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한국기독교홈스쿨협회로부터 “보편적으로 공감할 수 있는 내용”으로 칼럼을 써 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각 가정마다 홈스쿨에 대한 생각이 다르고, 그에 따라 취하는 방향이나 방법이 다르고, 나아가는 길도 다를 텐데 … 그처럼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고 누구나 고개를 끄덕일 수 있도록 글을 쓴다는 게 과연 가능한 일인지 모르겠다! 이 글이 얼마나 “보편적인 공감대”를 얻어낼 수 있을지 … 경우에 따라서는 아주 주관적이고 편향적이라 읽는 이들에게 공감을 얻기는커녕 반감이나 비난이 쏟아지지나 않을지 … 그러나 어차피 개인적인 견해를 쏟아내는 칼럼을 쓰는 것이니만큼, 나름대로 생각이 흘러가는 대로 가벼운 마음으로 한번 적어보려고 한다.
1. 노메달리스트에게도 박수를 …
최근 동계 올림픽 기간 동안 국민적 관심이 온통 캐나다 밴쿠버에 쏠려 있었다. 특히 메달을 딴 선수들에게 환호와 갈채가 쏟아지고 있다. 더구나 피겨 스케이팅에서 세계 신기록을 세우면서 한국 최초로 금메달을 따낸 김연아 선수에게는 모든 국민이 전부 열광하는 분위기다. 이로 말미암아 올림픽 메달리스트들에게는 각종 금전적인 혜택과 광고, 텔레비전 출연 등과 같은 러브콜이 잇따를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올림픽에 참여한 선수들은 이보다 훨씬 더 많다. 그 선수들을 돕기 위해서 많은 사람들이 주변에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직 조명을 받는 것은 메달리스트들뿐이다. 심지어 귀국 기자 회견장에조차도 오직 메달리스트들만 의자에 앉아서 질문을 받고, 그동안 나머지 선수들은 그냥 우두커니 서서 들러리만 하고 있었다고 하니, 정말 어처구니가 없을 정도다. 지독한 성과 지상주의, 결과 중심주의다. 그런데 이런 모습이 우리 홈스쿨계나 홈스쿨 가정들에게서도 여실히 나타나는 것 같다. 오로지 결과에 열광하는 모습 … 혹시 ‘우리 아이도 연아처럼, 나도 연아 엄마처럼’ 하고 누구나 한번쯤 생각해보지 않았을까!
우리 주님께서는 아흔아홉 마리 양을 버려두고 한 마리 잃어버린 양을 찾아 나서시는 분이다. 한 마리 양을 위해 자기 목숨까지도 버리시는 선한 목자시다. 또한 온 천하보다 소중한 것이 한 영혼이라고 말씀하신다. 지극히 작은 자에게 한 것이 곧 나에게 한 것이라고 말씀하시지 않았던가? 지극히 작은 일에 충성하라고 권고하시지 않았던가? 높아지기보다는 낮아지라고 가르치지 않았던가? 이 세상에서 박수를 받지 않더라도, 우리에게 돌아오는 보상이 전혀 없더라도, 더 나아가 손해를 보는 일이 있더라도, 그게 하나님 안에서 의미 있는 일이라면 기꺼이 자신을 내어줄 수 있는 사람으로 키워가는 것이 우리 홈스쿨 가정들의 자녀 양육 목표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그래야만 ‘기독교’ 홈스쿨이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2. 원안 + α(알파)
세종시 문제가 한창 뜨거운 감자다. 특히 정치권이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원안이 더 낫다, 수정안이 더 낫다. … 국민과의 약속과 신의를 지키려면 원안을 고수해야 한다, 국가 백년대계를 위해서는 수도(행정부) 분할이 굉장한 비효율을 초래할 것이 뻔하기에 반드시 수정안으로 가야 한다. … 갑론을박이 진행 중이다. 서로 상대방 견해에 대해서는 진지하게 경청하거나 생각해보려는 모습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 홈스쿨링의 원안은 무엇일까? 아니, 그 이전에 홈스쿨링에도 원안이 있을까? 나는 물론 원안이 있다고 생각한다. “성경적 자녀 양육”이 바로 그것이다. 그리하여 경건한 다음 세대, 장수의 전통(箭桶)에 들어 있는 튼실한 화살들을 키워내는 것이다. 곧 “하나님께서 디자인하신 비전의 아이로 키우는 것”이 바로 홈스쿨링의 원안이 아닐까? 우리 아이를 향한 하나님의 설계가 무엇인가? 우리 가정을 향한 하나님의 디자인은 무엇일까? 우리 자녀에게는 하나님께서 어떤 비전을 주셨을까? 이러한 질문들이 바로 홈스쿨의 출발점이자 목표일 것이다.
참으로 안타까운 것은, 우리 홈스쿨 가정들 가운데 상당수는 이와 같은 고민을 별로 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는 점이다. 오로지 학습적인 관심에서 출발하여 홈스쿨을 시작하고, 홈스쿨의 진행도 거기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모습을 보고 들을 때마다 마음이 쉽지 않다. 원안에 대한 진지한, 철저한 고민이 거의 없이 곧바로 대안으로 뛰어드는 격이다. 그래서 이리 휩쓸리고 저리 몰려다니는 양상이 나타난다. 탈(脫)학교 내지는 초(超)학교를 통해 더 넓고 커다란 세상으로 나아왔지만, 다시 말해 학교에서 출애굽 했지만, 그 시절로 다시 돌아가고 싶다고 불평하면서 광야를 헤매고 다니는 이스라엘 백성 마냥!
홈스쿨은 관계 회복 운동이라고 할 수 있다. 거기에는 적어도 네 가지 차원이 있다. 무엇보다 먼저 홈스쿨을 통하여 (1)하나님과 관계가 회복되어야 한다. 우리 삶의 모든 영역에서 말이다. 그 다음에는 (2)가족 사이에서 관계 회복이 일어나야 한다. 우선 부부 사이의 관계가 회복되어야 한다. 그리고 부모와 자녀 사이의 관계가 회복되어야 한다. 우리는 한 집안에서 함께 살고 있으면서도 마음이 나누어지고 삶이 나누어진, 해체된 가정으로 살고 있지는 않은가! (3)이웃과 다른 사람들 사이에서 관계 회복이 일어나야 한다. 이것은 사회적인 관계의 회복, 공동체적인 관계의 회복이라고 볼 수도 있겠다. (4)피조물(자연)과의 관계 회복이 있다. 현대인들은 도시 속에서 살아가면서 온갖 인위적인 것들로 둘러싸여 편리함만을 추구한 나머지, 피조물(자연)을 바라보면서 “이 세상 창조 때로부터, 하나님의 보이지 않는 속성, 곧 그분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을 “사람이 그 지으신 만물을 보고서 깨닫게 되어 있다”(롬 1:21)고 말씀하시는 데도 불구하고, 그럴 만한 기회를 삶의 일부로 누리지 못하고 있다. 우리 홈스쿨 가정들은 피조물(자연)과의 관계를 회복하는 삶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천하 만물 가운데 부어주신 온갖 축복을 누리는 삶을 향유해야 한다. 곧 홈스쿨은 단순히 학습적인 차원을 넘어 원안적인 삶을 살아가면서 이처럼 다양한 영역에서 관계를 회복하는 것이다.
사사기에서는 가나안 땅으로 들어간 이스라엘 백성에 대해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여호수아가 모인 백성을 흩어 보낸 뒤에, 이스라엘 자손은 각각 자기가 유산으로 받은 땅으로 가서, 그 땅을 차지하였다. 온 백성은 여호수아가 살아 있는 동안 주님을 잘 섬겼다. 그들은 여호수아가 죽은 뒤에도, 주님께서 이스라엘에게 베푸신 큰일을 모두 눈으로 직접 본 장로들이 살아 있는 동안에는 주님을 잘 섬겼다”(삿 2:6-7). 머지않아 여호수아와 더불어 그 세대 사람들도 모두 죽어 조상들에게로 돌아가자, “그들이 죽은 뒤에 새로운 세대가 일어났는데, 그들은 주님을 알지 못하고, 주님께서 이스라엘을 돌보신 일도 알지 못하였다”(삿 2:10)고 말한다.
단 한 세대만에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그토록 생생하게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기적을 체험했던 이스라엘 백성에게 과연 왜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그것은 이스라엘 가정의 부모들이 하나님 아닌 다른 것에 마음이 빼앗겼으며, 경건한 다음 세대를 키워내는 일에는 전혀 신경 쓰지 못할 정도로 땅(기업) 나누기에 모든 초점과 에너지를 쏟았기 때문이 아닐까! 우리 기독교 홈스쿨 가정의 중심에도, 우리가 내리는 모든 결정, 선택하는 과정과 진행, 사용하는 방법 따위에 하나님께서 살아계시지 않는다면, 과연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아찔하기만 하다!
3. 천리 길도 한 걸음부터: 한 번에 하나씩 & 천천히 & 믿음으로
온 세상이 빠르게 변하고 있다. 사회 전반에서, 세계 전역에서 속도 경쟁이 치열하다. 10여 년 전과 비교하면, 홈스쿨 운동도 격세지감을 느낄 정도로 저변이 많이 확대되었다. 아직도 너무나 부족하고 제한적이기는 하지만, 어쩌면 거의 무궁무진할 정도로 다양한 영역에서 홈스쿨 관련 정보, 자료, 기회를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 그 때만 해도 “홈스쿨 한다”고 하면 무슨 이상한 사람 쳐다보듯 했는데, 요즘은 홈스쿨 가정들을 향한 시선도 많이 따뜻해지고 우호적으로 바뀌었다. 여러 가지 프로그램이나 커리큘럼도 풍부해지고, 각종 네트워크 모임이나 홈스쿨 지원 기관도 많아졌다.
너무 많은 정보의 홍수 속에 파묻혀 있다 보니 눈이 높아져서 그런지, 처음 홈스쿨을 시작하는 부모들의 마음이 너무 조급해 보인다. 지금 온 국민이 올림픽 메달리스트에게 열광하는 것처럼, 이미 홈스쿨을 시작한지 상당한 세월이 흘러서 나름대로 내공이 쌓였거나, 그나마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줄 수 있는 무언가가 있는 다른 홈스쿨 가정들을 보면서, 혹시나 홈스쿨 컨퍼런스의 가정 발표회 자리에서 나름대로 멋지게 자신들의 끼를 펼치는 아이들을 보면서, 새내기 홈스쿨 가정들이 ‘우리도 저렇게 해야지’라거나 ‘우리도 저렇게 되어야지’라고 간단히 생각할지 모르겠다. 기존 홈스쿨 가정에서 지나온 세월들이나 거쳐 온 과정들을 주목하지 않은 채, 그저 결과나 성과만 눈에 들어올지도 모를 일이다(그렇다고 기존 홈스쿨 가정들에서 저마다 무슨 대단한 성과를 이루었다고 말하는 것이 아님을 오해하지 말기를!).
그러나 기존 홈스쿨 가정들이 거기에 도달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기도와 눈물과 땀을 흘렸을지 … 그게 하루아침에 이루어낸 게 아니라는 점을 꼭 기억해야 할 것이다. 단 한 번의 완벽한 연기를 보여주기 위해서는 1000번도 넘게 엉덩방아를 찧어야 했던 것처럼! ‘천리 길도 한 걸음부터’라는 속담이 가르치듯이, 광속으로 변하는 세상을 쫓아가거나 어떤 면에서는 커다란 황새를 단숨에 쫓아가려는 뱁새가 되지 말고, 우리 홈스쿨 여정에서도 한 번에 하나씩 천천히 믿음의 발걸음을 내딛을 일이다! 지금은 이른 봄이다. 벌써 나무에서 먹음직한 과실을 따려고 한다면 너무 성급하지 않을까! 지금은 씨앗을 뿌릴 때다. 아직 가을은 저 멀리 있다! 좀 더 차분히 끈기 있게, 인생의 계절을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기다려봄이 어떨까!
4. 의무 교육 ≠ 의무 취학
대개 ‘의무 교육’이라고 하면 당연히 학교를 보내야 하는 것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의무 교육과 의무 취학을 구분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나 ‘의무 교육’을 규정한 법의 입법 취지는 ‘우리나라 국민으로서 마땅히 누려야 할 기본 권리로써 교육’을 언급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의무 교육’이 반드시 ‘학교 교육’과 동일하지는 않으며, ‘의무 교육’이 반드시 ‘의무 취학’을 전제하지는 않는다는 말이다. 다시 말해 ‘학교 교육’은 이제 국민의 기본권인 교육을 마음껏 향유할 수 있는 곳으로써 기능을 많이 상실해 가고 있다. 오히려 그와 같은 기본권을 상당히 많이 제한하는 곳으로 변질되었다.
우리나라 국민의 의무인 교육이 제대로 일어나는 곳은 학교라는 공간, 교실이라는 장소에서 최대한, 가장 잘 일어나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학교 울타리 안에서보다 더 나은 교육 공간으로서 가정이 대두되고 있다. 또한 학교 이외의 다양한 기회, 공간, 사람, 현장이 강조되고 있다. 학교 담장 안에서만 최상의 교육이 있어야 한다거나 교육 전문가인 선생님만이 최고의 교육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인식이 점차 커지고 있다.
그런 까닭에 우리는 홈스쿨을 선택한 것이다. 우리 자녀에게 가장 필요한, 적절한 교육이 일어나는 곳으로 가정을 선택한 것이다. 우리 자녀에게 가장 적합한 속도와 방법과 내용으로, 우리 자녀의 관심과 기질과 적성과 은사와 달란트에 맞게 맞춤식 교육, 자기 주도적인 교육이 가능한 하나의 방식으로 가정에서 부모가 일차적으로 자녀의 교육을 책임지는 방식을 선택한 것이다. 국가나 다른 기관이나 학원에 우리 자녀들을 그냥 위탁하지 않고, 우리에게 맡겨진 교육 주권을 회복하겠다는 것이다. 우리의 교육 주권을 절대 포기하지 말기를, 홈스쿨러들이여, ‘의무 교육’이란 말에 이제 더는 주눅 들지 말기를 … !
5. 지역 네트워크 모임(지회) 활성화
요즘 가끔씩 먼 거리에 있는 분들에게서 전화를 받는다. 한두 시간도 아니고 몇 시간에 걸쳐 달려와야 하는, 하루만에 오갈 수 없는 곳에 계신 분들도 막무가내로 우리 집으로 찾아와야겠다는 것이다. 그럴 때마다 참 난감하기도 하고, 안타깝기도 하고 아쉬운 마음이기도 하다. 지역마다 홈스쿨 가정들이 함께 모이는 네트워크 모임이 활성화되어 있다면, 그 모임들이 잘 조직화되어 있다면, 굳이 멀리까지 잘 알지도 못하는 가정을 찾아가야 하는 수고를 하지 않아도 될 텐데 …
이제 홈스쿨 협회도 전국에 흩어져 있는 홈스쿨 가정들을 좀 더 조직적으로 묶어내고, 그 힘을 체계적으로 결집하는 일에 역량을 좀 더 쏟아 부어야 하지 않을까! 다행히 지난 해 9월경 부산, 대구, 고양/파주 지역에서 3군데 지회가 탄생하기는 했지만, 아직도 더 많은 지역에서 부흥이 일어나고 좀 더 조직적으로 모이는 네트워크 모임이 방방곡곡에서 일어나야 하리라!
이를 위해서는 이제 나름대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는 3-5년차 홈스쿨 가정들이 일어나 자기 가정을 넘어 자기 지역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그렇게 섬기는 모습을 보여야, 자녀들도 섬기는 본보기를 보고 배우지 않겠는가! 홈스쿨 운동 초기에 홈스쿨을 시작했던 가정들은 한 가정이라도 더 홈스쿨을 시작하도록 돕기 위하여, 그러니까 더 많은 동지를 규합하기 위하여 시간적 물질적인 손해를 마다하지 않고 정말 엄청난 수고를 아끼지 않았었다. 우리 가정도 그 혜택을 입고 홈스쿨을 시작하고 계속 진행할 수 있는 힘을 얻었던 당사자다. 그 은혜를 기억하면서, 우리 가정도 지금 살고 있는 지역에서 몇 년째 네트워크 모임을 섬기고 있다.
조슈아 홈스쿨 아카데미(JHA), 홈스쿨 어와나(HAN), 글로벌 홈스쿨 아카데미(GHSA), 하늘소리오케스트라 같은 홈스쿨 기관들과는 달리, 지역별 홈스쿨 네트워크 모임은 누구나 시작할 수 있다. 서로 함께 모여서 서로를 격려하고 정보를 나누는 것으로 충분하다. 처음에는 그렇게 가볍게 서로에게 짐이 되지 않는 수준에서 모이다가, 한 걸음 더 나아갈 만한 여력이 생기고 마음이 모아지면, 더 깊은 차원의 협력과 시도로 나아가면 된다. 홈스쿨 기관처럼 많은 가정이 필요하지도, 많은 돈이 들지도 않는다. 누군가 한 사람이나 가정만 전적으로 헌신하고 희생하지 않아도 되는, 자발적으로 참여하여 자신의 달란트와 은사를 나누면서 교제하는 정도이면, 지역 홈스쿨 네트워크 모임으로써는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나머지 더 필요한 게 있으면 여러 홈스쿨 기관을 활용하거나 좀 더 구체적인 기능별 코업 모임을 시작해도 좋을 것이다.
6. 홈스쿨의 3가지 대적(大敵)
물론 홈스쿨을 위협하는 여러 가지 요소들이 많이 있겠지만, 나는 언급할 기회가 있을 때마다 홈스쿨 최대의 적을 ‘욕심, 조바심, 비교의식’이라고 강조한다.
홈스쿨 부모는 각종 영역에서, 매 순간마다, 최종적으로 많은 결정을 내리는 위치에 있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서 상당한 영성과 지혜, 분별력과 절제가 필요한 사람들이다. 그런데 요즘 우리나라에서 진행되는 기독교 홈스쿨의 흐름을 가만히 살펴보면, 자녀들에게 세상에서도 탁월한 인재나 지도자가 되기를 바랄 뿐만 아니라 영적으로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기를 바라면서 이런저런 몸부림을 치는 것 같다. 이미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다양한 모델의 홈스쿨 가정들이 있고, 물론 아직도 많이 부족하기도 하지만, 처음부터 너무 많은 정보와 기회와 프로그램에 노출되는 탓에, 하나님께서 디자인 하신 우리 자녀의 은사와 달란트는 그다지 고려하지 않은 채, 경건한 다음 세대를 키워낸다는 목적은 아랑곳하지 않은 채, 덥썩 무엇인가를 시작부터 하고 보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아이를 향한 비전이 가장 우선적으로 고려되기보다는 부모의 ‘욕심’이 개입되는 순간이다. 경건한 다음 세대로 키우겠다는 거룩한 열망보다는 이 세상에서 누구에게도 어디에서도 뒤지지 않는 탁월한 실력을 갖춘 아이로 만들겠다는 인간적인, 인위적인 욕심이 들어오는 시점이다. 그러면 모두에게 즐거운 홈스쿨로 가기보다는 힘겨운 홈스쿨로 전락하는 지름길이다. 그 때부터 천국이 지옥으로 바뀌게 된다.
일단 무엇인가를 시작했을 경우에도, 대개 성과가 나타날 때까지 차분하고 진중하게 기다리지 못하는 모습을 많이 보게 된다. 부모의 ‘조바심’ 탓이다. 무엇이든 결과나 나타나기까지는 상당한 노력과 시간이 필요하다. 겨울이 지나야 봄이 지나고, 여름이 지나야 가을이 온다. 봄에는 부지런히 밭을 갈고, 거름을 주고, 씨앗을 뿌려야 한다. 여름에는 물을 주면서 필요한 영양분을 공급하고, 병충해를 당하지 않도록 신경 써야 한다. 충분한 일조량이 있어야 한다. 온갖 비바람을 견뎌야 한다. 가을이 왔다고 해서 곧장 열매를 딸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충분히 무르익어야 한다. 추수 때가 이르러야 한다. 무슨 일이든 마찬가지 아닐까! 너무 성급한 열매를 기대하는 것은 하나님의 질서와 원리가 아니다. 무엇이든 때가 이르도록 끝까지 차분히 기다릴 일이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사람으로 살아가는 이상, 오로지 하나님께만 시선을 고정시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렇다고 부모의 ‘비교의식’을 내려놓는 것이 전혀 불가능한 일도 아니다. ‘누구 좀 봐라!’ ‘누구는 어떻다더라!’ ‘넌 왜 김연아처럼 …’ 이렇게 우리 부모들이 아이들을 비교 대상으로 내모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이건 홈스쿨 부모라고 해서 예외가 아닌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우리 자녀들이 그런 비교를 통하여 자극을 받고 더욱 분발하기보다는, 오히려 점점 더 낮은 자존감을 감게 되고 서서히 자신감을 잃게 될 뿐이다. 자녀들의 내면을 좀먹는 비교보다는 장점을 찾아 칭찬하면서 건강하고 긍정적인 자아상을 심어주도록 도울 일이다!
7. 소통과 협력과 상생의 미학
우리 몸에 붙어있는 지체는 독립적으로 움직이면서도 유기적으로 온 몸과 함께 소통하면서 서로 협력하는 가운데 상생한다. 각 지체는 완전히 독립적이면서도 긴밀하게 상호 협력하는 유기체이다. 우리 홈스쿨 가정과 한국 홈스쿨 운동 사이의 관계도 이와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자기 가정만 올바로 서고, 자기 가정의 자녀만 잘 되면 그만이라고 여기는 사람들이 있을지 모르겠다. 물론 우선순위에 있어 자기 가정이 올바로 서도록 하는 게 맞는 일이다. 그러나 적어도 3-5년 정도의 시간이 지난 다음에는 자기 가정을 열고, 지금까지 쌓아온 노하우를 다른 홈스쿨 가정에, 특히 주변에서 이제 막 홈스쿨을 시작하거나 홈스쿨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에게 적극적으로 나눠줄 일이다!
홈스쿨 운동이 점차 확대되고 다양해지면서, 개인적으로도, 지역적으로도, 단체 사이에서도 이와 같은 소통과 협력과 상생의 미학이 훨씬 더 절실하게 요구되지만, 현실에서는 오히려 그런 모습이 점차 사라지는 경향을 보이지 않나 생각한다. 초기 홈스쿨 가정들은 서로 참 친하고 진하게 모이고 만났다. 서로 간에 동지의식도 강했다. 아마 소수였기에 가능하지 않았을까 싶다. 전국 각지에서 모여들기는 했지만, 언제 만나도 참 반가운 얼굴들이었다.
이제는 가까운 지역마다 연대와 조직화가 강하게 일어나야 하지 않을까! 이제는 그와 같은 지역적인 역동성이 모여 전국적인 결집력으로 승화되도록 역량을 쏟아야 하지 않을까! 그러기 위해서는 좀 더 다양한 영역의 기능적인 단체들도 시작되면 얼마나 좋을까! 이를테면 미국의 홈스쿨법률변호협회(Home School Legal Defense Association) 같은 곳이 생겨나서 홈스쿨 가정들을 위해 헌법 소원이나 입법 청원을 대신해 주는 일도 얼마든지 가능해진다면 얼마나 좋을까! 우리나라 교육부에서는 각 학교마다 학생 1인당 교육부 명목으로 매년 수백만 원씩 지원한다고 하는데, 홈스쿨 가정에도 동일하게 이런 혜택이 돌아올 수 있도록 말이다. 지역마다, 학교마다 갖추어놓은 각종 교육 인프라와 자료들을 우리 홈스쿨 가정들도 함께 이용할 수 있도록 법률적인 지원이 가능하도록 말이다. 아니, 그 이전에 교육의 다양성, 곧 홈스쿨도 인정해 주는 방향으로 교육법이 개정될 수 있도록 활동하는 기능적인 집단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8. 학교 너머, 입시 너머, 대학 너머
홈스쿨 가정들에게 교과 학습적인 일(school things)이 나름대로 필요하기는 하지만, 그리스도인인 우리에게는 그것을 초월해야 하는 과제도 있다. 역설적인 아이러니라고나 할까! 초월성과 내재성을 동시에 가지고 계신 하나님의 속성과 닮았다고나 할까! 교과 학습적인 부분들을 무작정 도외시해서도 안 되겠지만, 거기에 매몰되어서는 더더욱 안 된다. 온 세상을 학교로 삼아야 하는 홈스쿨은 단순히 학교를 가정에 옮겨다놓는 정도에 머물러서는 안 되며, 그 차원을 훨씬 넘어서야 한다.
자녀들이 고등학생 나이에 접어든 홈스쿨 가정이 늘어나면서, 한국 홈스쿨 운동의 흐름이 학습, 입시, 대학으로 쏠리는 분위기가 감지된다. 컨퍼런스에서도 각 과목별로 입시 학원이나 보습 학원이나 여타 기능적인 기술들을 가르쳐주는 학원에서나 들을 만한 강의들이 뷔페식 선택 강좌로 마련된다. 급기야 그것도 모자라 협회 주최로 “홈스쿨 학습 세미나”가 열릴 정도다!
공부는 왜 해야 하는지, 대학은 왜 가야 하는지, 그게 하나님의 설계에 합당한 것인지, 그러니까 자기 인생의 비전이 무엇인지, 그 비전을 성취하기 위해 공부나 대학 과정이 꼭 필요한 것인지 … 좀 더 근본적인 차원에서 이런 질문들을 제기하고, 기독교적인 관점에서 은사와 적성과 달란트를 발견하고 그에 따른 비전 찾기라든지, 그에 기초한 진로 지도 프로그램에 관심을 갖는다든지, 각 영역의 전문가인 홈스쿨 아빠들로 구성된 멘토링 그룹을 구성하여 그에 상당하는 과정을 만들어 홈스쿨 자녀들과 만나게 한다든지 … 이런 시도들이 아쉽다.
9. 비전: 통일 한국과 세계 평화, 그리고 하나님 나라
일찍이 윌리엄 캐리는 “하나님을 위하여 위대한 일을 계획하고, 하나님으로부터 위대한 일을 기대하라”고 외쳤다. 그리고 짐 엘리엇은 “결코 잃어버릴 수 없는 것을 얻기 위해 지킬 수 없는 것을 버리는 자는 결코 어리석은 자가 아니다”고 역설하였다. 이처럼 좀 더 넓은 시야를 가지고 좀 더 커다란 비전 가운데 자라가도록 우리 홈스쿨 아이들을 키워내야 하지 않을까?
학교를 넘어서서, 통일 한국과 세계 평화, 그리고 하나님 나라에서 멋진 역할을 감당하는 민족 지도자, 세계 지도자, 하나님 나라의 지도자로 키워낼 수 없을까? 물론 이 일을 감당하기 위해서 입시를 준비하고 대학이 필요하다면 당연히 그렇게 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수단이요, 방편이요, 과정일 뿐이다. 그것은 목적이 아니다. 그러잖아도 입시 지옥에서 벗어나도록 하자는 것이 홈스쿨을 시작한 주요 이유 가운데 하나일 텐데, 또 다시 그리로 우리 아이들을 몰아가는 것은 참 …
하나님 나라의 가치관,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완전한 전환이 필요하다. 어정쩡하게 이전 것도 적당히 붙잡고 있고, 새 것도 함께 취하려는 태도는 아마 성경에서 신랄하게 비판하는 차지도 덥지도 않은 모습이 아닐까! 우리 아이들은 모두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거목(巨木)으로 자라날 잠재력을 가지고 이 세상에 태어나는데, 점점 자라나면서 주변의 고정 관념, 선입견, 획일화된 교육, 부모와 가정, 사회의 간섭과 요구에 짓눌려 분재(盆栽)밖에 되지 않는다는 이야기가 있다. 우리 아이들을 통일 한국과 세계 평화, 그리고 하나님 나라를 위한 거목으로 키워내 민족 지도자, 세계 지도자, 하나님 나라의 지도자로 만들 것인지, 단지 분재로 키워낼 것인지 지금 우리가 선택하고 결단할 일이다.
10. 『어려운 일에 도전하라』를 읽고
이 책을 읽으면서 “청소년”이라는 개념은 성경에 없다는 말을 들었다. 그것은 단지 현대로 넘어오면서 생겨난 사회 문화적인 현상일 뿐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 자녀들을 십대 청소년이라고 부르면서 아직도 무슨 일이든 제대로 책임지고 주도할 수 없는 존재, 곧 미성년자로 취급하는 것은 잘못이라는 주장이다.
하기야 우리 세대가 어릴 때만 해도, 시골에서 자란 사람들은 초등학교 때부터 어른들을 도와 봄에는 들판에서 모내기도 하고, 겨울에는 산으로 가서 나무도 하고, 여름에는 소를 몰고 들로 산으로 나가 풀을 뜯기기도 하고, 가을에는 벼 베기를 함께 하기도 했는데 … 언젠가부터 공부해야 된다는 명목 아래, 몸은 이미 성인으로 자라난 자녀들에게 정작 살아가는 데 필요한 삶의 기술은 하나도 가르쳐 주지 않은 채, 오로지 책만 붙들고 앉아 있게 한다. 그래서 어떤 아이들은 스스로 밥을 해먹기는커녕 다 해놓은 밥도 제대로 차려먹지 못하는 장애인이나 다름없는 삶을 영위하고 있다. 라면 하나도 제대로 끓여 먹지 못하는 청소년을 양산하고 있다.
우리 아이들에게, 특히 홈스쿨 자녀들에게 기본적인 삶의 기술을 가르쳐야 할 때이다. 살아가는 데 필요한 각종 지혜를 먼저 가르쳐야 한다. 그리고 더 나아가 학과목을 넘어서 더 높고 넓고 멀고 큰 세계를 바라볼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너무 일찍부터 어느 한 영역에서 편협된 영재로 자라나도록 가르치는 게 아니라, 다양한 경험과 기본적인 영성, 감성, 품성, 지성, 체력을 겸비하여, 어디서 무슨 일을 하든지 상상력과 창의력, 지도력을 발휘하는 인재가 되게 할 일이다!
11. 지공주의를 아시나요?
한국에서 가장 심각하게 대두되어 온 두 가지 사회 문제가 있다. 바로 교육 문제와 부동산 문제가 그것이다. 나는 교육 문제는 홈스쿨링으로, 부동산 문제는 자본주의와 공산주의를 넘어 지공주의라는 제3의길로 해결할 수 있다고 본다!
이미 많은 분들이 알고 있을지도 모르지만, ‘성경적 토지 정의를 위한 모임’(일명 성토모, Henry George Association of Korea)이라는 단체가 있다. 성토모는 자신들을 “공의로우신 하나님께서 성경을 통하여 가르쳐 주신 희년 정신을 토지제도에 구현하기 위해 설립된 단체입니다.”라고 소개하고 있다(http://landliberty.org/xe/intro1).
그러면서 한국에서 이 단체가 시작되어 활발히 토지 정의 운동을 전개한 경위를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1984년 故 대천덕(R. Archer Torrey 3) 신부님의 수고와 노력에 감화를 받은 복음주의적 평신도들이 모여서 '한국헨리조지협회'를 결성하면서부터 시작되고, 1996년에 '성경적 토지정의를 위한 모임'으로 개칭하였습니다.”
또한 이 단체의 사상적 배경과 활동 목적을 “토지로부터의 불로소득을 환수하는 대신 노력소득에 부과되는 조세를 폐지하고 지대조세제를 실시하여 공평과 효율을 동시에 달성할 수 있음을 입증한 미국의 경제학자 헨리조지(Henry George)의 경제사상을 기초로 하고 있습니다. 성경의 토지법과 헨리조지의 경제사상을 어떻게 한국 사회에 적용할 수 있을지 연구하고, 그 사상을 교육 홍보하기 위해 노력해 오고 있습니다. 이러한 운동은 이데올로기(보수와 진보)를 뛰어넘어 모든 기독 지성인이 공감할 수밖에 없는 신앙고백입니다.”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와 같은 사상을 이 단체에서는 “지공주의(地公主義, Georgism)”라고 부르기 시작하였다.
혹시 지공주의라는 용어를 들어본 적이 있는가? 위키백과(http://ko.wikipedia.org/)에서는 지공주의를 이렇게 소개하고 있다. “지공주의는 모든 사람은 토지에 대한 권리를 평등하게 가지고 있다는 사상이다. 생산요소 중 토지와 자본의 사유를 허용하는 자본주의와 양자의 공유를 기반으로 하는 사회주의를 지양하여 토지 공유, 자본 사유를 주장한다. 이 사상은 미국의 정치경제학자였던 헨리 조지(1839-1897)가 주장했던 철학이자 경제학설로서, 토지의 공공성을 강조하며 전 인류의 소유라고 주장한다. 지공주의는 또한 토지 단일세제와 동일시되기도 한다.”
그리고 지공주의의 원리에 관하여 이렇게 소개한다. 더 자세한 소개는 인터넷에서 위키백과를 검색해볼 일이다.
지공주의 원리
다음과 같은 토지원리를 가지고 있다.
1. (평등한 토지권) 모든 국민은 토지에 대해서 평등한 권리를 가진다.
2. (합의에 의한 우선권 인정) 사회적 필요성이 있으면 사회적 합의에 의해 특정인에게 우선권을 인정할 수 있다.
3. (우선권 인정의 조건) 사회가 특정인에게 우선권을 인정하려면 다음 조건을 충족시켜야 한다.
4. (취득기회 균등) 모든 사람에게 우선권 취득기회를 균등하게 보장한다.
5. (특별이익 환수) 우선권에서 발생하는 특별이익을 환수한다.
6. (사회적 제약) 우선권 행사는 우선권을 인정하는 취지에 부합해야 한다.
지공주의는 다른 말로 토지 가치 공유제라고 부를 수 있다.
소유권 구성요소 |
토지사유제 |
지공주의 (토지가치공유제) |
토지공유제 | |
지대조세제 |
토지공공임대제 | |||
사용권 |
사적 주체 |
사적 주체 |
사적 주체 |
정부 |
처분권 |
사적 주체 |
사적 주체 |
정부 |
정부 |
수익권 |
사적 주체 |
정부 |
정부 |
정부 |
왜 이 시점에서 ‘지공주의인가?’라고 의아하게 여길 수도 있겠다. 그러나 여기서 굳이 지공주의를 언급하는 이유는 ‘홈스쿨 운동’과 ‘토지 정의 운동’이 서로 만나서 힘을 합치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개인적인 간절한 바람이 있기 때문이다. 두 운동이 서로 만나면 굉장한 상승 작용을 일으킬 것이라는 기대감이 있기 때문이다. 두 운동을 통하여 우리 사회의 고질적인 두 가지 문제, 곧 교육 문제와 부동산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는 소망이 있기 때문이다.
성경에서는 자녀 양육에 관하여 우리가 굳게 붙잡고 있는 신명기 6장 4-9절의 쉐마 말씀만큼이나 중요한 것으로 희년과 안식년에 대하여 강조하고 있는 레위기 25장 말씀이 있다. 거기에서는 땅에 관한 매우 중요한 구절이 등장한다. 곧 “토지를 영구히 팔지 말 것은 토지는 다 내 것임이니라 너희는 거류민이요 동거하는 자로서 나와 함께 있느니라”(레 25:23). 그런데 한국 사회는 물론이고 한국 교회와 경건한 그리스도인들조차도 이 말씀의 가르침을 청종하지 않고 있으며, 성경적인 토지법에 무지하거나 무시하는 삶으로 일관하는 경우가 상당히 많다. 아니 대다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이제 교육과 토지에 관한 두 운동의 흐름이 서로 만나서 성경의 명확한 가르침을 스스로 실천하면서 이 사회와 열방으로 그와 같은 주님의 교훈이 흘러가도록 하는 일에 역동적으로 동역할 수 있으면 좋겠다. 그러면 무너져가는 가정을 경건하게 세우는 동시에 이 사회를 살리는 일에 더욱 커다란 상승 작용이 생겨나고 이 나라가 더욱 건강하고 생산적인 터전으로 서서히 바뀌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우리나라는 지난 수십 년간 근대화 과정 속에서 급속한 경제 성장과 사회 변화 과정을 거치면서 심각한 병리 현상을 겪고 있다. 그 가운데 가장 심각한 영역이 바로 교육 분야와 부동산 분야라는 데에는 누구든지 이견이 없을 것이다. 아마 한반도 통일보다도 더 시급히 해결되지 않는다면 앞으로 이 나라의 장래가 위태롭다고 느낄 정도로 심히 걱정스럽다.
그러나 21세기로 접어들어 우리나라에서 기독교 홈스쿨 운동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고 성경적 토지 정의 운동이 더욱 활발하게 전개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그래도 이 나라에 한 가닥 소망이 있다고 생각하게 된다. 하나님께서 이 나라를 위기에서 건져내기 위해 일하고 계신다는 믿음이 생긴다. 지나치게 자의적인 해석인지도 모르지만, 마치 벼랑 끝으로 달려가고 있는 ‘한국’이라는 기관차를 멈추게 하시려고 이 땅에 홈스쿨 운동과 토지 정의 운동을 일으키셨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안타까운 것은, 이 두 운동이 서로를 잘 알지도 못하고, 서로를 알아가려고 애쓰거나, 서로 힘을 합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서로 힘을 합치기는커녕, 아직 때가 이르지 않아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서로에 대한 관심도 별로 없을 뿐만 아니라 서로에 대해서 굉장히 무지하다. 아무리 홈스쿨 운동에 열심히 헌신 내지는 몰두하는, 거룩하고 경건한 사람들이라도 성경의 토지법이나 희년 정신을 현대 사회에 적용하는 일에 무관심하거나 무지하고, 반면 아무리 성경적 토지 정의 운동에 열렬히 참여하고 있는 사람들이라도 성경적 자녀 양육의 일환으로 홈스쿨 운동을 거의 또는 제대로 알지 못한다. 하나님의 경륜을 따라, 어서 두 흐름이 하나로 만나 거대한 하나님의 법을 온 땅으로 흘려보낼 수 있는 때를 소망해 본다!
12. 홈스쿨의 세 가지 흐름
홈스쿨 가정들을 한 자리에 모아놓고 보면, 아마 각 가정이 저마다 지향하는 바가 제각기 다를 것이다. 그만큼 홈스쿨 가정들이 저마다 다양한 스펙트럼을 가지고 있다는 뜻이다. 그에 따라 취하는 가치관도, 방법도 저마다 다르다. 그래서 처음 시작하는 가정들은 혼란스러울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아마 상당히 무리가 있는 구분이기도 하겠지만, 홈스쿨 운동을 다음 세 가지 부류의 흐름으로 간략히 정리하여 제시해 보려고 한다.
그것은 다름 아닌 전통적인 접근 방식(Traditional approach), 샬롯 메이슨 접근 방식(Charlotte Mason approach), 언스쿨링 접근 방식(Unschooling approach)이다. 아마도 홈스쿨 스펙트럼의 오른쪽 끝에 전통적인 접근 방식이 위치해 있다면, 왼쪽 끝에는 언스쿨링 접근 방식이 위치해 있을 것이다. 그 중간쯤에는 샬롯 메이슨 접근 방식이 위치해 있지 않을까! 각 방식들이 추구하는 것들을 개략적으로 소개해 보면 이렇다.
(1) 전통적인 접근 방식: 『홈스쿨러들을 위한 스케줄 관리』(Managers of their homes) 외 다수 참고
- 대다수 한국 기독교 홈스쿨 가정에서 채택하고 있는 방식
- 특정한 커리큘럼을 채택하여 사용
- 학년(school year)/학기(semester/term)/방학(vacation) 개념 사용
- 가정에서 교사 vs. 학생 관계 설정
- 수업 시간/학과목 구분, 학습 일정표/계획표 사용
(2) 샬롯 메이슨 접근 방식: 『샬롯 메이슨과 함께 하는 교육』(A Charlotte Mason Companion) 외 다수 참고
- 오전: 정규 학습 방식 활용
- 오후: 자유로운 자연/체험 학습
- 관계의 학문/살아있는 책/이야기 시간을 중요시한다
(3) 언스쿨링 접근 방식: 『우리의 자녀 학교 보내지 말라』(Christian Unschooling), 『엄마는 최고의 선생님이야』, 『홈스쿨로 대학까지』, 『아이들은 자연이다』 외 다수 참고
- 전통적인 접근 방식과 반대 방향의 자세를 취함
- 성령님의 자유로운 개입과 인도하심에 가치를 둠
- 어설픈 인위적인 부모의 개입에 거부감을 가짐
- 아이의 자기 주도적인 학습 능력을 키워주고,
- 하나님께서 디자인하신 원래 모습을 되찾는 것에 초점
(인간의 죄성보다는 긍정적인 인간성에 주목)
- 조력자로서 부모의 정체성, 주도자로서 자녀의 정체성
그런데 『다이애나 웨어링과 시작하는 홈스쿨링』(Beyond Survival)의 저자 다이애나 웨어링에 따르면, 어느 특정한 방식 하나만을 고집하는 게 아니라, 연령에 따라, 과목에 따라, 수준에 따라, 부모/자녀의 학습 유형에 따라 적절히 선택해서 홈스쿨의 방향과 방법을 잡아나갈 수 있다고 한다.
필자 생각에는 초등학교 중반 나이까지는 언스쿨링 방식으로 홈스쿨을 진행해 보면 어떨까 싶다. 적어도 학습 영역에서는 말이다. 그 다음에는 샬롯 메이슨 방식, 전통적인 방식으로 점차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이것은 아이들에 따라, 가정에 따라 달라질 수 있을 것이다. 또한 학습 유형, 학습 내용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문제이기는 하다. 한국 홈스쿨 가정의 대부분이 전통적인 방식에만 매달리고 있는 상황에서, 좀 더 다양하고 폭넓고 유연한 홈스쿨 방식을 채택하여 진행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13. 마지막 보너스
홈스쿨 초기에, 그러니까 아직 경험도 많지 않고 그다지 잘 모를 때, 우리 가정이 기둥으로 삼아야 할 홈스쿨 정신이 무엇일까를 생각하면서 나름대로 정리해 놓은 것이 바로 ‘왕립가정학교의 10가지 기초’(『홈스쿨 가정 이야기』, pp. 80-93)이다. 그로부터 한참 시간이 흐른 뒤, ‘고양 파주 지역 네트워크 모임에서 추구하는 10가지 방향성’은 최근에 우리 지역 모임이 홈스쿨 협회로부터 지회 승인을 받으면서 협회 홈페이지에 지회 소개용으로 들어간 내용이다. 홈스쿨을 처음 시작하는 가정이나 지회 활동을 생각하고 있는 분들에게 다소나마 참고가 되지 않을까 하여 마지막 보너스로 여기에 보탠다.
A. 왕립가정학교의 10가지 기초
(1) 부모가 하나님 아버지 앞에 날마다 무릎 꿇고서 홈스쿨을 받고 있는가 하는 점이다(부모의 경건 훈련).
(2) 우리 아이는 나이가 얼마인지에 상관없이 거듭난 그리스도인으로서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와 주님으로 고백하는지의 여부다(자녀의 신앙 훈련).
(3) 우리 아이는 어떤 아이인가를 자세히 관찰하여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재능이나 은사를 정확히 파악한 다음 거기에 맞는 목표를 세워야 한다는 점이다.
(4) 지속적으로 홈스쿨을 진행하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고 할 수 있는 성품 훈련이다.
(5) 책읽기를 좋아하는 아이로 만들어야 한다는 점이다.
(6) 언어 훈련이 필요하다.
(7) 음악이나 미술에 관한 기본적인 소양을 키워야 한다. 각박한 세상일수록 여유를 알면서 삶을 즐기고 누릴 줄 아는 전인적인 사람이 되어야 한다.
(8) 기초 체력을 배양하는 데 투자해야 한다. 체력은 영력이다.
(9) 언제 어디에서든 돈을 벌어들여 경제 생활을 가능하게 만드는 구체적인 기술을 적어도 한 가지 익히는 일도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다.
(10) 이 모든 것들을 혼자서 계획하고 실행하고 책임질 수 있는 생활 습관을 키워야 한다.
B. 고양 파주 지역 네트워크 모임에서 추구하는 10가지 방향성
(1) 우리는 하나님(성부/성자/성령)께서 친히 다스리고 인도하시는 믿음의 홈스쿨을 지향합니다.
(2) 우리는 성경 말씀대로 따르고 가르치는 홈스쿨을 지향합니다.
(3) 우리는 하나님께서 설계하신 목적대로 자녀들을 키우는 홈스쿨을 지향합니다.
(4) 우리는 서로 조화롭고 건강한 관계 중심(하나님/인간/자연)의 홈스쿨을 지향합니다.
(5) 우리는 먼저 자기 가정을 든든히 세우고, 나아가 자기 가정 밖(이웃/사회/국가/세계)으로도 열심히 눈길을 돌리는 홈스쿨을 지향합니다.
(6) 우리는 어떤 홈스쿨 가정이든 누구에게나 열려 있으며 각자(가정/부모/아이들)의 은사를 존중하는 홈스쿨을 지향합니다.
(7) 우리는 이 땅에 가장 적절한 한국적 홈스쿨이면서도 어느 곳을 가든지 자기 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 가장 세계적인 홈스쿨을 지향합니다.
(8) 우리는 이 땅에서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는 홈스쿨 방법/모델을 지향합니다.
(9) 우리는 5성 장군(영성/품성/감성/지성/체성) 같은 균형 있는 인간을 양육하는 홈스쿨을 지향합니다.
(10) 우리는 같은 지역 내에서 다른 홈스쿨 가정들과 적극적으로 함께 모이고 협력하는 홈스쿨을 지향합니다.
에필로그
이 칼럼을 마치면서, 글을 많이 쓰시는 분들은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나에게는 이 짤막한 글쓰기도 너무나 힘든 작업이었기 때문이다. 더구나 생각이 치밀하지 못하고 아직 농익지 않은 상태에서, 무언가를 토해내야 하는 상황이 참 낯설다. 너무나 부족한 글이라 부끄럽기도 하다. 내용 가운데 거친 부분이 있다면, 읽는 이들의 많은 지도 편달과 양해와 용서가 있기를 바란다. 혹시 다른 의견이나 더 나은 생각이나 제안, 그리고 질문이 있으면 주저 없이 “성경적 자녀 양육”(http://cafe.daum.net/biblicaleducation) 카페나 전자우편(ljw2000@hanmail.net)을 이용하거나 왕립가정학교로 연락하기 바란다.
한국기독교홈스쿨협회 http://khomeschool.com 글:임종원(성경적자녀양육카페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