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란의 근로시간 개편, 원점에서 다시 살펴볼 때
韓 지금도 장시간 노동인데 근로 연장 논의
삶 아닌 일감에 맞추는 근로는 건강에 위협
노동시간 줄여 청년취업 해결 등 새 관점 필요
근로시간 개편 논란이 혼돈 양상으로 이어지고 있다. 법정 주 40시간제인데 69시간이 언급된다. 최근엔 윤석열 대통령이 ‘주 60시간 이상은 무리’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과연 우리 노동시간 기준은 무엇인지 혼란스럽기까지 하다.
법정 근로시간 주 40시간에 당사자 동의로 연장 가능한 시간이 12시간으로 주 최대 근로시간은 52시간이다. 예전에는 토·일요일 특근은 연장노동 제한 대상이 아니라고 판단해서 주 68시간까지도 가능했던 체제였는데, 일주일은 5일이 아니라 7일이라고 바로잡은 것이다. 그래도 일의 급증에 대처하기 위해 탄력적 시간제로 3개월, 6개월 이내에 주 52시간을 맞추는 대신 64시간까지도 허용했다. 또 하루 단위 일의 급증에 대비해 선택적 근로시간 제도도 도입되어 있다.
우리는 아직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평균보다 연간 300시간 이상 일하는 장시간 노동 국가의 오명을 벗어나지 못했다. 그런데 이번 근로시간 개편은 하루 노동시간, 주간 노동시간이라는 일상의 관행을 넘어서 그 경계를 없애는 방식으로 더 유연한 제도를 제시했다. 하루 노동의 허용치도 12시간을 넘어서 하루 13시간 이상 가능하게 한다. 또 주간 경계도 탄력제로 가능한 64시간을 넘어서는 방안을 제시했다.
장시간 노동으로 인한 산재 인정 기준은 4주를 기준으로 평균 64시간, 12주 기준으로 평균 60시간이다. 이 기준이라는 것은 과로사로 당연히 인정된다는 것으로 어떤 급박한 상황에서도 절대 넘어서지 말라는 위험 신호이지, 표준적인 노동시간을 설계할 기준점은 아니다. 익사 지점이라고 표시했는데, 그 코앞까지 가도 된다는 건 아니다. 주 52시간 이상 오래 자주 일하면 위험하다. 주 60시간도 익사 위험 표지판이란 점에서 64시간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 위험 지점까지 가도록 허용하는 제도를 설계하는 것 자체가 위험한 것이다.
정부는 일이 있을 때 몰아서 하고 쉴 때 장기 휴가를 갈 수 있는, 노동자에게도 유리한 방안이라고 했다. 직장인들은 공짜 야근이 비일비재하고, 주어진 휴가도 다 못 쓰는 현실에서 교묘한 말의 잔치처럼 느꼈다. 불합리한 노동시간 관행에 비판적인 청년세대가 더 반발한 건 당연하다. 사람의 삶의 리듬에 맞추는 것이 아니라 일감의 리듬에 맞추어 몰아서 일한다는 것인데, 건강과 산업안전에 위험 요인인 것은 자명하다. 더구나 이건 일하는 방식의 혁신이 아니라 혁신적인 노동을 오히려 쇠퇴시키는 요인이 된다. 장시간 불규칙 노동에 의존하는 기업의 비용 경쟁력은 제대로 일하는 기업을 도태시킨다. 또 한편 일감의 변동에 따른 노동 관행으로 기업은 필요 인원을 최소화하고 인건비를 절감할 수 있다. 그 대가로 노동자의 건강과 생명은 위협받으며, 여유 인원을 최소화했으므로 휴가 가기는 더 힘들어질 가능성이 크다. 기업이 적정 인원을 고용하지 않기에 사회 전체적으로 고용량 감소라는 해악을 가져온다.
윤석열 정부가 노동개혁 청사진을 근로시간 제도에 맞춘 것은 쉬 이해되지 않는다. 주 52시간을 훌쩍 넘어 장시간 노동하는 체제를 유지하는 것은 혁신도 아니고 생산성 향상과 고용에도 긍정적이지 않다. 장시간 불규칙 압축 노동시간으로의 개편은 노동개혁이 의도하는 노동시장 이중 구조 해결에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으며, 오히려 노동시간 측면의 양극화를 부추길 우려마저 생긴다.
정부가 보완 대책이라면서 기존의 공허한 대책을 반복해서는 안 된다. 공짜 야근과 포괄임금제 방지 대책, 투명하고 객관적인 근로시간 기록 관리, 휴가 사용의 현실화 등이 대책에 포함되어야 할 사항이다. 개편 방안에선 향후 강구하겠다는 말로 일관했었는데 상황이 바뀌었다고 뚜렷하게 진전된 안을 당장 제시하긴 쉽지 않을 것이다. 건강권 보호 방안 등 보완 대책은 60시간 상한으로 꿰어맞춘들 충분치 않을 것이며, 이 개편 방안을 철회하는 것으로 출발점을 삼는 편이 낫다. 병 주고 약 주는 방식으로 보완되지 않기 때문이다.
충분히 긴 노동시간의 틈새를 이리저리 헤집는 방식으로 근로시간 개편 방안을 다루지 않기를 바란다. 기준점을 지키고 허용된 예외를 활용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인식과 관행이 뿌리내릴 때 우리는 장시간 노동 체제와 결별할 수 있다. 69시간이든, 60시간이든 52시간 넘는 근로시간 얘기는 이제 그만할 필요가 있다. 그 대신 노동시간 관련 설계를 새로운 방향으로 전환하자. 장시간 노동 체제는 분명 우리 사회의 해악이지만 청년실업 해결의 기폭제로 삼을 기회이기도 하다. 실노동시간 단축을 통해 고용 문제 해결을 위한 세대 간 연대의 계기로 전환해야 한다.
김성희 고려대 노동대학원 교수·산업노동정책 연구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