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서 경주를 모르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요새는 덜하지만 초등학교 수학여행 필수 코스에, 천년고도 신라의 수도로서 수많은 관광객이 오가는 지역이기 때문이다. 역사와 고고학계에선 말할 필요조차 없이 관심이 쏠려있는데다 수도권의 에버랜드/캐리비안베이와 같은 휴양 시설이 몰려있어 대구/경북권 사람들의 단골 소풍 장소이기도 하다. 아마 서울과 제주도, 부산을 제외하면 가장 관광객이 많은 곳은 바로 경주일 것이다.
한 해 천만 명이 넘는 사람이 찾고 있지만 상대적으로 연계교통이 부실하다고 평가받는다. 경주가 은근히 넓기도 하고 가볼 곳이 워낙 많아 일일이 버스를 넣어줄 수 없는 것이 현실이기 때문이다. 관광객이 그렇게 많은데도 경주시내버스를 운영하는 '천년미소'는 매년 적자로 골머리를 앓는데, 시외교통은 어떨까?
시외 교통 역시 썩 좋은 편은 아니었다. 2010년 KTX가 개통하기 이전만 해도 서울까지 최소 4시간이 걸렸으며 그나마도 정체 한 번 걸리면 답이 없었다. 그러나 KTX가 연결되고 이 지역의 교통에 지각변동이 일어났다. 신경주역까지 이동하는 시간을 감안해도 경주시내에서 서울까지 3시간 이내로 갈 수 있게 되었고 대전, 천안으로도 소요시간이 획기적으로 줄었기 때문이다. 가장 큰 타격을 받은 것은 버스였다. 일반철도도 없고, 공항도 없어서 사실상 시외버스와 나눠먹는 독점 형태였는데 갑자기 KTX라는 괴물이 떡하니 들어와버렸다. 서울을 비롯한 경부선 연선은 큰 타격을 받았다.
그러나 아직까지는 의외로 무덤덤한 분위기다. 워낙 관광객이 많아 자가용, 고속철도, 관광버스 만으로 수요를 맞추기도 어려울뿐더러 단거리 고속 노선이 의외로 많아서 이들만 잘 잡아도 꾸준히 영업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비교도 안 되는 접근성은 가장 큰 장점이기도 하다. 아무튼 여러 가지로 많은 영향을 받고 있는 경주버스터미널은 과연 어떤 모습일까?
양동마을에서 경주시내까지는 생각보다 오래 걸리지 않았다.
하지만 시간이 너무 늦어 이미 해는 지평선 너머로 몸을 숨긴 뒤였다.
그래도 땅거미 내려앉은 깜깜한 하늘 대신에 낮게나마 움찔움찔 빛을 쪼이는 가로등 덕분에 어둡지는 않다.
그나저나 차가 참 많다. 예전 벚꽃 시즌에 경주시내에서만 1시간을 날린 기억이 있어 경주의 상습 정체는 익히 알고 있다.
계절은 다르지만 퇴근 시간과 맞물려서인지 여전히 차가 많다. 역시나 그때 못지않게 붐비는 것 같다.
서천교 앞 사거리. 바로 옆에 형산강을 낀 경주시내의 서남부 지역이다.
대구, 영천에서 4번 국도를 타면 처음으로 경주시내에 들어오는 구간이고, 경주나들목과도 그리 멀지 않은 천혜의 교통 요지다. 바로 이곳에 경주의 두 버스터미널이 나란히 자리를 잡고 있다. 이 중 고속버스를 먼저 만나러 간다.
고속버스터미널은 의외로 찾기가 힘들다. 얼핏 보면 주변 상가와 판박이처럼 비슷해서 구분이 어렵기 때문이다.
낡은 2층의 상가건물인데 길을 따라 쭉 들어선 다른 건물들도 대부분 이런 식이다.
경주고속터미널 안내판 역시 크기가 작아서 쉽게 알아보기 힘들다.
과연 천만 명이 넘는 관광객을 맞는 도시의 버스터미널이 맞나 싶을 정도다.
건물 입구 위에는 서울 대전 광주 부산 대구 등등 다양한 목적지가 쓰여있다.
전형적인 오래된 터미널들의 특징으로서 90년대 이전만 해도 꼭 건물 바깥에 행선지를 써놓고 홍보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글씨체를 보면 최소 30년 이상은 되어 보이는 건물이다.
도로도 좁고 인도도 좁고 시설물도 낡고... 이러니 각종 언론에서 화살을 꽂는 게 아닌가 생각된다.
천년의 수도였던 도시라면 모름 지리 도시의 얼굴이 깔끔해야 하는 법.
하지만 경주고속터미널은 관광도시의 터미널 다운 모습과는 거리가 멀다.
오히려 시골의 아담하고 소박한 모양에 더 가깝다.
비좁은 맞이방엔 열댓 개의 의자와 함께 사물함, TV, 자판기 등이 놓여있는데 이 것들만으로 내부가 꽉 찬다.
KTX가 뚫리기 이전엔 사실상 버스 독점체제였기에 대중교통으로 경주를 방문한 사람은 으레 여기서 처음 경주 땅을 밟았다.
처음 보이는 얼굴이 대략 이런데, 경주가 큰 도시는 아니라지만 이웃 포항, 울산과 비교하면 사실 초라한 감이 없지 않다.
게다가 사람 없을 시간인데도 사람으로 가득한 모습이 보이는데, 지금도 이러면 성수기 때는 과연 어떨지 상상조차 어렵다.
이런 문제를 터미널 업체도, 시에서도, 주민들도 모르는 게 아닌지라 오래전부터 옮기자는 이야기가 끊임없이 나왔다.
게다가 경주터미널 근처는 상습 정체구간으로 성수기에는 거의 항상 주차장을 방불케할 정도로 사방팔방으로 도로가 꽉꽉 막혀,
목적지를 코앞에 두고 한참을 헤매는 시간이 많다는 문제점도 있기에 더욱 민감한 문제다.
대충 시에서는 신경주역 앞으로 옮기는 것을 원하는 눈치다. 그쪽으로 버스터미널을 옮겨 신경주역을 환승 허브로 만들자는 것이다. 하지만 버스터미널 업체와 지역 주민들이 강력 반발하는 분위기인데 일단 시내와 멀어도 너무 먼 데다 경주IC와 딱히 가깝지도 않다. 버스 한 번 타려고 시내에서 수십 분의 시간을 날려가며 힘들게 이동해야 하니 당연히 반기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다고 지금 자리에 리모델링하자니 땅도 좁고, 도로도 막히고 그야말로 답이 안 나오는 상황이다.
또 신경주역 부근으로 옮기면 치명적인 문제가 있다. KTX에 수요를 아예 흡수당할 수 있다는 것인데, 각 지역별로 접근성이 높은 시외버스야 오히려 기회가 될 수도 있겠지만, 대도시 위주로 운행하는 고속버스는 이야기가 다르다. 이미 KTX 개통으로 서울행 고속버스 배차간격이 40분에서 1시간으로 늘어났다. 울산에 밀려 주목은 못 받지만 경주 역시도 KTX로 몰려간 이용객들이 상당해 '끝이 없는 불황'을 겪는 상황이다.
서울행의 경우 인구와 거리를 생각하면 나쁘지 않다고 오해할 수 있지만, 국내 최고의 관광도시라는 점을 감안하면 배차간격이 매우 느슨한 편이다. 수많은 관광객을 버스로 제대로 끌어모으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나마 가까운 부산은 워낙 서로 간의 교류가 많기 때문에 역시 1시간이 좋은 배차라고 할 수 없다. 시외버스가 있다고는 해도 말이다.
누가 경상북도 아니랄까 봐 대구 가는 버스가 가장 많기는 하다. 약 30~40분 배차로 경주고속터미널에서 가장 중심을 잘 잡는 노선이다. 그런데 차로 1시간 거리인 만큼 KTX의 영향을 안 받을 거라 생각하지만 알게 모르게 받고 있다. 5년 전과 비교해 배차가 소폭 감소했다는 점에서 이를 알 수 있다. 고속철도와 관련이 없는 광주행은 하루 2회 그대로 운행 중이지만, 대전의 경우 방문 기준 5개월, 글을 쓰는 시점에서 불과 며칠 후인 2015년 6월부터 운행이 중지된다. 말이 중지지 사실상 폐지나 다름없다.
사실 경주고속터미널의 가장 큰 경쟁자는 옆 동네의 시외버스였다. 서울, 부산, 대구 할 것 없이 거의 모든 구간에서 시외버스와 치열한 경쟁을 펼치는 구도였다. 하지만 KTX라는 존재가 상당수의 밥줄에 강한 영향을 끼치고 있다. 시간에서 너무 큰 차이가 나기 때문에 접근성이 떨어짐에도 불구하고 자꾸만 고속철도로 사람이 몰리고 있다.
그나마 고속버스가 내세울 거의 유일한 장점이 접근성이라 봐도 무방한데, 이 버스터미널을 신경주역으로 옮기면... 극단적으로 얘기해서 고속버스 운영하지 말라는 얘기로도 해석할 수 있을 정도다. 김해공항, 광주행을 제외하면 모든 구간이 KTX와 겹치고, 심지어 대구행, 부산행마저도 크게 타격을 입을게 강 건너 불 보듯 뻔하기 때문이 지역 내에서는 부정적일 수밖에 없다.
그때문인지 옆 동네 포항에서도 신포항역 옆으로 버스터미널을 옮기기로 계획된 것이 사실상 취소되고, 경주도 이제는 거의 잠잠해졌다. 당분간은 계속 아담하고 소박한 지금의 건물을 그대로 쓸 것이다. 뭐 딱히 크게 문제가 되는 것도 없다. 아직은 쓸만하고 충분히 넉넉하게 채울 수 있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이 일대에서 흔치않은 금호고속 버스터미널이기도 하고, 그런 것치고 생각보다 오래된 역사를 자랑하는 건물이기도 하고.
여러 가지로 재밌는 공간이다. 다행히도 버스 주차장과 승차장 공간만큼은 매우 넉넉한 편이다. 진짜 심각한 곳은 터미널 빠져나오는 데만 5분 이상 걸리는 곳도 있는데, 여기는 매우 한적해 보인다.
주변 경관은... 사실 '천년고도' 경주의 이미지와 너무 안 어울린다.
낡은 시설들과 비좁은 맞이방은 둘째치고, 일단 주변 경관부터가 죄다 모텔 밭이니까...
유명한 관광도시치고 모텔촌 없는 곳이 없다지만 경주는 유독 심하다는 생각이 든다.
신라의 아름다운 흔적이 도시 곳곳에 뿌려져 있는데 이것들을 감추고 전국 어디서나 흔히 볼 수 있는, 그렇다고 썩 긍정적이진 않은 모텔을 터미널 앞에 가득 세워놓아야 했을까. 특색 있는 멋진 도시의 얼굴을 더럽히는 것 같아서 상당히 씁쓸한 부분이다.
그나마 고속터미널 경관은 덜한 편이다. 시외버스터미널 쪽이 훨씬 유흥가 분위기가 짙게 풍기기 때문이다.
과연 시외버스터미널은 또 어떻게 생겼을지 다시 한 번 발길을 옮겨볼까?
첫댓글 근데 경주가 인구가 10년전만해도 29만이었는데 올해 1월달 현재26만 1천명이죠
전국에서 인구 감소가 가장 빠른 도시중에 하나가 경주죠 인구는 26만인데 실질적인 시내 인구는 14만정도
그리고 경주가 ktx의 가장큰 피해 도시죠 익산은 지금은 잘 버티고 있지만
경주 인구가 감소세인 건 알고 있었지만 그렇게 많이 빠져나갔나요? 주변에 큰 도시가 많아서 빨림 현상이 심한가보군요. KTX 개통으로 고속버스가 타격이 있긴 하지만 위아래로 더 심각한 도시들이 있어서 상대적으로 무난해 보입니다. ㅎㅎ
그냥 울산 포항에 중간이라서 좀 어쩡쩡 하죠 게다가 시내가 대부분 문화재법 그거에 걸리는 개발도 제한되고
한마디로 말하면 영남판 부여라고 보면 되죠 부여도 좀 읍내가 낙후 되있죠
도시 전체가 유적지라는게 양날의 검인 것 같습니다. 역사적으로 매우 중요해서 우리와 빼놓을 수 없는 관계이고 지역 주민들의 주 수입원이기도 하지만 각종 규제에 걸려 개발을 못하고 있으니깐요. 40년 전만 해도 포항, 울산에서 장보러 경주까지 나왔다고 합니다만 지금은 정 반대라죠.
포항 울산에서 장보러 경주 까지라 울산은 모르겠지만 영일군은 좀 규모가 있던걸로 아는데 말이죠
아무래도 제가 창원에 살고 큰집이 경주에 있어 자주가지만 시외버스터미널은 현재 리모델링이끝낫죠 아무래도 경주에 큰기업이없어서 울산 부산 대구 포항 쪽으로 청년층이빠집니다 아무래도 도시가 쬐끔 낙후되다보니....
벌써 리모델링이 끝났나요... 한창 공사중일 때 찍어서 반쯤 작성했는데 수정해야겠군요. 정보 감사합니다.ㅎㅎ
잘봤습니다.
제가 부산에서 직장생활 할때는 주로
시외버스를 이용했는데.
나중에 여행으로는
수원ㅡ경주 ㅡ대구 ㅡ광주ㅡ대전
ㅡ수원으로 올라올때.
경주 ㅡ대구 금호고속 이용했었네요.
고속 노선이 얼마없어서
썰렁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래도 생각보다 노선은 많았던 것 같습니다. ㅎㅎ
경주는 동해남부선의 경주역과 경부선의신경주역등 열차가강세이기도합니다.고속은많이타격입었지만 바로옆 시외버스는 금,토,일은 북적거리지요..동서울,부산,동대구,서대구등고속과겹치는노선도있구편하죠
KTX이후에나 두각을 보이는 것이지 현재도 열차강세라고 하기엔 어렵죠~ 시외버스가 워낙 발달하여 있으니까요
금호고속 모니터 활동하면서 처음 2년동안 경주터미널을 한 달에 한 번 이상씩 드나들었는데, 처음과는 내부가 많이 바뀐 모습입니다. 건물 밖에서 본 모습이 오래 되어 보여서 그렇지 터미널 내부 및 박차장 공간은 많이 정리된 모습이지요.
맞이방이나 승차장쪽은 한눈에 봐도 손을 댄 흔적이 보이더군요ㅎㅎ
전 가끔 특송기간에 울산행표없을땐 주로 경주를 거쳐서 가곤하는데 항상 갈때마다 관광객 비중이 상당히 많은거같더라구요.. 실제로 기사님들 말씀으론 주말엔 관광객수요가 한몫을 하신다하더라구요.. 사진을 이리 보니 경주터미널이 달리 보이며 상당히 반갑네요.. 좋은 글 잘읽고갑니다^^ 시외터미널 리모델링한 모습도 기대가되네요
거주인구보다 관광객이 훨씬 많이 찾는 곳이니 그럴 수 밖에요 ^^ 리모델링한 모습은 저 역시 궁금합니다. ㅎㅎ
부분적으로 변경(화장실 개선 등)된 것이 있지만, 여전히 1970년대의 흔젃을 가진 곳이지요. 다른 곳도 많지만, 해외 여행 자율화 조치를 전후하여, 개인적으로 70년대의 대표 관광지로는 경주, 80년대는 부곡 하와이, 90년대에서는 용인 에버랜드(구. 자연농원+민속촌)라고 생각합니다. 동대구~경주노선은 시간 타이밍이 맞추어서 28인승 차량을 저렴한(?) 요금으로 타고 다니는 재미(동양고속&코오롱고속 시절도 그렇고, 지금 금호고속도 마찬가지로~) 그나저나 경상권도 금호고속의 세력이 육일승천하지만, 특히 경주는 '고속'노선이 코오롱고속 인수분(대구, 대전)을 포함하더라도 베이스 캠프라는 생각이 드네요.
여행이 생활화될 무렵 지어진 건물이니 지금의 수요를 따라가기 매우 어려워진 듯 합니다. 경주 관광객은 매년 늘어나는데 고속버스 수요가 매번 줄어드는것은 이와 관련있지 않나 싶습니다. 금호가 대구에 터미널을 갖고 있던 것부터 시작해서 의외로 경북권에서도 힘 좀 쓰는 것 같네요. ㅎㅎ
@Maximum 그나마 선산휴게소 경유가 고속버스에게는 한숨 돌릴만한 일이지만, 바로 옆 시외버스 노선이 선산휴게소 경유노선은 전부다 커버하니, 환승의 불편을 감수하고, 고속버스를 타는 경우는(포항발 및 울산발 경주경유 차량들이 만차인 경우 외) 잘 없지(그 것도 고속버스 환승제도를 아시는 분들만 알지만)요
@CELLO 어디나 그렇지만 시외버스에 밀려서 제대로 승객을 끌어모으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일단 커버리지 자체가 다르니...
KTX 연선은 사실상 버스의 패배가 된 이상, 고속터미널과 시외터미널을 현 위치에 통합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경주는 중간경유지라 박차수요가 많지는 않아서 대기실 및 승하차홈 개량 위주로 가면 좋을 텐데요. 시외터미널 옆 택시 대기장을 편입시킨다면 부지는 충분합니다.
통합을 한다면 이용자들 입장에선 매우 편리해 지겠네요. ㅎㅎ
서울경부행은 상주영천고속도로 개통을 기대해야겠군요.
광주행은 사실상 폐지라면 포스팅 이후 현 시점에서는 동대구복합환승센터 환승이 답이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