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마리아 바이다(1922년 2월 1일 생~2002년 8월 30일 사망)
 과연 독일군 15명을 순식간에 도륙한 사람의 얼굴. 이사람 남편은 고생깨나 했겠다.
개전 당시 북코카서스 전선군의 172보병사단 2대대의 간호사였으나, 동부전선 개전 이후 동 부대의 전투병으로 지원하오. 1942년 5월 세바스토폴 공방전 당시 보병으로 싸우다가 포로로 잡혀간 자기 부대의 장교와 동지들을 구하러 뛰어들었다가 기관총좌를 포함하여 독일군 한 가운대에 고립되오. 그녀의 동료들의 증언에 따르면 "야삽, 총검을 휘두르며 미친듯이 날뛰다가" 독일군 15명을 순식간에 사살하고 중상을 입어 피를 줄줄 흘리며 빠져나왔다고 하오. 그 공적으로 1942년 6월 20일, 소연방 영웅 칭호와 함께 금성훈장, 그리고 소연방 최고 훈장인 레닌 훈장을 수상하오. 1942년 7월 12일, 전투중 부상을 입어 포로로 잡히나 슬라부타와 라벤스브룩에서의 혹독한 수용소 생활을 견디고 연합군에게 해방었소. 전후에는 세바스토폴에 거주하며 시의원으로 활동했고, 1972년에는 세바스토폴 시에서 명예로운 시민칭호를 받았소.
2. 카티야 부다노바 (1916년 12월 7일 생~1943년 7월 19일 사망)

밤의 마녀 트리오 레드. 또 '혼자서 적진에 뛰어들어 마구마구 도륙해서 이름을 높였다'식의 에이스야.... 러시아 여자들을 무섭구만.... 후덜덜
스몰렌스크의 평범한 농부집안에서 태어나 모스크바의 비행기공장에서 일하는 중 비행에 관심을 가지게 되어 항공클럽에서 활동하여 1937년에는 이미 그 클럽의 항공 교관이었으며 에어쇼에도 종종 등장했소. 개전 즉시 공군에 지원해 여성 비행대, 그 유명한 밤의 마녀 전투단 제586 전투기 연대에 배치되오.
스탈린그라드 전투 무렵, 제437 전투기 연대로 배속되어 맹렬한 조종실력을 보이기 시작하였소. 10월 6일, 야크-1을 몰고 13기의 융커스88 편대에 단독으로 뛰어들어 1기를 격추하여 첫 스코어를 올렸소. 11월에는 Bf109 2기와 융커스88 1기를 추가격추 하였고, 이어지는 스탈린그라드의 격전에서 꾸준히 격추수를 늘려갔소.
1943년 1월, 절친한 친구이자 또다른 소비에트 공군의 탑 여성 에이스였던 리디아 리트뱌크와 소련 제8공군의 제73 근위 전투기연대에 배속되었으며, 그 맹렬한 전투방식을 인정받아 '편대 비행을 신경쓰지 않고 솔로플레이를 해도 좋다'라는 허가를 받았으며, 2월 23일, 적성 훈장을 수상하오.
1943년 7월 19일, 또다시 혼자서 메서슈미트 3기 편대에 뛰어들어 한기를 격추했으나, 본인도 격추당하여 전사했소. 생전에 적성훈장과 조국전쟁훈장을 2번 수상했으며, 사후 소연방 붕괴 이후 1993년 러시아 연방 영웅 칭호를 받았소.
주: 588 야간 폭격 비행연대의 별명인 "밤의 마녀"(독어 : Nachthexen, 영어 night witches)는 독일군들이 붙인 별명이오..그들이 마주치던 독일군 비행단이..당시 슈퍼에이스들이 몰려있는 최정예 JG-52였는데...그곳의 제2그룹 비행대장인 요하네스 슈타인버그(당시 101기격추)는 1942년, 9월 2일자 일기에
"우리를 그렇게 괴롭히던 소련 조종사들이 여자란 사실을 우리는 믿을 수가 없었다. 그녀들은 아무것도 두려워 하는게 없는 것 같다. 그들은 밤이면, 저속 복엽기를 타고 날아왔다. 한동안 우리는 그녀들 때문에 밤잠을 잘 수가 없었다."
라고 쓰기도 했소
3. 마리아 돌리냐(1922년 12월 18일 생)
 또다른 밤의 마녀대원
우크라이나 농부의 딸이었으며 아버지는 적백내전중 다리를 하나 잃은 적군의 병사였소.
어렸을때 부터 비행에 관심이 많아 1939년에는 이미 케르손 비행학교를 졸업하여 엥겔스 공군사관학교에 지원했었소.
개전 직후 동원되어 Pe-2 폭격기의 파일럿이 되어 꾸준히 전공을 올리며 대위이자 연대장까지 오르게 되오.
1943년 6월 2일, 출격중에 대공포에 맞아 엔진 하나가 파괴되고 기체에 불이 붙었으며 호위기가 적 요격기와 전투중 사라졌음에도 불구하고 목표에 할당된 폭탄을 떨구고 왔으며 귀환중 기체가 반쯤 박살났으며 여섯기의 요격기가 달라 붙는데도 불구하고 메서슈미트 한기와 포커볼케 한기를 격추하고 승무원 전원 무사귀환 하였소. 종전까지 제125 연대의 연대장이었으며, 종전 이후 소연방 영웅 칭호와 함께 레닌 훈장 1회, 붉은 기장 훈장 2회, 대조국전쟁 훈장을 1회 수상하였소.
4. 리디아 '릴리야' 리트바야크 (1921년 8월 18일생~1943년 8월 1일 사망)
 밤의 마녀 트리오 블루. 한 많은 일생의 소녀.
1921년 8월 18일 모스코바 태생. 14세에 비행클럽에 들어가 15세 처음 비행기를 몰았으며, 1930년대 후반에는 이미 비행클럽의 교관이었다. 개전 직후 공군에 자원하나 경험 부족으로 거절당하나. 그러자 전쟁 전에 비행시간 100시간 이상이라는 경력을 들이대어 결국 밤의 마녀 전투단, 586연대에 배속되었다.
1942년 7월, 사라토프에서 첫 비행에 나섰고, 스탈린그라드 지역의 공방전에서 1942년 9월 13일 La-5를 몰며 JU-88폭격기 한기를 격추해 첫 격추가 되었소.그리고 이날 함께 격추당한 독일군 BF-109전투기의 파일럿이 포로가되어 릴리야를 직접만나게 되었는데 자신을 격추시킨 상대가 여자라는 사실을 알고 경악했다는 이야기도 전해지오 그 이후 제9 근위전투기연대, 1943년 1월 296 전투기 연대를 전전하며 차곡차곡 격추수를 늘려갔소. 1943년 2월 23일, 그녀는 적성훈장을 받았으며, 이어진 격전으로 두차례부상당하고 두차례 불시착하였소.
그녀는 조종석 바로 아래 양쪽 동체에 하얀 백합을 그려넣었는데, 종종 이것은 장미로 혼동되었고, 그녀는 "백장미"라는 별명을 얻게 된다. 릴리야는 꽃들을 무척 좋아했다고 전해지는데, 들꽃을 꺾어서 자신의 전투기안에 꽂아 두고 임무 비행을 나가기도 했다. 릴리야의 전투기 정비사의 말에 따르면 릴리야는 노란색 장미가 그려진 엽서를 전투기 조종판넬에 붙이고 다녔다고 한다.
릴리야의 전투기에 그려진 하얀 백합은(장미라고 오해한) 독일군 조종사들에게 알려졌고,
"스탈린그라드의 백장미" 라는 별명을 얻었다
1943년 초, 중위로 승진하여 또다른 소비에트 공군 제 73 근위전투기연대의 에이스, 알렉세이 솔로마틴과 결혼했다. 소비에트 공군 전체의 축복을 받은 결혼이었으나 남편은 혼인 후 얼마 안가 1943년 5월 21일 격추당하여 전사. 전시와 평상시를 안가리고 말 많은 프라우다를 비롯하여 언론은 이에 대하여 크게 떠들며 리디아를 칭송했으나, 그녀의 정신적 피로는 극에 달하였다.
괴로우면서도 치열한 전투로 나날을 보낸중, 1943년 8월 1일, 귀환하는 슈투르모빅 공격기들을 호위하는 임무를 수행하고 있을때 독일기들이 기습해왔고 이미 독일 조종사들에게 명성이 높았던 그녀인지라, 그녀를 확인한 독일의 Bf109전투기들은 총 8기가 한꺼번에 그녀의 야크 전투기를 공격했다.
8대의 공격으로 벌집이된 스탈린그라드의 백장미는 끝내 추락하고, 그녀의 시신과 전투기는 찾을 수 없었다 그때 그녀의 나이는 겨우 21세. 그녀가 포로로 잡혔는지 사정을 몰라 그녀는 소연방 칭호를 받을수 없었으나, 1979년 격추된 장소인 드미트로프카 근처에서 격추와 동시에 사망하였음이 밝혀졌고, 1990년에서야 고르바초프에게서 소연방칭호를 받았다.
5. 루드미야 파블리첸코 (1916년 7월 12일 생~1974년 10월 10일 사망)
 1941년 6월 22일에 독일군의 전면적인 소련 침공으로 독소전이 발발했을 때, 루드밀라 파블리첸코는 역사학 전공의 키에프 주립대학생이었다. 그녀의 많은 동급생들과 마찬가지로, 파블리첸코도 독일군에 대항하기 위하여 붉은 군대에 지원했다. 보충병 담당 장교는 처음에 파블리첸코의 잘 다듬어진 손톱과 패셔너블한 옷차림, 헤어스타일을 보고 굉장히 놀랐다(생각해 보라. 어떻게 전쟁기간에...?). 파블리첸코는 장교에게 소총을 들고 싸우고 싶다고 말했다.
1941년 8월에 파블리첸코 일병은 '벨리아예프카'라는 마을 근처의 언덕 방어전에서 2명의 적을 사살하는 첫 전과를 올렸다. 그녀의 무기는 4배율의 PE스코프를 장착한 모신/나강 M1891/30 저격소총이었다. 그 후 1942년 6월 독일군의 박격포탄에 부상을 입을때까지 그녀가 저격한 독일군의 수는 309명이었으며
소련군 지도부는 이 상처입은 저격수에게 잠수함을 타고 세바스토폴을 떠날 것을 명령했다. 파블리첸코는 절대 전사해서는 안 될 영웅이 되어 있었던 것이다. 한 달이 채 못 되어, 그녀는 미국의 루즈벨트 대통령과 그의 영부인 엘레노아 루즈벨트 여사에 의해 백악관에 초청을 받은 첫 번째 소련 시민이 되었다. 이 때 파블리첸코는 미국과 캐나다의 여러 도시를 여행하면서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했다. 이후 루드밀라 파블리첸코는 다시 전선에 돌아가지 않았고, 교관이 되어 2차대전 종전까지 수백명의 저격수를 양성했으며1943년 10월 25일에는 소련영웅금성훈장을 수여받았다. 종전 후, 영웅은 학업을 마치기 위해 키에프 주립대학에 돌아왔다. 1945년에서 1953년까지는 소련해군 본부의 수석 연구원의 조수로 일했고
이후에도 많은 국제 회의에 참석했고, 소련 노병 위원회에서도 활동했다. 루드밀라 파블리첸코는 1974년 10월 10일에 58세의 나이로 사망했고, 그녀의 시신은 모스크바의 노보데비치에 묘지에 안장되었다.
6. 마리에 일랴코바 (1920년 12월 3일생)
체코슬로바키아계 여성으로, 체코인 가정에서 우크라이나의 호로덴카에서 출생. 소련의 체코슬로바키아 망명인들로 구성된 체코 독립 전투대대에 1942년 3월 지원했으며, 브줄루크의 3개월 저격연수를 받았소.
1943년 3월 8~11일동안의 소코로포 전투에서 첫 실전을 경험했으며, 그때 독일군 7명을 사살하여 처녀전투에서 에이스가 되었소. 그 이후 체코슬로바키아와 소련군의 저격교관으로 활약했으며, 종전시에는 확인된 킬수가 30이었으며, 소련의 적성훈장과 체코슬로바키아 십자훈장을 받았소.
종전 이후에는 의학을 공부하여 프라하의 군종합병원에서 군의관으로 복무하였고, 대령의 계급까지 올라 현재는 체코의 브르노에 살고있소.
7. 로자 샤니나 (1924년 생~1945년 1월 28일 사망)
 공군에는 밤의 마녀가 있다면 지상에는 여성 저격수들의 활약이 혁혁하오.
유년에 대하여 알려진 바는 없고, 확인된 킬수는 54킬이며 그중 12킬은 빌뉴스 전투 한번에서 사살한 수.
군 생활 이전에는 아르크항겔스크의 교육대학을 다니며 유치원에서 선생을 하다가 포돌스크에 있는 저격학교에 들어갔다는 것 정도가 알려져 있소. 선생님은 저격수인가..... 후덜덜. 1943년 6월 22일, 붉은 군대에 지원하여 1944년 4월 2일, 184 보병 사단에 배속되어 여성 저격소대에 배치되었소. 한번은 너무 전방에 있다가 대대장이 바로 후방으로 돌아오라고 하자, "전투가 끝난 직후 돌아오겠습니다"라고 말했으며, 이 대사는 훗날 니콜라이 주라볼프라는 작가의 책 제목이 되오. 릭하우 인근의 전투에서 전사했으며, 며칠 후 군 복무 당시 일기장이 출판되었고, 아르크항겔스크에 있는 도로와 마을들이 그녀의 이름을 따 개명되었소. 4명의 형제가 있었으며 그중 한명만 전쟁에서 살아 남았소. 보시다시피 알려진게 매우 적으며 종적이 묘연한 여성.
이건 정말 극히 일부분. 여자가 남자에 비해 명백하게 불리한 최전선 알보병만 빼고 전차, 항공, 해군, 저격, 척후, 후방, 등 전 방면에 걸쳐 소련군에는 여자가 활약하지 않은 분야가 없소. 대단하오..
참고로 역대 세계의 여성저격수 랭킹
남/여 통합 1위는 '하얀 사신(White Death)' 핀란드의 시모 하이하 542킬 물론 남자.
1위 루드밀라 M.파블리첸코 소련 309킬
2위 나탈리 V.코프쇼바 & 마리아 폴리바노바 소련 300킬 (2인1조팀 교대로 저격) 3위 아이나 세묘뇨프냐 무드레스토바 소련 143킬
4위 타찌아냐 이잔토브냐 코스티리냐 소련 120킬
5위 N.P.페트로바 소련 107킬
6위 엘리자베타 미로노바 소련 100(+) 킬
7위 알리야 몰다그로바 소련 91킬
8위 니나 로콥스카냐 소련 89킬
9위 리디아 구도판쩨바 소련 76킬
10위 알렉산드라 실랴코바 소련 63킬
11위 로자 사니나 소련 54킬
12위 마리에 얄로바 체코 30킬

랭킹아래의 사진은 위에서부터...
1위 루드밀라 M.파블리첸코 6위 엘리자베타 미로노바 11위 로자 사니나 12위 마리에 얄료바
대부분이..고등학생,대학생1~2학년나이에 전쟁에 참전해서 그런지,,어린티가 좀 나죠..
출초:http://kr.dcinside11.imagesearch.yahoo.com/zb40/zboard.php?id=worldwar2&no=15527
그외 추가
2차대전 소련의 영웅 칭호를 받은 여군들 목록
조종사 : 34명 정찰병 : 1명 정치장교 : 2명 위생병 : 15명 기관총수! : 3명 스나이퍼 : 6명 통신 : 2명 탱크병! : 2명 파르티잔 : 27명
솔직한 심정으로 소련 여군들 대단하다고 밖에... 저 위생병들도 단순히 간호만으로 영웅칭호를 받은건 아니고 주로 최전선 까지 가서 부상한 병사들을 업어온걸로 받은거.. 심지어는 치료중 전선이 다급해져서 기관총을 잡고 싸워서 받은 사람도 있어요.
이외의 유명한 여성저격수들..
바람치나 1944년 사망(25세) 단 두번의 교전으로 36Kill 기록, 그의 부대장이 죽자 대신 지휘하여 성공적인 공격을 이끔. 44년 부상한채로 포로가 되나 일체의 진술을 거부하고 고문끝에 총살당함
타찌아냐 I. 코스티리냐 1943년 전사(21세) 120Kill, 죽은 부대장을 대신해서 돌격을 이끌다가 백병전 끝에 전사
나탈리 V.코프쇼바(22세),마리아 폴리바노바 (20세)42년 전사 (2인1조팀) 파트너와 함께 300 kill 이상 기록, 전투중 포위당하고 탄약이 떨어지자 잡으러온 독일군과 함게 수류탄으로 자폭
알리야 몰다그로바 44년 전사 (19세) 91Kill, 저격뿐 아니라 수많은 독일 기관총 진지를 수류탄으로 폭파시켜 공격을 이끔.
뭐..1920년대생 소련남자의 20%만이 종전까지 생존했다고 하니..
아직도 그 영향으로 소련에는 인구중 여자가 더 많다고 합니다..
그런 상황이니 여성들의 활약도 필수였겠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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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무......무서워요........(저기 이것도 퍼가도 괜찮을까요??? 퍼간도에 출처남길게요...)
후덜덜~
특전사 여군들 남자못지 안다던데, 러시아는 더 후덜덜이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