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샘통문 Ⅲ-49]부엌칼(食刀)이 안 팔리는 시대(세상)?
‘춘향골’ 남원은 예로부터 칼과 목기(木器)로 유명했다. ‘유교의 나라’의 전통 제례문화(祭禮文化)가 크게 퇴색하는 시대의 풍조에 따라, 목기의 수요가 급감하고 있다는 것은 누구나 수긍할 만한 일이다. 그런데, 이와 더불어 생활필수품인 부엌칼(食刀)을 찾는 주부들이 눈에 띄게 줄고 있다는 것은 ‘혼밥 인구’가 늘고 있다는 세태(世態)와 맞물려 우리를 씁쓸하게 한다.
남원 주천면 문화마을에 9년 전 귀향하여 멋지게 사는 막역한 서예가 친구가 있다. 그를 종종 찾아가는 길목에 <남원 칼공장>이라는 커다란 간판이 있는데, 어느날 그집 사장이 젊은 사위와 <인간극장> <아침마당>의 주인공으로 나오는 게 아닌가. 엊그제 호기심으로 칼공장 앞에 차를 멈추고 얘기를 나눴다. EBS <극한직업>에도 나왔다한다. 무척 무뚝뚝하게 보이는 여든둘의 장인(丈人)은 64년째 이곳에서 칼을 만들고 있는 완전한 장인(匠人). 누가 오든가든 본체만체, 묵묵히 당신의 일만 하고 있고, 그래도 젊은 우서방과 몇 마디 나누며 칼도 샀다. 광한루 정문 옆에 있는 <변사또 칼> 가게에서는 장모가 각종 제품을 팔고 있다. 그 친구는 7년째 도제(徒弟)교육으로 장인에게 칼 만드는 것을 배우고 있는데, 아직도 혼이 많이 나고 있다며 웃었다. 야단을 맞는 게 이골이 난 셈이라는 듯. 어느 기술이든 전문가가 되려면 최소 10년은 익혀야 한다고 한다.
아무튼, 한 자루의 칼이 탄생되기까지는 15단계도 넘는 지난한 과정을 겪는다는데, 요즘같은 불볕더위에 뜨거운 불 앞에서 손으로만 수 백, 수 천번의 망치 단조(鍛造)를 한다고 상상해 보라. <한 알의 대추가 붉어지려면/저렇게 천둥은 몇 번이나 치고/번개는 몇 번이나 우르릉 쾅쾅 쏟아졌을까>라는 <대추 한 알> 시 구절도 생각났다. 땀이 비 오듯 흐를 것은 물어보나마나. 용광로에서 막 나온 선철이 아닌 ‘완성철’로 만드니까 공정이 몇 단계 줄어들어 고생은 좀 덜한다지만 ‘보통 일’이 아님은 분명했다. 경제적으로 자녀 셋을 키우며 생활하기가 벅차 퇴근 후 부업(대리운전)도 하고 있으나, 그래도 전통 생활공예를 잇는다는 긍지가 있다고 했다.
부엌칼을 찾는 수요가 줄어들고 있는 현상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 가정에서 부엌칼을 쓸 일이 자꾸 없어지기 때문이라는 것. 가정에서도 간편식으로 대체하고(1인가구의 급증), 배달해 먹거나 도시를 중심으로 외식문화가 늘어나고 있지 않은가. 지난 1년과 비교한 대형 이마트의 통계에 의하면, 부엌칼 22%, 냄비류 11%, 쌀 19%, 밀가루는 18%가 줄었다는 것이다. 쌀과 커피의 수요을 비교해봐도 금세 알 수 있다. 그러니 쌀값이 어찌 오르겠는가. 요식업소에서도 마찬가지인 것이, 식품의 절단이나 세척을 할 필요도 없이 ‘전처리’된 제품들이 나오기 때문에 식도와 주방용품의 쓰임이 줄어들 것은 당연한 현상.
어느 신문이 <‘집밥시대’는 끝인가?>라는 기획기사를 냈듯, 집이나 식당에서 식재료를 직접 칼로 썰어 조리하는 문화가 줄어든 것이 부엌칼 등 주방용품의 소비 감소의 주요 원인인 것은 분명하다. 독일칼이, 남원칼이 유명하다는 말도 이제 ‘전설’이 되는 날이 금세 올 것같기도 하다. 요리도 전혀 할 줄 모르지만, 아내를 생각해 장인의 손길이 알알이 박힌 투박하고 소박한 칼을 두 개 샀다(큰 것, 작은 것 8만5천원). 종이도 썰어질 만큼 예리(銳利)한 명도(名刀)여서 처음으로 칭찬을 받았다. 아직은 남원에는 이런 재래식으로 칼을 만드는 공장이 다섯 곳 있다하나, 누가 언제 문을 먼저 닫게 될 지는 모른다고 한다. 예전엔 큰동네마다 대장간이 있었다는데. 격세지감이다. 그나마 경제적으로 명맥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은 농촌지역이어서 호미나 괭이 등 각종 농기구를 찾는 수요가 있기 때문이라고. 우리나라 호미가 전세계적으로 히트를 쳤다는 글을 이어령 박사의 책에서 읽고 탄복한 적이 있는데, 그것도 이제는 값싼 중국산에 밀려 수출이 크게 격감했다는 것. 무엇이나 저 무지막지한 ‘인해전술’로 ‘웃통을 벗고’ 덤벼드는 중국의 기술력과 생산력을 어떻게 할 것인가.
좌우지간, 이런 대장간을 보면, 나는 그분들의 삶이 보여 ‘매급시’ 좋다. ‘포도시’라도 이런 전통공예, 생활공예의 맥이 이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정부에서도 관심을 가지고 지원 등의 대책도 필요한 부분이 아닐까 싶다. 내 친구 '시적 다큐 사진작가'가 찍은 흑백사진이 유난히 돋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