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퓨터 학습
1.사회 44-47쪽까지 답 완전히 정리할 것ok
2.한국의 집(초가집, 기와집, 한옥을 구경할 수 있는 사이트 찾아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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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청학동
인구 100명(1990)이다. 도인촌(道人村)이라고도 한다. 지리산 삼신봉(三神峰: 1,284m)의 동쪽 기슭 해발고도 800m에 자리잡고 있다. 이곳은 예로부터 천석(泉石)이 아름답고 청학이 서식하는 승경(勝景)의 하나로 꼽혀왔으며, 주민 전체가 갱정유도(更定儒道)를 신봉한다.
일명 일심교(一心敎)라고도 하는 이 신흥종교의 정식 이름은 '시운기화유불선동서학합일대도대명 다경대길유도갱정교화일심(時運氣和儒佛仙東西學合一大道大明多慶大吉儒道更定敎化一心)'이다. 집단생활을 하는 이들의 가옥은 한국 전래의 초가집 형태를 띠고 있으며, 의생활도 전통적인 한복차림을 고수하고 있다.
미성년 남녀는 머리카락을 자르지 않고 길게 땋아 늘어뜨리며, 성인 남자는 갓을 쓰고 도포(道袍)를 입는다. 자녀들을 학교에 보내지 않고 마을 서당에 보내는 것도 특이하다. 마을 사람들은 농업 외에 약초·산나물 채취와 양봉·가축 사육 등으로 생계를 꾸려 나간다
4.남산 한옥 마을?
남산은 옛부터 자연풍경이 아름다워 우리 조상들은 정자를 짓고 풍류를 즐긴 곳이다. 특히 남산골 한옥마을이 있는 이곳을 청학동이라 불렀으며, 삼청동, 인왕동, 백운동, 쌍계동과 함께 이른바 서울에서 자연경관이 뛰어난 이른바 '한양 5동'(洞)의 하나로 손꼽았다.
남산골 한옥마을은 남산 제모습 가꾸기 사업의 일환으로, 그동안 훼손되었던 자연경관을 복원하고 2천 4백여 평의 대지 위에 연못과 누각을 만들어 옛 모습을 살린 것이다. 그리고 서울시 이곳저곳에 흩어져 있던 서울시 민속자료인 전통가옥 5채를 이전, 복원했다. 순정효황후 윤씨 친가, 해풍부원군 윤택영댁 재실, 부마도위 박영효가옥, 오위장 김춘영가옥, 도편수 이승업가옥이 이 남산골 한옥마을에 자리잡고 있다. 이밖의 주요 시설로는 전통공예관과 누각 5동, 연못 등이 있다.
한옥마을이 내려다보이는 언덕에는, 서울 정도(定都) 6백년을 기념하여 1994년 11월29일에 지하 15미터 깊이의 타임캡슬이 설치하였다. 이 타임캡슬은 4백년 뒤인 2394년에 개봉된다고 한다. 이곳 남산골 한옥마을에서는 매주 토요일과 일요일에 탈춤 등 각종 민속공연이 열리고 있다.
5.하회 마을?
1984년 1월 10일 중요민속자료 제122호로 지정되었다. 민속적 전통과 건축물을 잘 보존한 풍산 유씨(柳氏)의 씨족마을이다.
하회마을의 지형을 태극형 또는 화부수형(蓮花浮水形)이라고도 하는데, 이는 낙동강 줄기가 이 마을을 싸고돌면서 ‘S’자형을 이룬 형국을 말한다. 강 건너 남쪽에는 영양군 일월산(日月山)의 지맥인 남산(南山)이 있고, 마을 뒤편에는 태백산의 지맥인 화산(花山)이 마을 중심부까지 완만하게 뻗어 충효당(忠孝堂)의 뒤뜰에서 멈춘다. 강 북쪽으로는 부용대(芙蓉臺)가 병풍과 같이 둘러앉아, 산천 지형 또한 태극형 연화부수형국을 이룬다.
유성룡(柳成龍) 등 많은 고관들을 배출한 양반고을로, 임진왜란의 피해도 없어서 전래의 유습이 잘 보존되어 있다. 허씨(許氏) 터전에, 안씨(安氏) 문전에, 유씨(柳氏) 배판이라는 말대로 최초의 마을 형성은 허씨들이 이룩하여, 하회탈 제작자도 허도령이었다고 하며, 지금도 허씨들이 벌초를 한다고 한다.
화천(花川)의 흐름에 따라 남북 방향의 큰 길이 나 있는데, 이를 경계로 하여 위쪽이 북촌, 아래쪽이 남촌이다. 북촌의 양진당(養眞堂)과 북촌댁(北村宅), 남촌의 충효당과 남촌댁(南村宅)은, 역사와 규모에서 서로 쌍벽을 이루는 전형적 양반가옥이다. 이 큰 길을 중심으로 마을의 중심부에는 유씨들이, 변두리에는 각성(各姓)들이 살고 있는데, 이들의 생활방식에 따라 2개의 문화가 병존한다.
지금까지 보물이나 중요민속자료로 지정된 가옥은 양진당(보물 306), 충효당(보물 414), 북촌댁(중요민속자료 84), 원지정사(遠志精舍:중요민속자료 85), 빈연정사(賓淵精舍:중요민속자료 86), 유시주가옥(柳時柱家屋:중요민속자료 87), 옥연정사(玉淵精舍:중요민속자료 88), 겸암정사(謙菴精舍:중요민속자료 89), 남촌댁(중요민속자료 90), 주일재(主一齋:중요민속자료 91), 하동고택(河東古宅:중요민속자료 177) 등이다.
양진당·충효당·남촌댁·북촌댁 등 큰 가옥들은 사랑채나 별당채를 측면으로 연결하거나 뒤뜰에 따로 배치하는 등 발달된 주거 구조를 보이고, 장대한 몸채·사랑채·많은 곳간·행랑채가 공통적으로 갖추어져 있다. 특히 사랑방·서실·대청·별당과 같은 문화적 공간을 지니는 점은, 과거 신분제 사회에서 일반 서민들이 소유한 최소한의 주거 공간과는 확연하게 구별된다.
6.정주간이란?
관북지방에는 전국에서 기온이 가장 높은 곳도 있고, 가장 낮은 곳도 있다. 기록에 의하면 1939년 7월 19일 북청읍(北靑邑)의 기온은 41℃였는데, 이는 한국 최고기온이었다. 한편, 1927년 1월 19일의 풍산(豊山)의 기온은 -41.5℃로서 한국 최저기온인 중강진(中江鎭)의 -43.6℃에 가깝다. 한편, 삼수는 연평균기온이 2.1℃로서 한국 연평균기온의 최저치(最低値)를 보이고, 경성은 연강수량이 508mm로서 역시 한국 연강수량의 최저치를 보인다.
그와 같은 한서의 차(差)가 심한 기후는 주민의 주생활에 영향을 끼쳐, 이른바 관북형(關北型)또는 田자형의 주택구조를 형성하게 되었다. 田자형이나 관북형의 가옥구조는 곧 겹집구조로서의 특징을 지니고, 또 부엌과 방 사이에 ‘정주간’이라는 넓은 온돌방을 마련하여 부엌과의 사이를 벽으로 막지 않는 것이 특징이다.
그와 같은 가옥구조는 외기(外氣)를 효과적으로 막고, 또 아낙네들의 작업공간인 부엌을 안방 안에 끌어들인 구조가 되는 셈인데, 정주간은 집안에서 가장 넓은 안방 구실을 하며 평상시에는 거실이 되고, 식당 ·침실 등 다목적으로 이용되는데, 추운 관북지방에서는 가장 편리한 가옥구조라고 할 수 있다.
7.동치미 만드는 순서?
국적 : 한국
구분 : 김치
주재료 : 무
겨울 동치미와 봄 ·여름 동치미로 나뉘는데, 겨울 동치미는 자그마하고 매운 맛이 있고 물기가 많은 무를 골라 껍질이 있는 채로 깨끗하게 씻는다. 소금에 무를 굴려 묻혀서 항아리에 담아 2일 간 그대로 절여 둔다. 이때 무에 소금이 배어서 수분과 무의 수용성 성분이 방출되어 국물이 흥건히 생긴다. 이렇게 되었을 때 소금간을 맞춘 물을 준비하고 마늘 ·생강 저민 것, 파를 통째 썬 것을 거즈 주머니에 넣어 무 사이에 끼워 떠오르지 않게 한 다음 무를 넓적한 것으로 살짝 눌러놓고 준비한 소금물을 붓는다. 여기에 껍질 벗긴 배를 통으로 넣으면 더욱 좋다. 봄과 여름에 먹는 동치미는 무를 적당한 크기의 사각형으로 썰어서 소금에 잠깐 절였다가 마늘 저민 것, 파 통째로 썬 것, 붉은 고추를 좁고 길게 썬 것 등을 함께 섞어서 항아리에 담고 무를 절였을 때 생긴 국물에 물을 타서 소금으로 간을 하여 붓는다. 여기에 오이와 배를 함께 넣으면 빛깔과 맛이 모두 좋아진다.
8.김장이란?
어느새 찬바람 불어오는 겨울이 시작된 것 같다. 겨울의 문턱에서 집집마다 걱정하는 것은 김장과 연탄이다.
요즈음엔 연탄을 이용하는 가정이 줄어들어 별 의미가 없다고 할지도 모르나 옛날 같으면 연탄을 천 장 정도 들여놓고 김장을 해놓으면 올 겨울 걱정은 없다고 했다.
아직 김장을 담그지 못한 집도 있겠지만, 대부분의 가정에서는 김장을 담갔을 것이고 벌써 땅에 묻은 김칫독에서는 김장김치가 맛있게 익어가고 있을 것이다. 왜 김치독을 땅에 묻으면 맛이 좋게 보관되는 것일까?
김치를 지금의 배추와 고춧가루로 담그기 시작한 것은 그렇게 오래 되지 않았다. 그 중에 배추는 지중해 동쪽 해안에서 보리의 잡초로 취급되던 것이 티베트를 거쳐 중국에 들어와 채소로 육성된 것으로 조선중기까지 내려왔다고 한다.
그것은 여러가지 전해 내려오는 농서(農書)를 통해서 알 수 있다. 그 중에서 향약구급방(鄕藥救急方)에 따르면 「맛이 달며 온하고 독이 없다. 줄기는 짧고 잎은 넓고 두꺼운데 비하면 숫무와 같은 유가 된다」 라는 설명이 나온다.
여기서 설명된 배추는 지금 우리가 먹고 있는 배추가 아니라 지금의 무와 닮은 어떤 것으로 추측된다. 지금처럼 속이 가득 들어 찬 배추인 결구배추는 그 훨씬 뒤에 중국에서 들어온 것이다.
북학의(北學議·1778?)에는 중국에서 얻어온 배추의 종자로 키웠을 때만 속이 들어 찬 배추가 되었고, 그것을 한국에서 몇년 계속 재배하면 다시 무와 비슷한 형태로 바뀌었다고 기록되어있다.
이런 배추를 소금에 절여 독에 보관하여 먹었으나 조선중엽 이후에 고춧가루가 들어오면서 양념이 만들어져 지금의 김장김치가 되었다.
고추의 매운맛 내는 캡사이신, 젓갈 비린내 방지 효과
김치에도 여러가지가 있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중요하고 김치맛의 극치를 볼 수 있는 것은 한겨울밤 방금 김장독을 열고 꺼내온 새 김치를 먹을 때이다. 찬밥이라도 있다면 그 국물에 말아 김치말이를 해먹으면 한겨울의 답답하고 허기진 속을 달래는데는 그만 인 것이다. 그럼 김장독을 땅속에 묻어야 김치맛이 제대로 나는 이유를 알아보기 로 하자.
먼저 김장독을 땅에 묻는 이유는 땅속이 바깥보다 온도의 변화가 적기 때문이다. 김치는 5℃ 정도에서 4∼6주간 보관하는 것이 좋은데 그 방법으로 김칫독을 짚으로 싸서 깊이 묻어 온도의 변화를 방지하는 것이 좋다.
김칫독에 김치를 넣고 봄에 먹을 것은 아예 흙으로 덮어두기도 하고, 그렇지 않은 것들도 김치를 꼭꼭 눌러놓고 그 위를 우거지로 덮기도 한다. 땅을 50cm만 파 들어가도 하루 기온의 변화를 느낄 수 없고, 10∼20m 속에서는 연중 기온변화가 없다.
이렇게 온도의 변화를 줄일 수 있다는 장점 이외에 다른 것도 지적되고 있는데, 그것은 공기와의 접촉을 줄여 산패를 방지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땅에 묻어놓은 김칫독에서 꺼낸 김치가 플라스틱 김칫독에 서 꺼낸 김치보다 더 맛이 있다.
김치의 진정한 맛의 원인을 알려고 한다면 김치에 사용된 물질과 그곳 에서 일어나는 화학작용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 김치에는 비타민C가 풍부한 고추를 많이 쓰는데, 고추는 마늘과 함께 젖산균의 번식을 도와 김치의 발효를 촉진함으로써 김치의 독특한 맛을 내는 작용을 한다.
또한 고추의 매운 맛 성분인 캡사이신과 고추에 많이 포함된 비타민E 는 비타민C의 산화를 막아주는 작용을 하고, 캡사이신은 젓갈이 산패하여 비린내가 나는 것을 방지하는 역할을 한다. 이렇듯 김치는 식물성 동물성 영양을 고루 갖춘 우리의 음식이다.
김치를 담그는 방식도 지방마다 조금씩 다르다. 추운 지방일수록 하얀 배추의 모습이 그대로 드러나도록 하는 백김치를 담고, 더운 지방에서는 김치가 빨리 익고 빨리 시어지게 되므로 김치를 짜게 담는다.
김치의 진정한 맛은 손끝에서 난다고 할 정도로 김치의 맛은 다양해서 집마다 다 다른 맛일 뿐 아니라 같은 독에서 꺼낸 김치라도 그 맛이 다 다를 정도이다. 이렇게 맛이 다를 수 있는 김치의 독특함 때문에 우리들은 김치의 매력에 푹빠져 살고 있다.
그러나 김치의 이런 점이 훌륭함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상품화 하는데는 많은 어려움이 따른다. 김치가 해외시장에서 일본의 「기무치」에 이름을 빼앗길 처지에 놓여있다고 하니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요즈음 패스트푸드와 인스턴트 식품에 익숙한 아이들이 우리 김치를 멀리하고 있다. 이 땅에서 김치의 자취가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걱정은 기우에 불과한 것일까?
9.된장 만드는 순서?
한국음식의 기본 조미료인 간장 ·된장 ·고추장의 총칭.
한국은 농업국가로서 곡물로 조미료를 만드는 일이 발달하였다. 이 곡물 조미료가 곧 장이다. 장은 간장 ·된장 ·고추장이 주가 되고, 장을 만드는 주재료는 콩이다. 이 밖에 보리쌀 ·밀쌀 ·밀가루 ·멥쌀 ·찹쌀도 배합하여 쓴다. 짠맛을 내는 주재료는 소금이고, 좋은 물이 있어야 한다. 한국음식의 간은 소금 ·햇간장 ·중간장 ·진간장 ·된장 ·고추장 등을 음식재료와 조리법에 맞추어 쓴다. 가정에서 담그는 장은 주택이 서구화됨에 따라 차차 담그기 어려워지는 형편이므로 식품산업체의 공장에서 제조하여 판매하는 여러 종류의 장이 유통된다. 콩메주장이 아닌 멸장은 도서지방 ·해안지대에서 만들어 쓰고 있는데, 멸치젓을 담가 생젓국을 떠 내고 나머지에 물과 소금을 넣고 달여서 깨끗하게 밭쳐 콩간장처럼 쓰는 방법이다. 식물성 간장에 비해 동물성 간장이 맛은 더 좋으나 해를 묵히면 맛이 없어진다. 콩간장은 햇간장일 때 빛이 연하여 국에 간을 맞추기에 좋으나 해를 묵히면 점점 농축되어 빛이 진하여지므로 찌개 ·조림 등에 쓰는 편이 좋으며, 이를 진장(陳醬:묵은간장)이라 한다. 된장 ·고추장은 여러 해 묵으면 되어지고 맛이 없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