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부지의 기일 (10월 8일)
분주하고 긴장된 추석 대명절의 들뜬 분위기를 한발짝 비켜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다소 피곤하고 가라앉은 듯한 명절 후유증을 벗어나려 애쓰며 평상을 찾아가는 윤기없는 시점에 난 느긋하고 편안하고 간절한 마음으로 고향길을 찾아 나선다. 추석 6일 이후가 내 아버님의 기일인지라 명절 사람들 많을때 함께 왔다가 가지 그러느냐시는 어머님 말씀에 "예~ 그럴께요!!~" 하는 대답을 습관처럼 드리면서도 이때가 되면 다시 추석 귀성길을 포기하고 기꺼이 아버님 기일을 선택해 버리는 것은 그다지 특별한 이유가 있음은 아니지만 복잡하고 분주함에 쉽게 적응 못하는 성격 탓과 아버님 제사상에 머리 조아리며 생전에 못다 받은 아버지 사랑에 푸념반 어리광 반으로 보상심리 내지는 빚쟁이 같은 심정으로 저승에서 지켜보고 계실 내 아버님께 소원을 빌고 소망하고 부탁하고 나면 못 다 주고가신 죄가 있으시니 왠지 꼭 들어 주실것만 같은 착각속에 나름 정성스럽고 간절한 마음으로 추석명절을 포기하고 아버님의 기일날을 택해서 고향길을 나선다. 어머님이 계시고 누님께서 참석을 하시지만 형님,형수님께서 좀은 외롭고 적적하실것 같은 생각 또한 한 이유이기도 하리라. 어제 마무리를 못다한 일에 거래처 고객께 사정을 전하고 다음주 월요일 마무리 하겠노라 양해를 구한 후 아내와 함께 사무실 업무와 집 정리를 마치고 남부터미널로 향한다.(10:20) 공공교통 버스를 타고 가면서 아내와 함께 즐길 수 있는 느긋함과 편안함을 공유하기 위해 애마를 쉬게하고 등산 배낭에 옷가지와 필수품을 챙겨 어깨에 메고 고향길을 나선다. 5호선 전철에 올라 군자역에서 7호선으로 환승, 고속버스 터미널에서 3호선으로 환승 후 이내 곧 남부터미널 역에 이르자 스르르 열리는 전철문을 빠져나와 넉넉히 남은 시간을 확인하고 여유있게 개찰구를 나와 매표소를 향한다. 깜짝 인터넷 예약 사실을 생각해 내고 티켓 발매기를 찾아 승차권을 뽑고나니 아직도 시간은 여유롭다. 아내와 팔짱을 끼고 이곳 저곳을 넘보고 다니다 도넛츠 가게에 이르러 아내를 찔벅거려 눈치를 보내자 아내도 좋겠다는듯 환한 미소로 OK싸인을 한다. 두개를 따로따로 이쁘게 포장해달라 청하고 정환이가 이따금씩 챙겨다 주는 도넛츠 맛에 길들여진 터라 맛있는 품목에 손가락을 가리키며 "저것이 더 맛난디!!~"하며 아내와 웃는다. 점원 아가씨가 건네주는 이쁘게 포장된 도넛츠 케이스를 받아들고 대합실 쪽으로 걷다보니 구례,하동가는 승강장 문 사이로 버스가 보이고 이미 몇몇 승객은 승차를 완료하고 출발을 기다리고 있다. 버스에 올라 자릴 잡고나자 명절 끝이라선지 좌석이 텅텅 빈 채로 티켓확인을 마치는가 싶더니 안내 방송과 함께 마침내 버스가 출발한다(11:15).
좌,우회전을 거듭한 끝에 도심을 벗어나자 곧 고속도로에 진입한다. 금새 톨게이트를 빠져나와 빠른 속도로 고속도로를 미끄러져 나간다. 시간과 속력이 더해 질수록 푸르름이 덜 가신 황금 들녘은 깊디깊은 가을 속으로 줄달음을 쳐가고 차창을 스치고 가는 가을 정경은 우리 부부의 눈과 가슴속을 휘젓다 빠르게 멀어져 간다. 차창을 스쳐가는 가을 풍경에 시선을 빼앗기다 의자를 뒤로 젖혀 머리를 기댄 후 아내에게도 흉내를 내 보이고 살며시 눈을 감는다. 두시간여를 달린 후 인삼랜드 휴게소에서 휴식과 함께 감자와 어묵으로 빈 속을 대충 채우고 장수를 지나 남원에 이르기 까지 설익은 가을풍경에 짬짬이 아내를 쿡쿡대며 차창밖으로 눈길을 돌리는 사이 기사양반도 가을 정취에 맘을 뺏겨서였는지 세시간 반이면 도착하던 고향길을 네시간을 꽉 채우고도 수분여를 늦게 구례 터미널에 도착한다.(15:20) 짐을 챙겨 내리자 마자 버스 시간을 확인하니 이미 5분전에 광의행 버스는 떠나고 다음 차 시간이 15:50분이다. 다음차를 기다릴까 택시를 탈까? 아니면 황금들녘을 가로질러 가을을 만끽하며 걸어서 가보면 어떨까를 망서리다 결국 다음차를 기다리기로 하고 대합실서 여유롭게 시간을 보내다 한참만에 들어오는 광의행 버스에 올라 본가를 향한다. 가을 추수가 목전이라선지 대합실도 한산하고 버스 승객도 몇몇 뿐이고, 지천리를 통과한 버스는 방광리를 지나 천은사 매표소를 통과하여 절 앞 주차장에서 방향을 돌려 다시 오던길을 달린다. 어릴적 학교 공부를 마치고 집에 돌아오기 무섭게 내 또래 대부분의 친구 아이들이 세,넷씩 어울려 힘에 부치는 리어카를 서로서로 짝지어 밀고 끌어서 아버지,어머니,형님분 들의 나무 마중을 여기까지 올라다니던 기억이 생생하다. 아마 여기 어디쯤 언덕길에서 쉬어가며 한숨 돌리다 돌멩이를 주워 나무 꼭대기를 향해 던져 대며 그 익지도 않은 밤,도토리를 따 모으던 추억을 아내한테 들려주며 입가에 미소가 연신 떠나지 않는다. 그때 그 성만이,주영이,인택이,승희---등등의 친구들 모습이 꿈처럼 눈앞에 어른거린다. 사랑재를 넘어 뒷뚱에 이르자 벌써 군데군데 가을 걷이가 시작되고 이미 추수가 끝난 논은 황금들녘에 땜통 자국처럼 그 자죽이 선명하다. 이제 곧 우리 부모님 형님 형수님 피곤한 몸 간신히 가눠가시며 추수하시기에 밤 새는 줄 모르시리라 생각하니 마음은 바빠지고 심란스럽기만 하다. 어느새 버스는 공북 까끄막을 미끄러져 내려 하대,연파리를 거쳐 우리동네 당산 앞에 멈춰서자 마침내 서울을 떠난지 다섯시간 50여분 만에 본가에 도착한다. 어머니께 인사 올리고 누님을 뵙고 형수님께 안부 여쭙고,옷을 갈아입고 나서 앉아있을 틈도 없이 곧 일거리를 찾아나선다. 이미 제사 음식은 형수님께서 다 준비를 하셨다고 하니 아내는 미안한 생각에 몸둘바를 모른다. 벽걸이 선풍기에 먼지가 자욱하여 벽걸이에서 분리하여 선풍기를 밖으로 들고나와 먼지를 털어내고 날개를 풀어 물걸레로 닦아서 다시 조립한 후 벽에 걸고나니 아내가 주방에서 볼멘소리로 불러대며 씽크대 온냉수 꼭지를 좀 봐달라 아우성이다. 형수님 까지 합세를 하시는가 싶더니 언젠가 형님께서 수도꼭지를 사다 놓으셨던거 같다시며 형님을 찾으신다. 밖에 나가셨던 형님께서 들어오시다 금방 알아 차리시고 창고로 가시더니 수도꼭지를 찾아다 주시며 밖을 향해 "들어와"!!~라시며 누군가를 부르신다. 수도꼭지를 받아들고 고개를 돌려서 보니 빙그레 웃으며 들어오는 도현이가 반갑게 손을 내민다. "이 반가운 사람!!" 참으로 얼마만이던가?! 어릴적 유난히 맘이 통하여 함께 만화책을 빌려다 보며 청소년기를 거의 붙어살다 싶이했던 반가운 친구!! 맞잡은 손을 힘껏 흔들어 대며 자릴잡고 앉는다. 그러자 형님께서 도현이랑 둘이서 천은사 골짝을 뒤져 그 귀하고 금값 보다도 더 비싸다는 송이버섯을 캐왔노라며 엄지손가락 만한 송이버섯 두송이를 상에 올려 놓으시고 형수님을 향해 술을 내 놓으라신다. 어머님과 누님을 상 앞으로 부르시고 송이를 잘게 찢어 앞앞이 나누시며 형수님께서 내놓으신 술을 잔에 가득채워 부어 어머님께 한잔 나도 한 잔 도현이도 한 잔 형님께도 한 잔, 목줄을 타고 가슴 깊이 스며드는 향긋한 솔향과 매실향에 고향 내음이 새록새록하고 신선하고 풋풋한 송이버섯 맛에 정신은 맑고 정결함을 느낀다. 아내와 형수님과 누님 께서도 귀한 맛 본다시며 오물오물 버섯 맛을 음미하시는 동안 살며시 일어나 주방으로 가며 형님께 연장을 묻고 수도 계량기를 잠궈주시라 청하니 형님 또한 바삐 몸을 빼시며 밖으로 나가신다. 수도꼭지를 교체하는 동안 성중이와 일기가 합석을 하고 찬수는 팔목만한 굵기의 송이버섯을 가지고 와서 우릴 놀라고 감동케 하며 성태 아재,아지매 까지 오셔서 반가움을 더해 주신다. 담소가 오가며 술잔이 거듭되는 사이 어느덧 하루해가 저물고, 체인이 벗겨져 방치된 자전거를 고쳐타고 급히 처가를 향해간다. 대문 앞에 이르자니 아버님께서 나오시며 인사를 여쭙기 무섭게 콩을 거두러 간다시며 급히 밖으로 나가신다.마당으로 들어서자마자 캐리어를 낚아 채 끌고 아버님 뒤를 쫓아가다 보니 점빵앞에 이르자 장모님께서 콩다발을 옮기고 계시며 반가히 맞아주신다. 인사를 드린둥 마는둥 마을 진입로 인도에 건조망을 길게 깔고 그 위에 드문드문 콩다발을 늘어 놓으시고 계시는 당산나무 밑 집 할머니를 도와 건조 자리를 확보한 후 다시 처가로 들어온다. 넓다란 마당이 온통 콩다발 더미로 그득하다. 불편하신 몸으로 어찌 저리 큰 일을 하셨을까? 안타깝고 죄스러움에 가슴이 뭉클하다. 대충 마당 정리를 마치고 오늘도 힘겨우셨을 아버님 어머님을 모시고 저녁식사를 위해 본가로 향한다.
짙은 어둠이 정겨운 구석구석을 차별없이 포용하고 왼 종일 설레임 가득하던 내 가슴에도 이내 밤 그림자 짙어가니 결전을 목전에 둔 전장처럼 농번기에 임박한 숨막히는 고향의 가을밤이 깊은 정적과 고요속으로 스멀스멀 빠져든다. 차별없는 자혜로운 포용에 답례라도 하려는 것일까?! 초롱초롱 빛나는 무수한 별들이 밤하늘에 흩어져 제각각의 사연을 말하는듯 깜박이고 나도 몰래 어느덧 하나둘 별빛을 쫓아 헤아리며 별 하나 추억하나, 별 둘 그리움 둘------------------------- 어느새 난 소시쩍 악동이 되어 고향하늘 별빛속을 풍선처럼 떠다닌다. 이 편안함 이 포근함 이 흐뭇함이 곧 고향 내 고향이리라.
몸과 마음을 정갈히 한 후 윗목으로 제사상을 차리고 양쪽으로 촛불을 밝힌 후 신위를 가운데 모시고 제기에 정성껏 마련한 제수를 올려 진설을 시작한다.어동육서,두동미서,좌포우혜,홍동백서라 하지않던가!!~ 향을피워 제사를 고하고 술을 따라 모사기에 나눠 부어 정결함을 보이고, 절을 올린 후 다시 술을 가득 채워 향불에 예하고 상에 올려드린 후 절을 두번 올린다. 정성을 다하여 제수를 올리니 흠향하시기를 청하고, 내 어머니의 만수무강과, 형님 가내의 건강과 평안을, 누님을 비롯한 누님가에 건강과 행복을, 동생네에 사업 번창과 행운을 축원하며 아버님께서 생존해 계시는 것처럼 떼를쓰듯 애원하듯ㅡ 생전에 못다주고가신 아버지 사랑, 아버지 정, 아버지 몫을 이제라도 갚아주실것을 요청하는 간절한 맘으로 절을 올린다. 허허허 하고 웃으시며 "알았다 이놈!!~" 알았으니 그만 억지부리고 어여 일어나 힘껏 살아야제!!??~" 하실것만 같은 나만의 착각!!~ 그 착각에서 오는 나만의 안도감과 편안함에 스스로의 위안과 든든함이 생겨나 좋으니 어찌 오늘을 추석 대명절에 견주리------------------현주에 이어 누님 형수님 아내까지 술잔을 올리고 메밥과 갱을 올린 후 방문을 닫고 거실로 모두 나와 옛 기억을 더듬으며 아버지를 추억하는 옛 이야길 나누다 다시 방으로 들어가 갱과 물을 바꿔 올리고 물밥을 한 후 다 함께 절을 올리고 상을 거둔다. 온 가족이 둘러앉아 음복하며 도란도란 나누는 정담이 창을 넘고 짙은 어둠을 깨우다 이내 그 속을 사라져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