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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먼카인드 / 뤼트허르 브레흐만
[북 리뷰: 《휴먼카인드》] 부정적 뉴스 편향에 대한 날 선 비판
구본권 한겨레 사람과디지털연구소 소장
지난 7월 초 포털에서 댓글이 쏟아진 기사 중에 “서울 지하철 객차 안에서 여성이 쓰러졌는데도 남성 승객들이 ‘성추행 누명’을 쓸까 봐 구조하지 않고 외면했다”는 보도가 있었다. 한 인터넷 커뮤니티에 현장을 목격했다는 사람의 글이 실렸는데, 다수의 매체가 확인 취재 없이 기정사실로 보도했고 댓글 공방이 치열했다. 며칠 뒤 일부 언론의 팩트체크 결과, 잘못된 보도임이 드러났다. 서울교통공사의 CCTV와 119 신고 기록 등을 통해 확인한 결과, 젊은 여성이 지하철 객차에서 갑자기 쓰러진 것은 사실이지만 남녀를 가리지 않고 적극적으로 신고와 구조에 나섰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하지만 팩트체크 보도는 애초의 선정적인 미확인 오보와 달리 널리 알려지지 않았다.
사실이 아닌 커뮤니티 게시글을 확인 없이 선정적으로 보도한 언론에 일차적 책임이 있지만, 이번 일은 한국 언론에서 예외적인 경우가 아니라 일상이자 관행에 가깝다. ‘범죄 보도’는 공동체에 대한 주요 정보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언론의 공익적 기능으로 인정받는다. 언론은 사회의 밝은 모습보다 어둡고 감춰진 모습을 집중적으로 보도하는 고발자의 역할을 내세우며 스스로 권력과 부패의 감시견임을 자임한다. 언론이 고발과 탐사보도로 사회의 음습한 부분을 드러내는 데 집중하는 만큼, 자연히 언론에는 사회의 긍정적 현상에 대한 보도보다 부정적 현상에 대한 보도가 압도적으로 많다. 언론은 부정적 뉴스에 대한 강한 편향성을 지닌다.
‘방관자 효과’ 탄생의 진실: 방관자는 없었다
언론에 보도된 사건을 통해 널리 알려진 ‘방관자 효과’라는 말이 있다. 1964년 3월 13일 새벽 3시 뉴욕시(퀸즈)에서 28살 여성 캐서린 제노비스(Catherine Susan Genovese)가 집 앞에 주차하고 귀가하다가 강도의 칼에 찔려 숨지는 일이 발생했다. 제노비스는 30여 분에 걸쳐 세 차례나 칼에 찔리며 애타게 구조 요청을 했지만, 목격자 38명 누구도 도움에 응하지 않았다는 충격적 뉴스가 사건 2주 뒤 뉴욕타임스를 통해 대대적으로 보도됐다. 3월 27일 뉴욕타임스는 1면에 <살인을 목격한 37명은 경찰에 신고하지 않았다>는 제목으로, 피해 여성이 세 차례 칼에 찔리는 것을 38명의 시민이 30여 분간 지켜만 보고 있었다고 보도했다. 여성의 끔찍한 비명이 들린 30분 뒤에야 그중 한 사람이 경찰에 신고했지만, 이미 늦었다. “나는 관여하고 싶지 않았다”라는 이 신고자의 고백은 전 세계 언론에 대대적으로 보도되며, 대도시의 위험한 익명성을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로 자리 잡았다. 이 사건은 ‘제노비스 현상(Genovese syndrome)’, ‘방관자 효과(bystander effect)’라는 단어를 만들어냈다. 오늘날 대부분의 심리학과 범죄학 교과서에 실려 있는 사례다.
2021년 3월 국내 출간된 《휴먼카인드(Humankind)》는 제노비스 사건에 대한 충격적 진실을 알려준다. 기자라면 눈을 뗄 수 없게 만드는 대목이다. ‘38명의 목격자’ 대부분은 잠을 자고 있거나 해서, 제노비스가 칼에 찔려 비명을 지른 새벽 3시 20분 밤거리에서 일어난 일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 ‘38명의 목격자’는 경찰 조사를 받은 모든 사람의 목록에서 나온 숫자일 뿐이고, 기껏해야 잠결에 무슨 소리를 들은 사람들이었다. 제노비스는 수차례 칼에 찔려 숨졌지만, 비명을 듣고 그를 돕기 위해 길에 나선 이웃 주민의 품에 안겨 숨을 거두었다. 제노비스의 살인범은 좀도둑을 경찰에 신고한 목격자 두 명의 개입 덕분에 체포됐다. 살인사건을 지켜본 38명의 ‘방관자’는 없었다. 이처럼 살인사건의 진실은 방관자 효과를 전 세계에 알린 언론 보도와는 딴판이었다. 그렇지만 진실은 언론에 전혀 보도되지 않았다. 방관자 효과를 만들어내기 위해 살인사건이 극적으로 편집되고 강조돼 보도됐을 따름이다.
《휴먼카인드》의 저자 뤼트허르 브레흐만(Rutger Bregman)은 네덜란드의 대표적인 저널리스트이자 역사학자로, 광고료 없이 후원제로 운영되는 혁신적 독립언론 드코레스폰던트(De Correspondent)의 기자다. 심층 보도 전문 언론인이자 역사학자답게 브레흐만은 널리 알려진 사건들의 진실을 직접 취재와 사료 조사를 통해 재조명하고 반전을 이끌어낸다.
알고 보면 ‘친절한 인류’
1954년 발표된 영국 작가 윌리엄 골딩(William Gerald Golding)의 소설 《파리대왕(Lord of the Flies)》은 1983년 노벨문학상을 받은 세계적 베스트셀러이자 20세기의 고전으로, 30여 개 언어로 번역돼 수천 만 부가 팔린 책이다. 비행기가 태평양에서 추락해 무인도에 표류하며 살게 된 한 무리의 영국 소년들이 민주주의와 자치 체제를 구축하고 야생에서 생존 투쟁과 갈등을 겪는 것을 소재로 한 작품이다. 빼어난 사실주의적 서사를 통해 인류의 본성에 대한 근원적 질문을 던졌다는 게 이 작품에 노벨문학상이 수여된 배경이다.
제2차 세계대전의 참상을 겪은 인류는 이성에 대한 신뢰를 접고 인간의 본성에 대한 본질적 질문을 마주해야 했다. 전쟁 기간 벌어진 아우슈비츠의 잔혹함은 인류 역사에서 미치광이들에 의해 저질러진 예외적 사건인가, 아니면 인간의 깊은 본성 속에 감춰져 있던 성향이 전쟁이라는 상황에서 자연스럽게 드러난 것인가라는 물음이다. 《파리대왕》에서 소년들은 이상과 낙관을 신뢰하며 민주적 체제를 출범시키고 운영하지만 결국 무질서와 파탄으로 혼란을 겪고 다수가 비극적 죽음을 맞는다. 자연 상태의 인간은 장 자크 루소(Jean Jacques Rousseau)가 주창한 것과 달리 결국 혼란과 비참한 상황에 이르게 된다는 메시지를 남기는 작품이다. 《파리대왕》은 잘 만들어진 이야기를 넘어 인간의 본성이 선하지 않다는 토머스 홉스(Thomas Hobbes)적 세계관을 강력히 지지하는 사실주의적 서사로 여겨졌다.
인간 본성에 대한 루소와 홉스의 상반된 학설은 사상과 철학은 물론, 각종 법률과 교육시스템 등 근대 사회 제도의 근간을 이루는 토대였다. 《휴먼카인드》의 저자 브레흐만은 저서에서 홉스적 견해를 부인하며, 인간이 자연 상태에서 본래 악하거나 이기적인 존재가 아니라고 역설한다. 오히려 사람은 자연 상태에서 자발적으로 협력하고 선행을 베푸는 공존과 공감의 존재인데, 그동안 권력자들과 언론에 의해 진실이 잘못 전달돼 왔다고 주장한다. 브레흐만이 근대 법률과 사회 제도의 사상적 근거를 제공한 홉스적 성악설에 맞서 논지를 펼쳐나가는 방법은 독특하다. 어떠한 주장과 논리의 근거를 제공한 역사적 사건과 그 실체에 대한 추적과 접근을 통해 진실을 밝혀내고, 이를 통해 해당 주장을 공박하는 방식이다. 팩트를 좇는 탐사 저널리스트의 방법이자, 객관적 사료를 통해 실체적 진실에 가까운 해석을 해내려는 역사학자의 태도다.
책에서는 탐사 저널리스트로서 브레흐만의 접근 방식과 논리 전개가 생생하게 펼쳐진다. 브레흐만은 골딩이 《파리대왕》에서 등장시킨 사례가 실제 세계에서는 어떻게 진행됐는지 유사한 사례를 찾아내 사건의 주인공들을 직접 취재한다.
브레흐만은 1966년 10월 6일 자 오스트레일리아 신문 디에이지(The Age)에서 폴리네시아 제도의 무인도 아타섬에 표류해 15개월 동안 야생 환경에서 생활하다 극적으로 생환한 소년 여섯 명의 이야기를 다룬 기사를 찾아낸다. 브레흐만은 사건 발생 뒤 50여 년이 지난 시점에서 사건의 주인공인 소년들과 그들을 구해낸 선장을 직접 찾아가 현실에서 《파리대왕》이 어떻게 진행됐는지 상세한 이야기를 책에서 펼쳐놓는다. 야생 상태에서 소년들은 난관을 만났지만, 소설 《파리대왕》과 달리 서로 거짓말과 모함, 사기에 빠져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 상태로 살지 않았다. 무인도에서 소년들은 15개월 넘게 야생의 불씨도 꺼뜨리지 않았으며 서로 이타적으로 행동하고 협력하며 버틴 끝에 건강하게 구조됐다는 게 실화다.
브레흐만은 현실 속 인간은 《파리대왕》이나 언론의 ‘방관자 효과’와 달리 공감을 통해 상호 협력적으로 살아가는 존재임을 역설한다. 책의 제목 《휴먼카인드》는 ‘친절한 인류’란 뜻을 담고 있으며 부제 ‘A Hopeful History’는 ‘감춰진 인간 본성에서 찾은 희망의 연대기’로 번역됐다.
부정 편향 이용하는 언론
스티븐 핑커(Steven Pinker)의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는 역사 속 폭력이 지속적으로 감소해왔음을 역설하고, 한스 로슬링(Hans Rosling)의 《팩트풀니스》는 사회 통념이나 일반적 인식과 달리 개인과 사회적 삶의 현실이 과거에 비해 크게 개선돼 왔음을 주장한다. 역사 속에서 인류의 삶이 나아져왔다고 주장한다는 점에서 《휴먼카인드》도 궤를 같이한다. 그러나 이 책의 가치는 인간의 선한 본성을 다양한 증거와 논리로 역설한다는 데 있지 않다. 이 책의 두드러지는 가치는 역사학자이자 탐사 저널리스트로서 그가 동원하는 팩트체크를 통한 방법론과 논증, 그리고 언론의 역할에 대한 그의 논변이다.
‘방관자 효과’의 실례가 된 캐서린 제노비스 살인사건, 《파리대왕》의 사건이 실세계에서 진행된 사례를 추적 보도해 실제의 상황은 알려진 것과 사뭇 다르고, 이는 인간 본성이 사악한 게 아니라 어려움 속에서 자발적으로 협력하고 이타적으로 행동했다는 것을 보여줬다. 《휴먼카인드》는 지금까지 널리 알려진 사건과 실험들, 언론 보도가 진실과는 상당한 차이가 있음을 다양한 증거를 통해 입증한다. ‘루시퍼 효과’로 불리는 스탠퍼드대 감옥 실험, 스탠리 밀그램(Stanley Milgram)의 전기 충격 실험, 이스터섬의 남벌과 몰락 등 인간의 어리석음과 사악한 본성으로 알려진 사례와 실험들이 실제로는 연출되거나 잘못 해석된 ‘엉터리 사례’였음을 역설한다.
특히 그는 언론인으로서, 이러한 사건의 보도와 그릇된 인식에 언론의 영향이 핵심적임을 강조한다. 뉴스가 협력과 평화의 사례를 외면하고 범죄와 전쟁을 집중적으로 보도하기 때문이다. 언론과 권력은 공동체와 개인의 선한 행동을 외면하고 사악하고 폭력적인 사건을 집중적으로 부각시켜, 인간 본성과 사회에 대한 왜곡된 인식을 만들어내어 공동의 이익을 추구하는 관계다. 권력 집단은 권한 유지와 통제력 정당화를 위해 인간 본성의 사악함을 구조적으로 요구한다.
인간 두뇌는 본디 부정적 사건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도록 진화한 ‘부정 편향’을 지녔고, 주어진 정보의 영향을 받는 ‘가용성 편향’을 갖고 있다. 제공되는 뉴스 대부분이 부정적인 데다, 부정적 뉴스에 민감 반응하는 뇌의 구조상 ‘부정적 뉴스’는 점점 많아지게 되는 구조다. 일반적 보도 관행에서도 미담 기사나 긍정적 평가를 내보내는 기사는 보도 주체에 부담스러운 일이다. 미담의 주인공으로 보도된 취재원이 실제로는 사악한 사람이거나 미담 자체를 만들어낸 경우도 흔하다. 언론의 처지에서 미담과 긍정 보도는 그에 어긋나는 모든 가능성을 방어해야 하므로 기본적으로 막아내기 어려운 일이다. 이에 반해 범죄 보도와 비판 보도는 과도한 방어의 준비 없이도 작은 사례 하나만으로 얼마든지 보도가 가능한 일이다. 보도하는 쪽에서 투입 자원 자체가 차이 나기 때문에 언론엔 비판적, 부정적 보도가 주를 이룬다.
《휴먼카인드》에서 브레흐만이 펼치는 사례와 논리는 빈틈도 적지 않다. 제1차 세계대전 당시의 크리스마스 휴전이나 제2차 세계대전 시 폭격에 맞선 런던과 드레스덴 시민들의 차분한 대응 등 이례적 사례를 통해 인간 본능이 선하거나 평화를 추구한다는 논리로 확장하는 것은 일반화의 오류로 보인다. 하지만, 브레흐만이 책에서 탐사보도적 기법으로 기존의 통념을 부수고 언론의 부정 뉴스 편향에 쏟아내는 날 선 비판은 언론계 종사자가 귀 기울이고 배워야 할 외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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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노인이 손자에게 이야기한다. “나의 내면에서는 싸움이 벌어지고 있다. 두 마리 늑대의 처절한 싸움이다. 하나는 악이다. 분노에 차 있고 탐욕스러우며 질투가 심하고 교만하고 비겁하다. 다른 하나는 선이다. 평회롭고 타인을 사랑하고 겸손하며 정직하고 신뢰할 수 있다. 너의 내면에서 두 마리의 늑대가 싸우고 있다. 다른 모든 사람도 마찬가지이다.” 잠시 뒤 손자가 “어느 쪽이 이기냐”고 묻자 노인은 미소를 지으며 답한다.“네가 먹이를 주는 쪽이지”
“공감은 세상을 비추는 선한 태양이 아니다. 스포트라이트, 즉 집중 조명이다. 또한 그것은 당신의 삶에거 특정한 사람이나 집단을 골라내고 당신이 한줄기 빛에 가득 담긴 감정을 모두 빨아들이느라 바쁜 동안 나머지 세상은 어둠속으로 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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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뤼트허르브레흐만> 휴먼카인드
엄청 읽고 싶은 책이었는데 밀리에 없길래 바로 종이책으로 구매 갈긴 휴먼카인드 ^0^ 책 띠지에는 사피엔스/이기적유전자에 도전하는 책이라고 적혀있는데 실제로 사피엔스랑 같은 의견을 피력하는 부분이 많아서 그렇게 도전할 정도의 책은 아닌듯.. (이기적유전자에 도전하는 책은 맞는듯) 어쨌든 이 책은 인간은 악하다라는 나의 오만 편견을 박살내 준 책이고 또 엄청 엄청 재밌게 봐서 내 인생 책 top 10 에 드는 책이다! (인간에 대한 관심이 높고 심리좋아하면 재밌을듯) 개인적으로 이기적유전자는 좀 허무해서 그저그랬고 사피엔스와 함께 보면 좋을 책이라 추천 한다. 따봉
인간은 선한 존재일까? 악한 존재일까? 사피엔스에서 현 인류 조상 사피엔스는 제일 잔인하고 그래서 살아남은 인류라고 말한다. 인류대학살을 거침없이 자행했고, 또 이들의 자손인 우리는 오만 범죄, 전쟁, 환경파괴를 일삼는 이기적인 존재라는 것이다. 이게 바로 요즘 모든 사람들이 생각하고 있는 인간에 대한 본성이다. '본성은 악하다, 인간은 변하지 않는다.' 나도 인간은 악한쪽에 가깝다는 생각이었으나 이 책을 읽고 생각이 좀 바뀌었다.
뤼트허르브레흐만은 전공인 역사학, 경제학, 심리학, 생물학, 인류학, 고고학을 넘나들며 입체적이고 포괄적인 논지를 펼치고 있다.
그는 우리가 알고 있었던 사건이 알고보니 과장으로 가득한 오보였거나 인간은 악하다고 결론난 수 많은 실험들이 연구자들에 의해 과정이 조작된 경우였거나 전장의 군인들이 적을 겨냥해 총을 쏘지 않으려 노력한다는 통계를 제시하며 자신의 주장을 관철시킨다.
물론 그가 인간은 선하다라고 생각하는 편향을 가지고 있기도 하지만 그가 제시하는 실험결과의 진실 통계는 사실임이 틀림없다.
인터넷에 난무하는 부정적인 자료들과 소식은 우리에게 아무 도움도 되지 않는다. 또한 그는 인간이 선하다고 믿고 서로 신뢰하는 사회를 구축하면 지금과는 또다른 새로운 미래가 열릴 것이라고 말하는 데 이 부분이 인상깊었다. 그는 또 서로 믿어야 하며 내가 누군가를 신뢰하면 결국 모든 진실은 밝혀진다. 예를 들면, 사기당한 사실, 물건을 써보니 알고보니 허위광고 였다는 사실 기타등등 그러나 누군가를 신뢰하지 않고 살기로 결정하면 결국 나는 아무것도 모른상태로 남는다. 누군가를 믿었을 때 속았다면 나는 가끔 속임수에 넘어갈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면 그만이다. 우리가 평생 다른 사람을 믿는다는 사치에 지불하는 아주 조그만 대가라고 말한다.
인상깊은 구절이 있는데 바로 노르웨이 감독관이 말한 아래의 말이다.
사람들을 쓰레기처럼 대하면 그들은 쓰레기가 될 것이다. 인간처럼 대하면 그들은 인간처럼 행동할 것이다. (442p)
나는 과연 타인을 우호적으로 보려고 노력했었나? 주홍글씨를 새기면서 그들을 평가하고 있었지 않을까? 타인을 인간으로 대하고 이해를 해보려고 노력해야겠다. 이 책에서 세월만큼 오래된 진리가 있는데 것은 바로 더 많이 줄수록 더 많이 가지게 되는 것이다. 라고 말한다. 내가 많이 퍼주고 받는 것을 계산하지 말야겠다 생각해본다.
우리가 스스로의 참호 속에 숨기면 현실을 볼 수 없게 된다. 소셜미디어와 가짜 뉴스로 증오를 유발하는 소수의 사람들은 전 인류를 대의할 수 없다. 인간이 선하게 태어났다고 믿는 것, 평화와 용서를 믿는 것은 감상적이고 순진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용감하고 현실적이다.
우리가 인터넷세상이나 편협한 세상에 갇히면 안되는 이유다. 요즘은 냉소주의적인 것이 시니컬해보이고, 이성적이고 그것이 쿨함으로 여겨지는데 과연 그게 쿨한 것이 맞을까?? 냉소에 빠진 인간이 사회에 도움되거나, 내 자신에게 도움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는 것 같다. 기껏해야 내가 잘났다고 자위하는 정도일수도있다는 생각도든다. 나도 가끔 지나칠정도로 냉소적이게 되는데 이 책을 곁에두면서 평화와 용서를 다시한번 마음에 새겨봐야겠다. 물론 이 책도 인간이 선하다는 주장에 편향된 책이기 때문에 인간은 입체적이다. 선이되고 악이될 수 있다 라는 생각을 가지면 좋을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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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세계대전 독일이 영국을 폭격한 그 당시, 영국 사람들은 약탈이 만연하기 보다 오히려 서로를 도왔다. 카오스는 존재하지 않았고, 각자 자리에서 평화로운 일상을 지키려 노력했다.
2. 뉴스는 정신 건강에 해롭다. 좋은 일 수천가지는 보도 되지 않고, 나쁜 일 하나가 중점적으로 보도되 사람들의 부정편향을 심화시킨다.
3.고대 철학가, 많은 종교에서 인간본성은 악하다라고 계속해서 주장 했었고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믿어버렸다.
4.인간은 가장 우호적인 종 중 하나이다. 실제로 우호적인 동물 종을 분석해보면, 제일 지능이 높게 진화해왔고 눈치가 빠르게 진화해왔다. 이는 인간이 가진 주요 특징중 하나이다. 가장 친화적이고 성품좋은 사람들이 자식을 갖는 현상이 수만년 동안 지속되었다.
5.네안데르탈인은 사피엔스보다 지능은 높았지만 집단으로 똑똑하진 않았다. 사피엔스는 모방을 통해 집단의 힘을 길러왔고 결국 사피엔스가 승자로 남을 수 있게 되었다.
6. 인종대학살의 경우, 문명을 접한 현대인이 원주민을 침략해 일어난 일이 대다수이다. 문명을 접하지 않은 원시시대의 인간들은 서로를 이유없이 죽이고 전쟁하는 경우가 드물었다.
7.나치 장교 아돌프 아이히만의 악의 평범성의 경우, 심리학자 스탠리 밀그랜의 단순한 추론 (인간이 생각 없이 악에 복종한다는 것)은 한나 아렌트의 깊이 있는 철학(인간은 선으로 가장한 학의 유혹을 받는 다는 것) 이 더 큰 인상을 남겼다. 내가 '선'이라고 잘못 생각한 결과 '악'을 낳는 것이다. 이유없이 악에 복종하는 인간은 많지 않다.
8. 인간의 본성은 악하다라고 믿는 편이 편리하기 때문에 그렇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9.실제로 나치 군대 경우에도 나치 이데올로기를 위해 그렇게 치열하게 전투한 것이 아니라 그들은 전우애, 자신들의 동료를 지키기위해 열심히 전쟁에 임했다.
10.실제로 인간의 다수는 본능적으로 전쟁을 혐오한다. 훈련을 통해 인간에게 상대 적군에 대한 '만들어진 경멸'을 인위적으로 주입시킨다.
11.이는 세뇌랑 같은데 악한 짓을 저지르고 있는 그 인간 당사자도 그것이 '선'이라고 믿기에 악한행동을 자행하는 것이다.
12.더 나은 세상은 공감에서 시작되지 않는다. 공감은 우리로 하여금 덜 용서하게 만든다. 우리가 피해자와 더 많이 동일시할수록 적에대해 더 일반화/ 악마화하기 때문이다. 또한 공감은 실제로 나에게 있어 부정적인 영향을 많이 끼친다. 실험결과) 그러나 연민은 그 자체로 나에게 부정적인 영향이 없으나, 상황을 나아지게 만들 수 있다.
13.노르웨이감옥 vs 미국감옥. 엄청난 복지를 제공하는 노르웨이 감옥은 죄수를 인간으로 대한다. 그 목적은 재범율을 낮추고 사회에 다시 돌아가게 만드는 것인데 실제로 노르웨이의 경우 재범율이 50프로 이상 감소했으며 성공적인 케이스로 평가받는다. 반대로 미국의 경우 범죄율은 계속해서 증가하고 있으며, 재범율 역시 높다. 실제로 미국 교도관이 노르웨이를 방문했을 때 처음에는 부정적이었으나 곧 미국의 교도소가 얼마나 잔인한 지 또, 재범율을 줄이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미국 교도소를 바꾸려 노력했었다. 실제로 노르웨이 감옥의 경우 1인당 들어가는 비용은 높지만, 재범이 낮기 때문에 사회적 비용은 현저하게 줄어들었다. 희생자의 아픔을 생각하면 맞는 것인가 싶지만 결국 목적은 인간에 대한 단죄보다 그들이 사회에 나왔을 때 또다른 희생자를 막기위한 처절한 노력이라고 볼 수 있다. 이는 사회 구성원의 합의가 이뤄져야 할 듯 하다.
14. 평화로웠던 수렵채집시대를 거쳐 농업혁명이 발생했고, 현대로 들어와 문명이 근대화 되면서 우리는 지켜야할 소유물이 많이 생겼다. 소유물을 지키기위해 계급이 발생했고, 편견이 만연해졌다. 가부장제도 이 당시 생겨났으며 원래의 모두가 평등했던 인간은 이제 유토피아 속 신화로 남게되었다. 인간은 이제 내 것을 뺏기지 않기 위해 '혐오'라는 감정이 심화되었고 이는 외국인 혐오, 성소수자 혐오, 난민혐오등 나와 다른 이들에 대한 혐오가 만연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