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어로御路로 걸었다
- 1999년 동구릉
이종민
기쁨과 슬픔은 왜 같은 눈물을 가졌나요 기쁨과 슬픔 이란성 쌍둥이 화신에게 제祭를 올리며 죽음의 냄새는 왜 다 같이 매캐한지, 눈을 찌르는지
없는 사람 위를 덮은
죽음의 거슬거슬한 살결
완만하고 푸른 곡률
어린이들이 굴러내려갑니다
몸 여기저기를 푸르고 마른 피로 물들이며
죽음은
삶을 쓸고 내려가는 미끄럼틀
걸어가는 뒷모습에는
신발 끈을 고쳐 매는 자세가 먼저 있었고
신발 끈을 묶어주던 웅크림이 있었고
오른쪽과 왼쪽을 구별해주는 손길이 있습니다
그 길을 따라 걸으면 소나무가 유난히 많은 숲길입니다 듬성듬성 튀어나온 나무뿌리에 걸려 넘어지는 빛이 있습니다 잎과 잎 사이를 타고 내려오는 새의 지저귐이 있고 이슬이 탄로 낸 망자의 눈물이 길을 적시고 있습니다
젖지 않은 길은 어로御路와 향로香路 두 길로 나뉩니다 우리는 단단한 어로로 걷습니다 우리는 오른쪽으로 걷습니다
동쪽을 향해 걷던 임금의 자세로
향과 축문은 기쁨과 슬픔
운동회 날 집에 두고 온 체육복과
연못에 던져버린 실내화 한 짝으로 대신하며
걸음에 맞춰 하나 둘 셋 되뇌면
네. 네.
어른스럽고 밝게 대꾸하는
내가 거기 있습니다
----애지 가을호에서
이종민
2015년 『문학사상』 신인문학상을 받으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시집으로 『오늘에게 이름을 붙여주고 싶어』, 『동시존재』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