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개봉한 영화 <덩케르크>를 보면서 제2차 세계대전에 대한 영화는 무궁무진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웬만한 소재는 이미 다 우려먹었을 법도 한데, 같은 소재라도 시각을 달리하면 전혀 다른 이야기가 됩니다. 반면 우리가 몰랐던 역사적인 사실을 발굴해 영화로 만들기도 합니다. 오늘 소개해 드릴 영화 <랜드 오브 마인>의 이야기도 그렇습니다.
‘덩케르크 철수작전’보다 2개월 앞선 1940년 4월 9일, 비무장 중립국인 덴마크는 선전 포고도 없이 나치 독일의 침공을 받습니다. 덴마크는 별다른 저항도 못하고 순식간에 점령됩니다. 나치가 덴마크를 점령한 이유는 지정학적 중요성 때문입니다. 이제 본격적인 전쟁이 벌어지면 많이 필요해질 철광석이 풍부한 노르웨이로 진격하기 위한 침공 루트 확보 차원, 그리고 연합군의 유력한 반격루트를 미리 차단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점령 기간 5년 동안 나치의 상당한 압박을 견뎌야 했던 덴마크, 마침내 1945년 5월, 독일이 연합군에 항복하자 해방이 됩니다. 하지만 마냥 즐거워할 수 없는 심각한 문제가 남았습니다. 바로 지뢰였습니다.
영화에서도 설명하듯, 나치는 연합군의 상륙 지점이 될 것으로 예상한 덴마크 서해안에 무려 220만 개의 지뢰를 매설합니다. 전쟁이 끝나자 지뢰를 없애는 문제가 당면과제가 됩니다. 당연히 지뢰를 묻은 독일 정부가 해주면 좋겠지만 당장은 그럴 능력이 없어 한동안 기다려야 할 상황이었습니다. 그렇다고 덴마크인들이 나서서 그 위험한 일을 할 수도 없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서, 영국군이 독일군 포로들에게 그 일을 시키자는 제안을 했다고 합니다(영화에서 소년병들이 해안을 행진할 때 총을 들고 뒤따르는 병사 둘은 영국군입니다).
2~3,000명의 포로가 죽음의 땅으로 내몰립니다. 상당수는 소년병과 노인병들이었고, 절반 정도가 죽거나 심각한 부상을 당합니다. 전쟁 포로에게 이런 일을 시키는 것은 1929년 제네바협정 위반입니다. 뿐만 아니라 전쟁이 끝난 상태에서 어린 포로들을 그렇게 다룬 것은 나치가 자행했던 ‘노예노동’과 다르지 않겠지요. 그래서 영화가 개봉되자 덴마크인들은 ‘불편한 과거사’에 당혹스러움을 감출 수 없었다고 합니다. 영화는 이러한 배경을 깔고 있는 픽션입니다.
덴마크군의 칼 라스무센 상사는, 11명의 소년병 포로들을 데리고 외딴 해안에서 지뢰 제거 작업을 시작합니다. 독일군에 대한 적개심 때문인지 상사는 소년들을 거칠게 다룹니다. 소년들은 위험한 일을 하지만, 굶주리고, 폭행에 시달리고, 마침내 병을 얻지만 상사는 조금의 인정도 베풀지 않습니다. 그러다가 사고가 터지면서 하나 둘 목숨을 잃기 시작합니다. 그제야 상사도 영심의 가책을 느끼며 얼음장 같은 마음이 조금씩 흔들리기 시작합니다.
어린 소년들의 고통을 바라보면서 가슴이 먹먹한 장면이 많습니다. 어른들이 사고를 치고, 죄 없는 아이들이 뒷수습을 하는 형국이니까요. 전쟁 막판에, 궁지에 몰린 나치는 13세 소년들까지도 징집했다고 합니다. 몸에 맞지도 않은 군복을 입고, 총을 들기는 했지만 정말 병사였을까요? 그런 아이들이 지뢰로 팔다리가 잘려나가 고통에 몸부림치며 엄마를 찾으며 울부짖는 장면을 바라보는 것은 몹시 고통스럽습니다. 하지만 바로 그 장면에서 아주 특이한 주사가 등장하는 순간을 놓치지 않았습니다. 바로 모르핀 주사입니다.
영화에서 모르핀 주사는 두 번 나옵니다. 지뢰가 터져 양팔을 잃은 소년병이 고통으로 몸부림칠 때 상사가 뭔가를 찔러주는 장면이 하나이고, 형제를 잃은 소년병이 쇼크 상태에서 실성하여 발버둥을 칠 때 한 번 더 등장합니다. 처음에는 진통제로, 두 번째는 진정제로 쓰였습니다. 오랫동안 모르핀을 쓴 이유가 바로 이 두 가지였지요.
잘 아는 것처럼, 모르핀은 아편(阿片)에서 얻고, 아편은 양귀비에서 얻습니다. 양귀비는 서양의 클레오파트라와 맞먹는 동양의 대표적 미인의 이름이기도 하지만, 그만큼 아름다운 꽃의 이름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일반인들은 그 꽃을 보기 어렵습니다. 양귀비꽃을 키우는 것만으로도 ‘마약류관리에 관한 법률 위반’으로 처벌을 받으니까요. 하지만 양귀비를 몰래 키우는 사람들은 생각보다 많아서, 당국은 양귀비꽃이 피는 늦봄에 드론까지 띄워 단속에 나섭니다. 작년(2016년)에만 1,050명이 양귀비 사범으로 적발되었다고 하네요.
사람들이 양귀비를 키우는 이유를 어여쁜 꽃 때문이라고 하겠지만, 양귀비의 덜 익은 꼬투리에 생채기를 통해 흘러나오는 희뿌연 액체 때문이라는 것이 솔직한 고백일 것입니다. 이것을 긁어내어 말리면 갈색 덩어리가 되는데, 이것이 바로 아편입니다.
모든 양귀비가 아편을 만드는 것은 아닙니다. 28개 속, 250여 종이나 되는 양귀비 품종 중 파파베르 솜니페룸(Papaver somniferum) 과 파파베르 브랙테아툼(Papaver bracteatum) 2종류에서만 아편이 납니다. 그러니 여름 들판에 핀 ‘개양귀비’를 보고 놀랄 필요는 없습니다(중국에서는 개양귀비도 초나라의 절세 미인의 이름을 붙여 우미인초(虞美人草)라고 부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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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귀비꽃 ⓒ 박지욱
인간이 언제부터 어떻게 아편의 효능을 알고 썼는지는 정확히 모릅니다. 하지만 술보다 더 오래 전부터 사용했고, 이미 선사 시대에도 아편을 쓴 것으로 봅니다. 오랫동안 인간은 아편을 삼키거나(서아시아, 유럽) 피워왔지만(동아시아) 범죄행위로 인식한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입니다. 아편을 즐기는 것은 술을 마시거나 담배를 피우는 것처럼 기호의 문제였습니다. 하지만 의사에게 아편은 설사와 기침, 고통과 격앙된 감정을 잠재워주는 약이었습니다.
의사들이 아편을 약으로 쓴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 보면 2세기 로마의 갈렌(Galenus; 162~217), 16세기 스위스의 파라켈수스(Paracelsus; 1493~1541), 17세기 영국의 시데넘(Thomas Sydenham; 1624~1689)이 등장합니다. 하지만 의사의 처방 없이도 아편이 함유된 음료가 설사약이나 진통제로 일반인들에게 팔렸고, 중국에서는 아편 과자까지 있었습니다.
1805년에 독일의 제르튀르너(Friedrich Wilhelm Adam Sertürner; 1783~1841)는 아편에서 유효성분을 분리합니다. 12년이 지나서 자신을 포함하는 몇몇 사람에게 생체실험을 했는데, 진정 효과가 너무 강해 구토를 해서 다 게워내고도 며칠 동안 제정신을 못 차렸다고 합니다. 비몽사몽 간에 이런저런 꿈을 많이 꾸었을까요? 제르튀르너는 자신이 추출한 이 성분의 이름을 그리스신화에서 ‘꿈의 신’인 모르페우스(Morpheus)의 이름을 따와서 모르피움(morphium)으로 붙입니다. 영어로는 모르핀(morphine)입니다. 이후로 모르핀은 세상에 널리 알려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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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르튀르너 ⓒ 위키백과
하지만 처음에는 모르핀에 대한 세간의 반응은 시큰둥했습니다. 제르튀르너가 정식으로 교육과 훈련을 받은 전문가가 아니었기 때문에 아무도 그의 주장에 귀기울이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1818년에 프랑스의 저명한 의사인 마장디(François Magendie; 1783~1855) )가 어떠한 약으로도 잠을 이룰 수 없는 뇌동맥류 환자에게 모르핀을 처방해서 푹 재웠다는 사례를 발표합니다. 그제야 모르핀에 대한 관심이 쏟아집니다.
1853년에, 에든버러의 우드(Alexander Wood; 1817~1884)는 자신이 개발한 피하 주사기로 모르핀을 주사합니다. 주사는 먹는 것보다 훨씬 강하고 빠른 진통 효과를 나타냈습니다. 모르핀이 먹는 수면제에서 강력한 진통제 주사제로 탈바꿈한 것이지요. 하지만 진통 목적으로 주사를 맞는 사람들이 점점 주사 자체를 그리워하는 일이 생기기 시작합니다. 짐작하듯 모르핀 중독이 생긴 것입니다. 처음에는 통증 때문에 주사를 맞던 환자들이 점점 모르핀 주사를 더 맞고 싶어 합니다. 효과가 강력한 만큼 중독성도 강했고, 부유층을 중심으로 모르핀 중독이 들불처럼 퍼집니다.
하지만 모르핀 주사가 가장 많이 필요한 곳은 부자들의 저택이 아니라 피비린내 나는 전쟁터였습니다. 심각한 상처를 입고 끔찍한 통증으로 몸부림치며 죽음의 순간 만을 기다려야 하는 병사들에게 모르핀 주사 한 방은 신의 은총이었습니다. 하지만 은총을 무분별하게 남용하면 중독이 되기에 십상이지요.
미국은 남북전쟁(1861~1865)을 겪으면서 6만 명이 넘는 군인들이 모르핀 중독자가 됩니다. 유럽에서도 나이팅게일이 활약했던 크림전쟁(1853~1856)이나, 도데의 소설 <마지막 수업>의 배경이 된 프랑스-프러시아전쟁(1870~1871)에서도 많은 군인들이 모르핀 중독자로 전락합니다. 하지만 군인들과 참전용사들의 모르핀 중독은 대수롭지 않게 여겨졌고, 20세기에 터진 두 번의 세계대전과 베트남전쟁을 통해 상황은 더욱 나빠집니다.
다시 영화로 돌아갑니다. 영화에 등장하는 모르핀 주사를 자세히 볼까요? 주사기의 모양이 특이합니다. 어릴 때 플라모델 좀 만들어본 독자라면 키트에 든 접착제에 바늘이 꽂힌 모양입니다.
이것은 ‘시렛트(syrette)’라고 불리는 ‘작은 주사기+튜브’입니다. 튜브 안에는 모르핀이 들어있고, 누구라도 부상병의 몸에 바늘을 꽂은 후 치약 짜듯 손가락으로 누르면 손쉽게 주사할 수 있는 장치랍니다. 제2차 세계대전 때 사용되었고, ‘오토인젝터(autoinjector)’를 사용한답니다.

사이렛. ⓒ 위키백과
덴마크는 2012년이 되어서야 ‘지뢰 없는 나라’가 됩니다. 지뢰 때문에 입은 인명 피해가 전쟁 통에 입은 인명 피해보다 더 컸다고 하니 덴마크사람들이 독일에 화를 낼 만은 합니다. 영화 속 대위의 말처럼, ‘너희들도 딱하지만 우리도 딱한 처지’란 말이 아프게 와 닿습니다.