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의 글 영원한 사랑(eternal love) 어쩌구 저쩌구 한 이야기에서 언급한 화가 렘피카 (Tamara de Lempicka)의 그림 몇 점을 감상하려 하는데, 워낙 이 화가의 그림들 가운데에는 원색을 즐겨 사용하고 에로틱한 분위기를 연출한 게 많아서 늙은 내게 잠시의 눈요깃감이나 될까 해서리 올려 본다.
폴란드 출신의 렘피카는 프랑스와 미국에서 주로 작품활동을 했는데, 그녀는 특히 귀족이나 부자들을 대상으로 한 세련된 장식 예술과 초상화로 유명세를 탄 데다 자신만의 양식화된 누드화로 독보적인 자리를 차지하였다고 한다.
그녀는 바르샤바에서 태어나 잠시 러시아의 뻬쩨르부르그로 갔는데, 거기서 저명한 폴란드계 변호사 렘피키(Lempicki)를 만나 결혼했다. 이후 파리로 여행하면서 그림 공부를 시작했다고 하는데...렘피카의 회화 경향은 후반의 세련된 입체주의(cubism)와 신고전주의의 스타일을 따랐는데, 특히 앵그르(Jean Dominique Ingres)의 작품에서 많은 영감을 얻었다고 한다. 그녀는 1~2차 세계대전 사이 파리에서 예술 활동과 사교 활동에 적극 참여하였으며, 1928년에는 오스트리아 제국 때부터 엄청난 부를 소유한 예술품 수집가로 이름 높았던 쿠프너(Kuffner) 남작의 정부(情婦)가 되었다는구만 글쎄, 인물 값 톡톡히 한 거라 봐야겠지? 그러니 손바닥만한 파리에서 소문이 안 난다면 그게 이상할 터, 결국 1931년 남편과 이혼했지만 그녀는 천운을 타고 난 듯 아 글쎄, 2년 뒤 쿠프너의 부인이 덜컥 죽어버렸네. 렘피카는 얼씨구나 하고 이듬해 쿠프너와 정식으로 결혼하고 이후 언론에서는 그녀를 '붓을 든 남작 부인(The Baroness with a Brush)'이라고 불렀다나 뭐래나.
1939년 2차 세계대전의 발발과 함께 남편과 함께 미국으로 이주한 그녀는 정물화 뿐 아니라 유명인들의 초상화를 그렸고, 1960년대에는 추상화도 꽤 그렸다고 하는데...2차 세계대전 이후 그녀의 작품들은 한물 갔다는 평판을 받았으나, 1960년대 후반 장식 예술(art déco)의 재발견 사조와 함께 화려하게 화단으로 귀환했다고 한다. 1974년 그녀는 멕시코로 가서 살다 사망했는데, 생전 그녀의 유언에 따라 시신을 태우고 남은 재는 멕시코에서 두 번째로 높은 산으로 늘 마그마와 화산재를 뿜어내고 있는 포포카테페틀에 뿌려졌다고 한다. 유복하게 태어나 능력 있는 신랑 만나 미모와 타고난 그림 재능으로 뭍 남자들을 갖고 놀다 이윽고는 엄청난 부자를 남편으로 두어 평생을 원도 한도 없는 화려한 삶을 불꽃처럼 살다 한 줌 재로 돌아가는 모습이라니...
2020년 크리스티 경매에서 렘피카의 1932년 작 '마조리 페리(Marjorie Ferry)의 초상화'가 2,120만 달러에 팔렸다고 하니 입이 떠억 벌어질 지경인데...여기서 놀라운 사실 두 가지! 하나는 그림 속의 여인이 누구냐는 건데 이 여인은 사실 파리에 있는 어느 카바레에 출연하는 무명 가수라는데, 이 사람이 지금 살아있다면 초상권 어쩌구 저쩌구 하면서 시끄러웠겠지? 글고 또 하나 놀라운 사실은 그녀의 딸 키제트(Kizette)가 병든 어머니를 간호하러 온 지 1년도 채 되지 않아 렘피카가 죽자 그녀가 남긴 엄청난 재산을 딸이 너무나 손쉽게 차지하게 되었다는 거다. 한 마디로 두 모녀가 엄청난 복을 타고 났다는 데엔 이견이 있을 수 없다 할 것이라. 아래 그림 중 렘피카가 독서하는 딸 키제트의 모습을 그린 그림이 나온다. 어머니는 유럽 사교계에 미인으로 알려졌더만 그림 속의 딸은 까무잡잡한 피부에 눈매가 한 성깔 하는 모습으로 보이지만, 그 엄청난 재산을 받을 관상은 아닌 듯 하구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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