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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본관 1층 전시실에서 전시 중인 [강명희-방문 Visit]
[강명희-방문(Visit)]
전시장소 :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본관 1층 전시실
전시기간 : 2025.03.04~2025.06.08.
관람료 : 무료
관람시간 : 평일(화–금) 오전 10시–오후 8시
토 · 일 · 공휴일 : 하절기(3–10월), 오전 10시–오후 7시
동절기(11–2월), 오전 10시–오후 6시
휴관일 : 1월1일, 매주 월요일 (월요일이 공휴일인 경우 정상 개관)
도슨트안내 : 매일 오후 3시에 운영 (전시 개막일, 월요일 휴관일 제외)
전시부문 : 회화
전시장르 : 기획
참여작가 : 강명희
전시문의 : 박지수 02-2124-8943
관람문의 : 안내 데스크 02-2124-8868
전시 안내
《강명희-방문》은 오랜 시간 대면한 자연의 풍광 속 본질에 천착하고 존재와 자연과의 관계를 화면에 담아내며 독자적인 회화 영역을 구축한 강명희(1947- )의 60여 년에 걸친 화업과 주요 작품들을 망라하여 선보이는 전시입니다. 1972년 한국을 떠나 국내외를 오가며 활동한 작가의 회화에는 서로 다른 문화권의 영향과 동서양을 넘나드는 색채와 감성이 묻어납니다. ‘방문’은 작가의 작품명에서 빌려 온 전시 제목으로 한곳에 완전히 정착하지 않고 이동하며 작업한 작가의 유목적 태도와 일시적 만남에서 비롯된 예술적 영감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작품은 충만한 빛과 색으로 가득한 추상화처럼 보이지만 매우 구체적인 자연의 요소에서 출발하며 긴 시간의 단련을 통한 사색과 ‘비워내기’라는 반복적 행위의 응축된 결과물이라 할 수 있습니다.
강명희는 몽골의 고비사막, 남미 파타고니아, 남극, 인도, 홍콩, 중국, 대만 등 세계 곳곳을 여행하며 태초의 풍경을 찾아 자연의 본질을 끈질기게 탐구했습니다. 평면 위에서 흔들리고 부딪히며 쌓아 올려진 붓 터치와 파편들은 자연의 움직임을 닮았습니다. 일견 잔잔하고 평화로워 보이는 화면은 세계 혹은 자연과의 치열한 대화의 산물이며 오랜 시간에 걸친 무수한 붓질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자연의 존재 자체가 위협받는 이 시기에 땅의 역사와 기억, 파괴와 죽음, 생성과 소멸을 함축한 그의 회화는 거듭된 수행과 정화의 과정을 거쳐 완성된 화면 속으로 우리를 끌어당깁니다. 강명희의 대형 회화 앞에서 관객은 작가가 재해석한 자연을 만나고 마치 경계 없는 자연 속을 거니는 듯한 느낌을 받게 될 것입니다.
작가는 2007년 고국으로 돌아와 제주도에 거주하며 다채로운 자연의 풍광을 담은 추상적 회화 작업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작업적 완숙기로 접어든 강명희의 작품은 자연과 인간에 대한 깊은 사유를 이끌어 냅니다. 현대문명과 첨단 기술의 반대편에 선 그의 작품은 강력한 생명과 재탄생의 에너지를 발산하며 예술의 힘으로 우리 시대의 상처와 아픔을 위로하고 어루만집니다. 《강명희-방문》은 연대기적 구성을 따르기보다는 작가의 시공간적 경험과 의식의 흐름을 바탕으로 크게 세 부분으로 이루어집니다. 섹션 제목이 모두 작품명에서 비롯된 이번 전시는 제주를 중심으로 한 최근의 작업을 선보이는 ‘1. 서광동리에 살면서’와 프랑스에서의 작업과 해외 각지를 여행하며 그린 작품들을 중심으로 한 ‘2. 방문’, 그리고 현재 작업의 출발점이자 작품 해석의 단서를 제공하는 초기작을 소개하는 ‘3. 비원 秘苑’ 파트로 구성되었습니다.
파트 1. 서광동리에 살면서
‘서광동리에 살면서’에서는 강명희가 2007년부터 제주도에 거주하며 제작한 비교적 최근의 작업과 제주를 중심으로 한 작가의 일상과 연결되는 회화를 소개합니다. 작가는 제주에서 여러 곳의 작업실을 사용하고 있으며 상황과 필요에 따라 작업실을 바꾸기도 하는데 ‘서광동리’는 작가가 약 10년간 사용하던 작업실이 있었던 지역입니다. 그는 제주에 살면서도 일시적으로 해외에 머무르며 작업하는 삶을 이어왔으며 이 파트에서는 제주에 자리 잡은 18여 년간의 삶과 예술을 함축적으로 선보입니다. 작업실에서 본 실내외 풍경과 정물을 비롯하여 한라산, 황우치 해안, 대평 바다, 산방산, 안덕계곡 등 제주의 구체적 지역과 장소에서 비롯된 회화가 전시됩니다. 작가는 한 장소를 반복적으로 그리기도 하고 때로는 한 점의 작품을 완성하기 위해 수년의 시간을 보내기도 합니다. 이렇게 제작된 작품은 시간이 축적된 자연의 아름다움과 역동성을 담아낼 뿐만 아니라 땅 위에서 자행되는 파괴와 상처, 자연의 위기에 대한 사유와 애도, 자연을 매개로 한 소통 등을 폭넓게 다룹니다.
<서광동리에 살면서>
<서광동리에 살면서>는 제주 작업실에서 보이는 솔밭 풍경을 담은 대작으로 작가는 약 10년간 제주의 서쪽 지역에 위치한 서광동리에서 지내면서 소나무밭의 풍경을 반복적으로 그렸습니다. 이 작품은 서광동리에 작업실을 둔 마지막 해에 완성된 것으로, 소나무를 그리는 원숙한 필치가 눈에 띕니다. 작가는 이곳에서 또 다른 작품 <솔밭, 왕몽 기운(王蒙氣韻)>(미출품작)을 그리면서 중국 원나라 말기의 화가 왕몽의 강한 기운을 떠올렸습니다. 왕몽은 대상을 매우 집요하고 밀도 있게 구현하는 탁월한 기예로 알려져 있습니다. 같은 풍경을 반복적으로 그리며 사물의 변하지 않는 요소를 찾아 나가는 강명희에게 왕몽은 그림을 그리는 태도와 방식에 대한 질문을 남기는 화가입니다. <서광마을, 봄>은 서광동리 작업실에서 보이는 마을을 그린 작품으로 감나무에 노랑과 연두 사이의 오묘한 빛깔의 꽃이 피기 시작하는 늦봄의 아름다운 순간을 화면에 담았습니다.
<이웃 담 Ⅱ>
제주 덕수리에 위치한 작업실에는 여러 방향으로 창이 나 있어서 각각의 창문으로 보이는 풍경들이 반복적으로 작품의 주제로 등장합니다. 주로 일상의 소박하고 정겨운 풍경들입니다. 제주의 돌담과 나무로 된 대문이 있는 이웃집 쪽을 바라보며 그린 <이웃 담 Ⅱ>과 <접시꽃>, 멀지만 선명하게 우뚝 솟아 있는 푸른 산방산의 풍경을 담은 <산방산>, 작가가 안경을 맞추곤 하는 안경사가 거주하는 집과 주변 풍경을 그린 <안경사의 집 Ⅰ> 등이 있습니다. 그 외에도 이 작업실에서는 작가가 인근에서 구한 여러 꽃과 식물을 실내에 두고 그린 정물화들이 다수 제작되었습니다. 이러한 작품들은 작가의 삶과 작업이 일상 속에서 긴밀히 이어져 있음을 여실히 보여 줍니다.
<초란도 椒蘭圖>
제주의 지형 중 반도처럼 바다 쪽으로 돌출해 있는 송악산과 제주의 중심에 위치한 한라산의 다채로운 풍경을 혼합해 그린 작품입니다. 강명희는 송악산으로 몇 년간 연필 데생을 하러 다니기도 했는데, 송악산의 언덕길을 비롯하여 한라산의 나무, 제주에서 자라는 제철의 꽃, 엉겅퀴, 봉숭아, 수국, 산초나무 가지 등을 이 작품에 그려 넣었습니다. 작가는 중국 초나라 시인 굴원의 장편 서사시 <이소>를 좋아하여 필사하곤 했는데, 이 시는 굴원이 정치적인 이유로 추방당한 후 유랑 중에 쓴 귀양 문학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시에 등장하는 산초를 제목에 담은 이 작품에서는 한 장소에 머무르지 않고 떠나거나 이동하며 지낸 유목적 삶에 대한 사유를 엿볼 수 있습니다.
파트 2. 방문
‘방문’에서는 작가의 프랑스 생활과 해외 각지를 방문했던 여행에서 비롯된 작업을 선보입니다. 프랑스에 거주하던 시기 강명희는 1994년 몽골과 칠레 여행을 시작으로 1990년대 후반까지 거의 반년마다 여행을 떠났고 몽골 고비 사막을 여덟 번 다녀왔을 정도로 열성적이었습니다. 작가는 남미 파타고니아, 남극, 인도 등 쉽게 접근하기 힘든 장소로 홀연히 떠나 눈앞에서 본 생생한 풍광을 화면에 담았습니다. 프랑스 파리와 투렌(Touraine)에 위치한 작업실에서 제작된 작품들은 당시 작가의 일상과 정서를 담담하게 반영합니다. 1990년대부터 지금까지 사용하고 있는 투렌 작업실에서는 그곳의 정원과 땅을 소재로 한 <북원>, <중정>, <방문> 시리즈가 시작되었습니다. <방문>은 작업실 뒤 정원에 날아든 한 마리 꿩에서 비롯된 작품으로 평범한 일상의 찰나를 영적이고 예술적인 순간으로 치환합니다. 프랑스와 제주에서 그린 <시리아> 시리즈는 우리에게 먼 땅에서 일어나는 전쟁과 죽음을 상기시키며 거대한 폭력에 작품으로 맞서고자 하는 예술가의 시도를 보여 줍니다. 강명희는 2000년대부터 중국에서 많은 시인들과 교류하며 회화와 시를 연결하여 선보이는 전시를 통해 예술 세계를 더욱 확장하였습니다.
<북원>
작가가 프랑스 투렌 지역에 마련한 18세기 농가를 개조한 작업실의 정원과 땅을 소재로 오랜 시간 작업하여 완성한 대형 회화 작품입니다. 어느 날 문득 한국에서 가져간 물감들을 모두 소진해 버리고 싶다는 생각이 든 작가는 눕힌 캔버스에 물감을 발로 짜내며 이 작품을 시작했습니다. 손수 풀을 뽑고 자갈과 식물의 뿌리들을 정리한 고운 땅을 보고 만지고 느끼면서 작품이 제작되었습니다. 낫을 들고 정원을 다듬다가 붓을 들고 그림을 그리는 작가의 작업 과정은 마치 땅을 일구는 농부의 행위를 연상시키는데, 실제로 작가는 밭일을 많이 할 때 작업도 잘 되었다고 회상합니다. 땅에 놓인 죽은 엉겅퀴 네 가지를 그린 엉겅퀴 초상화이기도 한 이 작품은 ‘땅은 평면이자 죽음이고 모든 것’이라고 말한 작가가 자연과 소통하며 생명의 근원을 마주하고 우주적 기운을 함축해 낸 과정의 기록입니다. 이번 전시에서는 작가가 매일 아침마다 투렌의 북쪽 정원을 그린 수채화 시리즈를 함께 선보입니다.
<중정 2017-2024>
중정 시리즈는 ‘ㄷ’자 형태의 프랑스 투렌 작업실의 가운데 위치한 정원을 그린 작품으로 그중에서도 <중정 2017-2024>는 드물게 제작 연도가 작품명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제주에 거주하는 동안 코로나19 등으로 인해 2017년을 마지막으로 투렌 작업실에 가지 못했던 작가는 2024년에 다시 투렌을 찾아 이 작품을 닷새 동안 그려 완성했습니다. 작가는 그림을 그리지 않은 시간이 그림을 그리게 했고 그로 인해 그림이 완성되었다고 말하는데, 이는 자연에서 흘러가는 긴 시간이 작품에 축적되어 있음을 알 수 있게 합니다.
<방문 Ⅲ>
프랑스 투렌 작업실 창으로 보이는 뒤편 정원을 그린 작품으로 같은 풍경이 여러 번 그려지며 시리즈로 제작되었습니다. 이곳의 고요한 땅에 이따금씩 꿩이 날아들어 잠깐씩 머무르다 사라지는 장면은 작가에게 현실적 시간의 개념이 무화(無化)되는, 결코 평범하지 않은 신비로운 순간으로 다가왔습니다. 제목으로 사용된 단어 ‘방문(Visitation)’은 기독교 미술의 오랜 주제 중 하나로서 천사가 마리아에게 예수 그리스도 잉태를 예고한 수태고지(Annunciation) 이후 마리아가 사촌 엘리자베스를 ‘방문’하고 서로의 임신 사실을 알리는 내용으로, 많은 화가들에 의해 다양한 양상으로 그려졌습니다. 신의 강림과 관련된 이 이야기는 대상과의 일시적 조우가 예술적 영감을 촉발하는 초월적 순간으로 전환된 작가적 경험과 이어집니다.
<시리아 Ⅱ>
시리아 시리즈는 시리아 땅에서 일어난 전쟁과 폭력, 그로 인한 죽음과 상처를 상기시키는 작품으로 첫 번째 작품인 <시리아 Ⅰ>은 프랑스 작업실에서 그려졌습니다. 먼 곳의 전쟁 소식을 듣고 무력감을 느낀 작가는 당시 집에 검은 튤립을 심어 둔 땅이 하수도 공사로 인해 마구 헤집어진 모습을 화면에 담았습니다. 이후에 제작된 <시리아 Ⅱ>, <시리아, 역광> 등은 제주에 온 뒤 송악산 절벽을 그린 풍경으로 시리아에서 지속된 내전에 대한 혼돈된 심경이 반영되어 있습니다. 또한 강명희는 평면을 다루는 일이 생성을 위한 소멸, 즉 살인이나 살생의 노력과도 같다고 말합니다. 작가는 시리아 땅을 직접 밟은 적은 없으나 시리아 출신의 저명한 시인 아도니스(Adonis)와 친밀히 교우하였고 예술적 영감을 주고받기도 했습니다.
<꽃 핀 나무>
1980년대에 작가는 프랑스 파리 께 드 라 루아르(Quai de la Loire)에 마련한 작업실에서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을 보며 많은 작품을 그렸습니다. 이곳은 창고를 개조해 만든 작업실로 층고가 높아 대형 작업도 가능했습니다. 흐드러진 오동나무 꽃과 열매를 그린 <꽃 핀 나무>는 10여 년간 사용했던 이 작업실을 떠나기 전 마지막에 그린 작품입니다. <초록 물>, <시냇물에서 머리카락까지>, <운하에서>는 3층에 위치한 작업실에서 보이는 운하의 물을 소재로 한 작품으로, <시냇물에서 머리카락까지>는 당시 관심을 가진 중국 이론에서 영감을 받아 붙인 제목입니다. 프랑스 서민 아파트의 모습을 그린 <낮>, <낮의 구성>, 밤의 풍경을 그린 <밤> 등은 시간대에 따라 이곳에서 보이는 장면을 바탕으로 그려졌습니다. 한 작업실에서 제작된 작품이지만 1980년대 초에서 90년대 초로 갈수록 대상의 경계가 흐려지고 화면이 추상적으로 변화하는 것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자화상>
드물게 그려진 작가의 자화상 중 하나로, 작가가 아파서 밖에 나가지 못하던 시기에 프랑스 파리 자택에서 그려졌습니다. 이 작품은 1986년 퐁피두 센터에서 작가 임세택과 개최한 2인전에 출품되었고 당시 전시 도록 표지에 실리기도 했습니다. 캔버스 앞에서 붓을 든 모습이 화가로서의 정체성을 분명히 보여 주고 있으며 화면 오른쪽에는 멀리 작가의 뒷모습이 보입니다. 비슷한 시기의 작품인 <마르틴, 명희, 프랑수아즈>도 동일한 파리 자택에서 그려졌는데 여기에는 중앙에 있는 작가의 모습과 함께 당시 자주 어울리던 여성들의 모습이 등장합니다.
파트 3. 비원 秘苑
1960-80년대에 제작된 작가의 초기작들은 최근작에 비해 구상적 성격이 짙고 삶과 현실에 대해 직접적으로 발화하거나 서술적인 경향을 보이기도 합니다. 1972년 프랑스로 이주한 후 그린 초기 작품에는 당시 한국의 상황과 작가의 기억이 반영되어 있습니다. 특히 1970년대 중반에 제작된 <개발도상국> 시리즈는 한국의 사회적, 정치적 현실과 근대화에 대한 작가의 비판적 시각이 가장 적극적으로 드러난 작품입니다. 이후 그의 작업은 점차 은유적이고 암시적인 경향으로 변화합니다. 또한 초기작들은 작가의 전체 작업 세계를 해석하는 중요한 단서가 되기도 합니다. 이번 전시에 출품되지는 않았으나 창덕궁 후원을 소재로 한 <비원>은 이 시기에 제작된 작품 중 하나입니다. 자연에 대한 지속된 관심을 보여주며 추상과 구상의 경계를 오가는 특징이 두드러지는 이 작품은 작가의 예술 여정에 있어 출발점이 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서귀포>
창문을 통해 본 제주의 바다와 나무를 그린 <서귀포>는 작가가 처음으로 자연을 직접 마주하여 그린 대형 회화라는 점에서 의미를 지닙니다. 당시 가로 4m의 큰 작품을 그릴 만한 곳이 없어 서귀포의 한 초등학교를 방학 기간 동안 빌려 작업했습니다. <제주도>는 서귀포에서 바라본 범섬을 그린 것으로 바다가 화면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상단 중앙에 솟은 섬의 형상이 보입니다. 제주에 살지 않았을 때이지만 작가는 당시 그림을 제주에 두고 갔다가 다시 와서 그리곤 했는데, 이는 시차를 두고 작업하는 현재의 방식과도 매우 흡사한 지점입니다.
<개발도상국 "교수형">
개발도상국 시리즈는 작가가 프랑스로 이주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고국을 생각하며 제작한 작품들입니다. 이 시리즈에는 1970년대 한국에서 있었던 정치적 사건과 월남 파병, 경제 성장을 중심으로 운영되던 한국의 공장 풍경 등이 그려졌습니다. 푸른색으로 그려진 건축 구조물 등을 통해 당시 작가가 관심을 가진 서양 고전 회화의 영향을 엿볼 수 있습니다. <개발도상국 “교수형”>은 유신정권 당시 일어난 대표적 사법 살인 사건인 인민혁명당 사건을 다루고 있습니다. 1974년 2차 인혁당 사건으로 판결 18시간 만에 기습적으로 집행된 사형은 한국의 암울한 정치적 상황을 적나라하게 드러냅니다.
<비둘기>
작가가 밀라노에서 본 비둘기 풍경을 그린 작품으로 아스팔트 바닥에서 여러 마리의 비둘기가 한데 모여 모이를 쪼아먹는 모습입니다. 이는 개발도상국 시리즈를 제작하던 무렵, 즉 한국의 정치적 상황이 암담하던 때에 그려졌는데 작가는 당시 무언가 덩어리같이 모인 풍경이 마치 시체처럼 보였다고 회상합니다. 구상적 이미지와 서술적인 이야기를 담아내며 비판적 발언을 하던 당대 프랑스 신구상회화의 영향과 일상적 리얼리티를 보여주는 작품입니다. 개발도상국 시리즈와 <비둘기>는 내러티브를 담아내기에 적합하도록 유화가 아닌 아크릴로 그려졌습니다. 이 그림을 그린 후 파리에 있는 화랑과 전속 계약을 하게 되는 등 작가적 전환점을 마련해 준 작품입니다.
작가 소개
강명희(1947~)
1972년 서울대 미대를 졸업한 강명희는 오직 붓 한 자루만을 들고 홀연히 프랑스 파리로 떠났다. 아카데미 라 그랑드 쇼미에르에서 다시 미술을 배우기 시작하며 본격적인 작업 활동을 펼쳤다. 그렇게 강명희가 한국을 떠난 지 15년 만인 1986년, 그는 한국 여성 작가 중에서는 최초로 파리 퐁피두센터에서 전시를 여는 작가가 됐다. 프랑스는 강명희를 대한민국 대표 현대미술가 중 하나로 꼽았다.
강명희의 작품을 관통하는 주제는 색과 자연이다. 그는 단순히 작업실에 앉아 그림을 그리는 작가가 아니다. 무거운 캔버스를 들고 세계를 돌며 사람들을 만나고, 그곳에서 경험한 자연을 토대로 작업에 돌입한다. 인도와 칠레, 중국에서 남극까지 지역과 대륙을 가리지 않고 쏘다녔다. 사막과 빙하, 넓은 초원을 찾아다니며 영감을 얻으려 노력했다. 완벽한 사막을 표현하기 위해 몽골을 찾아 현지인들과 함께 밥을 먹고 잠을 잤으며, 남극 빙하를 찾아 며칠간 바깥에 앉아 얼음이 떨어지는 모습을 그리기도 했다.
그의 풍경화는 현실적이지 않다. 뚜렷한 선 대신 흐릿한 색을 사용하며 추상화처럼 풍경을 묘사하기 때문이다. 여기에 한 작품 위에 끊임없이 색을 덧칠한다. 한 작품을 '완성'하기 위해 20년이 넘게 걸리는 경우도 있다. 같은 장소라도 시간에 따라 풍경이 달라지는 것처럼, 자신의 작품도 시간의 흐름에 따라 달리 느껴지길 바라는 강명희의 작업 신념이다.
강명희는 2025년,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본관에서 개인전을 열며 관객을 만난다. 3월에 열릴 이번 전시는 서울시립미술관의 2025년을 여는 첫 전시다. 해외 활동이 많았던 반면, 국내 활동이 비교적 적었던 그이기에 이번 전시는 강명희의 '자연 예찬'을 살펴볼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화가 강명희, 바람처럼 살며 바람처럼 그리다
안태연 인턴기자 (aty9705@naver.com)
컬처램프 기사 입력 : 2023.11.03.
프랑스와 한국을 오가며 바람처럼 살아온 화가 강명희(姜明姬, 1947-)가 오랜만에 작품과 함께 서울을 찾았다. 갤러리 빌팽이 11월 3일부터 21일까지 성수동 키르서울에서 주최하는 개인전 《강명희: 시간의 색》을 위해서다.
화가 강명희는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서양화과를 졸업하고 1972년 프랑스로 건너가 아카데미 라 그랑드 쇼미에르에서 수학했다. 미술 동인 ‘현실과 발언’을 창립하고 1981년부터 약 20년간 구기동에서 서울미술관을 운영한 화가 임세택(林世澤, b.1947)의 아내이기도 하다. 강명희는 그동안 파리의 퐁피두 센터와 과천의 국립현대미술관, 베이징의 황성미술관과 창원의 경남도립미술관, 상하이의 닝보미술관, 칭다오의 TAG 미술관 등 세계 각국의 미술관에서 초대전을 열었고, 지금도 왕성한 활동에 여념이 없는 원로이지만 해외에서의 명성과 비교하면 국내에서는 작품세계가 소상히 알려지지 않았다.
미술학도 시절부터 올해 제작한 신작까지 총 50여 점을 선보이는 이번 전시는 작가와 전속 관계인 갤러리 빌팽(Villepin)에서 마련했다. 갤러리 빌팽은 작가와 오랫동안 긴밀하게 교류해 온 전 프랑스 총리 도미니크 드 빌팽과 그의 아들 아서 드 빌팽이 창립했다. 홍콩을 거점으로 전시를 이어왔으며 한국에서는 강명희 작가 전시가 처음이다. 전시를 앞둔 작가를 지난 10월 31일 키르서울(서울시 성동구 성수이로 26길 27-20)에서 만났다.
오랜만의 한국 전시인데 감회가 새로우시겠습니다.
2020년 1월 서울 인디프레스에서의 개인전 이후로 3년 만이군요. 이번에 선보이는 작품들은 대부분 지난 4월부터 7일까지 칭다오의 TAG 미술관에서 전시한 것들입니다. 신작을 중심으로 하면서 구작 일부를 곁들였습니다.
출품작 중 유독 제주에서 그린 작품이 많습니다. 현재 제주에 거주하고 계신데, 제주에서의 생활은 어떠신지요.
제주에서의 삶과 작업은 현재 진행형입니다. 지금도 매일 제주의 산을 오릅니다. 느낌이니 감성이니 뭐라 할 수 없지요. 지금도 그 속에 있어요. 직접 산에 캔버스를 들고 올라가서 작업하는데 이번에 선보인 작품 <접시꽃> 등도 그렇게 완성했습니다. 같은 장소를 반복해서 그리는 경우도 많고요. 못다 한 것이 많으니 지금도 그렇게 작업합니다. <실내>는 제주도의 화실을 주제로 한 작품인데, 지금은 화실의 시든 꽃이나 열매 등도 종종 그립니다. 그것들도 기본적으로는 과거의 그림들과 같은 이야기에요.
과거의 그림이라면, 1989년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선보인 아파트가 보이는 풍경같은 작품들이겠군요.
맞아요. 그 작품. 프랑스 유학 시절 매일같이 보던 파리 19구를 그린 건데,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엄청난 일이 일어나고, 하여튼 재미있는 게 나는 그때 그 풍경을 아침, 점심, 저녁에 다 그렸어요. 아침에는 같은 장소가 하얗게 보이다가 밤에는 까맣게 보이잖아요. 그거를 매일같이 그리다 보니 이런 식으로 되어갔죠. 그 그림이 지금 프랑스에 있어서 이번에는 전시하지 못했습니다.
프랑스로 유학을 떠나 많은 자극을 받으셨을텐데 특히 기억에 남은 것은 어떤 것일지요.
전부 다 놀라웠습니다. 사진으로만 보던 그림들을 원작으로 직접 보니까. 그냥 새로운 세계였어요. 그리고 언제인지는 정확히 모르겠는데, 1970년대인가 파리에서 열린 막스 에른스트 전시가 특히 기억에 남아요. 내가 초현실주의를 좋아하는 것도 아닌데, 이렇게 맞물리는 것처럼 에른스트의 표현 방식에 감명을 받았죠. 이전까지 나는 개발도상국에서 그림을 그린 것이니까요. 아무튼, 내가 파리 교외의 시골로 거처를 옮겼을 때 포도나무 등 자연의 아름다운 모습에도 차차 눈을 떴습니다.
출품작들을 보니 예나 지금이나 대작을 즐겨 그리시는 것 같습니다.
오래전 그림들은 그렇게 크지만은 않아요. 그러다 1989년 국립현대미술관 전시 때 출품한 작품 중 마지막으로 완성한 작품이 제주도의 <서귀포>를 4m 크기로 그린 것이었어요. 마침 그즈음 프랑스에서 물을 주제로 한 <초록색 물>을 같은 크기로 그렸죠. 그 작품은 이번에 전시했습니다. 그리고 이번에 전시하려고 했으나 공간이 없어서 선보이지는 못했는데, 18세기 프랑스의 농가를 개조한 작업실에서 <북쪽 정원>이라는 5m 크기의 작품을 그렸어요. 2002년부터 2010년까지 긴 시간을 투자하면서 땅을 만지고, 풀을 뽑는 등 직접 땅을 느끼는 과정을 거치면서 그린 작품입니다.
앞으로 작업에서 새롭게 시도하고 싶은 것은 무엇이신지요.
사실 지금도 새로워요. 지금 또 시작했거든요. 결국에는 하다못해 평면 문제 때문에, 말로 하려면 못하니까 그냥 그리는 거예요. 그때 그 순간을 데생하고, 계속 그리면서…. 앞으로도 계속되는 겁니다.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본관 안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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