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원본 메세지] ---------------------
난 외며느리다. 그런데다 시댁이 큰집이라 명절에는 일이 많다.
해마다 하는 일인데도 기분좋게 적응이 잘 안된다. 늘 '어차피 해야할 일인데 기분 좋게 해야지!'자기암시를 걸어 보지만 그 많은 일을 하고나면 자기암시고 뭐고 다 날아가 버리고 녹초가 된 몸뚱아리만 남는다.
'웃어라! 명절'에 나오는 종가집에 비하면 일도 아니지만 수라상궁인 시어머니와 무수리가 된 나는 오직 명절음식을 만들기 위해 며칠 전 부터 만나서 장보고 김치 담그고 양념거리를 다듬어 놓는다.어떻게 핑계를 대고 하루전부터 일을 해볼까 궁리를 해보지만 올해는 시댁이 인천에서 탄현으로 이사온 바람에 일하는 기간이 더 길어졌다. 5일전에 장보기(쇼핑카트 1개로는 부족할 정도),김치담그기(기본2가지 이상), 2일전에 식혜,약식,만두속,만두피반죽.하루전날은 총력전-녹두빈대떡50장(녹두는 직접 불려서 껍질을 걸러내고 방앗간에서 빻아야한다) 명태전,통북어전,파전,나물3가지(다듬어서 불리고 삶는 공정이 반드시 있다),수정과,사골국,산적,떡 썰기...가짓수는 몇 안되지만 시누이들 싸 줄 것까지 해야되니 양이 만만찮다. 하루종일 식용유 냄새에 머리가 지끈거리고 서서 일하느라 다리가 저린다. 그리고 당일은 새벽 같이 일어나서 차례 준비를 해야 한다. 우리음식은 대부분 손이 많이 간다. 씻고 데치고 볶고,기본 공정이 3가지 이상이다. 더군다나 시어머니께선 항상 손끝맛을 강조하시기 때문에 기계로 빨리 할 수 있는 것도 맛이 떨어 진다며 손으로 직접하시길 원하시고 강요하신다. 사실 맛이 훨씬 더 좋다.나도 힘들긴 하지만 가사노동에서 기계가 할 일은 엄격히 구분하는 편이다. 되도록이면 뭐든 손으로 하는데 3명이 먹는 양과 20여명이 먹는 양은 노동강도가 다르지 않은가? 어깨죽지가 따끔거리고 손목이 아리고...
일 끝나고 산사춘 1병을 사들고 집으로 갔는데 술도 먹기전에 피곤해서 골아떨어졌다. 울어라! 명절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