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배자들은 더 있었다. 이번에는 시선을 조금 돌려 제국 내부를 들여다 보면 여기에도 패배자들이 있었다. 이들은 대부분 라인하르트 시기에 자신의 잘못으로 인해 승진운이든 명예든 떨어진 이들로 여기에는 하이드리히 랑, 알프레트 그릴파르처, 헬무트 렌넨캄프, 이자크 페르난트 폰 투르나이젠, 우드 디터 훔멜, 좀바르트 같은 이들이 속했다.
특히 하이드리히 랑의 경우 그 뒤가 좋지 않았다. 랑이 처형당한 후 그 여파는 랑 한 사람에게만 돌아오지 않았다. 그의 가족과 그가 이끌었던 내국안전보장국 그 전체에도 영향이 미친 것이었다. 비록 로엔그람 왕조에선 연좌제가 없어지긴 했으나 골덴바움 왕조 시기 500년간 있어온 연좌제적 분위기가 하루아침에 없어진 것은 아니었고 특히 랑은 잡범이 아닌 대역죄나 다름없는 죄를 지었기에 주변의 시선은 엄청나게 싸늘했다.
랑의 유족들은 암암리에 존재하는 사회적 불이익을 감내해야 했다. 안 그래도 랑은 사회질서유지국 시절부터 구린 짓을 많이 해서 지인들은 몰라도 사회적 이미지는 좋지 않았는데 대역죄이기까지 하니 말해 무엇할까. 우선 이것까지는 당연했는데 랑의 유족은 연금을 받을 수 없었다. 랑이 범법자였던 만큼 그것은 당연했지만 한편으로는 랑은 특별히 부를 탐하거나 하지는 않았으며 오히려 꾸준히 기부까지 한 사람이었기에 지위에 비하면 재산은 의외로 적은 편이어서 랑의 노후는 고위공직에 임한 보상으로 받는 연금이 아니라면 풍족하지 않을 터였다.
그랬기에 연금이 없다는 것은 랑의 유족들에게 앞으로의 노후는 국가에서 절대 책임져주지 않고 알아서 먹고 살아야 한다는 것을 뜻했다. 그러려면 충분한 소득이 있어야 했으나 그렇지 못했다. 랑의 아들은 아버지와는 다르게 어느 공기업에서 일하며 직장에서 딴 생각 안 하고 성실하게 일하는 사람이었고 지인들과의 관계는 좋은 편이었기에 승승장구하고 있었지만 아버지의 일로 인해 승진길이 막히고 말았다. 그것도 아직 중견직에도 끼지 못하는 지위에서 승진길이 멈춘 것이었던데다 상사들도 '랑의 아들'이라는 이유로 한직에 앉히곤 했기에 소득이 그렇게 좋지 못해서 자신의 아들이 독립할 때까지 조금 고생을 해야 했다.
그나마 랑의 아들은 이미 취업한 상태였고 사내에서 기피당하지는 않았지만 아직 학생이던 랑의 손자는 고교생활때 많은 고초를 겪어야 했다. 랑이 처형당했을 때 그의 손자는 고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있었다. 그런데 하필 할아버지가 처형당하는 바람에 집안은 몰락, 랑의 손자 또한 학교생활이 순탄하지 않았다. 물론 이전부터 바라던 꿈도 포기하고 다른 진로를 꿈꿔야 했다.
게다가 하필이면 학교가 제국정부에서 지원하는 국립 고등학교였던 관계로 고등학교에서 랑의 손자가 겪은 고생은 말할 수 없었다. 물론 학교의 교사들은 원칙을 지켜야 했기에 랑의 손자를 따돌리고 차별하는 학생들을 말렸지만 그들 또한 속으로는 랑의 손자는 좋게 여겨도 랑을 도저히 좋게 볼 수 없었기에 랑의 손자가 따돌림 당하고 차별당하는 것을 좌시하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랑의 손자가 원하는 만큼 충분히 도와주지는 못했다.
특히 이 때에 랑의 손자는 운이 지독히도 나빴다. 타이밍도 최악이었지만 학생운도 나빴다. 그 때에 랑과 함께 입학한 학생 중에선 랑에게 원한을 가진 학생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공교롭게도 할아버지를 사회질서유지국에 의해 잃은 학생으로 그의 할아버지는 립슈타트 전역이 터지기 직전에 운 나쁘게 사회질서유지국에 끌려가 고초를 겪었다. 연좌당할만한 죄가 씌워진건 아니었기에 그의 할아버지만 고문당하다 죽고 끝났으나 사회적 평판이 떨어져 고생했다가 라인하르트 집권 후 명예를 회복할 수 있었다.
이 때문에 그는 골덴바움 왕조와 사회질서유지국, 그리고 그 수장인 랑에 엄청난 증오감을 품고 있었지만 반대로 할아버지와 집안의 명예를 회복시켜준 라인하르트에게 고마움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신 제국의 은혜에 보답해야 한다며 제국을 위해 일하겠다 마음먹은 것인데 랑이 내국안전보장국장이 된 것에 낙담하며 방황해야 했다.
그러다가 겨우 정신차리고 다시 공부에 임했지만 이미 성적이 나쁜 전적이 있던 관계로 생각보다 좋은 고등학교로 진학할 수 없어졌다. 이것으로도 랑에게 원한을 가졌는데 그에게 운이 터진다. 랑이 죽고 그의 손자가 자신과 같은 학교에 들어갔다는 것. 이에 그는 거리낌 없이 랑에게 분노를 쏟아냈다.
그것은 절대로, 절대로 해선 안될 짓이었다. 하지만 학생들은 그보다는 정도가 약했지만 그래도 '중죄인의 가족는 부당한 대우를 받아도 싸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고 특히나 그 학생은 랑의 피해자였던 만큼 다른 학생들은 오히려 그 학생을 동정하였고 그 학생도 간혹 랑의 손자가 부당하다고 말하면 그는 더 랑을 괴롭히며 자신의 부당함을 역설하며 논파하고자 하였다.
그리고 주변의 학생들도 가세하며 비슷한 논리로 그 학생을 옹호하였다. 물론 랑의 손자도 성격이 나쁘거나 하지는 않았기에 그 학생이 적극적으로 랑의 손자를 괴롭혔다면 다른 학생들은 그저 랑의 손자를 피하며 외면하는 정도였고 일부 양식있는 학생들은 랑의 손자를 도와주기도 하였다. 하지만 그 정도로는 랑의 손자가 피해를 입는 것을 다 막을 수는 없었다.
이 상황에서 랑의 손자는 자신이 이 학교에서 인정받을 수 있는 방법은 공부밖에 없다고 생각해 힘들어도 열심히 공부하였다. 덕분에 반에서 늘 1등과 2등을 오가며 학급에서도 10위권 내의 우수한 학생으로 유지하였고 이 점은 교사들로 하여금 어쨌든 랑의 손자를 보호하는데 조금이라도 힘쓰는 계기가 되었지만 결국 불우한 고교생활을 바꿀 수는 없었다.
다만 그 학생도 결국 뒤끝이 좋지만은 않았다. 부당한 대우가 원인이 되어 오랫동안 쌓여온 분노라는 동정받기에는 충분한 계기였으나 결국 행위 자체는 지극히 잘못되었던 관계로 이 두 사람의 결말은 공멸로 끝났기 때문이다. 랑의 손자나 그 학생이나 결국은 성적은 좋았어도 사람들로부터 좋은 평가는 받지 못했고 쓸쓸하게 졸업하였으며 평생 화해하지 못했다.
그나마 랑의 손자는 대학교부터는 운이 풀렸고 능력을 살려 관직을 얻었으며 어느정도 승진하는데도 성공했으나 30대에야 겨우 말단직을 얻을 수 있었고 결국 고위직까지 진출하지는 못했으며 사적으로도 랑의 손자라는 꼬리표가 두고두고 따라다녀 좋은 성격과 할아버지와는 달리 나쁜 일을 하는게 아님에도 불구하고 대인관계가 넓지 못했고 집안의 운수는 그 아들 대에야 좋아졌다.
그리고 랑이 몸담았던 내국안전보장국 역시도 신세는 좋지 못했다. 랑의 몰락을 계기로 내국안전보장국 내부에서는 혼란이 빚어졌다. 일단 내국안전보장국은 당장에는 없어지지 않았으나 남은 라인하르트 생전 동안에는 무기력한 채 존립의 위기 속에서 가시밭 걷듯 위태롭게 지냈고 라인하르트 사후 제국에서 소소한 사건들이 일어나며 이를 처리하게 되며 잠시금 존속이 연장되었다.
그러나 랑을 끝장내는데 일조한 이들 중 하나가 힐데가르트였던 만큼 그녀는 랑을 좋지 않게 보았고 또 랑에 의해 그 조직이 얼마나 안 좋게 쓰여질 수 있는지도 잘 알았기에 결코 내국안전보장국을 그대로 놔둘 생각이 없었다. 결국 안정을 찾게 되자 내국안전보장국은 각종 권한이 없어지거나 제약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결국 알렉산더의 친정이 시작되기 몇년 전 결국 부서 자체가 폐지되었다.
다만 그렇다고 해도 결국 내국안정보장국은 후신의 형태로나마 살아남았다. 전제군주제인 제국의 특성상 결국 비슷한 부서는 존속할 수 밖에 없었기 떄문이다. 하지만 그 폐해를 잘 알고 있었던 만큼 내국안전보장국의 후신은 경찰이나 검찰과 분리된 독립적 지위를 상실한 채 경찰과 검찰에 각각 분할되어 들어가고 소속한 곳에서 '정치적인' 부분의 수사를 맡는 조직으로 전락하였다.
이 부서들에는 그래도 무게감이 있는 만큼 중요한 사람들이 임명되었고 또 내국안전보장국 출신 인사들이 그대로 유입되며 문제를 안 일으키거나 한 것은 아니었기에 존재내내 가끔씩 문제를 일으키곤 했다. 심지어 내국안전보장국이 전신이었던 관계로 조직 내부에서는 내국안전보장국에서 시작되는 역사를 애써 거부하고자 하며 논란을 가져오기도 하였다.
그래도 체제를 위해선 어쩔 수 없다며 어느정도 불법적인 행위가 용납되었던 과거와는 달리 독립적 지위 상실 후에는 용납되지 못하였기에 사회질서유지국에서 시작된 엄청난 악명은 내국안전보장국으로 이어지며 약해졌지만 이어졌으나 결국에 이 시기에 이르러 사실상 없어지게 된다. 또한 절대적인 수사권 또한 조직이 분할되어 없어졌기에 무소불위의 위상 또한 없어지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