킨 대로 행동하는 기술을 갖춘 기기”라고 얘기한다.
그는 미래에 탄생할 이런 수많은 기기가 플레이그라운드가 만든 하드웨어 기술들을 채택해 결국 플랫폼으로 자리 잡도록 ‘베팅’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그가 데인저를 창업했을 때 휴대전화를 하나 만드는데 2억4000만달러가 들었다. 액정, 중앙처리장치 같은 부품을 직접 만들어야 했고 운영체제, 애플리케이션(앱)도 개발해야 했다.
그러나 이제는 하드웨어를 만드는 데 필요한 부품을 다 사서 쓸 수 있게 됐다. 스크린, 센서가 필요하면 사서 쓰면 된다. 운영체제가 필요하면 안드로이드 같은 개방된 소프트웨어를 가져다가 쓰면 된다.
과거에 비해서 하드웨어 자체를 만드는 것이 훨씬 쉬워진 셈이다.
플레이그라운드는 입주하는 스타트업들에 기본적인 모듈(여러 부품을 미리 조립해 특정 기능을 수행하게 만들어 놓은 덩어리)을 제공한다.
플레이그라운드가 만든 중앙처리장치 모듈은 ‘뇌’, 카메라 모듈은 ‘눈’, 마이크 모듈은 ‘귀’라고 부른다.
그는 지난 20년간 하드웨어 기기를 구현 가능하게 해주는 기술들을 만들어왔다. 안드로이드, 데인저를 만들었던 기술의 공통점은 배터리가 든 기기를 클라우드에 연결해 쓸 수 있는 바탕이 됐다는 점이다.
그런 플랫폼을 만드는 것이 그의 DNA 안에 존재한다.
루빈 CEO가 창업한 안드로이드는 2005년 구글에 팔렸다.
스마트폰 시장이 빠르게 성장하면서 구글 내 루빈의 입지도 탄탄해졌다.
그는 구글에서 모바일 사업을 총괄하는 수석부사장 자리에 올랐다.
구글 내부에선 안드로이드를 인수한 것을 두고 ‘구글 역사상 가장 잘한 거래’로 평가했다.
안드로이드가 승승장구하던 2013년 3월 루빈은 모바일 사업을 선다 피차이(현 구글 CEO) 당시 크롬(구글의 인터넷 브라우저) 사업부 수석부사장에게 넘겨주고 자리에서 물러났다.
이후 루빈은 로봇 등 미래 기술을 연구하는 신사업부로 자리를 옮겼다. 하지만 그는 몇개월 후 구글을 떠났고 2015년 2월 플레이그라운드를 창업했다.
현재 플레이그라운드 소속 20여개의 스타트업들은 자율 주행차, 센서, 로봇 등 광범위하고 다양한 프로젝트를 비밀리에 진행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